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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인천 95코스 제3부
능허대공원-아암대로옹암교차로-
갯골호수교-남항근린공원-학익테마파크-
중구국민체육센터&문화회관-축항대로-
신선초등학교-매소홀로-용현갯골수로-
신흥중학교-아암대로-인천지방조달청-
인하대병원사거리-CJ제일제당-숭의역
2024년 8월 14일
1.코스 소개
1)코스개요
- 물길이 열리고 새 문물이 밀려들었던 인천에서 만나는 역사 문화거리를 지나는 코스
- 개항기의 흔적이 남은 다양한 박물관과 이국적 정취가 흐르는 차이나타운에서 인천항이 간직한 옛이야기와 마주하는 코스
2)관광포인트
- 하수처리시설을 지하화하여 그 위에 조성된 갯골을 살린 생태공원 '학익에코테마파크'
- 오래된 창고를 리모델링한 곳으로 한국 근대문학과 관련된 전시를 하는 '한국근대문화관'
- 개항기 인천의 풍경, 철도, 은행 등 자료를 전시한 '인천개항박물관'
- 한국 최초의 짜장면 집인 공화춘을 개조한 박물관 '짜장면박물관'
- 세계 명작 동화가 그려진 벽화마을 '송월동 동화마을'
3)여행정보(주의사항)
- 학익에코테마파크는 가을에 갈대숲이 장관을 이룸
- 인천차이나타운은 인천항 개항기에 중국인들이 정착한 곳으로 중국 음식점이 많이 있음
- 시점 : 인천시 연수구 선학동 406-9, 선학역 3번 출입구. 교통편) 인천 1호선 선학역
- 종점 : 인천시 중구 북성동3가 6-9, 선린문 부근. 교통편) 지하철1호선 인천역에서 도보 500m
- 주요 경로 : 선학역3번출입구 2.6Km 문학산 6.9Km 남항그린공원 3.6Km 숭의역 3.9Km 자유공원 입구
- 길이 17.0km, 소요시간 6시간, 난도 어려움
2.미추홀과 인천 해안지역의 눈부신 발달
제3부 : 서해랑길 95코스 제3부 구간은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중구 신흥동, 미추홀구 용현동 지역을 지나간다. 인천 해안 지역을 지나며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와 인천대교, 인천항 남항, 그리고 문학산 산줄기를 살피게 된다. 지난 시절의 송도유원지는 사라지고 송도국제도시의 빌딩들이 하늘 높이 솟아 인천의 위용을 자랑하고, 인천 해안에 자리한 항구들이 인천항이 물류의 중심지임을 알려준다. 중구 신흥동 지역은 인천항 개항 이후 발전한 곳으로 매립에 의하여 인천의 확장된 지역이다. 그럼에도 새로이 부흥하는 인천 연안의 중심축을 이루는 듯 물류 단지와 산업 단지, 문화 공간이 자리하여 기존의 인천의 발달 지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또한 중심이 되는 도로를 통해 인천의 지리를 배울 수 있었다. 능허대로, 아암대로, 제2경인고속도로, 인천대교고속도로, 비류대로, 축항대로, 매소홀로 등이 인천의 남과 북, 동과 서를 관통하며 인천 지역을 누비는데 그 통과 지역을 알아보는 것은 인천 지리 발견의 기쁨을 준다. 그 중에서도 아암대로가 이 구간의 핵심도로가 되는 것 같다. 남동구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출발하여 북으로 이어지는 아암대로는 남동구 논현동과 고잔동, 연수구 동춘동과 옥련동, 미추홀구 학익동과 용현동, 중구 신흥동을 거쳐 수인분당선 숭의역 능안삼거리에서 끝난다. 미지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탐방하며 누린 발견의 행복감을 이곳에 갈피한다.
백제 사신길을 따라 능허대공원으로 들어갔다. 능허대(凌虛臺)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신들이 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이 배를 타던 나루가 능허대 앞의 한나루라고 한다. 능허대 주변은 모두 매립되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능허대터가 있는 곳에 능허대공원을 조성하여 지난 시절 능허대와 한나루의 영화를 오늘에 알리고 있다. 능허대공원에는 백제 사신들을 태우고 중국 산둥반도를 오가던 백제 사신선 모형물을 전시해 놓았다. 백제 사신선은 능허대를 출발하여 덕적도(德積島)를 거쳐 중국 산동반도의 등주에 이르는 항로인 등주항로(登州航路)를 주로 이용하였으며, 이 항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해상 교통로로서 비교적 안전한 최단항로였다고 한다.
능허대(凌虛臺) 아래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으며, 능소화가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주홍빛을 뿜어내고 있다. 아름다운 능소화가 피어 있는연못 위 능허대터로 올라갔어야 하는데, 탐방길에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져 능허대 한진나루 앞 설명안내판을 살피는 것으로 능허대공원 탐방을 마쳤다. 능허대 한나루 기생바위의 전설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아픔을 전한다. 이 전설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선묘 전설과 닮아 있다.
