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공룡 연구의 대세는 뭘까. 새로운 공룡을 발견하는 것? 그렇지 않다. 요즘 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공룡의 생태를 밝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거대한 육식공룡이 얼마나 빨리 뛸 수 있는지, 얼마나 강하게 먹이를 무는지, 가족을 이뤄 생활했는지, 사냥을 어떻게 했는지, 지능은 어느 정도였는지 등이다.
이 모든 궁금증을 공룡의 뼈 화석만으로는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공룡으로부터 진화한 조류를 제외하면 모든 공룡은 이미 6500만 년 전에 멸종했기 때문에 직접 비교할 살아있는 동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룡 발자국이나 알, 피부 같은 흔적화석에서 공룡의 생태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최근에는 CT촬영, SEM, FEA분석, 동위원소 분석 등 첨단기술까지 동원하고 있다.
놀랍게도 몽골 고비사막에서는 공룡의 생태를 밝혀 줄 완벽한 상태의 화석이 많이 발견된다. 고비사막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 화석이 많이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비사막에서 중요한 첫 발견은 공룡 알 둥지였다. 이 둥지로 미국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이 공룡이 ‘알을 낳는 파충류’라는 것을 처음 알렸다. 이 발견은 모든 공룡학자들의 눈과 귀를 몽골로 모았다.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한 발견은 폴란드 연구팀의 ‘싸우는 공룡(fighting dinosaurs)’ 화석이었다. 프로토케라톱스와 벨로키랍토르가 싸우다 죽은 순간이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화석은 실제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의 치열한 생존의 순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극적인 발견을 기대하며 우리도 몽골 고비사막으로 떠났다.
50년 간 베일에 쌓여있던 데이노케이루스 2009년 8월 3일. 우리는 고비사막에 있었다. 모래와 바위로 뒤덮인 고비사막은 우리가 쉽게 다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탐사대가 탄 큰 트럭의 엔진이 과열되면서 말썽을 부리더니, 초원 중간에 멈춰 서고 말았다. 고장 난 부품을 구하고 교체하는 데만 6일이 걸렸다. 기온은 40°C를 넘었으며 사막답지 않게 약간 습하기까지 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도 전에 탈진하는 대원들이 속출했다. 벌써 4번째 탐사였지만 이번에도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4차 탐사 대원은 총 24명이었으며, 2대의 지프, 3대의 밴, 그리고 2대의 큰 트럭을 이용했다. 우리는 준비를 마치고 8월 6일 부긴자프로 출발했다. 3차 탐사에서 아시아의 티라노사우루스인 타르보사우루스의 발 화석을 발견한 곳이다. 이번에는 나머지 뼈를 기대하며 지층을 덮고 있는 거대한 암석을 열심히 옮겼다. 하지만 더 이상의 뼈는 없었다. 날씨까지 변덕을 부려, 사막에 폭풍우가 몰아쳤다.
그럼에도 우리는 곧 흥미로운 화석지를 발견했는데, 5개의 커다란 발굴 구덩이와 도굴꾼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이곳을 조사하면서 우리는 공룡이 걸어간 발자국을 발견했다. 최종적으로 55개의 수각류 발자국을 발굴했다. 이들은 14개의 보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이 보행렬을 발굴하는 동안, 놀랍게도 발자국이 있는 지층 아래쪽의 이암층(진흙 암석)에 서 백악기 후기 수각류인 갈리미무스의 오른발 뼈를 발견했다. 이 오른발은 발자국이 발견된 층의 위에서부터 아래쪽의 이암층까지 낮은 각도로 뚫고 들어간 상태였다. 오른발의 사후 경직 상태와 지층의 관계를 보면 갈리미무스가 진흙 수렁에 빠져 죽은 것 같았다. 즉, 서너 마리의 갈리미무스 공룡이 끈적끈적한 진흙탕에 빠져 죽은 후, 그 위에 퇴적물이 덮이고 그 층 위에 여러 수각류 공룡이 지나가며 발자국을 남긴 것이다. 실제 발자국의 주인과 죽은 갈리미무스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뼈 화석과 발자국이 함께 발견된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과거 공룡이 살던 고비사막의 옛날 환경을 해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지난 5년간의 고된 탐사를 보상해주는 커다란 발견이 바로 이 4차 탐사에서 이루어졌다. 백악기 후기의 대형 수각류 공룡인 데이노케이루스를 발견한 것이다. 데이노케이루스는 폴란드-몽골 고생물탐사팀이 1965년 거대한 앞발만 발견한 뒤 거의 50년간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름 뜻이 ‘무시무시한 손’일 정도로 앞발이 커서 관심이 많았다.
