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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화엄경 38쪽 지난 시간에 8번 큰 8번 광명현익(放光顯益)이라. 방광현익, 광명을 놓아서 큰 이익을 나타내다 라고 한 그게 이제 큰제목인데... 여기서부터 쭉 광명에 대한 어떤 영향력, 광명을 비추니까 거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들으면은 좀 현실성은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러나 또 깨달은 사람들의 안목(眼目)에서 보면은 그 사람의 지혜의 눈에 비친 모든 그 현상들은 어쩌면 이런 설명이 훨씬 부족함을 느낄지도 모르지요. 이 설명 가지고는 오히려 뭐라고 할까? 제대로 설명이 되어지지 않았다라고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맹인(盲人)이 눈을 뜬 것에다가 비유를 하기도 하고 혹은 꿈을 꾸다가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온 것에 이 비유를 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광명(光明)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 참 자주 거론되는 문제인데 어디서 방광(放光)을 했다. 어디에 뭐 사리가 방광을 했다 또는 뭐 탑(塔)이 방광을 했다 불상(佛像)이 방광을 했다 그런 이야기들도 흔히 있는 말이고 또 그것은 경전상에 늘 하는 말인데 여기에 이제 광명을 부처님의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에서 광명을 놓았는데 그 득견에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볼 수가 있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지금 눈앞에 펼쳐져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예를 들어서 사람을 보고 뭐 책을 보고 글자를 보고 사람의 모습도 누군지 누군지를 다 보고 그 보던 사람도 그냥 뭐 알던 어떤 도반(道伴)을 봤다라고 하는 정도가 아니고 그 사람의 내면의 심리상태까지도 오늘 보니까 아주 기분이 좋은 것 같다 또는 뭐 아주 뭐 속이 상한 일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것 까지도 본다고요. 그리고 뭐 살이 좀 쪘는지 아니면 야위었는지 어디 병이 있는지 이런 것 까지도 어제 봤던 모습에서 조금만 변화만 있어도 또 그것도 심리적인 변화까지도 우리가 읽을 수 있습니다. 비록 정확하진 않아도 그래도 어딘가 변화된 모습을 읽을 수 있어요.
크게 변한 것도 아닌데 아주 그 어쩌면 놓치기 쉬운 그런 작은 변화인데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눈이 중요하지요. 그러면서도 빛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빛이 있어야... 또 공간이 있어야 또 볼 수 있고요. 그런 이야기에는 빛을 놓았을 때 광명을 놓았을 때 의례히 따라다니는 건데, 왜 이제 그런 말을 하는고 하니, 결국은 빛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빛인데, 마음의 빛인데 마음의 빛이 있을 때 우리 인생의 여러 가지 사실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온갖 인생의 무한한 가치,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 아주 기가 막히는 보배로운 기쁨 이런 그 온갖 소중한 가치를 인생의 온갖 소중한 가치를 밝은 지혜가 있을 때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이걸 우리가 다 알고 수용하고 느끼고 깨닫고 이렇게 한다는 거지요. 우리가 빛이 있으니까 사물을 환히 분별할 수 있는 거와 같이 우리 마음의 지혜의 빛이 있을 때 우리 인생살이에 있어서 무한한 소중함과 무한한 가치를 ...... 그렇습니다. 빛이 있음으로 해서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경전 곳곳에서 하고 있지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런 경지를 한 삼십오 세가 될 때까지 맹인으로 있다가 말하자면은 맹인이 눈을 뜬 것에다 비유를 합니다. 그러면은 눈을 뜨지 않은 맹인인데 뭐 그 나름의 인생을 살아요. 그 나름의 인생. 먹을 것 먹고, 향기 맡을 것 맡고, 또 손으로 더듬거려가면서 무엇인가를 이렇게 분별하고 느끼고 그렇게 살긴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 뜨고 살아가는 입장과 눈을 뜨지 못하고 살아가는 맹인의 입장을 우리가 생각을 해 본다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봄이라서 산천초목(山川草木)이 전부 꽃이 피고 잎이 피고 그 참 기가 막힌 봄의 그런 색깔들을 만약에 눈이 없다고 하면 그걸 어떻게 보겠습니까? 도저히 말로는 설명을 할 수가 없지요. 설명을 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자꾸 이야기를 합니다. 봄의 색깔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무슨 꽃 이야기를 하고, 별별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도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봄의 색깔을 이야기하듯이, 부처님께서도 그 깨달음의 안목에서 인생에 대한 또는 세상에 대해서 보신대로 말씀을 하지요.
그러나 마음에 차진 않지만은 그래도 그런 대로 중생에게 일러주려고 별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맹인에게 우리가 본대로 봄의 색깔은 어떻고 연꽃이 어떻고 무슨 뭐 매화꽃이 어떻고 그 색깔이 어떻고 지금 그 새순의 연두색 빛깔이 어떻고 조금만 더 지나면 또 푸른 색깔 뭐 이렇게 변해가는 그런 기기묘묘한 현상들을 우리가 설명해준다 한들 어떻게 설명을 해 줄 것이며 얼마나 많은 말을 해야 그 사람에게 이해를 시킬 것인가? 이런 관계들을 우리가 생각해보면은 이 화엄경에서 우리가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아주 과장된 그런 말들 이런 것들이 ‘아 이것은 과장이 아니라 사실은 부족한 표현이다. 깨달은 입장에서 보면 더 부족한 표현이고 훨씬 더 많은 그런 설명이 필요한데도 마 이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이제 화엄경은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해서 우리가 보는 화엄경을 약본화엄경(略本華嚴經) 그래요. 보통 이제 항본화엄경(恒本華嚴經) 뭐 대본화엄경(大本華嚴經) 중본화엄경(中本華嚴經) 그 다음에 약본화엄경(略本華嚴經) 하본 상중하 上中下 이게 이제 항본(恒本)이라고 항하사 강의 모래수와 같은 그런 게송(偈頌)이라 해서 항본화엄경이라는 그런 말이 있고. 그 다음에 대본(大本) 중본(中本) 하본(下本) 이렇게 있어요. 그 다음에 하본 중에서도 그것도 많아 가지고 거기서 요약한 부분 약본 화엄경이다 그래 우리가 八十권 화엄경 하는 것은 약본화엄경(略本華嚴經)에 해당되요. 그만치 항하강의 모래 숫자와 같이 많은 게송과 그런 가르침이 있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에서 중생들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그 깨달음은 깨달음의 안목(眼目)에 비친 세계를 일러줄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것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생각한다면은 봄의 경치를 맹인(盲人)에게다 설명을 한다고 합시다. 얼마나 많은 설명을 해야 그걸 이해를 시킬 것인가? 예를 들어서 뭐 벚꽃 하나만 가지고도 몇날 며칠을 설명해도 아마 그게 설명이 제대로 안될 거에요. 그렇듯이 깨달음의 경계와 깨닫지 못한 사람의 경계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광명(光明)이라고 하는 것은 눈뜬 사람, 맹인이 눈을 떴을 때 그 눈에 비친 세계를 마치 눈에 보인 사람에게 설명해주는 거와 같고 그 눈뜬 사람의 눈에 비친 모든 그런 그 아름다움과 보배로움 이런 것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됐고요. 그래서 이것은 이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서 해석을 한다면 그렇습니다. 빛이 있어서 온갖 그런 봄의 경치를 낱낱이 분별하고 이해하듯이 마음에 빛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무한한 그런 그 소중한 무한한 가치 이런 것을 알아야 된다 하는 그런 정도로 받아들여야 된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다시 이제 광명부분에서부터 보면은.
