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 2008. 3. 8(토)
2.
장소 : 양평
용문산(1,157m)
3.
행로 및 시간
[주차장(10:50) -> 용문사(11:10) -> (좌측
능선) -> 절고개 갈림길(12:35) -> (된비알)
-> 남동릉 안부(12::00) -> 능선 쉼터(12:10)
-> 마당바위 갈림길(12:35) -> (험로)
-> 장봉군 갈림길 평상(13:25) -> 정상(13:30)
-> (중식) -> (산허리 길) -> 장군봉
(15:10) -> 상원사(16:10) -> 절고개 갈림길(16:55) -> 용문사(17:35)
-> 주차장
(17:50)]
4.
동행 : 강형, 성우
5.
뒤풀이 : 산여울
펜션
< 프롤로그 >
지난 3월 8일 청계산 산행
하산 시 도진 무릎이 좋지 않은 터에, 평생할 일인데 몸부터 추스려야 한다는 산벗들의 충고도 있고 해서, 3주간 산행을 쉬었더니 무릎은 상태가 나아지는 지는 몰라도 몸과 마음은 산바라기를 하고 있다. 지난 목요일 저녁 강형의 MT 제안이 있더니 곧바로 양평 용문산
인근에 펜션을 예약했다는 메시지가 날라왔다. 100대 명산 중에 하나로 최근 정상이 개방된 용문산 근처에서
숙박할 기회가 왔으니 산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무조건 OK다. 평소와 같이 출발 전날 도상 등산을 추진하는데 용문산에 관한 자료가 부족하다.
할아버지 등산 책 ‘명산 700 코스’에 용문산은 빠져있고 월간지와 기타 서적에서도 정보를 쉽지 찾을 수 없다.
100대 명산수첩에 표기된 간략한 지도로 코스를 가름하니 마당바위로 2시간 등산, 장군봉을 거쳐 하산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될 듯하다. 길의 난이도가 어떨지 걱정되었으나 3주
만에 하는 산행의 흥분에 걱정은 이내 잦아든다.
출발 전날 저녁 연락이 온 성우는 근무 관계로 토요일 오후 직접 펜션으로 합류하겠단다. 강형과 둘만의 오붓한 산행이 되겠다. 평촌 농수산물 시장에서 장어와
삼겹살을 사는 것으로 간단한 장보기를 하고 길을 나선다. 양평 용문사까지의 80km의 길을 1시간 15분만에
주파한다. 토요일 오전 운전은 도로가 한산하여 제법 여유로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어 좋다. 용문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용문사로 향한다. 저 앞에 용문사 일주문이
보인다. 자! 시작이다.
< 산행기 >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용문사 앞 광장은 잘 정비되었고 규모가 커서 개방감을
준다. 이 길을 따라 15분 정도 콘크리트를 따라 오르니
먼저 용문사 은행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신라 마의태자의 지팡이가 근원이라는 수령이 1100년이 넘었다는 나무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는다. 크기는 압도적이나
잎이 떨어지고 링거를 매난 모습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모든 것에는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게 마련이고
용문사 은행나무는 늦가을 무성한 잎이 떨어질 즈음이 최고의 모습일 것이다. 용문사 경내는 내려올 때
들릴 요량으로 그냥 지나친다. 절집을 지나 완만한 길을 조금 오르니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마당바위길, 왼쪽은 능선/상원사
길이다. 입구에서 구한 등산안내 지도와 100대 명산수첩의
길 안내가 서로 다르다. 100대 명산 수첩에는 능선 길의 표식이 없다. 혼선이 온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다. 그래도 1,000m가 넘는 산이니 산세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초봄 눈과 얼음의 빙판길과 눈 녹은 질퍽한 길로 등반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왠지 준비가 소흘하다는 느낌이 온다.
< 용문사 은행나무 앞에서 >
용문사 갈림길에서 절고개 갈림길과 이후 남동릉 능선 안부까지는 된비알이다. 초반이어서 그런지 가파른 30여분의 오르막을 가볍게 오른다. 초반의 몸 상태는 이상하리만큼 가볍다. 무릎에 신경이 가다 보니
다른 곳의 힘겨움은 대스럽게 여겨지질 않는가 보다. 대신 감기를 앓고 있는 강형은 오늘 산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 나오고 있다. 능선 안부에 오르니 제법 공기가 상쾌하다. 따사로운
봄 햇살에 바람 한 점 없는 완연한 봄 날씨다. 능선의 초반은 완만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정상부의 군부대 시설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작은
쉼터를 지나면서 길은 바위 길로 변하여 제법 험해진다.
< 마당바위 갈림 길 앞에서 >
고도를 급격히 잡아먹는 5개의
철제 계단을 지나 치고 오르니 마당바위 갈림길에 도착한다. 시간은 12시 35분이고 이정표에는‘마당바위
0.6km, 용문사 2.1km’를 표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용문사의 등산 안내 표시는 나무로 된 것(정상 개방 전 것으로 보여짐), 철로 새로 만든 것(정상 개방 후 신작한 것으로 보여짐), 그 위에 등산객이 새로이 고쳐
쓴 것 등이 혼재되어 있으며 어느 것 하나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마당바위에서
정상까지는 약 1km 거리다. 쇠 안내판이 100m 단위로 남은 길을 안내해주는데 중간에 없어졌다 나타나고 그나마 감으로 정확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온다. 분명한 것은 용문산에서 100m를 오르는 것은 참으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정상이 빤히 올라다 보이는 정상 500m 정도
되는 곳에서 강형이 산세를 살피더니 앞으로도 작은 고개를 서너개 더 지나야 정상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으며, 그
예상은 불행히도 적중되었다. 길은 점점 험해짐과 동시에 눈이 녹아 ‘진흙
펄’이 많아 진다.
