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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용
김 동 인
1
아침 해가 동녘으로 떠오르고 시가는 새날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물건을 사라고 외치고 고함지르는 이 나라 특유의 번화성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무역 도시인 대광동(大廣東)의 번창을 자랑하는 듯 세상이 떠나갈 듯 소란스러웠다.
이 활동의 거리 소란의 시가를 뚫고 헤치며 진내련(陳奈蓮)이는 걸음을 빨리하여 사람들을 헤치며 마구 치며 부딪치며 광주로(廣州路)를 달음박질하다시피 북쪽으로 갔다.
거진 귀덕문(歸德門)까지 이르러서 서쪽으로 벋은 약간 좁은 길이 있다. 내 련이는 그 길로 들어섰다.
그 길로 들어서서 한 마장가량 갔다. 목적한 집 앞에까지 이르렀다.
아직껏 길 걷기에 바빴기 때문에 좌우를 살피지 못하고 오다가 목적지까지 이르러서 비로소 좌우를 살피며 목적한 집으로 몸을 돌이키려 했다. 그러나 돌이키려다가 다시 앞으로 향하여 그냥 걸었다.
좀더 가면 네 길 어름 길이 있다. 거기서 왼편으로 꺾이면서 곁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서 있다. 그가 들어가려던 집 앞에는 순포(巡捕) 두 명이 서 있다. 순포가 서 있으므로 그 집으로는 못 들어가고 필요 없는 길을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여기까지 오노라면 순포도 자기의 갈 길을 갈 것이라 알았다. 순포가 그 집(내련이가 목적했던 집) 앞에서 다른 데로 옮기면 내련이는 다시 돌아서서 본시 목적했던 집으로 가려던 것이었다. 그랬는데 지금 돌아보매 순포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제길!”
혀를 채며 순포를 저주하였다.
‘저 순포는 저 갈 길이나 갈 것이지 무엇하러 망두석같이 우두커니 서 있담. 할 일이 없거든 어디든 자빠져 낮잠이라도 잘 것이지, 싱거운 자식 같으니.’
연해 속으로 저주를 퍼부으며 하릴없이 필요 없는 길을 왼쪽으로 한 20여 집 갔다. 거기서 다시 돌아섰다. 돌아서서는 지금 지나온 길을 다시 더듬었다. 더듬으면서 다시 네 길 어름에서 그 집을 곁눈으로 보았다.
그냥 서 있다.
의심이 문득 갔다. 순포는 일없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네 길 어름을 이번은 남쪽으로 한 20여 집 갔다 거기서 다시 돌아섰다. 북쪽으로 가면서 다시 곁눈질해보았다.
그냥 서 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 집을 손가락질하며 저희끼리 무엇이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서 순포들은 그 집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기가 막혔다. 숨이 턱에 닿기까지 이 집을 향해 달려왔거늘 이 집을 순포가 지키고 있단 말인가.
마음은 여간 조급하지 않은데 인제 어떻게 해야 할지 거취는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연장(煙莊)을 찾아왔던 것이다. 아편연에 중독이 된 그는 아편연을 먹고 나지 않으면 이날의 사무에 손을 댈 기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쓸 아편은 늘 끊어지지 않고 준비해두고 하였는데, 불행 어젯밤에 친구가 찾아와서 오늘 아침에 쓸 아편을 어젯밤에 그 친구와 함께 죄다 피워버린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일찍이 이 연장으로 찾아와서 얼른 몇 대 피우고 돌아가려던 것이었다. 그랬는데 이 집 앞을 순포가 지키고 있다.
아편은 국법으로 판매와 연장 영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편에 대한 이익이 굉장하므로 영국인인 아편 무역상과 청국인인 소매업자 및 연장 영업자들은 국법을 무시하고 아편을 굉장히 많이 수입 판매하였다. 그리고 그 이익이 굉장하니만치 관헌에 뇌물도 후히 했고 관리들도 이 마약에 중독된 자가 많으므로 국법이 그다지 유효하게 시행 되지 못했다.