선묘는 당나라 때 산동반도 등주에 살던 여인으로 의상이 불법을 배우러 당나라 등주로 건너가 장안성으로 갈 때 머물던 집의 여인이었다. 선묘는 의상을 사모하였지만 승려의 신분인 의상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상이 불법을 배우고 당나라 장안성을 떠나 등주에서 서라벌로 돌아올 때 선묘를 만나지 못하고 배를 탔다. 뒤늦게 이를 안 선묘가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의 배를 수호하고 의상이 부석사를 지을 때 이를 방해하던 무리를 무찔렀다고 한다. 그래서 부석사에는 선묘각이 있으며, 이 전설은 일본에 의상의 화엄종과 함께 전해져 선묘의 일화가 그림으로 그려져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능허대 한나루 기생바위의 전설은 백제 사신을 사모하는 기생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신을 그리워하여 한나루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건으로 끝나고 그녀의 후일담이 없는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그것은 아마도 불교와 관련이 없어 상상의 허구가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능허대공원을 나와 능허대로를 건넜다. 이곳은 모두 바다였는데 매립되어 물류단지, 유원지와 도로, 주거단지로 조성되어 있으며, 아직도 개발이 진행 중이다. 모텔 단지를 지나 송도국제도시가 눈앞에 보이는 아암대로로 나갔다. 아암대로는 서해랑길 93코스 탐방 때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 어시장 앞에서 만나 소래해넘이전망대 앞에서 헤어졌는데,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서해랑길 95코스 탐방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아암대로를 따라가는 매립지는 도로들이 뒤엉켜 있어 혼란스러우며 아암지하차도 건설공사로 더욱 혼잡스럽다. 아암대로, 제2경인고속도로, 고속도로 진출입 연결도로, 인천대교고속도로 등이 매립지와 바다 위 공중을 날아간다. 인천 신항은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 남쪽에, 그 북쪽에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이 자리하고, 그 사이로 인천대교가 송도와 영종도를 이어 바다 위 공중을 가른다. 송도국제도시 위쪽에는 중구 신흥동과 연안동에 걸쳐 인천 남항이 자리한다. 남쪽 남동구 논현동으로부터, 남동구 고잔동, 연수구 동춘동, 연수동, 송도동, 중구 신흥동, 연안동으로 이어지며, 경기만 인천 해안의 눈부신 발달이 아득하다. 개발 이전의 이곳의 풍경을 상상한다. 점점의 섬들, 그 사이로 떠다니는 돛단배들, 갈매기가 유유히 바다 위를 날아가고, 산둥반도 등주는 보일 듯 잡힐 듯 아득한 듯.
아암대로 옹암교차로에서 아암대로와 헤어져 연수구 옥련동에서 옹암교를 건너 중구 신흥동 용현갯골 유수지로 넘어갔다. 예전에는 이곳이 모두 갯벌이었을 것이다. 매립된 곳에 수문을 설치하여 유수지를 조성하였으며, 유수지의 수로는 북쪽으로 깊숙하게 올라간다. 용현갯골 유수지의 서쪽 호변길을 따라가며 동쪽 지역 인천의 태동지 미추홀구를 살핀다. 문학산 주봉, 연경산, 노적산, 석산으로 이어지는 문학산 산줄기가 남쪽의 연수구와 북쪽의 미추홀구를 가르며 서해 바다로 떨어진다. 그 북쪽 내륙에 인천의 태동지 미추홀구가 자랑스럽게 펼쳐지고, 유수지 동쪽 호변에 미추홀구 학익동 경인방송 건물이 솟아 있다. 유수지 서쪽 호변 중구 신흥동 지역은 인천의 새로운 개발 지역으로 남항근린공원, 학익에코테마파크, 중구국민체육센터와 중구문화회관이 자리한다. 지금 탐방객은 예전의 갯벌 지역인 유수지 서쪽 호변길을 따라가며 인천광역시 연수구, 미추홀구, 중구 지역을 한눈에 살피고 있다. 지난 시절의 중심지와 개발에 의해 조성된 새로운 신흥 도시가 용현갯골 유수지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풍경이 이질감과 동화감으로 어우러진다. 상반된 두 지역 풍경을 호변길에서 살피며 축항대로로 나갔다. 축항대로는 미추홀구 용현동 용현갯골 유수지 블루비치교에서 중구 신흥동으로 넘어와 중구 연안동 남항을 거쳐 인천항 연안부두로 이어지며 인천 신흥 도시를 대표하는 도로이다.
서해랑길은 중구문화회관 갈림길 축항대로 교차로에서 신흥동 북쪽 지역으로 이어간다.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이곳에 몸을 파는 여자들이 모여 지내는 이른바 ‘유곽(遊廓)’을 만들어 운영했기 때문에 ‘화개동(花開洞)’이라 불렸는데, 이제 지명은 ‘새롭게 발전하고 부흥하라’는 뜻의 신흥동으로 바뀌었으며, 공장 지대와 주거지가 들어서고 신선초등학교가 자리한다. 신흥동 신선초등학교 삼거리에서 서해랑길은 북쪽 용현동 지역으로 올라가는데, 신선초등학교 교훈이 눈길을 끈다. '큰 꿈과 큰 사랑을 지닌 참된 사람', 아름다운 교훈이 가슴을 물들인다. 이런 마음을 지닌 참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법이다. 아이들이 이 마음을 지니고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서해랑길은 중구 신흥동과 미추홀구 용현동을 가르는 갯골수로를 따라 올라간다. 갯골수로는 이 지역까지 바닷물이 올라왔음을 증명한다. 갯골수로 데크길 서쪽에 자리한 신흥중학교와 신흥여자중학교를 지나 서해랑길은 갯골수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 옹암교차로에서 작별했던 아암대로와 재회한다. 아암대로는 동쪽의 미추홀구 용현동과 서쪽의 중구 신흥동을 가르며,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빌딩 숲을 지난다. 아암대로는 인천지방조달청 입구 조인교(調仁橋) 앞을 지나 인하대병원 사거리와 CJ제일제당 인천공장 앞을 거쳐 수인분당선 숭의역까지 이어진다. 숭의역 삼거리는 능안삼거리라 불리는데, 여기서 능의 한자가 凌인지 陵인지 분명하지 않다. 능안삼거리에서 유래한 능안육교의 한자는 '凌안陸橋'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이 과연 정확한지도 의문스럽다.