八. 放光顯益(방광현익)
1. 放光明(방광명)
爾時에 世尊이 欲令諸菩薩로 安住如來師子頻申廣大三昧故로 從眉間白毫相하야 放大光明하시니 其光이 名普照三世法界門이라 以不可說佛刹微塵數光明으로 而爲眷屬하야 普照十方一切世界海諸佛國土하시니라
이시에 세존이 욕령제보살로 안주여래사자빈신광대삼매고로 종미간백호상하야 방대광명하시니 기광이 명보조삼세법계문이라 이불가설불찰미진수광명으로 이위권속하야 보조시방일체세계해제불국토하시니라
그때 세존이 모든 보살로 하여금 여래의 사자빈신광대삼매(師子頻申廣大三昧)에 머물게 하고자 안주(安住)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으로부터 큰 광명(光明)을 놓으시니 그 광명의 이름이 보조삼세법계문(普照三世法界門)이라. 삼세법계(三世法界),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진리의 세계를 환히 비치는 널리 비치는 그런 문(門)이다. 이렇게 이제 그 광명 이름이 있어요. 그런데 그 광명이 한번만 빛나는게 아니라 불가설불찰미진수광명(不可說佛刹微塵數光明)으로써 권속(眷屬)이 돼 있어요. 이건 무슨 말인고 하니 그 한줄기 빛과 아울러서 그 주변에 수많은 광명들이 함께 어우러져있다. 그 수많은 광명이 모두 합해가지고 역시 이제 보조삼세법계문(普照三世法界門)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방삼세일체(十方三世一切)의 제불국토(諸佛國土)를 보조(普照), 두루두루비춘다 널리 비춘다. 그렇게 이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광명을 통해서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가? 우리 마음에 밝은 지혜가 있으면 우리 삶에 있어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어떤 가치를 우리는 누릴 수 있고 어떤 가치를 알 수 있는가 이걸 생각해야 돼요. 우리가 참 인생을 살아가는데 인생살이에 있어서 소중한건 뭐고 좋은 것은 뭔가 무엇이 인생으로써 참 값진 것이고 소중한 것인가? 우리가 외국에 여행을 갔다. 외국에 여행을 가도요 그 사람은 그 나라에 대해서 얼마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만한 마음의 준비를 해서 가느냐에 따라서 그 보이는게 참 다릅니다. 정말 그 참 놀라울 정도로 그렇게 달라요. 아무 준비 없이 가면은 역사(歷史)공부도, 문화(文化)에 대한 그런 공부도, 지도(地圖)에 대한 공부도 하지 않고 그냥 가면은 그냥 눈에 보는 것만 보게 돼요. 그런데 그 눈에 보이는 것의 어떤 역사적인 배경, 문화적인 배경 이런 것들을 사전에 공부를 좀 하고 가면은 상당히 같은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그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그렇듯이 우리 인생에 대해서도 정말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 인생의 어떤 소중함과 그 인생의 무한한 가치 이것을 늘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그만치 삶의 소중함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또 생각하지 않은 만치 그냥 가치 없이 적은 가치로써 아마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지 않느냐 그런 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그런 세상에서 어쨌던 간에 인생의 그 소중한 그 가치 무한한 인생의 가치에 대한 것을 속속들이 보았고 또 그 본대로 일러주고 계시다 뭐 이렇게 생각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2. 依光見法(의광견법)
(1)逝多林大衆見光明境界(서다림대중견광명경계)
時에 逝多林菩薩大衆이 悉見一切盡法界虛空界一切佛刹一一微塵中에 各有一切佛刹微塵數諸佛國土의 種種名과 種種色과 種種淸淨과 種種住處와 種種形相이어든 如是一切諸國土中에 皆有大菩薩이 坐於道場師子座上하야 成等正覺하야 菩薩大衆이 前後圍遶하고 諸世間主가 而爲供養하며
시에 서다림보살대중이 실견일체진법계허공계일체불찰일일미진중에 각유일체불찰미진수제불국토의 종종명과 종종색과 종종청정과 종종주처와 종종형상이어든 여시일체제국토중에 개유대보살이 좌어도량사자좌상하야 성등정각하야 보살대중이 전후위요하고 제세간주가 이위공양하며
그때 시(時)에 서다림(逝多林)에 있는 보살대중(菩薩大衆)들이, 요건 이제 의광견법(依光見法)이라. 광명에 의지해서 어떤 사물, 어떤 사실들을 본다. 이겁니다. 그럼 광명 빛에 의지해서 어떤 사실들을 본다. 그게 의광견법(依光見法) 이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안목, 지혜의 안목에 의해서 인생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이렇게 해석하면 딱 맞는 대목이거든요. 그 서다림에 있는 대중들이 광명경계(光明境界)를 본다. 그 광명에 비치는 경계를 보는 걸로 그렇게 이야기가 돼 있습니다. 요걸 이제 그대로 정말 우리가 쌓은 지식 또 그 우리의 어떤 그 지혜, 인생의 경험 이런 것을 가지고 통해서 우리의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얼마나 느끼며 보며 살아가는가? 이런 문제에 직결시켜서 봐야지요.
