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아홉노인의 마을(1)
"옛날 어느 고을에 아홉 명의 노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노인들은
모두 건강하고 아름답게 늙어갔대요. 노인들은 오래오래 장수를 했고
자손들은 나날이 번창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사람들이 두고두고 그들을
그 아홉 명의 노인들을 칭송했대요. 지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는 사람있어요?."
월요일 회의 시간이었고 영등포 지역이 끝나고 구로구지역에서 새롭
게 영업을 시작하는 첫날 첫 회의 시간에 사장님의 엉뚱한 발언이 나
온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어리벙벙한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
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걸까? 하는 심정으로 그때 김인옥 부장이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구로(九老)라는 지명에 대한 설명 아닙니까?"
사장님 역시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맞아요 그 아홉 명의 노인들을 기리는 뜻에서 아홉 九 늙을 老자로
구로 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신도림동, 궁동, 온수동,
개
봉동, 고척동, 가리봉동. 구로 일동에서 오동까지 있고 또 구로본동
도
있습니다. 양천구와 광명시와 영등포 그리고 금천구를 인접해 있습니
다. 이번에는 기필코 매출 9000만원을 달성해야 합니다. 사실 매출이
그 이하로 나오면 우리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실제로 우리가 벌어
가는 돈은 없는 셈이지요, 나는 여러분들이 반드시 우리의 매출목표를
달성하리라 생각합니다. 자 다같이 힘을 냅시다."
그렇게 우리는 의욕적으로 구로구 매출에 도전을 했지만 한 달이 지
나자 사람들이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안 대리였다. 아내
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안 대리는 아내와 대판 싸우고 회사를 며칠째 결
근했다. 핸드폰은 아예 꺼진 상태였고 집으로 찾아가 보아도 굳게 닫
힌 문 앞에 쌓인 신문은 그도 그의 아내도 집에 없다는 걸 증명해 주
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심 부장이었다. 평소에도 낭만적인 기질
이 있어서 놀기를 좋아하고 악한 데가 없어서 사람 좋기로는 나 김갑
봉과 쌍벽을 이룬다는 사람이었는데 쓸쓸한 가을 날씨에 마음이 뒤숭
숭해진다고 하더니 결국은 훌쩍 여행을 떠나버렸다. 박 대리만이 홀로
고군분투했지만 결국은 그도 지쳤는지 요즘은 지각을 자주하고 아침에
술 냄새를 풍기면서 출근하기도 했다. 사장님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
다.
게다가 요즘은 디자이너인 황 실장마저도 연락을 끊은 채 며칠씩 안보
이기는 예사였다.
구로구는 이름 그대로 조금은 쓸쓸한 지역이다. 구로역 주변의 공구
상가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권투선수처럼 쓸쓸한 모습으로 조금씩 쇠
락해지는 느낌이며 온수 역이나 오류역 쪽은 짓다만 건물처럼 엉성하
고 고척동과 개봉동은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넘어오면서 그만 그
기능을 잃어버리고 그저 그렇고 그렇게 지지부진한 상태로 상권을 형
성하고 있었다. 새로 생기는 아파트 단지인 금호아파트 단지와 불교문
화원 주변 그리고 가로공원은 새벽이면 술 취한 취객과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부랑자들이 밤을 새우기도 했으며 신도림 역 주변은 사십이 넘
은 뚱뚱한 아주머니가 억지로 어려 보이는 화장을 한 것처럼 어색해
보여서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홉 명의 노인들이 장수하면서 즐거
운 여생을 보낸 흔적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 지역이 이렇게 마음
에 안 들기는 처음이었다. 양귀자 씨의 소설인지 아니면 박완서씨의
소설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한
다" 라는 단편을 읽은 생각이 났다. 이름도 촌스럽다. 가리봉동은 어쩐
