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버터칩 찾아 삼만리
어릴 적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영화다. 구닥다리 영화였지만 엄마 잃은 애달픈 이야기는 착하고 깨끗한 나의 눈에서 눈물을 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집을 나간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울었을까? 이건 순전히 내가 착하고 순수한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방도가 없다. 하여튼 나는 엄마 찾아 삼만리를 보고 또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엄마가 아닌 허니버터칩을 찾아 삼만리를 떠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틀 전부터 계획되었다. 저녁을 먹던 막내가 물었다.
“아빠?”
“왜?”
“우리 허니버터칩 사러 다닐래요?”
“허니버티칩?”
“네”
“그럴까?”
날짜와 시간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어제, 퇴근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막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아빠, 오늘 허니버터칩 사러 갈레요?”
“그래 알았다. 언제가지?”
“아빠 퇴근하고 오면 가요.”
우린 그렇게 허니버터칩을 찾아 다부진 여행을 떠날 참이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목요기도회가 9시에 잡혀있다. 오늘 내가 당번이라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아들에게 오늘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이내 실망한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몇 시에 기도회 하는데요?”
“9시”
“그럼 아직 두 시간 반이나 남았네요.”
“그래도 설교 준비도 해야지”
“에이 그래도 가요. 아빠는 약속 해 놓고 왜 안가요?”
“그래도 상황이란 게 있지 않니. 다음에 가면 안 될까?”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쐐기를 박는다.
“당신은 약속해 놓고 왜 안가요?”
아무래도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았다. 첫째도 같이 가자고 했다. 셋이서 의기투합을 하고 바로 집을 나섰다. 그렇게 우린 허니버터칩을 찾아 허벌나게 돌아 다녔다. 일단 집 주변 편의점부터 뒤졌다.
첫 집. 앗 바로 앞 손님이 허니버티칩을 샀다. 아직 있으려나? 없다. 점원에게 물었다.
“허니버터칩 있어요?”
“아뇨 다 나갔어요.”
그랬다. 방금 다 나간 것이다. 막내가 아쉬워한다. 마지막 허니버터칩이었는데. 놓쳤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이동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보며 주변의 편의점을 하나씩 하나씩 공략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허니버터칩은 없었다.
그래도 우린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이동했다. 하단 오거리 근방엔 작은 마트가 많다. 역시 없었다. 아이들이 마트에는 잘 없다고 한다. 그대로 모르니까 들어가 보자고 했다. 드디어 하나 발견했다. 야호~ 그러나 허니버터칩이 아니었다. 허니통통이었다.
허니통통. 이건 허니버터칩이 넘 인기가 좋아 비슷한 것을 동일한 회사에서 만든 것이다. 소위 말하는 허니시리즈다. 허니버터칩, 허니통통, 자가비 허니마일드. 요것 셋이 허니삼남매다. 이에 질세라 농심에서 ‘수미칩 허니머스타드’를 내 놓았다. 이건 완전히 허니통통과 닮았다. 자존심이 무너진 포카칩의 원조 오리온에서 허니열풍을 잠재운다는 허황된 꿈을 안고 새로운 포카칩을 출시했으니 바로 '포카칩 스윗치즈맛'이다. 허허,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지금은 허니시대라는 걸 모르시나. 차라리 포카칩 허니치즈라고 해야 될 것이 아니던가. 참나~
어쨌든 허니통통을 찾았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다. 묶음으로 판매한다. 허니통통을 제일 밖에 배치해 놓고 그 뒤에 홈런볼 두개에 신당동떡뽁이까지 붙여 무려 5000원을 받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대로 서슴없이 집어 들고 나왔다. 혹여나 이것조차 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인생은 늘 그런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의외로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다시 이동이다. 이번에 길 건너편 CU로 갔다. 참고로, 허니시리즈는 CU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돌고 또 돌고. 그러나 허니버티칩을 구하지 못했다. 15곳 정도를 샅샅이 뒤졌지만 허니버티칩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허니통통을 구했으니 다행이다. 아직 하니통통은 먹어본 적이 없지 않던가. 아들은 CU에서 수미칩 허니머스타드를 구입해 먹었다. 그것도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8시 20분. 장장 한 시간 반을 그렇게 찾아 다녔다. 그래도 즐거웠다. 아이들과의 추억이 하나 늘었으니 말이다. 아이들도 재미있었다고 한다. 크... 아빠는 이런 맛에 산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끔찍한 소리를 듣고 기절할 뻔했다.
“아빠, 내일 또 가요?”
“으악!!!!”
첫댓글 ㅋㅋ 마지막 으악에서 웃음이 터져버렸습니다. 허니통통으로 만족할리 없죠~ 즐거운 추억쌓기 즐기시길 바랍니다.
재미 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찾아 삼만리>만화로 봤던 기억이... 주제가가 떠오르네요. 이제는 자식을 위한 과자찿아 다니는 세대라니ㅡ 마지막 절규아닌 절규가 들리는듯 합니다. ^^~
절규.. 맞습니다. 아이들과 소통하려는 어리숙한 아빠의 절규입니다.
딸아이가 '허니버터칩'사러 세븐일레븐가더니 바로 앞에 고딩언니가 사갔다고 아쉬워하며 '허니통통'을 사온 어느 늦은 오후가 떠오르네요~~
목사님의 허니 시리즈 글 잼나요^^
와.. 그 기분압니다. 아마 많이 서운해 했을 겁니다.
목사님. 허니 버터칩이 뭐길래. 정말 맛있나요? 한번도 안먹어 본 나로서는. ㅋㅋ
저도 못먹어봤어요ㅡ
이런, 허니버터칩을 못 먹다니? 요즘 베스트셀러 보다 허니버터칩을 읽어야 제대로 시대를 읽는 겁니다.ㅋㅋ
으악~
그 기분 공감×공감 ㅎㅎ
혹 당한 건 아니신지?ㅋㅋ
@정현욱 부부가 서로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않으려 노력합니다...
낙점받으면 같이 돌아다닐 승은(?)을 입어야합니다ㅜㅜ
@자영 ㅋㅋ
허니 버터칩 한번 먹어보고는ㅋ 이제 더이상은 안 찾는다는ㅋㅋㅋ 맛은 있지만ㅎ 궁금증은 풀렸어요~ㅎ
알고 보면 별 것 아닌데 소문이 참 무섭습니다. 아이들도.....
아들 사랑이 느껴지는걸요. 영상까지...생생함이 그대로...ㅎㅎ 저도 아직 허니 버터칩 못 먹어봤는데.~ㅎㅎ
그닥 맛은 없어요. 아이들이 좋아해서 벌어진 사태가 아닐까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