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深い河)》...영어 제목은 Deep River다.
‘deep river’는 흑인 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 ‘deep river(깊은 강)’는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쓰기도 하는 '요단강을 건넜다'고 할 때의 그 ‘요단강’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요단강’은 구원의 천국, 하느님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고통스런 현세를 벗어나 Deep River(깊은 강, 요단강)을 건너 하느님의 천국에서 안식을 얻기를 기원하는 애절한 노래다.
遠藤周作(엔도 슈사쿠, 1923-1996)
1923년 도쿄 출생에서 태어난 엔도 슈사쿠는
3세 아버지를 따라 만주 다렌행. 부모 이혼으로 7년 만에 일본으로 귀국
게이오대학 문학부 수학
1950년 전후 일본 최초 유학생으로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으로 유학
1953년 건강 문제로 귀국한다.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1971년 인도 여행
1992년 《깊은 강》(초고 완성), 신장 투석 수술 등으로 입퇴원 반복
1993년 마지막 장편《깊은 강》 발표
작가의 유언에 따라 《침묵》《깊은 강》은 관 속에 넣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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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순례를 위해 가장 먼저 읽은 책이다.
엔도 슈사쿠 저/유숙자 옮김, 《깊은 강》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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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불교성지순례 때는 너무 공부를 안 하고 가서, 그야말로 그냥 "따라갔다 왔을 뿐"인 후회막급한 여정이었기에 이번에는 여행사 공지 보자마자 예약하고 책들을 읽 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이 책은 지난 번 불교성지순례에 앞서 읽었던 책인데 이번에는 한글판, 그것도 유숙자 선생의 유려한 번역 덕분에 가독성이 좋았다. 실력있는 역자를 만나는 것은 원저자에게도 독자로서도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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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의 입장에서 쓴 종교소설”
“종교적 테마에 치중” 독자층의 한계
----이 책에 대한 단적인 소개------
엔도 슈사쿠는 열 살 무렵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모친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다. 신의 의미도 잘 모른 채 자발적인 의지와는 무관한 세례였다는 이유에서, 작가는 이를 가리켜 몸에 “맞지 않는 양복”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엔도의 초기 소설에는 이렇듯 자신의 몸에 맞지 않고 게다가 타인이 입혀 준 헐렁헐렁한 ‘양복’에 대한 거리감이 표출되고 있다. 이 위화감에 대한 고뇌로 인해 그는 차라리 ‘양복’을 벗어던지려는 생각도 해 보지만 결국 단념하고 그 대신 새로운 과제를 스스로 떠맡는다.
“자신의 키에 맞지 않는” 기독교라는 ‘양복’을 ‘키’에 맞는 ‘일본 옷’으로 ‘다시 재단하기’, 이러한 방향 정립은 엔도에게 곧 일본 사회란 무엇인가, 나아가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규명하는 작업으로 직결된다. 엔도 문학의 원점 역시 이 지전에서 출발되고 있다.
“8년에 가까운 유럽에서의 수도원 생활 결과, 나는 유럽인 자신들이 애써 노력을 기울인 사색과 땀으로 얻어낸 기독교를, 그게 바로 노력과 사색의 결정인 만큼 더욱더, 그대로의 형태로 일본의 정신 풍토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꼈다. 어떡하든지 일본인의 심정으로 일본인의 마음의 금선(琴線)을 울릴 수 있는 --이는 그대로 나 자신의 마음의 금선을 울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형태로 예수의 가르침을 재인식하지 않으면 일본에서 기독교는 자랄 수 없다는 점을 나는 엔도 씨에게 열심히 호소했다. .........”이노우에 요지 신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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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의 기독교 해석은 엄격하고 벌하는 부성적 그리스도가 아니라, 조건 없이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용서하는 모성적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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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자격을 얻기 위한 구두시험에서 오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계십니다. 유럽의 교회나 채플뿐만 아니라, 유대교도에게도 불교도에게도 힌두교도에게도 신은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신(신이라는 단어가 거북하다면 ‘토마토’나 ‘양파’ 같은 단어로 바꾸어도 좋다)은 곧 사랑이며, 이 ‘양파’는 어떤 종교에나 존재한다고 말하는 오츠.
이러한 오츠의 사고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범신론적인 과오’로써 비판받고 위험하게 치부되어 버린다/......왜 하필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를 마지막 소설의 무대로 삼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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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신은 존재라기보다 손길입니다. 양파는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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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무엇 때문에 나는 인도에 오고 말았을까. 아니, 그보다도 어째서 다른 사람들처럼 이런저런 유적지나 성지를 둘러보지 않고, 이 마을에 남은 것일까. 그녀는 다른 관광객이 반기는 타지마할 궁전도 인도 무용쇼도 거의 흥미가 없었다. 마음에 찡하도록 와 닿은 건 갠지스강, 그리고 에나미가 설명해 준 여신 차문다, 문둥병에 문드러지고 독사에 휘감겨 야위고 축 늘어진 젖가슴으로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는 그 모습이다. 거기에는 현세의 괴로움에 허덕이는 동양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것은 고상하고 품위 있는 유럽의 성모와는 전혀 달랐다.
