박병문 사진가의 선탄부 (選炭婦), 여성광부 이야기
2023.12.6-17일 New York Gala Art Gallery center 초대전
탄광촌 사진으로 유명한 박병문 사진가가 해외초대전으로 2014년 <제5차 중국연변 국제사진문화 주간 초대전>에 이어, 오는 2023년 12월에는 드디어 <New YorK Gala Art Gallery center 초대전>을 열게 됐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난 박병문 작가는 2010년 제24회 강원도 사진대전 대상, 2013년 제1회 최민식 사진상 특별상 대상, 2016년 제6회 온빛 다큐멘터리 사진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며, 특히 우리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탄광촌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아온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박 작가는 2007년 <금대봉의 야생화>, 2014년 <아버지는 광부였다>, 2015년 <검은 땅 우금에 서다>, 2016년 <아버지의 그늘>, 2017년 <선탄부>, 2018년 <검은 땅 막장탄부들>, 2020년 <폐광> 등의 사진집도 펴낸 바 있다.
사진가 박병문은 태백에서 태어나, 거기서 잔뼈가 굵었다. ‘태백’, 하면 떠오르는 검은 땅, 검은 산, 그리고 검은 광부. 그는 거기서 광부의 아들로 나고 자랐다. 그는 장성하여 성년이 되고 사진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피사체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 바로 아버지의 검은 얼굴이었다.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아버지가 살아온 삶은 무엇이며,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반추하는 것을 통한 자기정체성의 확인, 그의 작업은 거기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여 그의 사진은 특이한 소재를 찾아 나선 ‘탐미적 호기심’의 결과물도 아니고, 뜨거운 휴머니즘으로 만들어낸 ‘사회학적 보고서’도, 노동자의 권익을 쟁취하기 위한 선언문도 아니다. 또한 그는 탄광과 광부라는 특이한 소재에 관한 ‘탐험’을 하고 있는 것도, 사진을 매개로한 낙낙한 예술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지금 카메라를 들고 평생을 광부로 일해 온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내고, 거기서 자신의 현존의 뿌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 나의 탯줄이 묻히고 나를 길러낸 검은 땅, 그리고 그 땅에서 아버지와 나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 이번 작업에 앞서 지난 몇 해 동안 발표한 <아버지는 광부였다>, <검은 땅 우금에 서다>, <아버지 그늘>과 같은 일련의 사진들이 바로 그런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삶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시작된 그의 사진여정은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검은 땅, 검은 산하에서 함께 검은 공기를 호흡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 그의 사진은 확장되어왔다. 오는 2023년 12월 6일부터 12월 17일까지 미국 뉴욕 Gala Art Gallery Center 초대전 <선탄부> 역시 바로 그 결실 중의 하나이다.
인생막장으로 비유되는 그곳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광부들, 여성 선탄부(選炭婦). 그들의 노동과 삶이 얼마나 지난하리라는 건 구구하게 형언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사리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가사노동을 책임지며, 산업노동자로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 막장에서 쏟아져 올라오는 흙더미,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어벨트에서 눈에 불을 켜고 석탄과 잡석을 가려내는 사람들. 허리를 펼 사이도 없이 숨 가쁘게 흙더미에서 그들이 건져 올리고 있는 것, 건져 올리고 싶은 것은 어찌 석탄 뿐이겠는가? 아마도 행복한 가정의 꿈, 아니 어쩌면 눈앞에 닥친 절박한 생존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사진가 박병문이 그들의 삶에서 골라내고 건져 올리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이제 자신의 아버지의 삶의 흔적을 찾아낸 바로 그곳, 자신의 인생의 그루터기가 되었던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일하는 터전, 그리고 이제는 소위 ‘산업합리화’ 정책에 떠밀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들의 삶에서 찾아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내보이고 있는 이번 사진들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할 것은 바로 그 대목이다.
사진가 김문호는 박병문의 사진에 대해 “그의 사진은 2인칭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사진에는 저만치 있는, 사진가가 대상화시켜서 냉정한 시선으로 관망하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항상 나의 아버지와 나와 함께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낯익은 사람들, 바로 ‘당신’이다. 그로 하여금 사진기를 들도록 만들었던 그 모티브가 타인을 향한 시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박병문의 이번 작업을 통해서 달리는 볼 수 없었던 여자광부들의 일상을 속속들이 만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그의 친밀한 시각 덕분일 것이다. 그의 이번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이어나갈 작업에서도 그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이는 그의 사진문법이 그곳 검은 땅에서의 곡진한 생체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전제한다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바이기도 하다. 이런 시각을 좀 비틀어서 말하자면 자본과 노동, 열악한 환경의 탄광과 광부라는 첨예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는, 사회경제적으로 민감한 대상을 다루면서도, 박병문의 사진에서는 분노나 절망, 저항과 같은 강렬하게 자극적인 앵글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바로 그만의 사진언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아버지의 삶의 흔적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왔던 박병문 사진가가 작업의 외연을 확장시켜서 타인의 언어가 아닌 2인칭 언어로 써가게 될 검은 땅의 기록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보려 한다.”고 평한다.