그러나 북경의 중앙 정부에서는 첫째로는 국민 보건상, 둘째로는 아편을 사기 위해서 청국 정화(正貨)가 외국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지방 관헌에게 아편 취체(取締 : 규칙, 법령, 명령 따위를 지키도록 통제함. ‘단속’ 으로 순화)를 엄히 하라는 지령이 나날이 더 급했다. 그 때문에 이즈음은 꽤 취체가 엄하게 되었다. 더욱이 아편 무역의 중심지요 근원지인 광동에 안찰사(按察使)로 온 진구(陳九)(내련이의 아버지)는 꽤 아편에 대하여 단호한 수단을 취했기 때문에
광동 시내에서의 아편 판매는 모두 지하 행동으로 되어버리고, 연장도 대개 폐쇄되어서 시내에서의 판매며 연장 경영은 좀 어렵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아편 매매는 비밀리에나마 적지 않게 거래되었지만 연장 경영은 썩 어려웠다. 내련이가 아는 한계 안에서는 이 광동시의 남쪽 끝 귀덕문 안에 있는 집 하나와 북쪽 끝인 용왕묘(龍王廟) 근처에 있는 집 서넛뿐이었다. 내련이가 거주하고 있는 안찰아문(按察衙門)에서 따져서 귀덕문 안이 용왕묘 근처보다 약간 가까웠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연장에 들어서 기 위해서 내련이는 귀덕문 안으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애당초에 용왕묘로 향했을 것을 이제 다시 돌아서서 용왕묘까지 갈 일이 아득하였다. 맥이 쑥 빠져서 한 걸음을 걷기가 싫었다. 용왕묘 근처에는 연장이 서너 집이나 있으니 혹 이 집이 감시되어 있으면 저 집으로 다음 집올 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편 중독자 특유의 기분一아편올 구하려다가 못 구한 때에 느끼는 실망, 낙담, 노염, 불쾌 등을 마음껏 느끼며 내련이는 용왕묘 근처를 목표로 다시 돌아섰다. 더욱이 어서 돌아가서 시치미 뚝 떼고 아버님께 아침 문안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더욱 마음 급했다.
아버님도 물론 아들이 그것을 가까이 하는 것을 짐작한다. 들키기도 네 번이나 하였다. 처음 두 번은 꾸중으로 끝나고 세 번째는 벌올 받았고 네 번째는 엄벌을 받았다. 그 뒤로는 내련이도 꽤 삼가 비밀히 해서 다시는 들키지는 않았지만 아주 끊었으리라고는 아버님도 안 믿는다. 다시는 들키지 않았으니 무사하지만 인제 들켰다가는 무슨 벌이 내릴지 모른다. 아버님 이 기침하시기 전에 얼른 귀덕문 안을 다녀와 시치미 떼고 안찰아문으로 돌아가 아버님께 아침 문안을 드리려던 내련이는 이 홀연히 없어진 연장 때문에 불쾌와 노염 극에 달하였다.
맥 빠지고 급한 걸음을 돌이켰다. 용왕묘를 향하여…….
맥 없으나 조급한 걸음을 오륙십 보 옮겼을 때였다. 내련이는 무엇에 발이 걸려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칵 성이 났지만 돌아보기도 귀찮아 그냥 다시 걸음을 떼려 할 때에,
“진 서방님.”
작은 소리로 자기를 찾는다. 자기에게 발을 걸어 넘어질 뻔하게 한 그 사람이 자기를 찾는 것이었다. 찾기만 하고는 그냥 모른 체하고 앞으로 간다.
그러나 내련이는 그 뒷모양으로 그가 누군지를 알아보았다. 거렁뱅이 같은 행색을 한 그자는 분명히 연장에 있던 접객자였다.
말없이 가기는 가지만 분명 나를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순간 지금껏 울울하고 불쾌하던 내련이의 마음은 확 트여 그의 무겁던 발걸음은 경쾌해졌다.
몇 골목을 돌고 빠지고 하였다. 내련이는(자취 잃지 않으리만치 뒤 멀어져서) 따라갔다. 이리하여 몇 골목 지나서 그 사람은 어떤 남루한 집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쑥 들어갔다. 내련이는 그 집 앞을 모른 체하고 몇 집 더 지나서 한번 사면을 살핀 뒤 다시 돌아서서 그 사람이 들어간 집으로 들어갔다.
쑥 들어서서 보매, 이런 집 첫 방에 으레 있는 더러운 방이었고 그 방에서 두꺼운 장을 늘인 다음 방에 사람들의 소리가 새어 들린다. 내련이는 서슴지 않고 휘장을 들치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구수한 아편 특유의 냄새가 물컥 코를 찔렀다.