시(時)에 서다림(逝多林)에 보살대중(菩薩大衆)들이. 실견(悉見), 모두들 다 본다. 이거에요. 모두들 다 본다. 저 밑에다 새겨요. 어떤걸 보는고 하면은 일체진법계허공계일체불찰일일미진중(一切盡法界虛空界一切佛刹一一微塵中)에 그러니까 모든 세계에 있는 이 드넓은 허공계(虛空界), 모든 세계에 있는 그 낱낱 먼지 속에. 각유(各有), 각각 있더라. 뭐가 있는고 하면은 일체불찰미진수불국토(一切佛刹微塵數諸佛國土)의 가지가지 이름[種種名]과 가지가지 색깔[種種色]과 가지가지 청정[種種淸淨], 훌륭한 곳과. 가지가지 주처(住處), 사는 곳과 또 가지가지의 형상(形相) 이런 것이 있어서 있거던. 이와 같은 일체 모든 국토 가운데 역시 또 개유대보살(皆有大菩薩)이, 다 보살들이 있어 보살들이 있는데, 그냥 성문이 아니고 도량(道場) 보리수(菩提樹) 아래 사자좌(師子座) 위에 떡 앉아가지고 그리고 앉아있기만 하는게 아니라 성등정각(成等正覺)이야. 등정각(等正覺)을 이루고. 정각(正覺)을,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서. 보살대중(菩薩大衆)이 그들을 위요(圍遶), 에워싸고 있고. 제세간주(諸世間主), 세상의 모든 주인들이. 말하자면 세간(世間)의 내로라하는 그런 사람들이 이위공양(而爲供養), 모두 와서 그 보살을 위해서 공양을 올리고 있는 것을 다 보더라. 실견(悉見)時에 逝多林菩薩大衆이 悉見一切盡法界虛空界一切佛刹一一微塵中에 저 위에 첫줄에 있는 실견(悉見)을 거기다 새겨요. 다 본다. 그러니까 이런 현상들 여기서 설명한 거요. 수많은 세계의 수많은 보살들이 그들이 사는 그들의 이름[名]과 모습과 청정(淸淨)과 사는 곳[住處]과 형상(形相)과 그런 여러 가지 국토의 또 많은 보살들이 사자좌(師子座)에 앉아있고 성불(成佛)하고 또 대중들이 모여 있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볼 줄 아는 안목(眼目)은 거기에 대한 어떤 이해, 거기에 대한 지식, 거기에 대한 어떤 지혜가 준비되어야 그게 눈에 보이는 거에요.
여기 우리 다른 말로하면은 이 땅에 불교가 있은지 오래지요. 부처님 이 땅에 오신지 3000년 한국에도 불교가 들어온지 1700년이에요. 그래 오랜 세월이 경과했고 그 불교라고 하는 가르침 속엔 정말 무한한 인간의 보배가 그 가운데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안목이 없고 생각이 없고 어떤 궁금증이 없는 사람은 그냥 지나쳐버리는 거야.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불교가 이 땅에 없는 거나 다를 바 없다구요. 눈에 보이지가 않는 거야. 불교의 그 위대한 가르침의 세계가 눈에 보이지가 않아. 이걸 그렇게 해석해도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대로에요.
或見於不可說佛刹量大衆會中에 出妙音聲하야 充滿法界하야 轉正法輪하며
혹견어불가설불찰양대중회중에 출묘음성하야 충만법계하야 전정법륜하며
그 다음에 혹견(或見), 혹 또 본다. 어불가설불찰양대중회중(於不可說佛刹量大衆會中)에 불가설(不可說), 이루 말할 수 없이 많고 많은 세계의 양과 똑 같은 크기와 같은 중회, 대중들이 모인 그런 모임에. 출묘음성(出妙音聲)하야, 미묘한 음성을 내어가지고서. 법계(法界) 충만(充滿)하게, 온 법계에 가득하게 그 음성을 내어 가지고서 전정법륜(轉正法輪)하며, 바른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굴리는 것을 본다.
그러니까 여기서 아무리 우리가 뭐 법화경 금강경 화엄경 그렇게 예를 들어서 여기 문수원에서 강설을 하고 있어도, 여러 해를 하고 있어도, 바로 이웃에 살아도, 바로 옆집에 살아도요. 이 불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궁금증이 없고, 안목이 없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전혀 없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그런 안목과 그런 어떤 생각이 있는 사람은 저 멀리서도 와서 듣게 된다고요. 그 사람 사는 거 참 묘한 거에요. 그 자기 주변에 있다고 다 알아주는 것이 아니고, 옆에 있다고 또 아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마음세계 만치, 자기 마음 쓰는 것 만치, 자기 지식만치 자기 지혜만치, 그 유명한 사람의 말처럼 아는 것 만치 느끼지요. 느낀 것 만치 보이고 보는 만치 또 느끼게 되고 그 사람 삶이라고 하는건 그게 정해져 있는게 아닙니다. 꼭 누구나 한결같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냐에 따라서 그것을 알 수가 있거든요. 내가 가끔 뭐 같은 비유를 들지마는 무슨 다이아몬드니 보석이니 하는 것도 남자들이 그 도대체 모르잖아요. 무엇이 좋은지 왜 좋은지 모르는 거야. 거기에 대해서 어떤 소양이 없고 지식이 없으니까 그러는 거지요. 마찬가집니다. 모든 문화에 있어서 똑같아요.
