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11년 만에 1만여 성도로 성장한 우리들교회 소문이 파다했다. “‘우리들교회’에 여자 목사님이 있다더라.” “설교를 들으면 가슴이 운다더라.” “요즘 서울 강남에서 교인 수가 늘어나는 거의 유일한 교회라더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대형교회를 제치고 네티즌 접속 순위 3·4위에 올랐단다.”
궁금했다. ‘우리들교회’가 입소문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가 뭘까. 그런 물음을 안고 3일 서울 대치동 휘문고를 찾았다. 교회 건물이 따로 없어서 휘문고 체육관을 빌려서 매주 수요일 저녁과 일요일에 예배를 보고 있었다. 교회 사무실 공간도 얼마 전까지는 학교 창고였다.
거기서 ‘우리들교회’ 김양재(59) 담임목사를 만났다. 그는 “처음부터 목사가 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목회를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며 말을 꺼냈다. 궁금증은 더 커졌다. 수첩을 꺼내 ‘소문의 이유’를 하나씩 적었다.
- 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예배를 보나.
“처음에는 우리 집에서 소박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이 늘어났다. 공간이 좁아서 학교를 노크했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 미션 스쿨과 학교에 문의를 했다. 다들 ‘노(NO)’라고 하더라. 그런데 고맙게도 미션 스쿨이 아닌 휘문고에서 학교 식당을 쓸 수 있게 해줬다. 교인 수가 늘어나 지금은 학교 체육관에서 예배를 보고 있다. 공간이 필요했을 뿐, 굳이 강남에서 목회를 할 생각은 없었다.”
2002년 10월 김 목사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개척 기도모임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열 세 가정이 모였다. 50명 남짓 됐다. 그해 말에는 200명으로 늘었다. 집이 너무 좁아 학교를 수소문했다. 지금은 출석 교인 수만 4500명에 달한다. 한여름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냉방이 안 된다. 교인들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얼린 패트병과 수건을 안고서 설교를 듣는다. 겨울에는 난방이 안 된다. 담요를 덮어쓰고 털신을 신고서 설교를 듣는다. 그래도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이는 없다.
- 사람들이 왜 설교를 찾나.
“사람들은 대개 ‘인격’이란 가면을 쓰고 상대를 만난다. 인격보다 중요한 게 나의 본모습이다. 이제는 벗고 만나야 한다. ‘우리들교회’는 일종의 ‘목욕탕’이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발가벗고서, 서로 때를 밀어주는 거다. 그럴 때 시원해지는 거다. 가출 직전, 부도 직전, 이혼 직전, 자살 직전의 사람들이 그렇게 치유가 되는 거다. 그래서 찾아오는 거다.”
- 교회가 ‘목욕탕’이 되는 건 쉽지 않다.
“물론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다들 감춘다. 교회에서조차 숨기려 한다. ‘우리들교회’에선 서슴없이 공개적으로 털어놓는다. ‘나는 불륜을 저질렀다’ ‘정말 남편을 증오했다’ ‘나는 문제아였다’ 등등. 몇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 그렇다. 치부를 드러내고, 죄를 솔직하게 고백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신앙 생활이 시작되더라.”
- 그런 고백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나.
“맞다. 그래서 나부터 고백했다. 이혼도 수없이 생각했고, 죽으려고 자살 시도까지 했던 과거를. 겉으로는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었으나 속으로는 멍이 들어서 엉망이었다. 37세 때 급성간암에 걸린 남편과 사별했다. 교인들에게 그런 얘길 다 털어놓았다. 목사가 죄를 고백하니까 사람들이 ‘아! 우리와 똑같구나’라며 위로를 받더라. 그러고선 자신들 얘기도 다들 오픈을 하더라.”
- 오픈하는 게 왜 중요한가.
“1907년 ‘평양대부흥’ 때도 그랬다. 길선주 장로가 먼저 ‘친구의 돈을 훔쳤다’며 죄를 고백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죄를 고백하며 대부흥이 일어났다. 무슨 뜻인가. 나의 죄, 나의 연약함을 깨닫고 드러내는 거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신앙은 박제일 뿐이다.”