반 각경쯤 뒤에 내련이는 그 집에서 나왔다. 매눈같이 밝은 아버님께 눈치 안 채이려고 조금만 피웠다. 한동안 쓸 것까지 애초에 사가지고 나왔다.
동시에 이즈음 차차 심하게 느껴지는 불쾌감 때문에 그는 낯을 깊이 가슴에 묻었다. 이 망국적 약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이 약과 아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이 약의 기운이 몰릴 때는 온갖 양심 체면 모두 없어지고 오직 마음은 그리로 달려가는 뿐이었다. 그러나 이 약이 몸에 알맞게 들어가서 육체적 고통이 딜해지면 그때부터는 마음의 고통, 양심의 고통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우연히 장난 삼아, 귀한 집 도령으로 일종의 유회 도락으로 시작한 이 노릇이 오늘은 여기 사로잡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대갓집 교양 높은 젊은이로서의 양심은 아직 아주 망하지 않은 그는 이 약을 쓰기 때문에 자기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안다.
오늘날 이 나라 국민의 태반이 이 약에 사로잡혔다. 벌써 아주 망한 자도 부지기수요 절반만치 망한 자 혹은 아직은 채 망하지는 않았지만 사로잡혔기 때문에 분명히 망할 자…… 이 약은 놀랍게 이 나라에 침입되었다. 자기는 아직은 망하지는 않았지만 사로잡혔으니 망한 것이나 일반일 것이다. 인에 몰려서 오금이 마비되어올 때는 양심 염치 다 무시하고 그리로 달려가지만 육체적 고통이 경감되면 양심 의 고통은 지극하고 하였다.
이 약을 모를 때는 자기는 명문집 교양 있는 자제로 구만리 같은 전도는 오직 명랑하고 희망으로만 찼더니 지금은 어떠한가.
도대체 너무도 앞길이 암담하기 때문에 장래사라는 것을 생각해 볼 용기조차 없다. 그렇게 명랑하고 희망으로 찼던 장래라는 것을 다시는 생각해보기조차 싫다.
무섭고 진저리나고 원수스러운 그 약이지만 이 원수를 거절할 수 없는 자기의 신세가 민망하다기보다 밉고 저주스러웠다.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를 비판할 만한 교양을 가진 자기로서 스스로 이 약의 해독을 생각해보고 끊어보려고 몇 번을 노력해보았지만 그 몇 번을 매번 실패만 거듭한 자기 였다. 남보다 곱 되는 자존심을 갖고 자기의 과단성 결단력 에 대해서도 충분한 자신을 가진 자기였지만, 이 약에 대해서만은 그 자존심도 과단성도 모두가 쓸데가 없이 굳게 먹었던 결심도(스스로도 꺾 이는 줄 모르면서) 꺾어져버리고 하였다.
이 약을 구하기 위해서는 보잘것없는 장사치, 더욱이 자기가 자기의 직권으로 마땅히 처벌해야 할 간상배에게까지 머리를 숙여 약을 간구하는 자기였다. 아버님 인 안찰사가 황명을 받잡고 간상배들올 탄압할 때에 자기는 도리어 간상배들이 없어지면 약을 어디서 구할까고 근심까지 하도록 비열하게 되었다.
스스로 돌아보아 가슴 아프기 한량없는 자기의 신세…… 인제는 신체 조직상 병신이 되어 그 약이 생각날 때는 아무 다른 생각 못하고 허덕허덕 달려가지만 그 마약이 몸에 들어가 임시로나마 욕망이 덜해지면 양심의 고통은 막대하였다.
쓰리고 괴로운 마음을 붙안고 안찰아문까지 돌아왔다. 내아로 들어가서 아버님께 아침 문안을 드려야 할 일이 가슴 저렸다. 매눈같이 밝은 아버님께 들키지 않으려고 조금만 쓰기는 썼지만 그래도 송구스러 웠다.
내아에 들어서서 아버님 께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는 힐끗 아들을 쳐다보았다.
“어디 갔었느냐?”
‘떼, 친구들과 조반을 먹기를 약속했어서 잠깐…….”
예사롭고 당연한 물음이었지만 내련이에게는 무슨 심문을 받는 것 같았다.
“조반을 먹었거든 외아로 먼저 나가보아라.”
“네…….”