或見在天宮殿과 龍宮殿과 夜叉宮殿과 乾闥婆와 阿修羅와 迦樓羅와 緊那羅와 摩睺羅伽와 人非人等의 諸宮殿中하며
혹견재천궁전과 용궁전과 야차궁전과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인비인등의 제궁전중하며
혹견재천궁(或見在天宮殿)과 용궁전(龍宮殿)과 천궁전(天宮殿)과 혹은 또 본다. 어떤걸 보는고하니 하늘의 궁전, 또 용의 궁전. 여기 이제 서다림에 있는 보살들이 천궁전에 있고, 혹은 또 용의 궁전에 있고, 야찰 궁전에 있고, 건달바의 궁전, 아수라의 궁전, 가루라의 궁전, 긴나라의 궁전, 마후라가, 인비인등의 여러 궁전가운데 있다고 하는 사실. 있으며...
或在人間村邑聚落王都大處하야 現種種姓과 種種名과 種種身과 種種相과 種種光明하야 住種種威儀하고 入種種三昧하고 現種種神變하며
혹재인간촌읍취락왕도대처하야 현종종성과 종종명과 종종신과 종종상과 종종광명하야 주종종위의하고 입종종삼매하고 현종종신변하며
또 혹재인간(或在人間) 혹 그 서다림에 있는 보살 대중이 그 말이에요. 그 대중이 혹은 인간이나 인간의 촌(村)이나 읍(邑)이나 취락(聚落) 보통 작은 마을 그 다음에 왕도(王都) 큰 도시죠. 왕도 같은 큰 대처(大處)에 대처에서 대처에 있어서 현종종성(現種種姓)과, 가지가지 성(姓), 사람들 성이 각각 다르지요. 성(姓)을 나타내고. 가지가지 또 이름이 다르고, 종종명(種種名)과. 종종신(種種身)과 종종상(種種相)과 종종광명(種種光明)을 나타내서 종종의 위의(威儀)를 위의에 머물고. 이런 모습도 짓고 저런 모습도 짓고 사람들 짓는 모습이 다르다 이겁니다. 종종위의(種種威儀)에 머물고[住]. 또 종종삼매(種種三昧)에 들고, 각자 좋아 하는 것, 자기 즐기는 것, 자기가 마음의 잘 쓰는 그런 것도 사람마다 각각 다릅니다. 그게 종종삼매(種種三昧)에요. 종종삼매에 들고. 종종신변(種種神變)을 나타내는 가지가지 신통변화(神通變化)를 나타내며, 신통변화하는데 우리가 마음 따라서 작용하고 행동하는 모든 행위가 그대로 신통변화에요. 종종신통변화를 나타내며.
或時에 自以種種言音하며 或令種種諸菩薩等으로 在於種種大衆會中하야 種種言辭로 說種種法하니라
혹시에 자이종종언음하며 혹령종종제보살등으로 재어종종대중회중하야 종종언사로 설종종법하니라
또 혹시(或時)에는 저기 서다림에 있는 보살들이. 혹시(或時)에는 스스로 가지가지 언음(言音)으로, 언음으로써 말한다 이 말이죠. 또 혹(或)은 종종제보살등(種種諸菩薩等)으로 하여금 종종의 대중회중(種種大衆會中)에, 대중들이 모임 가운데 있어서. 종종언사(種種言辭)로, 또 사람들 따라서 필요한 말이 다르니까 가지가지의 언사로, 가지가지 설법하는 것을 가지가지 법 설하는 것을 보게 된다.
저기 중간에 있는 혹견(或見)或見在天宮殿과 龍宮殿과 夜叉宮殿과 乾闥婆와~ 혹은 그런 것 까지도 보게 된다. 그래 본다는 말이 세 번 있었어요. 이런 모습도 보게 되고, 저런 모습도 보게 되고, 이런 가지가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모습이 어떻게 해서 눈에 들어오느냐? 광명(光明)이 있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 말이에요. 여기서는. 광명이 있음으로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가지가지 가치, 가지가지 참 소중한 그런 가치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서, 그 나름의 지혜를 통해서, 또 부처님이나 성인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뭔가 그 가치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인생의 가치가 비춰오는 거에요. 그런 어떤 그 노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가치가 크게 가슴에 와 닿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뭐 이 자신의 어떤 처신이라든지 행동을 함부로 해 버리죠. 함부로 해 가지고 아무렇게나 무가치하게 생명을 내동댕이쳐버리는 그런 경우도 있고 그래요. 사람이 좀 차분하게 인생에 대해서 뭔가를 궁금증을 가지고 알려고 하는 그런 마음 자세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 가치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다가와요. 알게 된다고요. 인제 그런 입장으로 설명을 하고
그 다음에 이번에는 시방에서 견광명경계(見光明境界)라. 광명의 경계를 본다. 저 앞에서는 서다림에 있는 대중들이 보는 거고, 여기는 이제 시방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 시방견광명경계(十方見光明境界)
如此會中菩薩大衆이 見於如是諸佛如來甚深三昧大神通力하야 如是盡法界虛空界東西南北과 四維上下의 一切方海中에
여차회중보살대중이 견어여시제불여래심심삼매대신통력하야 여시진법계허공계동서남북과 사유상하의 일체방해중에
여차회중보살대중(如此會中菩薩大衆)이, 여기에 있는 이 모임에 있는 보살대중 서다림에 있는 보살대중들이 이와 같은 제불여래(諸佛如來)의 심심삼매대신통력(甚深三昧大神通力)을 보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그런 것을 보듯이. 여시진법계(如是盡法界), 이와 같이 진법계 허공계 동서남북 사유상하(盡法界 虛空界 東西南北 四維上下)의 일체방해 중(一切方海中)에 일체방향의 넓다는 뜻으로 바다 해자(海)를 쓰는 거지요. 일체 바다같이 넓은 곳에.
依於衆生心想而住하야
의어중생심상이주하야
중생심상(衆生心想)에 의지해서, 머물러서. 중생심상에 의지해 머문다. 그러니까 각자 마음 마음씀씀이에 의지해서 모두 살아가는 것 그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중생심상에 의지해서 머물러서.