수인분당선 숭의역 앞 능안삼거리는 미추홀구 용현동과 숭의동, 중구 신흥동 등 세 지역의 접합 지점이다. 이곳에서 서해랑길은 제물량로 서쪽 보도를 따라 숭의역 3번출입구를 지나 신광초등학교 방향으로 이어간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거리 : 17.9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44분
능허대로103번길 남쪽에 능허대공원이 자리한다. 왼쪽에 능허대 백제사신선 모형, 중앙 뒤에 공원관리사무소가 있다.
능허대 백제사신선은 한성백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백제 사신선을 본뜬 모형이라고 한다.
이 배는 삼국시대 백제 전성기인 근초고왕 27년(372년)에 이곳 능허대에서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 중국 진(晉)과 통교하던 백제사신선으로 전문가 고증을 거쳐 복원한 한성백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백제 사신선을 본뜬 모형이다. 백제는 중국과 교역할 때 한강 하류역인 능허대를 출발하여 덕적도(德積島)를 거쳐 중국 산동반도의 등주에 이르는 항로인 등주항로(登州航路)를 주로 이용하였는데, 이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해상 교통로로서 비교적 안전한 최단항로였다. 백제는 남해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길고 큰 강이 많아 해상 활동에 유리했는데 이를 통해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일본 열도 및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백제사신선의 길이는 선수(船首)에서 선미(船尾)까지 약 12.615m, 배 동체 중앙 바닥에서 갑판까지의 높이 1,625m, 배 난간 높이 0.61m, 배 동체 최대 폭(배 동체 중앙 멍에 최대폭) 4.5m, 선수 폭 1,62m, 선미 폭 1,42m, 돛대 최대지름 0.235m, 지휘공간 길이 2,63m x 폭 1,7m, 지휘공간 전체높이 (지붕높이까지 포함) 1,64m이다. - 설명안내판
능허대공원의 쉼터정자를 지나서 오른쪽에 능허대터 오르는 길이 있는 것 같다.
능허대가 있는 이 바위를 기생바위라 이르는 것 같다. 백제 시대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밀려왔다.
아마도 능소화 피어 있는 능허대터 앞이 한나루터가 아니었을까?
미추홀구 경인고속도로 도화 인터체인지 앞에서 연수구 송도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한나루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한나루란 지금의 송도 주변에 작은 공원으로 복원돼 있는 능허대(凌虛臺)의 앞에 있던 옛 나루터였다. 능허대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신들이 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이 배를 타던 나루가 한나루인 것이다. 한나루는 ‘크다’는 뜻을 나타내는 우리말 접두사 ‘한’과 배를 타는 곳을 가리키는 ‘나루’가 합쳐진 말이니 곧 ‘넓고 큰 나루’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대진(大津) 또는 한진(漢津)이라고 했다. 백제가 이곳에서 배를 띄운 것은 고구려에 의해 중국으로 가는 육지 길이 막혀 버렸기 때문으로 근초고왕 때부터 100여 년 동안 이곳을 통해 중국과 교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인천광역시사
능허대 근처에 있는 한나루는 백제 사신들이 중국으로 출발하던 곳이다. 어느 날 사신 일행이 중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너무 사나워 그 먼 곳까지 배를 띄울 수가 없어 비바람이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7일이 지나자 날이 개고 바람도 순조로웠다. 이들이 출발하려 하자 갑자기 젊은 기생이 사신의 발 아래 엎드려 울며 자기도 데려가라고 애원하였다. 7일 동안 술상 시중을 들던 기생이 정작 사신이 떠나는 날이 오자 그 동안의 정분이 아쉬워 울며 매달린 것이었다. 사신 일행은 기생의 애원을 뿌리치고 중국으로 출발하였다. 배가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기생은 바위 위로 올라가 서쪽을 향해 큰 절을 올리고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때부터 한나루 언덕에 있는 이 바위를 기생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 설명안내판
덩굴나무 능소화가 피어 있는 곳이 한나루터이고 뒤쪽 구릉에 능허대와 기생바위가 있을 것이다.