우리는 부긴자프의 한 발굴지에서 이미 알려진 데이노케이루스의 앞발과 똑같은 앞발을 발견해 새로운 데이노케이루스의 존재를 확인했다. 머리뼈와 손, 발 뼈 화석은 도굴돼 없어졌으나 남은 몸뼈의 대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이 표본을 조사하면서 우리가 2006년 1차 탐사 때
알탄울라 지역에서 발굴한 화석이 또 다른 데 이노케이루스라는 것도 알게 됐다. 두 표본의 넓적다리 뼈가 같은 특징을 보인 것이다. 1차 탐사에서 나온 표본은 이번 부긴자프 표본의 74% 정도로, 덜 자란 데이노케이루스로 밝혀졌다. 우리는 두 표본을 조합해서 데이노케이루
스의 전체 형태를 50년 만에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복원을 통해 데이노케이루스는 타조를 닮은 오르니토미무스류에 속한 공룡임이 확실해졌다. 커다란 발톱이 주는 무서운 인상과는 달리 거대한 초식공룡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순간 나는 이전에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냈다는 흥분감이 몰려왔다. 이 발견은 2013년 11월 세계 척추고 생물학회에서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 논문을 작성하는 중이다.
육식공룡이 집단으로 알을 낳다2011년 8월 말부터 5차 탐사가 시작됐다. 탐사대원은 총 27명이었으며 베이스캠프는 또 다시 부긴자프였다. 데이노케이루스 화석지에서 전 해에 찾지 못한 두개골을 발견하기 위해서 였으나, 결국 발견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못찾는 것이 아니라 도굴돼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두개골만 나오면 더욱 완벽한 발굴이 될 텐데, 기대한 바를 찾지 못하고 포기하려니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항상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지난 탐사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제한된 시간 때문에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다.
대신 우리는 다른 곳에서 커다란 용각류 공룡의 골반뼈와 작은 수각류 공룡 한 마리를 발견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목이 매우 길고 몸집이 큰 초식공룡인 용각류는 네메겟층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례적이었다.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오비랍토르류의 골반부터 뒷다리까지 연결된 뼈를 발견했다. 가까운 곳에서 이 공룡의 알 둥지도 4개 발견했다.
만약 이것이 오비랍토르류의 집단 산란지라면, 이는 수각류 공룡이 집단으로 알을 낳았다는 최초의 증거가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인정을 받는다면 오비랍토르 공룡의 생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를 처음 발견한 탐사대원은 발견의 의미를 알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 수많은 알껍데기 화석을 수집했는데, 최소한 10종 이상의 공룡 알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알껍데기를 분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알 속에 태아의 골격이 보존된 완벽한 둥지를 힐멘자프에서 발굴했다. 오비랍토르 둥지로 추정되는데, CT스캔을 통해 확인할 예정이다.
5년 간의 탐사 활동을 통해 수집한 식물, 어류, 거북, 도마뱀, 악어, 익룡, 공룡 그리고 포유류의 화석은 총 694개체에 이른다. 가장 많이 발견된 것은 ‘놀라게 하는 도마뱀’이라는 뜻의 대형 육식공룡인 타르보사우루스다. 총 79개체가 나왔다.
타르보사우루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표본은 알탄울라에서 발굴한 것이다. 이 타르보사우루스는 8살이며 머리뼈 일부, 앞발, 뒷발, 골반과 함께 배 쪽의 뼈가 완벽하게 제 위치에 있었다. 놀랍게도 배에 있는 뼈인 복늑골 안쪽에서 위 내용물 화석을 같이 발견했다. 위 내용물 화석은 공룡의 먹이 습성에 대하여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증거이며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타르보사우루스의 위 내용물 화석은 여러가지 뼈가 함께 뭉쳐진 덩어리로 나왔는데 우리는 이 속에서 갈리미무스의 발톱을 확인했다! 이는 실제 타르보사우루스가 갈리미무스를 먹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발견이었다. 타르보사우루스는 크기 12~14m로 아시아에서 발견된 육식공룡 중에서 가장 크다. 크기 4~5m인 갈리미무스는 ‘닭 닮은 공룡’이라는 뜻이지만 생김새는 타조와 비슷해 목이 가늘고 길다.
고비사막은 공룡의 천국 타르보사우루스와 함께 가장 많이 발견된 수각류는 ‘타조’ 공룡인 오르니토미무스류였다. 매번 단편적인 뼈들을 자주 발견했는데 수집할 만한 표본은 총 75개였고, 대부분 갈리미무스였다. 특히 1차 탐사 때 울란큐수에서 발굴한 오르니토미무스류 화석은 몸뿐 아니라 머리 뼈까지 입체적으로 보존돼 있는 완벽한 공룡화석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앞 발톱이 갈리미무스와 매우 달라서 새로운 종으로 보고할 예정이다.
2007년 동고비 바얀시리층에서는 상당한 크기의 용각류 공룡 골격을 발굴했다. 총 32개의 석고틀을 만들어 운송했으며 현재 80% 정도 처리한 상태다. 비록 머리뼈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종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발굴한 이 모든 화석들은 고비 사막이 척추고생물학의 메카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 공룡의 다양한 수수께끼가 이곳에서 밝혀질 것이다. 이런 연구들이 모이면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생존했던 모습을 더 치밀하게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한국-몽골 국제공룡탐사 프로젝트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몽골과 학원, 미국 남부감리대, 캐나다 앨버타대의 공룡학자들을 주축으로 2006년부터 매년 여름 40여 일씩 5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한국이 주관하는 최초의 국제공룡탐사이기도 하다. 발굴한 모든 화석들을 화성시 공룡알 화석지 방문자센터의 실험실에서 처리 작업하고 있다. 이번 탐사를 지원해준 화성시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