273)
“저는 이미 교회에는 있지 않습니다. 힌두교의 아슈람에서 받아 주었습니다”
“아슈람?”
”수도원 같은 곳입니다“
“힌두교로 개종했나요?”
“아뇨. 저는 ...옛날 그대로입니다. 이래 봬도 기독교 신부입니다...”
275) 인디라 간디 수상(1917-1984.10.31.) 장례식 11월 3일
“인디라 간디의 유해도 갠지스 강에 뿌려지나요?”[* 인디라 간디의 장례는, 델리의 야무나(Yamuna / Jamuna)강변에서 치러졌다(화장). 그러니 유해는 야무나 강에 뿌려졌다...?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인 ‘라즈 가트(Raj ghat)도 올드델리의 야무나 강변에 있다. 델리를 거쳐 아그라를 지나 알라하바드(Allahabad)에서 갠지스와 합류하는, 총 길이 1370km의 이 야무나 강은 델리를 지나 아그라의 타지마할과 아그라성(Agra Fort) 옆을 지나는, 갠지스강의 최대 지류라고 하니..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예, 그녀도 아웃 카스트의 빈민과 다름없이 갠지스 강에 뿌려지겠지요.”
277)
마니카르니카 가트로 시신을 나르는 오츠
가난한 이들 또한 갠지스로 (죽어서라도) 흘려보내지고자 병든 몸을 이끌고 바라나시로 온다. 市에서 하루 한 번 순회하는 트럭으로 실어나르지만 놓ㅊ치는 경우도 있고...오츠는 등에 짊어지고 화장터인 마티카르니카로 나른다. 갠지스는 南---> 北으로 흐른다.
278)
“...결국은, 양파가 유럽의 기독교뿐 아니라 힌두교 안에도, 불교 안에도 살아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279)
“그럼 당신은 불교나 힌두교가 말하는 환생을 믿는 게 되잖아요. 적어도 당신은 신부 아닌가요?”“
280)
“갠지스 강을 볼 때마다 저는 양파를 생각합니다. 갠지스 강은 썩은 손가락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자도, 암살당한 (인디라) 간디 수상도 똑같이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를 삼키고 흘러갑니다. 양파라는 사랑의 강은 아무리 추한 인간도 아무리 지저분한 인간도 모두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흘러갑니다.”
285)
강은 그의 외침을 받아내고 그대로 묵묵히 흘러간다. 그런데 그 은빛 침묵에는, 어떤 힘이 있었다. 강은 오늘까지 수많은 인간의 죽음을 보듬으면서 그것을 다음 세상으로 실어 갔듯이, 강변의 바위에 걸터앉은 남자의 인생의 목소리도 실어갔다.‘’
287)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
291)
이 등에 얼마만큼의 인간이, 얼마만큼의 인간의 슬픔이 업혀 갠지스 강으로 향했을까.
등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를 흉내내고 있는 오츠
293)
사람은 증오에 의해 맺어진다. 인간의 연대는 사랑이 아니라 공통의 적을 만듦으로써 가능해진다. 어느 나라건 어느 종교건 오랫동안 그렇게 지속되어 왔다. 그 속에서 오츠 같은 피에로가 양파의 원숭이 흉내를 내고, 결국은 쫓겨난다.
294-295)
강가에서 기도하는 힌두교도, 일 년에 100만 명 이상이다.
강에 들어가면 모든 죄가 씻기어 다음 생에 좋은 형편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힌두들...
316)
“믿을 수 있는 건,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한 이 광경입니다. ”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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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란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범신론적인 과오“를 저질렀다고 교단으로부터 배척당한...오츠의 슬픈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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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가톨릭 신부가 되고자 희망했고, 그 길을 걷던 오츠(大津)가 유일신만을 신봉하는 유럽의 종교관에 좌절(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파문당하다시피 했다)하여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변 화장터 인근 아슈람(힌두교)에 거처하면서 버려진 소외 계층의 시신을 등에 짊어져 나르면서 신과 박애, 구원의 의미를 묻고 있는 모습에서 일본 가마쿠라의 둔세승들과 현재 일본의 장례불교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장례(葬禮)불교/ 장의(葬儀)불교'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굳어진 일본불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마츠오 겐지(松尾剛次, 『お坊さんの日本史』) 선생의 말처럼 그 배경에는, 명리(名利)를 헌신짝처럼 내던질 수 있었던 둔세승들의 헌신과 용기, 종교적 자비심과 휴머니즘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