능허대 - 인천 제8호 기념비/ 위치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194-54, 시대 : 삼국시대~근대
능허대는 청량산의 한 줄기가 바다에 다다라 절벽을 이루는 듯 하다가 다시 솟아 섬 모양을 이룬 곳이다. 곱고 흰 모래벌이 넓게 펼처진 바닷가에 자리한 능허대는 풀과 나무, 그리고 바위가 멋지게 어우러져 있고, 멀리 바다를 바라보매 막힘이 없었다 한다. 예로부터 풍광이 수려하여 수많은 시문이 전해오는 인천의 대표적인 경승지였다. 능허대 위의 널찍한 터에는 어른 30여 명이 앉을 만 하다고 전해진다. 능허대 해변 안쪽에는 한나루 (大津 또는 漢津)가 있어서 중국을 오가던 사신의 나들목으로 이용되었다. 한나루를 출발한 배는 서해를 건너 산둥반도의 등주(登州)와 래주(萊州)를 오갔다. 당시 한나루와 산둥반도를 잇는 해로는 중국으로 향하는 최단거리였다. 따라서 서울에 도읍을 둔 한성기 백제를 비롯하여, 통일기 신라와 중국 남동과 교역하던 고려왕조 및 산둥반도를 경유하여 북경(北京)에 도읍하고 있던 명·청(明·清)과 통교하던 조선시대까지 능허대 한나루가 이용되었다. 능허대는 중국으로 향하던 사신을 배웅하던 여인이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는 기암(妓巖)전설이 전해온다. 1950년대까지 인천의 대표적인 유원지였던 능허대와 그 해변은 사방이 매립되고 주거 시설과 도로가 들어서면서, 그 옛날 수려했던 풍광은 사라지고 말았다. 1955년 세운 능허대지 표석과, 1988년 능허대 둘레에 연못을 조성하고 그 위에 세워진 조그만 정자만이 예전의 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이다. - 설명안내판
능허대공원 표석은 서해 바다를 향하여 세워져 있고, 오른쪽에 능허대터가 있다.
서해랑길은 능허대로를 건너 해안의 아암대로로 나간다. 뒤쪽에 연수구 송도동 고층아파트 빌딩들이 솟아 있다.
왼쪽은 능허대로103번길, 오른쪽은 능허대로이다. 중앙 뒤 숲이 우거진 능허대공원 뒤에 능허대터와 기생바위가 있다.
능허대로 지역은 모두 매립지로서 백제시대에는 왼쪽 능허대 한나루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을 것이다.
능허대로 오른쪽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능허대로104번길을 따라 아암대로로 이어간다.
능허대로104번길을 따라 모텔단지 앞을 거쳐 해안의 아암대로로 나간다.
옥상에 자유의여신상 조각상이 서 있는 아이엔지모텔 앞을 지나간다.
능허대로104번길 남쪽에 바다가보이는집 모텔이 있으며 서해랑길은 오른쪽 보도를 따라 아암대로 동쪽 보도로 나간다.
아암대로 지하차도 건설로 주변이 복잡하다. 중앙 건너편에 연수구 송도동 국제도시의 빌딩들이 솟아 있다. 이 아래쪽에 아암도 해안공원이 있다. 서해랑길은 이와 반대 방향 북쪽으로 이어간다.
아암대로(兒岩大路)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능안삼거리부터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까지 이어지는 길이 16.4km, 왕복 4~14차로의 도로. 도로명은 이 도로의 인근에 있는 '아암도(兒岩島)'에서 유래되었는데 도로명주소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인천시민들은 이 도로를 '해안도로'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해안도로라고 부르는 이들이 매우 많다. 송도국제도시 개발을 위한 간척 이전까지는 이 도로가 인천 본토의 남쪽 끝이었고 도로 밖으로 바로 서해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해안의 도로였다. 아암도(兒岩島)는 연수구에 있었던 1,800평 가량의 면적을 지녔던 섬이다. 송도유원지에서 약 700m 떨어진 무인도였으나, 1980년대 말에 송도해안도로 매립공사로 육지화되었고, 아암도 해안공원으로 단장되었다. 근처의 소아암도(小兒岩島)도 아암도와 함께 육지화되었다. - 나무위키
아암대로 동쪽 보도를 따라가다가 아암대로 횡당보도를 건너 서쪽 보도를 북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앞에는 아암대로, 그 뒤 해안 위를 제2경인고속도로 인천대교가 지난다. 뒤에는 연수구 송도동 국제도시 빌딩들이 솟아 있다.
아암대로 동쪽 보도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아암대로 서쪽 보도로 넘어가 제2경인고속도로 인천대교 아래를 통과한다.
아암대로 서쪽 보도를 따라 북진하여 제2경인고속도로 인천대교 아래를 통과한다.
능허대로104번길을 따라 중앙 뒤에 보이는 모텔단지를 지나 아암대로로 나와 아암대로 동쪽 보도에서 서쪽 보도로 건너왔다.
서해랑길은 앞쪽의 제2경인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한다. 왼쪽 뒤에 인천항 남항과 물류창고들이 가늠된다.
앞에는 제경인고속도로가 송도국제도시로 이어지고, 중앙 뒤에 인천대교 고속도로가 영종도로 이어진다.
제2경인고속도로송도국제도시와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인천대교는 대한민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인천경제자유구역 사업의 핵심 사회간접자본시설입니다. 인천대교는 국내 최장 교량이며 사장교 주탑 사이 거리인 주경간 800m는 세계 5번째 규모입니다. 인천대교는 유럽 언론으로부터 '경이로운 세계 10대 건설 프로젝트'로 선정되고 유로머니(Euromoney)가 선정한 '아·태 지역 교통인프라 부문 최우수 금융조달상'을 수상하는 등 기술과 사업구조 면에서 세계적 인정을 받은 한국의 자랑스런 다리입니다.