지 촌스러운 냄새가 나고 고척동은 딱딱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구로구를 사랑하시는 분은 이 김갑봉의 생각에 펄쩍 뛰면서 반대하겠
지만 지금으로써는 영 정이 가지를 않았다. 게다가 가난하고 쩨쩨한
사람들이 광고는 비싸다고 하지도 않고 몇 천부씩 뿌리는 싸구려 책자
와 비교나 하면서 만원도 깎고 이 만원도 깎으면서 투덜거리고 불평불
만도 많았다. 해질녘에 가로공원에 앉아서 혼자 소주를 사다가 마셨
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구로 라는 지역에 내 마음에 들기 시작
하는 것이었다. 가리봉동이라는 이름에서는 어릴 적에 잃어버린 고향
의 향취가 느껴졌으며 고척동이라는 이름에서는 왠지 고딕체의 글자를
대하는 것처럼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서
질겁을 하게 만들던 가로공원의 취객도 인생의 모든 것을 깨달은 그래
서 삶의 허무와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몸으로 실감하면서 살아가는 현
자처럼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한 잔씩 술이 들어갈 때마다 뱃속
이
따스해지면서 사람들이 따스해 보이는 것이었다. 광고비를 만원씩 이
만원씩 깎는 사람들은 마치 장터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것처럼 삶의 다
양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안영규대리
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형 나야"
"아니 갑봉대리가 웬일인가? 아직 퇴근 전이신가"
"나 지금 가로공원에 있어 마누라 아직 퇴근 안 했지, 이리로 나와
경치가 환상적이야 그러니까 별 일 없으면 나와서 나랑 술이나 한 잔
하자고 "
"사 십 분 쯤 걸릴텐데?"
"남아도는 게 시간뿐인 김갑봉이야 얼마든지 기다려 주지"
얼마 후에 안 대리가 도착을 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안 대리에게
달려갔다.
"웬 일인가 김대리 마치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다
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네"
"글쎄 나도 모를 일이군 오늘따라 안 대리가 무척 보고 싶어서 전화
를 다하고 말이야"
"김대리도 지는 저녁노을에 마음이 심란해진 모양이군, 사실 나도 집
에 들어가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지는 해가 어찌 그리 서러운지 마
치 내 모습 갔더라니까"
"뜨거운 밥 먹고 식은 소리하려거든 도로 집으로 가"
"우리끼리 마실 게 아니라 심 부장이랑 박 대리도 불러낼까?"
"올까?"
"술 마시러 오라면 지옥이라도 쫓아올 사람들이지 흐흐"
안 대리가 전화를 했고 결국 우리 영업부의 남자들은 모두 모였다.
우리는 공원에서 술을 마시다가 다시 맥주를 마시러 갔고 결국은 노래
방까지 가서 새벽 세시에 헤어졌다. 모두들 기분 좋게 취했고 아무도
결근하지 말자고 서로 신신당부를 했다. 이튿날 아침 회사에 도착하니
칠판에 매직으로 쓴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사장님이 쓴 글씨였다. 대자
보의 내용인즉슨 이랬다.
"보라! 참으로 한심하구나, 마침내 행복한 마을의 운명이 풍전등화
의
처지에 임하였노라. 모두들 주인의식은 간 곳이 없고 손님처럼 앉아서
행복한 마을의 일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하는 도다. 실업자가 되어
다시 거리를 방황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진정 행복한 마을을 살려서
이민족과 이 겨레의 횃불로 타오르게 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도
다. 묻노니 왈 진정 행복한 마을의 주인 되는 이가 몇이나 됩니까? 가
장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주인이요 무책임하게 방관하는 자가
손님이외다. 행복한 마을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은 한사람 한사람이 다
주인인데 진정 주인노릇을 제대로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잘되고 못
되는 것이 모두 나에게 달려있으니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해나갑시다. 주변을 돌아보고 진정한 참 주인이 없다 싶으면
진정 나부터 행복한 마을의 참주인 노릇을 제대로 한 번 해 봅시다."