박병문 사진가는 작가노트에서 “평생을 광부로 계셨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지하 막장과 탄광촌지역을 촬영하기 시작한 것이 거의 수십 년이 되었다. 지하 1,000m의 막장은 텁텁하고 고온다습하며 끈적이는 분진들의 사투현장인 그곳에서 탄을 캐는 광부에게는 희망이란 단어가 새로움 그 자체였다. 그 분들이 흘렸던 검은 땀방울의 숭고함은 아버지의 체취였고 노고의 산실이었던 것이다. 검은 땀으로 범벅되는 막장에서 시작하여 차곡차곡 쌓여진 거대한 선탄장까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기록하는 여정은 숙명 같은 과제가 되었다. 그 과정에 억척스런 공정인 선탄과가 있음을 알았고, 자신을 잊은 시간과 검은 존재로만 있는 선탄과의 여자광부도 기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광부 시리즈 프로젝트 7번째 이야기 중 그 4번째 이야기 <선탄부-여성 광부>. 어두컴컴한 곳에서 여성이기 이전에 든든한 광부로서의 직무를 다하는 그분들의 모습 역시 가장의 버팀목으로서 뿐 아니라 산업역군으로서 최일선에서 일하는 전사 그대로이다. 막장에서 캐내어진 탄들이 그 상태로는 상품이 될 수 없고 섬세한 손놀림의 여성광부가 있어야 만 괴탄과 경석으로 구별되고 다수의 공정을 거친 후 상품화가 될 수 있다. 광부에 의해 막장에서 채탄된 탄이 갱구 밖으로 운반된 석탄에서 불순물인 잡석이나 석탄이 아닌 이물질을 골라내는 부서를 “선탄과”라 한다. 선탄과의 직원채용은 일반 회사보다 남다르다. 무너진 막장에서의 사고는 한 집안을 위기로 몰아넣을 뿐 만 아니라 슬픔과 절망으로 실의에 빠진 가정을 위해 그 부인을 선탄부에서 근무하도록 회사에서 특채로 채용해 주는 게 관례이다. 한 가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박병문 사진가는 “검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선탄장은 늘 묵직함과 비장함이 흐른다. 산 협곡 사이 비스듬히 층층한 자태의 선탄시설이 눈길을 끈다. 알 수 없는 허름한 굉음이 울려 나오고, 흰 눈을 바탕삼아 잿빛 분진은 하늘로 꼬리를 물고 오르는 외관의 모습은 위엄하기까지 하다. 선탄장 창문으로 휘둘리는 붉은 빛은 힘겨움의 상징처럼 가슴을 짓누른다. 밤보다 더 어두운 선탄장은 행복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지하에서 올라온 탄들은 6개의 벨트를 거쳐 이곳 선탄장에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린다. 각자의 소리로 돌아가는 벨트 위에는 다른 성질의 경석과 탄들이 질서 정열하게 흐른다. 메마른 산에 함박눈이 하염없이 퍼붓는 날, 어김없이 출근하는 그들을 따라 검은 시간 속 소음들이 우렁찬 선탄장에 들어선다. 선탄원의 근무복은 눈을 제외하고 빈틈을 허용치 않는 군인들처럼 온톤 철통 방어의 복장이다. 자욱한 분진들 사이에서 괴탄을 골라내는 묵묵한 손놀림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사정없이 굴러들어오는 탄들을 보석 찾듯 매서운 눈으로 관찰하며 괴탄을 줍는다. 벨트에서 떨어진 탄을, 굽어진 허리로 쓸어 담아 올리기를 수십 번, 분탄으로 인해 뿌옇게 혼탁해진 공간에 허리를 펴기도 전에 또 엎드려 삽질을 한다. 얼굴에 달라붙은 분진이 몸서리가 나지만 그들에겐 그저 일상으로 여길 뿐이다. 검게 변한 마스크 필터를 교체 하는 손끝에도 분진이 매몰차게 밴다.”고 선탄부 여성광부들의 일상을 소개한다.
박병문 사진가의 부인 손정애 씨는 시인이다. 그녀도 선탄부 야간작업에 직접 참여하여 현장에서 여성광부들의 고단한 일상을 함께 나누면서 그들의 모습을 <검은 장미>라는 제목의 시로 생생하게 그려낸 적이 있다.
쓰디쓴 탄진의 흔적은
햇볕도 무디게 했었다.
분진의 일터 차갑게 누른다.
흐려진 시야 질퍽한 일상 속
외줄 타 듯 버텼다.
검게 익은 탄진을 재운 뒤
그 길을 걷는다.
석탄은 눈물이 되었고
억척 삶을 강하게 했다.
냉기가 하늘을 찌르듯
굳은 햇빛을 말린 바람은
햇살의 투정이 버거울 뿐이다.
힘겨운 이 공간
굽어진 골절에서 인고로 떨어지는
땀방울이 서러웠다.
선탄에서 익은 검은 장미.
나는,
여성 광부였다.
박병문 사진가는 “선탄부의 손에 의해 상품으로 출고 될 때까지 30개의 컨베어벨트를 돌고 돌아 거쳐야만 하고 이리저리 엮이지 않고 돌아가는 벨트 사이로 재빠르게 다니는 그들만의 검은 공간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엔 벅차다. 잠시만 있어도 분진이 달라붙어 검은 여자광부로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에 새벽이 농하게 익기까지 카메라에 담아본다. 혹독한 환경과 소음 속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광부, 밤샘작업이 끝나고 아침이 밝아오면 집을 향해 질퍽한 눈 위를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삶의 아름다운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광산에서는 광부가 늘 주연이다. 어두컴컴한 그늘에서 일하는 선탄부의 여성광부들. 무겁게 입을 가린 분진 전용 마스크에서 무거운 삶의 무게가 느껴지고, 범접 할 수 없는 그들 만의 검은 공간에서는 일상이 흑진주처럼 엮여져 간다. 여성광부, 그들의 검은 여정과 힘겨움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한다.”고 작품배경을 설명한다.(정리/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