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 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 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탄생의 말 응아응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말 아이고아이고에 이르기까지
조국은 하나다 라고
갓난아기가 엄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엄마 엄마 위에도 쓰고
어린아이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행동
아장아장 걸음마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 가지는 인간의 길
오르막길 위에도 쓰고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고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오 조국이여
세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여 이름이여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당신이 맨 먼저 보게 되는 천정 위에도 쓰고
눈을 감으면 한밤에
맨 나중까지 떠 있는 샛별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축복처럼
만인의 배에서 차오르는 겨레의 양식이여
나는 쓰리라 쌀밥 위에도 쓰고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다에 가서 쓰리라 모래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세월이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가슴에 내 가슴에 수 놓으리라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감히 어쩌지 못하도록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외치리라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벽에 대고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
삼팔선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식민지의 낮과 밤이 쌓아올린
분단의 벽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내걸리라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 높이에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의 손가락 끝도
가난의 등에 주춧돌을 올려 놓고 그 위에
거재를 쌓아올린 부자들의 빌딩도
언제고 끝내는 가진자들의 형제였던 교회의 첨탑도
감히 범접을 못하도록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
김남주(1946~1994)시인
출생 : 전남 해남 학력 광주일고 자퇴 후 대입검정고시를 통해 전남대 영문과 입학.
등단 :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진혼가> 등으로 문단 데뷔
경력 : '남조선 민족해방 전선'에서 활동중 체포, 구속.
1973년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 <고발> 제작, 배포.
이 사건으로 1차 투옥, 투옥 8개월만에 석방, 이후 학교 제적.
미국, 일본 PEN클럽 명예회원으로 추대.
1988년 12월 21일, 투옥 9년 3개월만에 석방.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
1994년 2월 13일, 새벽 2시 30분경 별세.
저서 : 시집 -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 사상의 거처,
이 좋은 세상에 외 다수.
산문집 -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 외 다수.
번역서 -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 아타 트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