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동대문 일대의 변천사는 놀랍습니다. 우선 지난 1958년 복개공사로 삼일고가도로가 세워졌던 청계천이 2003년 복원돼 서울 최고의 관광명소이자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 1925년 준공 돼 동대문 지역의 상징이 되어왔던 동대문 운동장은 지난 2007년 철거된 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1998년 밀리오레, 두산타워를 시작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대형 쇼핑몰들은 현재 10개가 넘는 고층 빌딩으로 패션타운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오랜 역사를 간직한 평화시장과 청평화시장 역시 자체 브랜드로 의류, 액세서리, 생활소품 등을 생산·판매·유통하고 있습니다. 이제 동대문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초대형 패션상권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생적으로 발달한 특유의 상품 제조·유통 시스템은 물론 1평짜리 점포에서 시작해 우리나라 의류산업의 주역이 된 중소기업들의 성공신화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곳, 동대문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살펴봤습니다.
광장시장 주변으로 한정됐던 동대문 상권은 1960년 평화시장에 의류 매장과 봉제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을지로 6가에 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전국에서 상인들이 모이기 시작해 동대문 일대는 국내 최대의 의류 시장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1982년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된 이후 동대문 시장은 24시간 쇼핑이 가능한 지역으로 인식되며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과 올빼미족들의 쇼핑천국으로 일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대문관광특구협의회의 집계에 따르면 오늘날 동대문 상권 내에 자리 잡은 패션 관련 상가와 쇼핑몰 숫자만 4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의류 매장 숫자는 3만 5,000개, 종사자 수는 15만 명이 넘습니다.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면서 ‘요우커(遊客)’라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과 일본 및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몰려들며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만 연간 2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의류 관련 해외 바이어들 역시 이곳을 분주히 드나듭니다. 이들이 일으키는 매출만 연간 약 30억 달러에 달합니다. 관광, 쇼핑, 바이어 등을 통해 얻는 동대문 상권의 1년 추정 매출은 무려 15조원이라고 합니다.
동대문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시스템이 바로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Brand)입니다. SPA는 기획, 생산, 유통이 모두 통합된 브랜드 생산 시스템으로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소비자의 욕구와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전에 디자인이 나오면 당일 샘플이 완성될 정도입니다. 매주 7~8개의 신상품이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되며 성공 가능성을 시험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속칭 ‘대박 상품’이 종종 탄생하기도 합니다. 쉴 새 없이 신상품을 출시하고 즉각적인 시장의 반응에 따라 인기 상품이 정해지며 비인기 상품은 도태시키는 이러한 방식은 이른바 ‘동대문 시스템’으로 불리며 자라, 유니클로, H&M 등 글로벌 SPA 브랜드에 의해 벤치마킹 됐습니다. 이러한 동대문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디자인부터 시작해 의류 제조, 유통의 전 과정이 상권 반경 5km 내에서 모두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동대문에서는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대박을 꿈꾸며 1인 매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연간 1조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는 패션그룹 형지, 국내 청바지 1위 브랜드 뱅뱅,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들이 모두 수십 년 전 동대문의 1평(3.3㎡) 남짓한 점포에서 시작된 회사라는 것입니다. 1982년 상경해 서른 살에 서울 광장시장에서 작은 점포를 연 최병오 회장은 자체 브랜드인 ‘크라운’ 바지로 시작해 오늘날 15개 의류브랜드를 갖춘 패션그룹 형지를 일궈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성공과 실패, 재기가 모두 동대문에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최 회장은 크라운 바지로 한때 잘 나가다 10년 만인 1993년 어음 부도로 무일푼이 된 뒤 다시 남평화시장의 1평짜리 점포를 기반으로 재기를 했다고 합니다.
‘동대문 1세대’로 불리는 뱅뱅어패럴의 권종열 회장은 1961년 재봉틀 3대로 창업해 뱅뱅의 역사를 일궈냈습니다. 그는 처음에 외제 청바지에서 구리 단추와 지퍼만을 뜯어내 청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경쟁이 치열해진 아웃도어 시장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토종브랜드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 성공 스토리도 놀랍습니다. 그는 아웃도어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1973년 종로 5가에 ‘동진사’라는 등산용품점으로 시작해 숱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자이언트’라는 자체 브랜드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산악인의 거리에 판로까지 개척했지만, 곧이어 터진 1979년 비상계엄으로 내수가 큰 폭으로 줄어 시련을 겪어야했습니다. 하지만 2년 후인 1982년 야간 통행금지가 풀리며 장거리 산행과 야간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상황은 반전됐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시련이 닥쳐왔지만, 강 회장은 동진사 시절의 어려움을 기억하며 꾸준히 노력해 오늘날의 블랙야크를 일궈냈다고 합니다.
작은 점포에서 시작해 거상이 된 이들처럼 동대문은 지금도 살아있는 생물마냥 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제2, 제3의 블랙야크와 뱅뱅을 꿈꾸는 이들이 오늘도 개미처럼 분주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이 이어지는 한 살아있는 패션타운 동대문의 성공 신화는 계속될 것입니다.
출처/산업자원부 블로그 경제다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