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3일
『하류지향』 (우치다 타츠루 씀 / 김경옥 옮김, 민들레)
어른을 생각하면….
“엄마, 나 그때 진짜 싫었어.”
앞뒤도 없이 툭하고 뱉어내는 소리에 아이를 쳐다봤다.
“응? 뭐가?”
“나 여섯 살 때, 어린이집에서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데 선생님들이 동생은 빨리 잘 먹는데 형이 늦게 먹는다고 그랬다니까.”
아이에게 두어 번 들었던 이야기다. 아이는 어제 일도 아니고, 작년 일도 아닌 꼬꼬마 시절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4살 때 엄마가 나한테 화를 낸 적이 있잖아. 합체 로봇 변신시키다가.”
“밥을 억지로 먹으라고 했다니까. 막 국에 말아서. 난 국에 말아 먹는 거 싫었는데. 그리고 선생님끼리 막 속닥속닥하면서 내가 안 먹는다고 얘기하고….”
요즘 아이가 종종 이야기하는 선생님은 이렇다.
“생존 수영 선생님들 진짜 별로야. 생존 수영인데 좀 친절하게 가르쳐줘야지 긴장을 안 할 거 아니야. 근데 막 무섭게 말하고 혼내고. 한두 명이 장난치거나 잘못했는데 반 전체한테 뭐라고 하고. 그러니까 생존 수영을 편하게 배울 수가 없잖아.”
“우리 담임 선생님 말이야. 어떤 날은 오늘은 늦었으니까 이건 안 할게요. 그러고선 더 늦은 날은 늦었어도 이건 해야 돼요. 말이 막 바뀌어. 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늦게 끝나잖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억울하고 속상할 수가 없다. 아이는 쌀쌀맞게 말하는 어른이 싫다고 한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어른이 싫다고 한다. 아이들한테는 하지 말라고, 안 된다고 해놓고 어른들은 맘대로 한다면서 화가 난단다. 아이가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어른은 부모일 텐데. 아, 찔린다.
아이는 태어나서 적지 않은 어른들을 만나며 지내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모를 만났고, 조부모를 만났다. 조금 자라서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만났다. 지금은 해마다 담임 선생님, 교과 선생님, 다양한 선생님을 만나고 있다. 이웃에도 스치듯 만나는 어른들, 조금 더 가깝게 편하게 대하는 어른들이 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여러 매체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을 만나기도 할 터. 아이가 이따금 쏟아내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아이의 상처를 발견하기도 하고,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아픈 마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많이 미안해진다. 짠하기도 하다. 관심이라곤 전혀 없는 것처럼, 때로는 용을 써가며 보지도 듣지도 않는 것만 같은데 나는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말과 행동을 기억하는 것은 아이다. ‘뭐 그런 걸 다 기억하고 있냐.’ 싶은데 나 역시 한마디 말과 행동으로 두고두고 기억하는 어른들이 있다.
든든하게 집밥 먹어야 힘내서 하루를 지낸다고 매일 아침을 따뜻하게 챙겨 주셨던 엄마. 그래서 나는 집밥의 힘을 안다. 지금도 아침밥은 꼭 챙긴다. 기분 좋게 한잔하고 느지막이 집에 들어오신 아빠가 김치 송송, 멸치 가득, 참기름 넉넉하게 둘러 가며 만들어 주셨던 김치볶음밥.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혼자 해 먹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해주기도 한다. 그때 아빠 모습처럼.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에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기 일쑤였던 아이가 있었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보육시설에서 지냈던 그 아이는 사실 눈이 매우 나빴다고 한다. 아무도 아이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안경을 쓰고 왔다. 수업 시간에 엎드리지도 않았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가서 안경을 맞췄다고 했다. ‘우리 선생님, 참 좋은 분이다.’ 생각했다. 편지를 쓰면 항상 답장을 보내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방학이면 으레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소로 편지를 한 통씩 보내는 때였다. 편지를 써도 답장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방학 숙제 같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답장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또 쓰고 싶었다. 선생님이 전근을 가시고도 꽤 오랜 시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어른, 내 글에 관심을 가져주셨던 어른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글을 쓰다가 문득 선생님이 생각날 때가 있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꺼내 읽을 때가 있다. 글쓰기가 좋았던 것도 그때부터였으려나. 돌아보니 나에게는 그런 어른들이 있었다. 살면서 항상 좋은 어른만 만난 것은 아니지만, 어른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좋은 어른들이다. 그래서인지 어른들 이야기를 하며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아이의 모습이 안타깝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좋은 어른, 다양한 어른을 만나며 살기를 바란다. ‘그래, 그런 어른도 있었지.’ 웃음 지을 수 있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따듯해질 수 있는 어른을 만나며 살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 등대지기학교에서 들었던 강의 내용이 생각난다. “다양한 어른이 있어야죠. 이런 어른도 있어야죠. 모두 정답만 말하고, 모두 똑같은 것만 말하면 아이들이 답답해서 어떻게 사나요. 실수하는 어른도 있어야 되고, 잘못했으면 형편없이 찌그러져서 사과하는 어른도 있어야죠.” 그래. 그런 어른. 나도 조금은 다른 어른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누군가의 삶에 남게 될 나의 말과 행동을 숙고하며 오늘을 살아갈 이유다.
첫댓글 매일 사랑이 담긴 따뜻한 아침밥과 아빠가 만들어 주신 김볶을 먹고 자란 혜화샘은 그래서 따뜻하고 밝은 어른으로 성장했나봐요. 또 여러 사회이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네요. 홧팅!!
집밥, 김치볶음밥, 아이를 안경점에 데리고 가서 사비로 안경을 맞춰주신 선생님 이야기 뭉클하네요. 드러나지 않아도 이런 좋은 분들로 인해 사회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조한혜정 선생님 강의랑도 연결되네요. 돌봄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