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영국/프랑스, 드라마, 2000

흔히 꿈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엄청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아름답게 그린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빌리 엘리어트] 역시 발레리노(남자)의 꿈을 이룬 '빌리'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다른 시각으로 보려한다. 꿈을 이룬 빌리의 노력 보다는 가족의 응원과 희생에 대해서 말이다.
한동안 인기스타들의 발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US 오픈에서 맨발로 샷을 하던 박세리의 발.
이들의 울퉁불퉁 못생긴 발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상징이다. 그런데 이들이 최고의 위치에 오르도록 희생한 가족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비춰지지 않는다. 과연 이들이 자신들 혼자의 노력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까? 나는 단호히 '아니오'라 대답할 수 있다.
영국의 탄광촌, 11세 소년 빌리는 아버지가 광부이고, 형 역시 광부인 집에서 남자다움을 강요받으며 자란다. 광부들의 노조가 운영하는 스포츠 클럽에서 복싱을 배우며 언젠가는 자신도 아버지나 형을 따라 땅 속 깊이 내려가 석탄을 캐는 광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마을은 어수선하다. 광부노조가 회사에 대항해 파업을 벌이고 있고, 공권력(경찰)이 투입되어 이들을 막는 한편 석탄회사는 지원자를 모집해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다. 지원자를 실은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파업 중인 노조원(빌리의 아버지와 형을 포함한)들은 계란을 던지며 배신자라고 비난한다. 그 중심에 빌리의 아버지와 형이 서있다. 빌리의 형은 더욱 적극적이어서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저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은 소년 빌리에게 남자는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무언의 강요가 되는 환경이 되어버린다.
체육관 1층을 노조원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하게 되어 1층에서 연습하던 발레 수업이 2층의 권투체육관 한켠으로 올라온다. 소년 빌리는 소녀들이 발레 연습하는 동작을 보고는 자신도 발레를 배우고 싶어한다.
국립발레학교 오디션에서 빌리에게 묻는다. 춤을 추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내 자신이 사라져 버리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빌리의 대답에서 느껴지듯 빌리에게 발레는 암울한 현실에서 탈출하는 방법이자,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욕망의 분출구다.
아버지와 형이, 우락부락한 동네 사람들이, 발레는 남자가 할 것이 못된다고 했을 때, 11세 소년 빌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결과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성인 빌리가 <백조의 호수>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솟구쳐 오른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소년 빌리의 피 나는 노력과 타고 난 천재성 따위의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주위의 비난과 아버지나 형이 지닌 스스로의 가치관을 깨면서까지 빌리의 꿈을 위해 기꺼이 배신자가 되는 장면은 감동적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성인 빌리의 공연에 초대된 아버지와 형의 표정에 마음이 찡 할수 밖에 없다.
명강사이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김미경의 책 『살아 있는 뜨거움』 프롤로그에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당연히 자신의 꿈을 이룬 성공사례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자신의 꿈을 이룬 성공사례가 아니라, 이루고 싶은 꿈을 지닌 자식(가족)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