始從前際로 至今現在一切國土身과 一切衆生身과 一切虛空道히 其中一一毛端量處에 一一各有微塵數刹의 種種業起하야 次第而住하야
시종전제로 지금현재일체국토신과 일체중생신과 일체허공도히 기중일일모단량처에 일일각유미진수찰의 종종업기하야 차제이주하야
시종전제(始從前際)로 맨 처음.. 처음부터 현재 지금현재 일체국토신(至今現在一切國土身)과 일체중생신(一切衆生身)과 국토의 모양이죠. 중생의 모양과 일체허공도(一切虛空道) 허공에 이르기까지 뭐 도자(道)는 크게 의미가 없이 일체 허공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낱낱 모단양처(毛端量處) 모단(毛端), 털끝 같은 그런 것, 털끝 크기 같은 그런 것에 낱낱이 각각 미진수(微塵數)의 미진, 먼지숫자와 같은 그런 세계의 종종업기(種種業起)하야 업을 업기(業起). 종종업이 일어나서 차제(次第)에 머무는 순서대로 머무는게 있어서.
悉有道場菩薩衆會어든 皆亦如是見佛神力으로
실유도량보살중회어든 개역여시견불신력으로
각각 거기에 또 보살중회(菩薩衆會)가 있다. 요건 이제 늘 보살도량 무슨 보살중회 이런 것은 서다림의 부처님의 도량 다시 말해서 보리수 밑에서 정각(正覺)을 이루는 그런 어떤 상태. 그것을 늘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죠. 왜 그런고하니 화엄경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깨닫고 나서 그 자리에 앉은 채 설하신 것으로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늘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도량보살중회(道場菩薩衆會)가 있거든 또 다 또한 이와 같이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봄으로.
不壞三世하고 不壞世間하야
부괴삼세하고 부괴세간하야
부괴삼세(不壞三世)하고, 삼세(三世), 과거현재미래를 무너뜨리지 않고. 또 부괴세간(不壞世間), 세간도 무너뜨리지 않고.
於一切衆生心中에 現其影像하며
어일체중생심중에 현기영상하며
모든 것이 존재한 그대로 그 자리에서 일체중생심중(一切衆生心中)에서 현기영상(現其影像)하며, 그 영상 그 모습들 그림자 같은 모습들을 나타내며.
隨一切衆生心樂하야 出妙言音하며
수일체중생심락하야 출묘언음하며
또 수일체중생심락(隨一切衆生心樂)하야 중생들의 마음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출묘언음(出妙言音)하며 아름다운 언음(言音)을 말과 소리를 낸다. 중생들의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해야 돼요. 가능하면은. 그게 이제 중생심락(衆生心樂). 일체 중생들의 마음에 즐겨하는 바를 따라서 좋은 소리를 낸다.
普入一切衆會中하고 普現一切衆生前하야 色相有別이나 智慧無異하며 隨其所應하야 開示佛法하야
보입일체중회중하고 보현일체중생전하야 색상유별이나 지혜무이하며 수기소응하야 개시불법하야
그리고 일체중회중(一切衆會中)에 널리 들어가서 들어가고 일체중생전(一切衆生前)에 보현(普現), 널리 나타나서 색상유별(色相有別)이나 색(色)과 상(相)이 각각 다르지마는 지혜무이(智慧無異)하며 지혜는 다름이 없으며 수기소응(隨其所應)하야 그 응한바 그 맞을 바에 맞춰서 따라서 개시불법(開示佛法)하야 불법(佛法)을 개시(開示)해서.
敎化調伏一切衆生호대 未曾休息하니라
교화조복일체중생호대 미증휴식하니라
교화조복일체중생(敎化調伏一切衆生)호대, 일체중생을 교화(敎化)하고 조복(調伏)하대 미증휴식(未曾休息)하니라. 일찍이 쉬는 바가 없더라.
그러니까 수기소응(隨其所應)이라고 하는 말이 그 적당한데 맞춰가지고 그 말이에요. 적당한데 맞는데 따라서 뭐 화엄경 공부할 사람은 화엄경 공부하고, 금강경 공부할 사람은 금강경 공부하고, 관음기도 할 사람은 관음기도, 지장기도 할 사람은 지장기도, 절할 사람 절하고, 사경할 사람 사경하고, 그게 수기소응(隨其所應)이라. 그 맞는 바를 따라서 개시불법(開示佛法)이야. 불법(佛法)을 개시(開示)해 준다.
그래서 부처님이 내 놓은 방편도 많은데 그 뒤에 부처님의 제자들이 또 내 놓은 방편이 또 수없이 많아. 굉장히 많다고.. 그렇게 많다고요. 그 뭐 예를 들어서 뭐 인등(引燈)같은거 부처님 당시 때 인등 있었을까 모르겠어. 그런 것도 그 나름대로 또 좋은 방편이거든요. 좋은 방편인데 마음의 불을 밝히는게 되니까. 그 의미를 자꾸 이제 생각하고 어두움을 밝히면 뭐 어쨌든 그 공덕이 마음이 밝아지겠죠. 별별 방편을 다 내어 놓는 거지요. 그게 이제 말하자면 수기소응(隨其所應)이라. 그 맞는바 근기에 마땅한 걸 따라가지고서 불법(佛法)을 개시(開示)하는 거야.