아버님 아래서 부안찰의 직책을 맡아보는 내련이는 조반도 못 먹은 채 외아로 나왔다. 막하 관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제자리에 가 앉았다.
무슨 품청(稟請 : 윗사람이나 관청 따위에 여쭈어 청함)을 하러 뜰아래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은 여기 한 패 저기 한 패씩 기다리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 외국인의 큰 몸집이었다. 고혼(외국인 관계의 지정 무역상)과 함께 서 있는 그 서양인은 모리손(毛利遜)이라는 영국 상인으로 이 광동에서 크게 아편 무역을 하는 사람이었다.
영국인 아편 수입상은 고혼을 통하여서 청국인 아편 무역상과만 거래를 할 수 있으므로 아편 수요자에 지나지 못하는 내련이는 개인적으로는 모리손과 면분(面分 : 얼굴이나 알 정도로 사귄 교분)이 없다. 무슨 품청을 하려 고혼과 함께 안찰아문에 흔히 오고 하므로 자연 알아진 뿐이었다.
처음에는 부안찰인 내련이는 그들을 접견해보고 혹은 그들에 관한 사무도 맡아보았지만 내련이가 아편을 사용하는 것이 드러난 뒤로부터는 아버님께 그들을 응대하는 권한을 금지당하였다. 내련이를 보고 인사드리는 고혼과 모리손을 내련이는 모른 체해버릴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자기가 처리할 권한이 있는 용무만 차례로 보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아버님이 나왔다. 좌정하자 하인은 무슨 물품(종이에 싼 것으로 사면 두 치쯤 되는)을 갖다 당상에 바쳤다. 그리고는 고혼 상인과 모리손이 제일 먼저부터 와서 기다린다는 뜻을 아뢰었다.
“그다음은 누구냐?”
아버님은 분명 모리손의 뇌물인 듯한 물품을 탁자의 한편 모퉁이로 밀어 치우며 물었다. 역시 고혼이나 모리손에게 뇌물을 받은 듯한 하인은,
“고혼 상인과 모리손이 가장…….”
다시 고혼과 모리손을 앞장세우려 할 때에 안찰사는,
“나는 그다음이 누구냐 물었다.”
크지는 않으나 꽤 엄격한 소리로 분부하였다.
여러 품청 인들을 차례로 인견하였다. 그러나 고혼과 모리손을 그냥 버려두었다. 고혼은 누차 하인에게 채근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안찰사는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
고혼 상인이 안찰아문에 바친 괘종은, 10시를 치고 11시를 쳤다. 아침에, 폭주되었던 사무도 좀 뜸하고 마지막에는 고혼과 영인의 단 두 사람이 뜰아래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인제야 만나줄 테지 하여 그들은 다시 하인에게 인견 재촉을 하는 모양이었으나 안찰사는 못 들은 체하고 이편 하관들에게로 돌아앉아서 한담을 하기 시작하였다.
시절은 겨울이라 하지만 아열대의 폭양 아래 한나절을 기다리고, 그리고도 안찰사를 못 본 모리손은 고혼에게 대하여 강경히 담판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혼인들 안찰사가 만나지 않으려는 것을 어찌하랴.
이윽고 오정도 지났다.
그때 안찰사는 비로소 아까 하인이 바친(모리손의 뇌물인 듯한) 물품을 끌어 집었다. 집어서 앞뒤 위아래를 한번 검찰한 뒤에 휙 뜰을 향하여 내 던졌다.
“쓸어다버려라.”
아연하여 쳐다보는 고혼이며 모리손에게는 얼굴도 향하지 않고 이렇게 분부하였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내아로 들어가버렸다.
안찰사가 사무를 보는 것은 오전뿐이다. 그다음은 안찰사는 들어가고 하료들이 잔무 처리를 하는 것이었다. 안찰아문의 뜰에는 고혼과 모리손과 내던져진 뇌물이 아열대의 폭양 아래 쬐고 있을 뿐이었다. 고혼과 모리손과의 사이에는 무슨 논쟁까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내련이도 몸을 일으켜 내아로 들어왔다.
시장하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가 시장하였다. 조반도 못 먹은 그이매 음식의 시장도 느꼈다. 그러나 아편이 더욱 시장하였다. 아버님께 들키지 않기 위하여 부족하게 썼던 아편은 벌써 다 사라져서
아편 욕심은 맹렬하였다.
