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톱하기 ①
‘구잡스럽다’, 표준말인가?
진짜 우리말인데, 자기가 모르면 사투리라고 하다. 하기야 ‘서울 사투리’도 많이 있다. ‘구잡스럽다’라는 말도 그렇다. 사전에 안 나와 있다. 그래서 표준말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사전에 나와야만 표준말인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황해도, 평안도 등 여러 지역에서 두루 쓰이는 말이다. 표준말로 등급을 올려야 할 것 같다.
‘구잡스럽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자.
먼저 ‘구잡스럽다’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를 보자. 한글 맞춤법과 ‘경기도 사투리 연구’라는 명저를 남기고 방언학의 권위자인 김계곤(金桂坤, 1926~2014, 한글학회장 역임) 선생님의(필자의 보성고등학교 국어선생님, 1960년대)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그는 ‘구잡스럽다’를 경기도 방언으로 보고 있다.
구잡스럽다(苟且-구차스럽다).
김계곤(전 인천교육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한글 학회 총무이사), ‘언어생활’, 삶과 문화-언어와 설화(일산 새도시 개발지역 학술조사보고 2) 1992, 191~206: 198: ‘구잡스럽다’의 찾아가기는 다음과 같다: ‘언어생활’ >> 2. 일산지역방언 >> 가. 씨(품사) 별로 본 비표준말 >> (2) 한자말 >> (다) 그림씨 >> ‘구잡시럽다(苟且-구차스럽다: 구잡시럽게)’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구차스럽다(苟且 . . . )’는, 넓은 뜻으로 보면 그렇다 하더라도, ‘구잡스럽다’와 딱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구차스럽다(苟且 . . . ) 는
1. 살림이 몹시 가난하다.
2. 옹색하다
3. 말이나 행동이 떳떳하거나 버젓하지 못하다.
* 구차한 변명 그만두고 사퇴해야
그러면 ‘구잡스럽다’에 딱 어울리게 말을 생각해보자. 짖 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를 ‘구잡스럽다’고도 한다. 이는 ‘구(狗)+잡(雜)스럽다’의 합성으로 성질이 안 좋거나, 까불거나, 지저분하게 노는 ‘개 궂은 짓’으로 볼 수 있다. ‘개 궂은’은 ‘개+궂다’를 붙인 말로 ‘개구지다’가 으뜸꼴이 된다. ‘궂다’는 ‘비나 눈이 내려 나쁘다,’ ‘좋지 않고 험하다’는 뜻이다(예: 궂은 날씨, 궂은비). 개구지게 노는 아이를 ‘개구쟁이’라고 한다. ‘개+고생’처럼 개처럼 몹시 고생하는 것, 개 같이 천하게 고생하는 “개고생‘과 같은 말이다.
쓰임의 예:
* 그 엄마도 본인 딸이 워낙 ‘구잡스럽다’고는 것은 알고 있는데 남들한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는 모르는 것 같아요.
* 아무래도 남자 강아지는 ‘구잡스럽고’ 활동량이 많더라구요(소란스럽다).
다음으로 ‘구잡스럽다’를 좀 변화시키어 ‘구접스럽다’고 살펴보자.
‘구접스럽다’의 사전적 의미는 1. 추잡하고 지저분하다. 2. 보기에 너절하고 더럽다
이밖에도 아래와 같은 설명이 있다.
1. 하는 짓이 너절하고 더러운 데가 있다 .
*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 몽땅 주워 팔아야 돈 몇 푼 안 될 구접스런 세간을 떠 짊어지고 이사 다닐 필요는 없어요.
2. 하는 짓이나 행태가 너절하고 지저분하고 더럽다.
* 구접이 도는 늙은이. 구접스럽게 놀다. 구저분한 옷차림. 구저분하다.
쓰임의 예:
* 조선중앙통신은 서훈 실장이 "비밀리에 미국을 행각하여 구접스럽게 놀아댔다"며 서 실장이 "남북관계는 미국 등 주변국들과 서로 의논하고 협의해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한 발언에 대해 "얼빠진 나발"이라고 깎아내렸습니다(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매스컴, 2020.10.29)
따라서 ‘구잡스럽다’나 ‘구접스럽다’나 같은 뜻으로 보인다.
끝으로 ‘구잡스럽다’를 뒤적거리다 보니까 ‘주접스럽다’, ‘부잡스럽다’로 설명하는 곳도 많은데 ‘구잡스럽다’와는 다른 의미이다.
주접스럽다: 1. 상스럽고 지저분한 데가 있다. 2. 옷차림이 초라하고 너절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3. 음식 따위에 대하여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태도가 있다. 4. 모습이 몹시 볼품이 없거나 어수선한 데가 있다. 5. 이런저런 탓으로 생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는 말이다.
* 아기가 주접 한번 끼는 법 없이 무럭무럭 잘 자랍니다.
* 주접떠네
부잡스럽다(浮雜 . . . ): 사람됨이 성실하지 못하고 경솔하며 추잡한 데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구잡스럽다’를 흔히 쓰는 말은 아니라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다. 나아가 표준말로 올려 지기를 바란다.
구잡스럽다:
1. 잘 어울리지 않는다.
2. 시시하고 쓰 잘 데가 없다.
3. 더럽고 지저분하다.
4. 어수선하다, 소란스럽다
5. 너절하다.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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