그 없던 것도 자꾸 또 생겨요. 나라마다 또 많이 또 생겨요 나라마다. 지방마다 사찰마다 사회가 변하니까 그 변화에 맞춰서 또 이제 하고요. 어떤 절에 서울의 어떤 절에 가니까 뭐 극장도 있고 노래방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공연 같은 것도 가끔 그 절에서 하고요. 큰 건물지어가지고 건물 지으면서 그런 공간을 마련하고. 그 아예 노래방을 만들어놓고 이제 대중가요도 가르치는데도 있어 아예. 그게 통한다는 거야. 그게 잘 좋을 것 같애. 그런 시간도 또 그런대로 괜찮은 거야. 찬불가만 만날하면 재미없잖아요. 찬불가 재밌습니까? 뭐. 하나도 재미없거든. 그러니까 찬불가 하다가 가끔 또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그런 노래도 가르치기도 하고 그런거 다 방편이거든요. 수기소응(隨其所應)이야. 그 맞는 바에 따라서 불법(佛法)을 개시(開示)한다. 그래서 교화조복일체중생(敎化調伏一切衆生)호대 미증휴식(未曾休息)이라.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왕석인연(往昔因緣)의 증명(證明)이라고 그랬어요. 과거인연에 대한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3. 往昔因緣의 證明
其有見此佛神力者는 皆是毘盧遮那如來가 於往昔時에 善根攝受며
기유견차불신력자는 개시비로자나여래가 어왕석시에 선근섭수며
그 기유견차불신력자(其有見此佛神力者)는 이러한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보는 사람 광명 光明 속에 나타난 그런 세계를 보는 사람은 부처님 신력이라는 거는 광명입니다 여기서. 개시비로자나여래(皆是毘盧遮那如來)가 그걸 보는 사람은 모두 비로자나여래께서 왕석시(往昔時)에 옛날 과거 과거 아주 오랜 세월 전에 선근(善根)으로 섭수(攝受)했으며, 아주 좋은 일로써 섭수했다 받아들였다 이 말이야. 우리가 지금 이나마 우리가 화엄경을 얼마만치 이해하는지 그건 차치하고라도 그래도 경을 이렇게 찍어가지고 화엄경을 한자한자 놓치지 않고 이렇게 공부하는 이것도 따지고 보면 과거에 비로자나여래가 모두 섭수(攝受)했던 선근으로 섭수했던 그런 인연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或昔曾以四攝所攝이며
혹석증이사섭소섭이며
또 혹석증(或昔曾) 혹은 옛날 일찍이 사섭소섭(四攝所攝)이며 사섭법으로써 섭한 바가 사섭(四攝)은 보시지계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 그렇지요. 베풀고 또 사랑스런 말고 이로운 말과 동사서 같이 하는 같이 더불어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같이 더불어 포섭하기위해서하는 그런 거 그런 것들로써 섭한 바이다.
或是見聞憶念親近之所成熟이며
혹시견문억념친근지소성숙이며
또 혹은 견문억념친근지소성숙(見聞憶念親近之所成熟)이다. 견문(見聞), 가서 뵙고 법문 듣고 또 들은 법문을 응용하고 기억한다 이거야. 그리고 친근(親近)하고, 친히 가까이하고, 가서 이제 그런 뭐 시중도 들기도 하고, 그런 걸로써 성숙(成熟)된 이루어진 그런 일이고.
或是往昔에 敎其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며 或是往昔에 於諸佛所에 同種善根이며 或是過去에 以一切智善巧方便으로 敎化成熟이니라
혹시왕석에 교기영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이며 혹시왕석에 어제불소에 동종선근이며 혹시과거에 이일체지선교방편으로 교화성숙이니라
혹시왕석(或是往昔)에 혹은 또 과거생에 왕석(往昔)에 교기영소괄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敎其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며 그들로 하여금 말하자면 발심(發心)을 하도록 가르친 그런 인연이다. 전부 비로자나여래(毘盧遮那如來)하고 우리는 전부 그런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화엄회상에 함께하고 있다 이거에요. 혹시왕석제불소(或是往昔 諸佛所)에 옛날도, 왕석(往昔)하면 옛날 이란 그런 뜻이에요. 옛날 모든 부처님 처소에 동종선근(同種善根)이며 함께 또 선근을 심었어.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며. 혹시과거(或是過去)에 또 혹은 과거에 일체지선교방편(一切智善巧方便)으로 일체지혜의 선교방편으로 요것은 이제 지혜로써 아주 좋은 방편, 그 사람 근기에 딱 맞는 그 사람 수준과 그 사람 성격과 이런게 딱 맞는 그런 방편(方便)으로써 교화하고 성숙한 것이다. 교화(敎化)하고 성숙(成熟)이라고 하는 것은 잘 익혀. 음식을 익히듯이 익히고 또 과일이 태양빛을 받아가지고 나오면서 잘 영글듯이 그렇게 영글게 한 그런 인연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 비로자나여래(毘盧遮那如來) 그걸 광명변조(光明遍照)라 그렇게 하죠. 그건 이제 근본 마음자리를 비로자나여래. 그 근본마음자리를 완전히 밖으로 드러낸 것, 그것이 완전하게 완성된 자리, 우리는 씨앗을 가지고 있어요. 마음속에 그 씨앗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완성되지는 않았어. 그럼 완성된 입장으로 우리는 비로자나여래 부처님이다 이렇게 하는 거에요.
그러면 늘 예를 들어서 쌀 하면은 쌀 그것은 씨앗도 되면서 열매도 되잖아요. 동시에 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우리가 부처님 뭐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불교에서 이상적인 그런 성인들의 이름을 이야기할 때는 본래 우리 마음에 가지고 있는 그런 능력을 우리 마음에 가지고 있는 그런 그 원인으로써 씨앗으로써의 우리들 자신의 그런 세계를 뜻하면서 또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실제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이, 아미타불 같은 이, 비로자나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이것을 동시에 이야기합니다. 내 마음의 관세음보살과 밖에 우리가 신앙하고 가서 예배하는 관세음보살을 똑 같이 동시에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 그게 이제 분별이 없으면은 거기에 이해가 없으면 혼동하게 돼요. 이거 뭐 이랬다 저랬다 뭐 마음의 관세음보살 마음의 부처라고 했다 불교에는 뭐 지 마음이 부처라고 하긴 하면서 또 무슨 석가모니부처님 이야기했다가 뭐 비로자나불 이야기했다 아미타불 이야기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심산이냐? 잘 모르지요 처음에는. 그런데 그것이 그 부처님하면 그 두 가지 의미를 마음의 부처와 밖에 경전 상에 나타난 그런 부처님과 동시에 그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 어느것 하나라도 배제해야 된다든지 하나만 취한다던지 하면 온전치가 않습니다. 그게 둘다 전부 내 마음에서 이루어진 거에요. 역사적으로 부처님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내 마음에 그것을 이해할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또 내 마음이 설사 그런 씨앗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뭔가 밖으로 나타난 현상적인 설명이 없으면 그게 제대로 이해가 안 된다고요. 그래서 역사적인 부처님 관세음보살의 무한한 능력 지장보살의 무한한 서원 이것을 경전에서 이야기를 하고 그와 아울러서 그것은 곧 내 마음으로부터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그런 무한한 능력의 한 부분들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 면을 우리 불자들은 늘 겸해서 가지고 있어야 돼요. 겸해서 이해를 하고 부처님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고 보살이라도 하더라도 그렇지요.