가슴이 뜨끔했다. 지난 밤 내가 불러내서 모두들 술을 마신 일이 마
음에 걸렸다. 영업이라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컨디션을 최
상으로 끌어올려서 해야 되는 일인지라 술을 마신 다음날은 아무래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벌써 오늘 아침에 모인
직원들을 보아도 대체로 눈들이 풀어져 있다. 싱싱한 생선의 눈이 아
니라 맛이 간 동태의 눈이다. 아침회의가 끝나면 거래처로 간다고 나
가서 보나마나 목욕탕에 가서 한 잠씩 잘 것이다. 당연히 오늘의 매출
은 저조할 것이고 그것은 간밤에 불러내 술을 마신 나의 책임이다. 나
는 대자보를 꼼꼼히 읽어보면서 마음속으로 무수하게 반성을 했다. 이
런 날을 대비해서 실적을 저축해둔 사람들은 내일 아침 청약서를 올려
서 오늘 일을 한 것처럼 위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들어 실적이
저조한 나는 내일아침에 회사에 내 보일 실적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일
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들통나는 것이다. 나는 마침 어제 올려놓은
실적 세 건 중 한 건만 제출하고 두 건은 제출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
나고 모두들 구로구로 나섰다. 보나마나 사우나로 직행할 사람들이었
지만 모두들 거래처로 간다고 천연덕 스런 표정으로 말을 했다. 나는
영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척동으로 향했다. 한참동안 돌아다니
다 보니 달관체육관이라는 격투기 체육관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
어가니 마침 아무도 없고 관장 혼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관장은 눈
빛이 형형하고 과연 무인다운 눈매와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행복한 마을이라는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인사를 하고 책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절 더러 광고를 내라 그런 말씀이시군 요"
"예 그렇습니다. 저희 책은 10월 초순에 구로구 전역에 5 만 부의 책
을 배포합니다. 상가나 가정이나 학교 주택 모든 곳에 저희가 만든 책
이 배포됩니다. 관장 님께서 저희 책에 광고를 내시면 마치 칠 만 장
의 전단지를 뿌리는 것보다 효과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단지는 한
번 읽고는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만 우리 행복한 마을이라는
책은 구로구 주민들이 앞으로 일년간 사용을 할 책이어서 곁에 두고
늘 살펴보지요 그러니까 이런 무술 격투기는 광고도 잘 받겠다 멋진
사진 몇 장 넣어서 스캔 받으면 광고도 잘 나오겠는데요 제가 책임지
고 해드리지요."
관장이 시니컬하게 웃더니 말했다.
"우리가 광고 안 한 줄 아십니까? 몇 백 만원 들여서 버스광고도 했
어요, 버스 광고 알죠? 왜 있잖아요, 버스에 커다랗게 내는 그런 광
고
그런데 저희 체육관에 오는 관원들한테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보았죠
진짜 버스 광고보고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모두들 지나가다 체육
관 간판을 보고 왔다거나 친구의 소개로 왔다거나 그런 사람이 대부분
입디다. 그리고 말입니다. 벼룩시장에도 내고 일간신문에도 내고 그랬
어요 그런데 그런 곳 역시 광고효과가 제로더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
래서 그 이후로는 광고 절대 안 해요 때려 죽여도 안 한다 그런 말입
니다."
광고에 실패를 한 사람은 한 동안은 광고에 상당히 적대적으로 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적대적인 감정이 삭으러 들지만 그럴 때
는 광고를 하라고 권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그렇게 과격하게 말씀하실 것까지는 없고요, 나중에 지나는 길이 있
으면 관장 님 얼굴이나 한 번 뵈러 들를께요 안녕히 계십시오"
달관체육관을 나왔다.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광고책자
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공연히 긴장이 된다.
어떠한 논리로도 어떠한 달변으로도 설득을 할 수 없는 상대가 있다.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상대는 그런 대로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다. 누가 어떤 유능한 영업사원이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광고주들이 영업사원을 보는 눈은 두 가지가 있
다. 첫 번째는 우량광고주의 경우이다. 우량 광고주는 말한다.
"돈 잘 벌죠? 행복한 마을 영업사원은 참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입니
다."
두 번째는 광고를 잘 안내는 사람 혹은 수금을 잘 해주지 않는 광고
주는 말한다.
"영업사원 노릇하기 힘드시죠 벌이는 됩니까? 내가 보기에는 영 힘들
것 같은데"
황희 정승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다 맞다 고 말할 것이
다. 우량광고주들만 있다면 광고영업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편할 것
인가. 그리고 광고를 안내거나 수금에서 속을 썩이는 사람들이 많다면
광고영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참을 걷다가 보니 댄스 교습소가 눈
에 들어왔다. 댄스교습소라?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삼층 댄스교습소로
올라갔다. 대낮이었지만 화려한 조명이 펼쳐져 있었고 몇 사람이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사장님 계십니까?"