자취를 감추어가지고 제 방으로 들어온 내련이는 골방 안으로 몸올 감추었다. 좀 뒤에 골방 문틈으로는 아편의 연기가 몰칵몰칵 새어나왔다.
2
“되련님, 되련님.”
흔드는 바람에 내련이는 펄떡 깨었다. 할멈이 와서 흔드는 것이었다.
“되련님, 대방 마님도 벌써 기침하셨는데 이게 무슨 잠이셔요?”
세상에서는 그를 서방님이라 부르나 늙은 할멈은 아직 그냥 도련님이라 부르니만치 사설에 있어서 내련이는 아직 장가를 안 들었다. 지금은 낙향하여 한가한 여생을 보내는 황한림 댁 소저와 정혼은 했지만, 아직 혼례는 안 했으니 사실에 있어서는 도련님이었다.
내련이는 할멈이 가지고 온 새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정월 초하루 도광(道光 : 중국 청나라 선종 때의 연호(1821∼1850)) 19년(서력 1839년), 일찍 깨어서 몇 군데 세배를 가야 할 것이었는데 어젯밤 친구들과 아편을 좀 지나치게 썼기 때문에 정신없이 늦잠을 잔 것이었다.
“할멈은 나가게.”
“어서 의대 차리셔요.”
“내, 혼자 차릴게 나가.”
“그럼 손숫물(손을 씻는 물) 곧 가져오리다.”
“손숫물은 내가 부를 때 가져와.”
“어서 차리셔요.”
“알았어. 어서 나가게.”
어서 할멈을 쫓아내고 몇 대 피우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어젯밤 과히 썼기 때문에 두통이 심하고 머리가 몽롱한 것은 어서 그 약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할멈을 내쫓고는 곧 골방으로 들어갔다. 대개는 자기가 이 방을 나가기 전에는 누가 들어올 사람은 없겠지만 혹은 아버님 이 자기를 감시하려 들어올는지 알 수 없다.
황황히 참기름 불올 켜고 아침을 구웠다. 능란한 솜씨 아래 우지직우지직 아편이 끓을 때에 거기서 나는 냄새는 내련이의 마음을 무한히 끌었다.
얼른얼른, 그야말로 탐흡하였다. 아편 연기가 폐로 들어갈 때마다 각일각 아편의 기운이 퍼지는 것올 느끼면서 양심으로는 여전한 고통을 느꼈다.
쾌감과 불쾌가 아우른 가운데서 네 대를 얼른 피우고 골방을 나와서 골방문을 젖혀놓고 연기를 모두 휼어 없애고 비로소 손숫물을 불렀다.
그날 아버님께 문안드릴 때에 아버님은 이런 말올 하였다.
“금년에는 네 온갖 탈 다 쾌유되거라.”
내련이는 가슴이 선뜩하였다.
근년에 자기는 고뿔 한 번 앓은 일 없다. 이런 자기에게 ‘온갖 탈’이라 하는 아버님의 뜻은 내련이로는 짐작이 갔다. 자기 딴에는 비밀히 하느라고 했을지라도 아버님은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아아, 이 고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가 없는가. 아편을 내 나라에 퍼뜨리는 영국인을 절대 입국 금지를 하면 그 해독은 덜해질 것이다. 이 땅에서도 운남, 복건 둥지에 앵속(양귀비) 재배가 없는 바가 아니지만 거기서 산출되는 분량으로는 대청국 400주에 약용으로만 쓰기에도 부족할지라, 영국인의 인도 아편 수입만 없으면 오락용 망국적 아편은 없어질 것이다.
국가적으로 보아서는 그것이 필요하고도 또 절실히 희망되는 바이지만 그것 이 없어지면 자기는 어떻게 사는가.
그래도 제정신 들고 제 양심 회복되었을 때는 ‘나 같은 인종은 없어지는 편이 낫다’ 고도 생각이 되지만, 그려나 그 약의 생각이 문득 나기만 하면 온갖 의지 양심 한꺼번에 부서지는 그 마약, 저주스러우면서도 거절할 수 없는 마약이었다.
아편이란 것이 뻔히 마약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오락이라 하여 첫번 발을 들여놓았던 자기가 원망스럽기 한량없었다. 동시에 그런 마약을 이 나라에 갖다 판 영국인의 행사가 괘씸하고 가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살, 피부가 허여멀건 것이 잘 여물지 못한 것 같은 인종이라 덕 이며 품성도 발달되지 못한 미개 인종일시 분명하니 그런 인종들에게 도덕을 논하면 무엇하고 품성을 따지면 무엇하랴만, 듣건대 그 인종들도 제 나라에서는 아편을 매매하지 않고 국법으로도 금하는 바라 한다.