그 관세음보살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서 합장하고 있는 관세음보살 있잖습니까. 그 참 의미가 좋은 것이 우리는 관세음보살에게 합장하고 예배를 하는데 그 합장한 관세음보살님은 누구를 향해서 합장하고 있는가? 그 또 우리 예배하고 있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관세음보살을 향해서 합장하고 있다는 거에요. 관세음보살을 예배하는 우리들 속에 진짜 또 관세음보살 정말 살아있는 관세음보살을 향해서 그 관세음보살님은 합장하고 있다. 그 둘이 아니에요. 나와 그 관세음보살님이 둘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우리가 밖으로 확 드러내질 못해놓으니까 밖에다 하나 모델을 세워놓은 거에요. 그리고 그걸 닮아가려고 하는 거에요. 그러면 쉽거든요. 일단. 모델이 있어야 쉽죠. 막연하게 뭐 갈고닦고 부처도 되고 보살도 된다라고 하는 것 하고. 실제로 부처님 딱 세워놓고 관세음보살 딱 세워놓고 그 설명이 충분하니까 아 우리가 수행하면 저렇게 된다 이렇게 하면 쉽다고요. 어떤 목표를 구체적인 인물로써 딱 설정을 해놓고 우리가 자기 자신을 갈고닦으면 훨씬 그게 쉽거든요. 그러니까 경전에서 늘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고런 관계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되는 거지요. 그래서 아 마음의 부처라 해도 이해가 되고, 밖에 있는 부처라 해도 이해가 되고, 그것이 동시에 또 우리 마음속에 함께 있다고 하는 것도 또 이해가 되고. 치우치지 않고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
그 다음에 득익(得益)이라. 이익을 얻다하는 내용인데요. 보살중(菩薩衆)의 입여래경계(入如來境界)라. 보살대중이 그 광명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데 어떤 이익이냐하면 여래의 경계에 들어간다 이 말이야. 부처님 경계에 들어간다는 말은 합한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 경계하고 같아진다.
4. 得益
(1) 菩薩衆의 入如來境界
是故로 皆得入於如來不可思議甚深三昧의 盡法界虛空界大神通力하며 或入法身하며 或入色身하며 或入往昔所成就行하며
시고로 개득입어여래불가사의심심삼매의 진법계허공계대신통력하며 혹입법신하며 혹입색신하며 혹입왕석소성취행하며
시고(是故)로 개득입(皆得入) 여래불가사의 심심삼매(如來不可思議 甚深三昧)의 진법계 허공계 대신통력(盡法界 虛空界 大神通力)에 큰 신통력에 들어간다. 여래의 부처님의 불가사의하고 매우 깊은 삼매. 그 삼매를 통한 온 법계 허공계 대신통의 힘에 들어간다 이 말이야. 그리고 또 혹은 법신(法身)에 들어가고 부처님의 법신에 들어가고. 혹은 색신(色身) 부처님의 몸뚱이 정말 육신과 같은 이런 세계에도 역시 들어가고. 혹입 왕석 소성취행(或入 往昔 所成就行) 옛날에 부처님이 성취한 바 그 어떤 행동 그 수행에도 들어가고.
或入圓滿諸波羅蜜하며 或入莊嚴淸淨行輪하며 或入菩薩諸地하며 或入成正覺力하며 或入佛所住三昧無差別大神變하며 或入如來力無畏智하며 或入佛無碍辯才海하나니
혹입원만제바라밀하며 혹입장엄청정행륜하며 혹입보살제지하며 혹입성정각력하며 혹입불소주삼매무차별대신변하며 혹입여래력무외지하며 혹입불무애변재해하나니
원만제바라밀(圓滿諸波羅蜜) 원만한 모든 바라밀에도 들어가고. 장엄청정행륜(莊嚴淸淨行輪)에도 들어가고. 혹입보살제지(或入菩薩諸地) 보살제지라고 하는 것은 十住(십주) 十行(십행) 十廻向(십회향) 十地(십지) 等覺(등각) 妙覺(묘각) 보살이 닦아 올라가는 모든 지위들 지위점차(地位漸次) 거기도 다 일일이 다 들어간다. 여기 저 서다림에 있는 보살들이 그렇다는 거에요. 성정각력(成正覺力) 정각을 이루는 큰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그런 힘에도 역시 들어가고 혹입 불소주삼매 무차별대신변(或入 佛所住三昧 無差別大神變)이며 부처님이 머문다 삼매, 거기에는 차별이 없는 큰 신통변화에도 들어간다. 그 다음에 여래의 힘과 무외(無畏)와 지혜에도 들어가고. 또 혹입 불무애변재해(或入 佛無碍辯才海), 부처님의 걸림 없는 변재, 어떤 말씀도 다 중생의 근기에 맞춰서 알맞게 잘 하시는 그런 변재(辯才)의 바다에도 들어가나니.
彼諸菩薩이 以種種解와 種種道와 種種門과 種種入과 種種理趣와 種種隨順과 種種智慧와 種種助道와 種種方便과 種種三昧로 入如是等十不可說佛刹微塵數佛神變海方便門이니라
피제보살이 이종종해와 종종도와 종종문과 종종입과 종종리취와 종종수순과 종종지혜와 종종조도와 종종방편과 종종삼매로 입여시등십부가설불찰미진수불신변해방편문이니라
저 모든 보살이 종종의 이해[種種解]와 종종의 도(道)와 종종의 문(門)과 종종의 입(入)과 들어가는 것과 종종이취(種種理趣)와 종종수순(種種隨順) 이건 이제 중생을 수순하는 거죠. 수순(隨順)하는 것과. 가지가지의 지혜(智慧)와 가지가지의 조도, 조도(助道)라고 하는 것은 삼십칠 조도(三十七 助道)라 해서 도(道)를 얻는데 대한 어떤 보조적인 그런 여러 가지들 여러 가지 방법들이죠. 그런 것과 종종방편(種種方便)과 종종의 삼매(三昧)로써 입(入), 들어간다. 어디에 들어가는고 하니 합해진다 이런 말이에요. 이와 같은 등 십불가설불찰미진수(十不可說佛刹微塵數) 부처님 신통변화의 바다 방편문에 들어가고 합하느니라. 그랬어요.