요즘 목회자들 사이에 오가는 말이 있다. “설교할 때 ‘고난’ 얘기를 하면 교인이 반으로 줄고, ‘죄’ 얘기를 하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 목사는 “자신의 죄를 봐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래서 내가 먼저 희생하고,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목사님의 회심(회개) 순간을 말해달라.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힘겹게 학교를 졸업했다. 의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시댁은 부유한 기독교 집안이었으나 유교적 전통이 너무 강했다. 5년 동안 조선시대식 시집살이를 했다. 피아노도 못 치고, 책도 못 읽고, 걸레질만 했다. 집밖에도 거의 못 나갔다. 시장도 가정부가 갔다. 내 삶이 이해되지 않았다. 착하게 사는 데 왜 이리 힘이 들까. 죽고 싶었다. 이혼을 각오하고 가출도 했다. 그러다 성경을 보면서 깨달았다.”
- 뭘 깨달았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길 수가 없다’(누가복음 16장13~14절)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모범생인 그 바리새인이 바로 나더라. 내가 돈과 성공을 좋아해서 피아노를 치고, 결혼도 했더라. 그걸 깨달았다.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교만하구나. 내 속에 사랑이 하나도 없구나. 겉으로 순종했지만 인정받기 위해서 순종했을 뿐이구나.’ 그걸 처절하게 깨우쳤다. 지금 내 삶이 살아온 날의 결론이란 것을 깨닫고 눈물의 회개가 시작됐다.”
‘우리들교회’ 설교는 듣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교인 대부분이 일상에서 스스로 성경을 묵상하는 ‘큐티(Quiet Time의 약자)’를 하고 있다. 큐티에서 길어올린 깨우침을 자신의 생활에 적용한다. 김 목사는 “주입식 신앙을 통해선 삶의 암초를 해결하지 못한다. 큐티를 통해 자립신앙의 힘을 기르면 암초를 넘어가고, 암초를 다스리는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기복성 신앙도 강하게 경계했다. “교회에서도 ‘다오 다오’ 신앙이 많다. 다들 하나님이 주시는 떡고물을 바란다. 그게 아니다. 연애할 때를 보라. 장미꽃과 다이아몬드를 아무리 받아도 무슨 소용이 있나. 그 사람 자체가 내게 와야지. 신앙도 그렇다. 하나님의 떡고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내가 받는 상이 돼야 한다.”
‘우리들교회’는 매주 헌금액과 출석 교인 수를 주보에 공개한다. ‘투명한 교회’를 지향하는 김 목사는 자신의 저서 인세도 교회에 헌금한다. 재정관리는 평신도운영위원회에서 맡고 있다. 기독교계에는 여성 목회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들교회’의 남성 교인 비율은 다른 교회보다 더 높다. 여자냐, 남자냐가 아니라 예수를 향한 목마름을 채워주느냐, 아니냐를 따지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내일에 대한 희망, 그걸 ‘우리들교회’에서 언뜻언뜻 봤다.
◆김양재 목사=4대째 모태신앙이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며 피아노 반주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껍질 뿐인 신앙이었다”고 말한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서울예고와 총신대 강사를 역임했다. 결혼과 사별을 겪으며 신앙의 깊이가 달라졌다. 백석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현재 큐티선교회 대표와 ‘우리들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홍성사),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두란노), 『절대순종』(두란노) 등이 있다.
그녀를 일으킨 말씀, 죄인들을 모으다
‘목욕탕 교회’ ‘고백공동체’ ‘여자 목사’ ‘큐티’…….
바로 우리들교회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이 교회 김양재 목사는 여성 목사로서는 드물게 성도 1만여 명의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큐티를 통한 말씀 묵상을 신앙의 으뜸 중 하나로 꼽는다. 그가 지난 30년 동안, 큐티를 통해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 그래서 올해 6월 창립 11주년을 맞은 우리들교회 성도들은 담임목사를 닮아, 죄의 고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마치 목욕탕에서 때를 벗기는 것이 자연스럽듯.
그 옛날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가 그랬다. 몰리고 쫓기며 마음이 원통하고 아팠던 400명은,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인 다윗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나 새 왕국을 건설했다. 김양재 목사도 다윗과 같은 치유자가 되고 싶었다. 그 역시 상처가 많았기에, 함께 아파하며 같이 울고, 더불어 회복되고자 했다. 11년 전, 처음 예배를 드렸던 휘문고등학교 학생 식당은, 지금도 그렇지만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여전히 약 5천명(나머지 약 5천명은 지난 2010년 새로 지은 판교채플에서 예배를 드린다. -편집자 주)이 모인다.