정상을 300m 정도 앞둔
지점에서 지나는 등산객의 말로는 마당바위 길은 사정이 더 안 좋다 한다. 그나마 능선 길을 택한 것이
조금 위안이 된다. 초콜렛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몸 상태를 점검하는데 무릎은 아직 견딜만하다. 최근 어느 책에서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등산 시 우리 몸은 걷기 시작한 후 처음 약 1시간 정도는 포도당 성분의 영양소(뇌나 간 등의 축적된 글리세린
등)를 사용하고 이를 지나면 지방을 소모하게 된다 하며, 단백질은
산행에서는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한다. 따라서 1시간을
꾸준히 운동해야 몸 속의 지방을 줄일 수 있다는 것과 몸의 피로 회복을 위해서는 포도당을 보충할 수 있는 성분의 영양식을 보충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데, 초콜렛이 무난하다는 것이다. 등반 중 미련하게 영양공급을 지체하면
힘겨운 산행을 할 수 있으며 육포나 치즈 같은 단백질 성분의 간식도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한다. 새겨
둘만한 정보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은 경사가 급해지고 ‘펄’길이 많아 시간이 지체되었다. 장군봉
갈림길 앞 목재 평상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고비인 군부대 펜스를 돌아
오르니 나무로 만든 널찍한 휴식 공간과 정자가 보이고, 나무계단으로 한 번 더 돌아 오르니 정상석이 있는 용문산 정상이 나타난다.
< 용문산 정상의 전경 >
고도 1,157m. 이곳을
오르려고 정상이 아닌 몸을 이끌고 한 청년과 중년의 남자가 이 고생을 했던가!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어 환상적이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중원산, 봉미산, 장군봉, 백운봉 등 모두 한 이름하는 산군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 맛에 산에 오르나 보다.
< 용문산 정상석 앞 >
점심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며 주위를 둘러 보니 개가 한 마리 보인다. 애완견으로 보여져 처음에는 왠 등산객이 용하게 이 높은 곳까지 데려 왔거나 군부대에서 키우는 개이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몰골을 보니 비쩍 마르고 털 상태가 엉망인 것으로 보아 (더욱이 임신까지 한 것으로 보아) 출처가 모호해 진다. 김밥 한 개를 건내니 허겁지겁 먹는다. 측은한 생각이 든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떠도는 것은 측은해 보인다.
< 장군봉 앞에서 >
2시가 되어 하산
길에 나선다. 장군봉, 상원사를 거쳐 용문사로 원전회귀하는
코스를 생각하고 먼저 온 사람에게 길 상태를 물으니 험하지는 않다고 한다. 무조건 go다. 생각보다 길은 완만하나 눈과 얼음이 녹아 그야말로 진창이다. 여름 장마철 펄 길을 연상하면 맞을 것이다. 마른 길을 찾아 가을
정취가 풍기는 낙엽 길을 걷다가 숨은 돌에 미끄러져 번갈아 가며 자빠진다.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질척해
지는데 장군봉까지는 이정표가 없어 더욱 힘겹다. 가고 있는 길이 맞는가와 시간의 불확실함은 사람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가 보다. 1시간을 넘게 산허리 길을 걸으니 드디어 장군봉 표지석이 보인다. 1,065m. 고도를 거의 줄이지 못했다는 것이며 앞으로 하산 길이 험난함을 예고해 주는 듯하다. 장군봉 이후 길은 급격한 내리막으로 변한다. 중간 중간 양/음지에 따라 빙판과 진창 길이 반복된다. 상원사 길 표지가 있으나 1시간을 가도 보이지 않는다. 반복되는 길의 지겨움을 피하려 강형과
둘이서 박인희의 ‘끝이
없는 길’을 불러본다. “길가에 가로수—--“ 로 시작하여 중간에 “아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하도록 끝이 없는 길”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우리의 처지와
꼭 맞는 것 같아 둘이 실컷 웃으며 내려 왔다. 아마도 오늘 등산에 최고 하이라이트라면 힘든 등산 길에
화음 맞춰 우리 처지를 대변하는 멋진 노래를 불렸다는 것이다. 봄(따뜻한
날씨), 여름(진창 길),
가을(낙엽 길), 겨울(눈과 빙판)을 하루의 등산에서 모두다 맞보기도 앞으로도 쉽지 않을
일이다.
< 절고개 갈림 길에서 >
상원사 지붕이 보이는 곳에서도 한참을 내려가서야 상원사 입구에 도착했다. 물 한모금이 그리웠으나 시간의 여유가 없어 절은 그냥 지나친다. 상원사에서
용문사까지도 1시간 여가 걸렸다. 중간에 알바도 했는데, 오랜 산행에 지친 강형의 입이 ‘비구니, 주지, 법당’등과 관련한
범상치 않은 말에 대한 응징이었을 것이다. 짧은 봄 해가 서산에 질 무렵에 용문사에 도착하여 오전에
사진을 찍었던 은행나무 앞에 앉아 오늘 산행을 잠시 복기해 보고 길었던 7시간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 에필로그 >
오늘 등산을 마치며 ‘길’이란
단어가 새삼 머리에 떠오른다. 존경하는 산 어른 ‘장호’ 선생의 글에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은 시작되고, 일상의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시(詩)가 시작된다” 하였고, 신경준 선행은 산경표에서 “무릇 길에는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라 하였다. 예상치 못한 장거리
산행이 큰 탈없이 마무리 되었지만 낯선 길을 나서며 준비가 부족함을 반성해 보며, 아직도 길을 제대로
알려면 나는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역시 1,000m가
넘는 산은 거저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따뜻한 봄날 하루 산행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맛 보아서 뜻 깊은 경험을 한 하루였다고 자평해 보며 오늘 산행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