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두 번 운행하는 규봉암(암주 정인스님)
버스에 올랐다. 이른 새벽인데도 신도들로 가득
찬 소형버스가 출발하고. 보살님들 대화소리에 “조용한
암자를 찾아가려했는데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지”
후회가 들 무렵, 힘겹게 산을 오르던 차가 멈췄다.
“이곳은 부처님오신날이나 돼야 눈이 다 녹아요”
속세의 날씨를 비웃듯 아직도 깊은 눈이 쌓인
무등산 중턱에서 차가 옴짝달싹을 못하고, 2시간여를
걸어야 한다는 막막함도 잠시. 한 고개를 돌자
나타나는 얼음바위가 절경을 자아낸다. 바위를
따라 흘러내린 지하수가 기기한 형상을 이루며 “산에
왔으니 걸어가라”고 설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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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바위> |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무등산 정상, 장불재에서
산길을 따라 30여분을 걷자 가파른 돌계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바로 돌계단 위로 일주문을
겸한 종각이 나타난다. 겨울 산행이지만 몸이
땀에 젖어 목이 컬컬한데 “산길 오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웃음 띄며 건네는 스님의
조롱박에 시원한 물이 한가득 담겨있다.
돌 모양은 비단을 말아낸 듯/ 봉우리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가부좌 틀고 무생(無生)을 배우노라 (고려 명종
김극기)
물을 들이키고 들어선 경내는 규봉암을 찬탄한
김극기의 글이 무색하게, 자연이 만든 경치에
넋을 빼앗긴다. 암자 아래 광주시내가 한눈에
잡힐 듯 놓인 비경도 모자라 암자 뒤로 12폭
바위병풍이 둘러쳐 있다.
관음전과 요사채, 5평 남짓의 텃밭. 그리고 종각이
규봉암의 전부다. 아니 자연이 더 이상 사찰에
공간을 내주지 않아 규봉암은 고요함을 간직한채
천년을 이어오고 있다.
12폭으로 이뤄진 기암괴석마다 풍혈대, 장추대,
은신대 등의 이름이 붙어있다. 오랜세월 많은
선조들이 이곳을 찾아 이름을 붙인 까닭이리라.
스님이 사람들을 모아 큰 돌을 괴어 만들었다는
광석대는 넓직한 바위를 돌로 괸 듯 놓여있었다.
이곳이 고려를 침범한 왜적들과의 격전지였다니
새삼 바위의 애절함이 가슴에 파고든다.
관음전을 둘러 비쭉비쭉 서 있는 바위마다 명문이
즐비하다. 암행어사 정직조, 목사 박영재, 목사
김경규 등등. 아마도 권세가들이 비경에 반한
나머지 그냥 돌아가기에 아쉬워 이름을 깊이
새겼는가보다. 다행히 하나같이 명필이라 시선을
거스르지 않는다.
자연을 한참 즐기고 나서야 기도를 마친 스님께
인사를 올렸다. 누더기를 걸친 스님이 직접 가꾼
생배추와 채소로 식사를 하며 “여느 불자든지
가족과 함께 와서 하룻밤 묵을 수 있냐”고
물으니 “쌀과 반찬만 가져오면 10여명은 족히
하룻밤 머물 수 있다”며 부처님 제자는 누구든지
환영한단다.
새벽 일출과 일몰이 장관이라는 소리에 그 광경을
보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전남 화순=安稷洙기자
·가볼 만한 곳
“불심이 강한 경상도 지역에 있었으면 벌써 산을
찾는 사람들로 난리가 났을 것인데 전라도에 있어
오염이 안됐다”는 신도회장의 말처럼 규봉암은
오르는 길 자체가 장관이다. 무등산 정상인
장불재는 3월이면 끝없이 펼쳐지는 철쭉이 장관을
연출한다. 암자를 들러 나오는 길에 입석대〈사진〉와
서석대는 등산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제한된 차량만 다닐 수 있는 관리도로 입구의
원효사, 장불재에서 중봉을 넘어 만나는 증심사는
천년고찰의 고즈넉함을 간직하고 있는 곳. 하루
등산코스로 설악에 뒤지지 않는다.
·찾아가는 길
규봉암에는 전화가 없다. 다만 한달에 세 번, 음력
8일, 15일, 24일에 광주 산수동5거리서 오전 7시에
사찰버스가 출발한다. (신도회장 062-225-45 38)사찰버스는
무등산 정상인 장불재 입구까지 운행돼 이곳에서
30여분 산길을 걸으면 규봉암에 도착한다.
대중교통은 산수동5거리서 771번, 광주역서 18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해 4시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