■사업개요(Project Overview) ○위치 : 인천국제공항~송도국제도시 ○공사기간 : 2005.7~2009.10 ○사업규모 : 총연장 21.38Km, 민자구간 : 12.34Km(왕복 6차로), 국고구간 : 9.04km(2~6차로) ○사업비 : 24,680억원 ○ 시행주체 : 인천대교 주식회사(민자구간), 한국도로공사(국고구간) ○주경간은 800m로 100,000톤급 선박의 통행이 가능하며 230.5m의 주탑은 역Y형 콘크리트 구조로 내풍 안정성과 인천항의 관문적 경관성을 고려하여 설계되었음.
제2경인고속도로가 맨 왼쪽 뒤에서 인천대교 고속도로와 만나 송도국제도시를 통과하여 오른쪽 뒤의 인천대교로 이어지고, 제2경인고속도로 아래로 국제항만대로 아암1교가 지난다.
중앙에 국제항만대로 아암1교가 송도국제도시로 이어지고 오른쪽의 제2경인고속도로는 인천대교 고속도로로 이어진다.
아암대로 위로 제2경인고속도로가 통과하며, 서해랑길은 아암대로 서쪽 보도를 따라 옹암교차로로 이어간다.
아암대로에서 제2경인고속도로로 이어지는 연결도로 옆으로 왼쪽 뒤에 보이는 옹암교차로의 옹암교로 이어간다.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 지역이다. 오른쪽에 옹암교, 중앙에 인천 남항 물류창고, 왼쪽에 아암2교가 보인다.
신흥동(新興洞)은 구한말 인천부 다소면 선창리의 일부로 인천항 개항 이후에 생긴 마을이다. 개항 초기까지 시의 외곽 지역이어서 사람은 거의 살지 않고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있던 곳인데, 특히 청일전쟁 당시 사망한 일본군들의 공동묘지가 이곳에 있었다. 이곳의 화장터나 공동묘지는 그러나 화개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갖기 전에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그 시절 별다른 동네 이름이 없던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1903년 화개동(花開洞)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바닷가 쪽으로는 1910년대에 매립이 될 때까지 물이 들어오는 곳이 많아 ‘모랫말’이라 불리기도 했다. ‘꽃이 핀다’는 뜻의 ‘화개’라는 이름은, 그 말이 들어가면 대개가 그렇듯, 이 동네에 사창가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인천에 들어오는 일본인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그를 따라 들어온 일본인 몸파는 여성들이 이 주변에 자리를 잡고 생활했던 탓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곳 화개동을 조금 다른 발음으로 ‘화가동’이라 부르곤 했고, 우리말로 ‘꽃골말[花谷村]’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곳의 사창가는 그 뒤 일제에 의해 총독부가 공식 인정한 공창(公娼)이 됐다가 광복 직후에 폐지된다. 일제는 1912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이곳 화개동의 일부와 주변의 신창동, 와정동(瓦鼎洞) 일부를 합쳐 일본식 행정구역 이름으로 화정(花町)이라 했고 1가동, 2가동, 3가동으로 구분했다. 이중 와정동은 ‘기와를 굽는 곳이 있다’는 뜻이다. 광복 뒤 이곳 화정이 신흥동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는데, 글자 그대로 ‘광복을 맞아 새롭게 발전하고 부흥한다’는 뜻이다. 화정으로 불릴 당시 1가동, 2가동, 3가동이었던 곳은 신흥동이 되면서 역시 1가, 2가, 3가가 됐다. - 인천광역시사
오른쪽 앞에 왼쪽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와 오른쪽 중구 신흥동 인천 남항 물류창고를 이어주는 아암2교가 있으며, 왼쪽 뒤에 송도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 주탑이 보인다.
왼쪽 뒤에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 고층빌딩들이 솟아 있고, 맨 오른쪽 뒤에 송도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 주탑이 보인다.
뒤에 송도국제도시 빌딩들이 솟아 있고, 왼쪽 제2경인고속도로 연결도로가 그 왼쪽의 제2경인고속도로와 합류한다.
앞에는 제2경인고속도로 연결도로, 그 뒤에는 아암대로, 그 뒤에 석산의 옥련터널을 빠져나온 제2경인고속도로가 송도 방향으로 이어가고, 석산 옥련터널 입구에 대형 INCHEON 문자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석산에서 송도 조망이 멋지다고 한다.
바로 오른쪽에 제2경인고속도로 연결도로, 그 오른쪽에 아암대로, 아암대로에는 뒤쪽에 옹암지하차도가 있다.
아암대로 건너편에 송도갈비 본점이 있으며, 입구에 로봇조형물이 있다. 오른쪽 뒤 제2경인고속도로 석산 옥련터널 입구에 대형 INCHEON 문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앞쪽에 아암2교, 그 뒤에 아암3교, 맨 뒤에 인천대교가 보인다. 아암2교와 3교는 연수구 송도동과 중구 신흥동을 이어준다.
옹암교차로에서 길을 건너 맞은편 옹암교 동단 북쪽 출입구으로 이어간다.