내가 묻자 입구에서 거울을 보면서 춤 연습을 하던 사내가 말했다.
"저분이 사장님이십니다"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긴치마를 입은 삼십대의 여인이 혼자
서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인이 춤추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
보았다. 춤 연습을 하던 여인이 돌아보더니 내게로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춤추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군요"
"고맙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는지요?"
"예 저는 행복한 마을이라는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나왔습니
다"
"그래서요?"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
은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까만 빌보드치마를 입은 여인의 성숙한
몸매는 숨이 막히도록 늘씬했다. 여인이 가까이 다가와서 코앞에 섰
다.
"그래서?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왔는
데?"
향수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는 대답했다.
"광고 내라고 왔지요 우리 책은 이번 구로구 지역에 오 만 부를 무료
로 배포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이곳 스파이 댄스 교습소도 저희 책
에 광고를 내서 그 광고를 보고 춤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곳으
로 전화를 하고 찾아오고 그래서 춤을 배우고 뭐 그런 목적이지요"
"광고 내주면 소주 한 잔 사실 거죠?"
"당연히 그래야 지요"
"그렇다면 우리 저쪽에 가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여인이 앞장서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여인을 따라서 사무
실로 들어갔다. 여인은 날더러 앉으라고 말하더니 맞은 편에 앉는 것
이 아니라 내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아주 강렬한 향수냄새가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어떤 종류의 광고가 있지요?"
나는 속으로 광고를 청약하는 구나 하면서 책을 펼쳤다. 그리고 칼라
지면과 간지 지면 그리고 업종편의 장점을 설명하고 가격을 말했다.
"비싸네"
여인이 다시 말했다.
"엄청 비싸네 그것보다 아주 싼 광고는 없어요?"
속에서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모실 수 있는 박스라는
광고가 있지요. 가로 5cm 세로 5.5cm의 광고지요"
나는 박스 광고가 나온 곳을 펼쳐서 보여 주었다.
"이 광고는 얼마죠?"
"오 만 원입니다"
"그걸로 하나 합시다"
"그럼 도안을 대충 짤까요 상호와 춤 종류 그리고 전화번호와 약도만
넣으면 될 겁니다"
내 말에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도안은 다음에 와서 하는 게 어때요? 광고문안에 대해서 나도 생각
을 해야 하니까요"
여인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남들이 보면 무슨 사랑의 밀어를 나
누는 것처럼 다정해 보였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곤혹스러웠다.
"우선은 오늘 청약서만 쓰고 그럼 도안은 다음에 하는 걸로 하죠"
내가 청약서를 꺼내자 여인이 청약서를 쓰기 시작했다. 주소와 전화
번호와 업종을 쓰고는 한참동안 망설이다가 광고주 확인 란에 이름을
썼다. 오 미희 그리고 한참동안 망설이더니 내게 말했다.
"주민등록번호는 쓰기 싫은데요, 안 쓰면 안 되는 거요?"
"물론 안 되죠 사장님의 나이를 알아야 하거든요 규정이니까 쓰셔야
합니다"
나는 여인의 나이가 궁금했으므로 떼를 쓰듯이 말했다.
"에이 엉터리 그래도 난 안 쓸 꺼야, 그리고 자기 말대로 이 광고보
고 춤 배우러 오는 사람이 많으면 내가 자기한테 소주 한 잔 대접 할
께."
여인이 비음의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내게 청약서를 내밀었다. 자기
라는 호칭이 영 귀에 거슬렸지만 애써 모른 체 하면서 광고주용의 청
약서를 건넸다. 여인이 청약서를 한참동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자기 이름이 김갑봉이구나."
인사를 하고 댄스교습소를 나와서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갈 때 댄스
교습소의 문이 열리더니 그 여인이 큰소리로 외쳤다.
"갑봉씨! 잘 가고 일주일 후에 도안 만들러 꼭 와야 돼, 내가 손
한 번 잡아 줄께"
내가 돌아보자 여인이 귀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이를 가늠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40이 넘어 보이다가 어떻게 보면 삼십대 초반
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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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詩, 창작소설..
김갑봉전.20.아홉노인의 마을.1.
백발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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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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