국법으로까지 금한 것을 보면 그 인종들도 아편이 해로운 물건 마약이라는 점은 찰 아는 모양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이 나라에 판다는 것은 아무리 상업 이라는 권업을 존중하는 미개 인종의 행사라 할지라도 괘씸하기 한량없고 간을 씹어도 시원찮을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저 잘 여물지도 못한 미개 인종들이 비인도적 행사를 할지라도 내 나라에서 사주지 않았으면 무가내하일 것이 아닌가. 남의 비인도적 행사를 원망하느니 자기의 어리석음을 먼저 책하여야 할 것이다. 인제는 발 뗄 수 없이 거기 사로잡힌 내련이는 오직 자기를 원망할밖에 도리가 없었다.
내련이는 집을 나섰다.
우선 아버님의 친구 몇 분께 세배를 돌았다. 그리고는 장래의 장인 되는 황 한림 댁으로 갔다.
장래의 사위, 소년 준재로 이름 높은 내련이의 세배를 기쁜 듯이 받은 황 한림은 세배를 받은 뒤에 한순간 안색이 변하였다. 네 안색이 왜 그리 나쁘냐는 질문이 나오려 하는 것을 차마 정월 초하룻날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없어서 삼가는 모양이었다.
“안에서도 네가 오기를 기다린다. 들어가보아라.”
“네.”
안으로 들어가매 장모는 반가이 맞았다. 약혼자인 부용이는 얼굴을 약간 붉힐 뿐이었다.
장모의 분부로 젊은 남녀는 후원으로 들어갔다. 화단 앞의 정자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
건너보면 제 이름처럼 이슬 머금은 부용 같은 이팔의 처녀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그러나 눈에는 환회의 빛을 띠고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최근 한동안은 만나지도 못하던 사이였다. 차차 마약에 대한 욕구만 늘어감에 따라서 여인에 대한 흥미도 줄어졌거니와, 더욱이 내 몸을 인젠 망친 몸이라는 비통한 단념심을 품고 있는 내련이는 스스로 마음에 가책 되어 그다지 약혼자도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슬올 머금은 부용꽃 같은 약혼자를 건너다볼 때에 내련이는 그 탐스러운 양 뺨을 향하여 무한 사죄하였다.
부용이는 제 약혼자인 내련이가 아편쟁이라는 불구자로 변한 것을 모르고 다만 처녀적 공상과 환희만 느낄 것이다. 아아, 내 죄는 과하구나. 저를 아내로 맞아다가 일생을 불쾌하고 적적하게 보내게 하랴. 혹은 파혼해버리랴. 무슨 사물에든 명석하고 분명한 생각을 가지지 못하는 아편 중독자인 내련이는 막연히 그 담스러운 뺨을 건너다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련이는 조금 의자를 끌어 부용의 가까이 나앉았다. 진실로 탐스러운 무르익은 처녀…… 놓치기도 아까웠으나 지금의 자기의 신상으로 그를 아내로 맞기는 더욱 죄송스러웠다.
“과세나 잘했어요?”
그 탐스러운 뺨을 들여다보다가 내련이는 이렇게 물었다.
부용이의 얼굴에는 홱 미소와 홍조가 스치고 지나갔다.
“과세 인사를 지금 하셔요?”
“아, 참.”
그만 하하 웃었다.
요 석 달 전만 해도 그때 새로 혼약한 그들은 이 정자에 마주 앉아서 장차의 행복을 서로 토론하였다. 그때만 해도 내련이는 지금같이 심한 중독이 아니었다. 아직도 장래의 꿈을 생각하고 장래의 행복올 의논할 수가 있었다. 그랬거늘. 지금은?
아아, 아아, 속으로 연해 탄식했다.
“신색 이 좀 나쁘셔요 어디 편찮으셔요?”
아까 장인은 그에게 차마 못 물었던 말이다. 철없음인지 혹은 장인보다 더 마음 쓰이기 때문인지 부용이는 이렇게 물었다.
“무얼 구미도 좋고 기운도 좋고 아무렇지도 않은걸.”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마음 쓰렸다.