옹암교차로의 동쪽 도로는 비류대로, 남쪽 도로는 아암대로, 그 사이의 도로는 능허대로이다. 왼쪽 비류대로 뒤 공중에 석산의 옥련터널을 통과한 제2경인고속도로, 그 뒤에 노적산이 솟아 있고, 중앙 맨 뒤에 연경산이 가늠된다.
왼쪽에 능허대로, 바로 앞에 아암대로가 있다. 아암대로 오른쪽 서쪽 보도를 따라 옹암교차로로 이어왔다.
옹암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옹암교 동단 북쪽 보도로 이어간다.
연수구 옥련동 옹암교 동단 북쪽 출입구에서 옹암교를 건너 중구 신흥동으로 넘어간다.
옹암교를 건너면 북쪽 용현갯골 유수지의 수문을 바라보았다. 왼쪽은 중구 신흥동, 오른쪽은 미추홀구 학익동이다.
옹암교 서단 북쪽 출입구를 지나서 오른쪽 아래 도로로 되돌아 내려와 남항근린공원길을 따라오른다.
남항근린공원 옆 호변길을 따라 용현갯골유수지를 살피며 올라간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들이 즐비하다.
옹암교를 건너 왼쪽 보도를 따라왔다. 왼쪽 아래의 도로를 따라 남항근린공원 옆 호변길로 이어간다.
중구 신흥동 남항근린공원 옆 호변길을 따라간다. 용현갯골 유수지 건너편에 미추홀구 학익동 경인방송 건물이 솟아 있다.
오른쪽 남항근린공원 옆 호변길을 따라오고 있다. 용현갯골 유수지 수문이 왼쪽에 있다.
맨 뒤부터 문학산 주봉, 연경산, 노적산이 이어지며, 오른쪽 뒤에 옥련터널이 지나는 석산, 오른쪽 앞에 유수지 수문이 있다.
용현갯골 유수지(遊水池) 건너편은 미추홀구 학익동 지역이며 경인방송 건물이 왼쪽에 솟아 있다.
왼쪽에 중구 신흥동 남항근린공원, 용현갯벌 유수지 건너편에 미추홀구 학익동 경인방송 건물이 솟아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지역 방송사 경인 방송은 1997년 10월 11일 인천광역시와 동양 화학 인천 민방 추진 사업단의 노력에 힘입어 주식회사인 인천 방송으로 개국하고, 한때 미국 프로 야구 메이저 리그 독점 중계권을 획득하여 상당한 지위를 차지한 바 있다. 2000년에는 경기도 남부까지 방송 권역을 넓히고 사명을 경인 방송으로 바꾸었으며, 2003년 6월 라디오 방송인 iFM을 개국하여 24시간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는 등 경인 지역을 대표하는 민영 방송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2004년 1월 회장 박상은이 인천광역시장 선거 출마를 위한 도구로 iTV를 이용하려 했다는 내용의 글이 폭로되고, 10월에는 당시 대주주였던 동양 화학과 대한 제당의 증자 및 경영 개선 약속 이행 거부로 말미암아 노조 파업이 시작되어 한 달간 지속되었다. 이에 2004년 12월 13일 사측은 직장 폐쇄 조치를 내리고 방송 위원회는 재허가 추천을 거부하면서, 12월 31일 오전 11시 12분께 애국가 송출을 끝으로 TV 방송을 종료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용현갯벌 유수지 건너편에 미추홀구 학익동 경인방송 건물이 솟아 있다.
경인방송은 TV 방송은 종료되었으나 라디오 방송인 iFM은 살아남았다. iFM은 TV 방송 종료 후 3개월 동안 음악만 내보내다가 2005년 3월 1일 ‘경인 방송 살리미’들의 도움으로 방송을 재개하고, 12월 21일 방송 위원회의 조건부 재허가 추천을 받았다. 2006년 4월 ‘라디오 인천 Sunny FM’으로, 2007년 10월 ‘경인방송 Sunny FM’으로, 2008년 12월 ‘경인 방송 iTV FM’으로, 2013년 10월 21일 ‘경인 방송 iFM‘으로 채널의 이름을 바꾸었으며, 현재 음악 프로그램과 로컬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24시간 방송하고 있다. 2009년 9월 28일 인천 지역 3개 언론사[경인 방송·인천 일보·인천 신문]의 업무 협조를 전제로 하는 통합안에 전격 합의하였다. 당초 3사를 하나로 통합하거나 지주 회사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3사 모두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아서 무산되었다. 2010년 종합 편성 채널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경영난 때문에 무기한 연기되었다. ‘인천·경기·수도권 청취자에게 유익하고 함께하는 방송’이라는 방송 이념 아래 공공성과 지역성, 공익성을 추구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용현갯골 유수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갯골호수교가 유수지 동안과 서안을 이어준다.
남항근린공원 북쪽 학익테마파크에 축구장과 실내체육관 등이 자리한다.
용현갯골 유수지의 동안과 서안을 이어주는 갯골호수교가 설치되어 있으며 쉼터정자도 조성되어 있다.
중구다목적실내체육관 북쪽에는 중구국민체육센터와 중구문화회관이 자리한다.
중구국민체육센터 입구에 인천광역시 중구 관광안내도와 주요관광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용현갯벌 유수지 서안에 학익테마파크의 중심인 중구국민체육센터와 중구문화회관이 자리한다.
