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6월 11일 미국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이 태어났다. 그는 〈보이는 어둠〉, 〈넷 터너의 고백〉 등을 써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두 작품은 소설이 아니다. 〈보이는 어둠〉은 작가 자신이 겪은 우울증에 대한 회고록이다. 이 책은 우울증에 대한 세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울증에 대한 오해를 간략히 말하면, 감정인 ‘우울하다’와 질병인 ‘우울증’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우울하다’고 해서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울증 환자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방을 깨끗하게 청소한다거나 옷을 깔끔하게 입는다고 우울증이 낫지 않는다.
〈넷 터너의 고백〉은 1831년 8월 21일 미국 버지니아주 사우스힘턴에서 노예들과 흑인들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킨 넷 터너에 관한 논픽션 기록이다. 약 250명의 사망자를 낳은 반란은 이틀 만에 진압되었고, 넷 터너는 몇 달 후 체포되어 11월 1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넷 터너의 이름을 아는 세계인은 별로 없겠지만 스파르타쿠스라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법하다. 미국에서 10부작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고, 영화화도 되었다. 기원전 73년 70여 명의 노예 검투사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스파르타쿠스는 한때 9만여 군대를 조직해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하지만 2년 뒤 패전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로마군에 사로잡힌 노예들은 “누가 스파르타쿠스?”고 묻는 취조에 한결같이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나를 죽여라!” 식으로 조롱 섞어 대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노예제에 대한 반발심이 컸고,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존경심이 높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로마군은 노예들의 시신 중 누가 스파르타쿠스인지 끝내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로마제국의 인식은 ‘그래봤자 노예!’ 수준이었다. 원로원은 스파르타쿠스 반란군을 제압한 크라수스에게 시가행진의 영광을 허용하지 않았다. 노예와 싸워서 이겼는데 그게 무슨 자랑거리냐는 인식이었다.
시가행진은 폼페이우스가 누린다. 에스파냐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던 길에 스파르타쿠스 반란군 잔당을 만난 폼페이우스는 간단히 그들을 제압했다. 원로원은 에스파냐 승전 귀국 보고 대회에 노예 반란 제압이라는 숟가락을 하나 더 얹도록 조치했다. 스파르타쿠스를 영웅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다는 정치적 판단의 결과였다.
그에 견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노예 반란 사건의 주역 만적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최충헌 가문의 노비였던 만적은 반란을 도모하지만 난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잡혀 죽는다. 함께 봉기를 도모했던 동료의 배신 때문이다. 당연히 만적은 드라마 〈무인 시대〉에도 단역 수준으로 나온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의 진리를 적용하자면, 아무래도 만적은 스파르타쿠스보다 급이 낮은 인물이었던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