“그래 부용이는 어떻소?”
“저요? 전 저 연못의 잉 어같이 펄펄 뛰고 싶어요.”:
“그거 큰 변이로군. 내가 낚시질을 배워야겠군. 잉어를 잡아 휘려면.”
“어제 섣달그믐날 일을 했어요. 작년철 마지막 일로 노동을…….”
미소하였다.
“무슨 노동을?”
“땅을 파고 꽃을 심었어요. 어차피 난 못 볼 꽃이지만…….”
말하다가 홱 얼굴을 붉히고 말을 끊었다. 저 심은 꽃이 필 시절에 나는 이 집 사람이 아니라…… 즉 당신의 아내라는 말을 무심중 하다가 끊어버렸다.
내련이는 그 끊은 의미를 알았다. 가슴 아팠다. 이 꽃 피기 전에 아내를 맞게 될 것인가. 혹은 그때는 몸도 못 쓰도록 자리에 넘어질 것인가.
“무슨 꽃을 심었소?”
“부용꽃을…….”
“오, 한 부용이 없어지매 부모님께 대신 부용읕 드리고자 심었구려.”
대답 없이 얼굴만 붉혔다.
“작년에도 심었소?”
“네, 작년에 아부용(阿芙蓉:양귀비)을…….”
내련이는 칵 나오려던 질문을 입속에서 죽여버렸다. 아부용은 앵속올 가리킴이었다. 앵속을 심었으면 그 앵속각을 집에 두었느냐 묻고 싶었다.
마음이 아팠다. 이런 때도 오직 마음은 그리로만 향하는 제 심사가 딱하였다. 저주받을 약이여.
“부용꽃 못 보기가 아까우면 부용꽃 피었다 지기까지 기다립시다 그려.”
부용이는 힐끗 내련이를 보았다. 누가 부용꽃 못 보는 게 한이랍니까 하는 듯이 변명하였다.
“북경은 지금 눈이 올 터인데 여기선 꽃을 심고…… 우리나라가 크기는 크군.”
“섬서엔 얼음이 한 자는 졌을걸요.”
아버지를 따라 섬서의 임지에는 가본 일이 있는 부용이었다.
“어디 귀히 살겠나 손금이나 봅시다.”
이 말에 부용이는 도리어 손을 뒤로 훔쳐버렸다.
“아, 좀 봅시다그려.”
‘당신 손 보셔요.”
당신 귀히 되면 나도 귀히 됩니다ㅡ 이 뜻을 머금은 말에 내련이는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그리고 숙인 채로 눈을 굴려 화단을 보았다.
부용이가 부용꽃을 심고 그러고도 그 꽃 못 볼 것을 기약하고 있는 이 화단, 이 화단에 지난 여름에는 아부용의 꽃이 만발하였던가.
즉 마약에 대한 욕구가 마음속에 문득 일었다. 이 생각만 일어나면 그 뒤로는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은 그리로만 내달음을 진맥해보매 텁텁하고 답답해오는 것이 분명했다.
인제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참기름 둥잔에 불을 켜는밖에는 도리가 없다. 그것을 구울 때에 나는 구수한 냄새가 지극히 그리워졌다.
“아아, ○한림 댁 에도 세배를 가야겠군. 내 사랑으로 나가서 아버님께나 인사드리고 곧장 갈 터 인데 어머님 께는 대신 말씀드려 주.”
인제는 장모께 인사드리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툭특 무릎을 털며 일어섰다.
부용이도 뒤따라 일어섰다. 너무도 싱거운 회견에 부용이도 맥이 빠지는 모양이었다.
아까 손금을 보잘 때에 손금이라도 보여드릴걸. 아까운 듯이 뒤따라 일어서서 내련이의 뒤를 따랐다.
부용이는 안으로 내련이는 밖으로 서로 작별하였다.
사랑으로 돌아나와보니 사랑 안에는 손님이라도 있는 모양으로 이야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것이 내련이에게는 도리어 다행이었다. 내련이는 하인에게, ‘손님이 계신 듯해서 뵙지 못하고 그냥 갑니다.’ 는 뜻을 장인께 전하게 하고 다시 불리기를 피하려 황급히 그 댁을 뛰쳐나왔다.
반 각경쯤 뒤에는 그는 자기의 골방 속에 들어가 있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끝-
2016년 10월 16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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