중구국민체육센터 입구에 학익테마파크 주요 시설 위치 방향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용현갯골 유수지 서안 호변길을 따라간다. 유수지 북쪽의 다리는 축항대로의 블루비치교, 건너편은 미추홀구 용현동이다.
(주)에이에스 인천보세창고가 용현갯골 유수지 서안에 자리한다. 서해랑길은 앞쪽 축항대로로 나간다.
용현갯벌 유수지 서안 호변길을 따라와서 북쪽 출입구에서 축항대로와 만난다. 왼쪽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호변길에서 축항대로로 나와서 축항대로 동쪽의 블루비치교를 조망한다.
축항대로를 따라가다가 바로 앞 교차로에서 축항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 축항대로291번길을 따라 북진한다.
축항대로(築港大路)는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 해상교통안전센터에서 미추홀구 용현동 능해 나들목까지 이르는 도로이다. 총 연장은 약 3.2 km이며 전 구간에 걸쳐 중구에 있으며 능해 나들목과 블루비치교는 미추홀구 구간이다. - 위키백과
왼쪽 중구문화회관으로 이어지는 축항대로290번길 횡단보도를 건넌 뒤 다시 오른쪽 축항대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인천세관 인성보세창고 앞에서 중구문화회관으로 이어지는 축항대로290번길의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축항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축항대로291번길을 따라간다.
축항대로는 서쪽 북성동 방향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에 현대자동차 블루핸즈, 그 왼쪽에 차이나타운 4km 안내판이 있다.
왼쪽 뒤 인성보세창고 앞에서 축항대로290번길 횡단보도를 건너고, 오른쪽 축항대로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축항대로에서 북쪽 축항대로291번길을 따라 신선초등학교 앞으로 이어간다.
서해랑길은 신선초등학교 삼거리에서 건너편 신선초등학교 앞으로 이어가는 축항대로291번길을 따라 이어간다.
신선동(新仙洞)은 1983년에야 생긴 동이다. 당초에 신흥3동과 선화동이었던 것이 1977년 신흥2동이 됐다가, 1983년 시 조례에 따라 다시 신선동으로 바뀌었으니, 이는 신흥3동과 선화동의 앞 글자를 하나씩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중 신흥동은 광복 뒤에 ‘새롭게 발전하고 부흥하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고, 선화동은 1912년 일제가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이들 두 동네 모두가 지금의 이름을 얻기 전에는 ‘화개동(花開洞)’이라 불렸고 우리말로는 ‘꽃굴’이라고 불렀다. 이는 일본인들이 이들 지역에 몸을 파는 여자들이 모여 지내는 이른바 ‘유곽(遊廓)’을 만들어 운영했기 때문이다. 땅 이름에서 ‘화개(花開)’나 그 발음이 조금 바뀐 ‘화가’, 또는 우리말로 ‘꽃’자가 들어가면 대개 그렇듯이 여색(女色)이 무척 번성했던 곳이지만, 인천항이 개항할 무렵은 물론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이 동네는 한적한 부두와 시골마을일 뿐이었다. 특히 신흥3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은 상당 부분이 바다였던 곳이다. 그것이 1910년대에 창고 터로 일부가 매립됐고, 2차로 1960년대에 대규모로 또 매립돼 새로 땅이 생겼다. - 인천광역시사
신선초등학교 삼거리에서 축항대로291번길을 따라 신선초등학교 앞을 거쳐 끝에 보이는 '매소홀로'로 이어간다.
신선초등학교의 교훈 '큰 꿈과 큰 사랑을 지닌 참된 사람'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세상은 꿈과 사랑에서 온다.
축항대로291번길 서쪽 보도를 따라 신선초등학교 앞을 거쳐왔다. 건너편에 스매쉬아카데미 V사랑배드민턴 체육관이 있다.
매소홀로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갯골수로 데크길을 따라 신흥중학교 앞으로 이어간다.
매소홀로 서쪽 방향을 바라보면, 매소홀로 공중에 서해대로 인천항고가교가 지난다. 뒤쪽에 인천항이 있을 것이다.
매소홀로 북쪽 보도 갯골수로교에서 용현갯골 수로를 올려본다. 왼쪽은 중구 신흥동, 오른쪽은 미추홀구 용현동이다.
용현갯골 수로 데크길을 따라 올라가면 건너편에 신흥중학교와 신흥여자중학교가 있다.
용현갯골 수로교 건너편 중구 신흥동에 신흥중학교와 신흥여자중학교가 있다.
신흥중학교 앞 용현갯골 수로교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매소홀로를 건너 용현갯골 수로의 데크길을 따라왔다.
용현갯골 수로는 북쪽으로 이어지고 서해랑길은 갯골수로 데크길을 따라 북진한다.
용현갯골수로의 조인교(調仁橋) 건너편에 중구 신흥동 인천지방조달청이 자리하고 있다.
조인교(調仁橋) 앞 아암대로 서쪽 보도를 따라간다. 용현갯골수로 왼쪽은 중구 신흥동, 오른쪽은 미추홀구 용현동이다.