이렇게 김 목사가 성도들의 내면을 만지는 힘은, 그가 오래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 ‘큐티’(QT, quiet time)에서 나온다. 말씀의 깊은 묵상은 그야말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힘을 발휘했다. 누군가에겐 하찮을 수도 있는 큐티가 그에겐 작은 ‘겨자씨’가 되어, 어느새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했던 것이다.
| ▲김양재 목사는 “개척 후 10년 동안은 교회 자체의 건물이 없다 보니 부흥회나 특별한 행사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프로그램이 없는 게 프로그램일 정도로 우리들교회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는 목회의 본질에만 초점을 맞추며 그 길을 오롯이 걸어왔다”고 고백했다. ⓒ송경호 기자 |
변한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김 목사가 먼저였다. 그는 스스로 “지극히 평범했던 주부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주부로선 평범했을지 몰라도 여자로선, 아니 인간으로선 그다지 평범하지 못했다. 장로 가정이었지만 유교적 가풍이 강했던 시집에서 그녀는 숨을 죽여야 했고, 남편 역시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김 목사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말씀을 붙드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그 안에서 길을 찾고 싶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말씀은 점점 그녀의 삶으로 젖어들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는 김 목사가, 가장 먼저 보았던 것이 바로 ‘죄’다.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또한 알아갔다. 말씀은 그녀로 하여금 세상의 복(福)이 아닌 천국의 ‘팔복’을 사모하게 했고, 치욕을 무릅쓰고 믿음의 대를 이은 ‘다말’을, 그리고 이름도 없이 다윗을 도운 ‘마길’을 주목하게 했다. 사실 이 두 인물은 우리에게 요셉이나 바울처럼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김 목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하나님의 ‘구속사(史)’에서 없어선 안 될 이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김 목사와 우리들교회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우리들교회의 성장에 놀란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교인의 수가 몇인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얼마나 큰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휘문고 강당에 교인의 절반이 모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이는 “가정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이라거나 “고난이 복”이라는 김 목사의 말에서도 잘 묻어난다.
그렇다면 김 목사와 우리들교회가 가진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일까? 두말할 것 없이 ‘말씀’이다. 인터뷰를 위해 김 목사와 마주했을 때, “성도들이 여자인 김양재 목사님께 어머니와 같은 푸근함을 느껴 그렇게 죄를 잘 고백하는 게 아닐까요?”라고 물었다가, 그야말로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김 목사는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순간, 기자가 가졌던 ‘편견’도 사라졌다. 김양재 목사는 ‘여자 목사’가 아닌 ‘목사’였다.
개척 11년, 이제 한국교회와 그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들교회는 지난 11년 동안 그들만의 색깔을 내며 한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열매도 맺었다. 김 목사는 이제 그 열매를 한국교회와 나누려 한다. 바로 오는 10월 20~23일, 우리들교회 판교채플에서 전국교회 담임목사와 사모 및 부교역자 1인(교회당 3인까지)을 대상으로 ‘우리들교회 목욕탕 목회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 교회 개척 후 처음 여는 세미나다.
| ▲우리들교회는 지난 11년 동안 그들만의 색깔을 내며 한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열매도 맺었다. 김 목사는 이제 그 열매를 한국교회와 나누고자 ‘우리들교회 목욕탕 목회 세미나’를 개최한다. ⓒ송경호 기자 |
김양재 목사는 “이 세미나는 지난 11년간 하나님께서 우리들교회에 주신 은혜를 함께 나누고, 부흥을 허락해 주신 모든 이야기를 소개하는 자리”라며 “11년 전 13가정과 함께 교회를 개척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들교회는 단순함을 통한 깊이를 추구해 왔다. 성도들이 자신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고 죄를 회개함으로써 상처와 중독 등에서 자유케 되자, 수많은 가정의 중수(重修)가 일어났다”고 소개했다.
이어 “개척 후 10년 동안은 교회 자체의 건물이 없다 보니 부흥회나 특별한 행사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프로그램이 없는 게 프로그램일 정도로 우리들교회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는 목회의 본질에만 초점을 맞추며 그 길을 오롯이 걸어왔다”면서 “그러나 올해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서로의 때를 밀어온 ‘목욕탕 교회’로서의 모든 것을 나누며, 겸손히 한국교회를 섬기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 어떤 특별한 것을 찾기보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을 통해 거룩을 이루어간다면, 결국 비범함에 이르지 않을까요. 저에게 있어 ‘땅끝’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 항상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점검하며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어요. 이번 세미나를 통해 이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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