미추홀구 용현동(龍現洞)은 구한말까지 비랑이 또는 비랭이라고 불리던 마을이다. 비랭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는데 첫째는 비룡리(飛龍里)가 잘못 전해져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지금 용현동의 상당 부분이 인천항 개항 뒤에 바다를 매립해 생긴 땅인데, 옛날 이 앞바다에서 ‘장마때 용(龍)이 하늘로 날아(飛)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어 비룡마을로 불렸다는 해석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 심언광(沈彦光)이 남긴 싯구 중에 “(인천의) 비룡강(飛龍岡)에서도 바다가 잘 보인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비룡강을 용현동 비랭이고개로 보는 사람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이 일대가 바닷가라는 점을 따져 비랑이를 ‘파도[浪]가 나르는[飛] 곳’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그저 만든 이야기일 뿐이고, 비랑이 또는 비랭이는 비탈 또는 벼랑을 뜻하는 우리 옛말 ‘비사’ 또는 ‘빗’에서 생긴 말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비랭이는 ‘비탈진 곳’, 비랭이 고개는 ‘비탈진 고개’가 되며, 이곳이 바닷가에 서있는 고개여서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이다. - 인천광역시사
용현갯골수로 데크길을 따라오다가 아암대로 서쪽 보도로 들어와 인천지방조달청 앞을 지나왔다.
아암대로 서쪽 보도를 따라간다. 갯골수로 왼쪽은 중구 신흥동, 오른쪽은 미추홀구 용현동 지역이다.
미추홀구 용현동(龍現洞)은 구한말까지 비랑이 또는 비랭이라고 불리던 마을이다. 비랭이는 ‘비탈진 곳’, 비랭이 고개는 ‘비탈진 고개’이며, 이곳이 바닷가에 있는 고개여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 비랭이는 1906년 인천부(仁川府)가 동네 이름을 바꿀 때 비룡리와 독정리(讀亭里)로 나뉘어졌다가, 그 뒤 다시 한 글자씩 이름이 더해져 용정리(龍亭里)가 됐고, 이것이 광복 뒤에 용현동이 됐다. 비랭이고개의 유래로 따져보면 용현동(龍現洞)은 원래 ‘고개 현(峴)’자를 써서 용현동(龍峴洞)이 돼야 할 것인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못 만들어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용현동에 있는 인하대학교는 학교 축제의 이름을 ‘비룡제(飛龍祭)’라 부르고 있으니, 이는 동네가 비룡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 인천광역시사
인하대병원 사거리에서 남북 도로는 아암대로, 동쪽 도로는 인천대로, 서쪽 도로는 인항로이다. 인항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인하대병원 사거리에서 서쪽 도로는 인항로이며, 그 건너편에 인하대병원이 있다. 인항로를 건너 직진한다.
서해랑길은 아암대로 서쪽 보도를 따라 CJ제일제당 인천1공장을 거쳐 수인분당선 숭의역으로 이어간다.
인하대병원 사거리에서 인항로 횡단보도를 건너 아암대로 서쪽 보도를 따라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으로 이어왔다.
능안삼거리의 남쪽 도로는 아암대로, 동쪽 도로는 인주대로, 서쪽 도로는 제물량로이다. 아암대로 동남쪽은 미추홀구 용현동, 인주대로 북쪽은 미추홀구 숭의동, 아암대로 서쪽과 제물량로 북쪽은 중구 신흥동 지역이다. 건너편은 미추홀구 숭의동 지역이다.
미추홀구 숭의동(崇義洞)은 구한말까지 인천부 다소면에 들어 장사래말(마을)이라 불렸던 곳이다. 지금은 모두 복개되고 건물들이 들어서 전혀 알아볼 수가 없지만, 192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바닷가였고 갯벌이 넓게 퍼져 있었다. 그 사이로 기다란 개천이 하나 흘렀는데, 그 개천이 길고 또 꾸불꾸불 흐르는 모양이 뱀 같아서 장사래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장사래말은 1903년 비슷한 뜻의 장천리(長川里)로 바뀌었다가 1906년에는 여의리(如意里), 장천리, 독각리(獨脚里)로 나뉘어졌다. 여의리는 이 마을에 있던 한 절에서 소원을 빌면 ‘뜻[意]대로 [如] 된다’고 해 붙은 이름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명이고 그 유래가 여전히 분명치 않다. 독각리는 지금도 ‘독갑다리’라는 이름이 남아있으며, 외나무다리를 뜻하는 ‘독각(獨脚)’에서 유래했다는 등 몇 가지의 해석이 있다. - 인천광역시사
능안삼거리 북쪽은 미추홀구 숭의동, 남쪽은 용현동, 서쪽은 중구 신흥동이다. 서해랑길은 왼쪽 3번 출입구로 이어간다.
숭의동의 옛 지명인 장사래말이나 독각리 모두가 이곳에 다리를 놓아야 건널 만한 개천이 흐르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의리와 장천리, 독각리는 1914년 부천군으로 편입되어 합쳐져 장의리(長意里)가 되는데 이는 장천리와 여의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 장의리가 광복 뒤인 1946년 1월 전의 이름과는 관계없이 숭의동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숭의’는 당시 광복을 경축하면서 ‘옛 신령들을 숭상해 뜻을 이루자’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말뜻은 좋았는지 모르나 결국 이전의 역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름을 갖게 된 셈이다. - 인천광역시사
서해랑길은 숭의역 3번 출입구 방향으로 제물량로 남쪽 보도를 따라간다. 제물량로 남북쪽은 중구 신흥동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