그리고 제일 끝에 종종삼매(種種三昧) 이렇게 했어요. 가지가지 삼매로써. 그래 앞에 종종지혜, 종종조도, 종종방편, 종종수순, 종종이취, 종종입, 종종문, 종종도, 종종해. 이렇게 해(解) 도(道) 문(門) 입(入) 이취(理趣) 수순(隨順) 지혜(智慧) 조도(助道) 방편(方便) 삼매(三昧) 이렇게 열 가지죠. 고렇게 했는데 다른건 다 생략하고 여기선 삼매(三昧)가 아주 중요하니까 종종삼매(種種三昧)만 그 옆에 이제 다음부터 이제 죽 나열을 해요. 그런데 이 삼매는 종종삼매라고 했는데 백 가지 삼매에요 옛날에 다 세어 가지고 적어놨는데 삼매이름이 백가지 삼매에요. 요 삼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고 하면은 우리가 뭐 대충 삼매에 대해서 알고 있듯이 그 분위기에 젖는 것 이게 일단 삼매입니다.
다시 말해서 매주일 우리가 화엄경 공부를 한다. 그러면은 여러분의 생활패턴이 말하자면 딱 일주일에 금요일은 무조건 화엄경 공부를 하는 시간이다라고 딱 요렇게 고정시켜놓는 거에요. 체널을 고정시켜놓듯이 어쨌든 금요일은 그렇게 고정시켜놓는 거라. 그럼 다른 일도 어지간한 일은 피해가. 피해가게끔 돼 있어. 그리고 또 그날은 어떤 일도 나는 이일 외에는 안한다. 이렇게 딱 마음을 야무지게 정해버린다 이거에요. 그러면은 그 사람의 생활의 분위기가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돌아가게 돼 있어. 그게 삼매(三昧)입니다. 그게. 그렇게 되도록 돼 있는게 삼매에요. 이것 쉬운게 아니에요. 상당히 마음으로 생각을 하고 마음의 작정을 야무지게 해야 되는 거에요. 쉽게 되는 사람은 그만치 인연이 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요. 몇 번 한 달쯤하고 두 달쯤 와 보고 그래도 안 되는 거야. 그래 결국 한두 달 다니다 못 오는 사람들이 있어. 또 다른 일은 잘 하는데 다른 삼매는 잘 만들어지는데 이 공부하는 삼매는 안 되는 거야.
삼매는 여러 가지 종종삼매(種種三昧) 여기 백가지 삼매가 나온다구요. 백가지 삼매가. 다른데 그냥 친구만나는 삼매는 잘 돼. 그냥 전화만 오면 재깍 만나지고 어떻게 그렇게 잘 받는지 제시간에. 그럼 아주 쉬운 거야 그런 일은. 쉽게 그 분위기에 잘 젖어드는 거. 그렇게 젖어들기까지 또 그 친구하고 뭐 이건 쉬운 예로써 하는 말인데. 그 친구하고 오랜 관계 때문에 또 그런 거지. 그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모든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습니다. 상당한 공을 들여야 되고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지요.
우리가 그 전에 해인사에 어떤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은 좀 이래 낮에 이제 좀 일하다가 피곤해가지고 일을 많이 하는 스님인데 피곤해가지고 잘려고 하면은 꼭 책이나 신문을 든다누만. 그냥 자면 잠이 안 온대. 그런데 책을 들던지 신문을 들면 삼분이면 잠이 온다는 거야. 틀림없이. 참 묘하지요. 그 나름대로 삼매가 형성이 됐어. 삼매력... 그런게 삼매가 되는 거야. 그 도대체 책은 안 봐지는 거야. 책만 봤다하면 잠이 오니까. 그런데 다른 일들은 잘 해요. 글씨도 잘 쓰고 무슨 회계 회계를 오래봤는데 회계를 그렇게 또 잘 보고.
그러니까 각각 자기 공을 들이고 노력들이고 관심을 쓰는데 따라서 자기 생활의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는 거지요. 그래서 그게 결국은 업이 되고 자기 삶이 되고 그렇게 되는데 이걸 그러니까 우리가 잘해야 된다 이 말이야. 이걸. 평소에 살아가면서... 그 뭐 기도는 아주 잘 한다 그것도 좋은 일이고요. 경전공부도 좋고. 그런데 어디 가서 뭐 이렇게 모이는 데는 뭐 재미없다 이런 사람도 있어요. 암만 뭐 재밌을 라고 해 봐야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노는데는 그렇게 재밌는데 기도한다든지 경전 본다든지 하는 이건 또 영 재미를 못 느껴. 아무리 잘해볼라고 좋은 거로는 느껴지는데 알겠는데 안 된다는 거야. 그런데 그걸 이제 그만치 공을 들여야 돼. 공을 들이면 그게 또 그렇게 돌아와진다고요. 그래서 내가 자주 말씀드리지만 여기 삼매란 말이 화엄경에 너무 많이 나오니까 그 삼매라고 하는 것은 경전의 뜻을 가만히 살펴보면 뭐 어디에 집중해가지고 뭐 흙처럼 다 굳어진 그것만을 삼매라고 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거는 죽은 삼매야. 정말 살아있는 삼매는 자기가 어떤 자기활동을 활발하게 하는데 거기에 장애가 없는 .....
광덕스님이라고 불광법회를 일으켜가지고 현대포교의 아주 선구자적 스님이지요. 사상도 좋으시고 원력도 좋으시고 평소에 몸이 아파가지고 아주 뭐 이야기를 하면 모기소리만치도 안 나와 겨우 숨을 쉬고 하는 그런 정도라. 그런데 법상에만 올라가면 어디서 힘이 나는지 어디서 힘이 나는지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대중들을 그렇게 압도하고 감동을 주고 하는 그런 걸 볼 때 정말 불가사의하더라고요. 어떻게 어디서 도대체 저리 힘이 나는가? 평소에는 뭐 밥한 그릇은 고사하고 물도 한 그릇 제대로 겨우 자시면서 그렇게 또 법을 설하는데는 그렇게 아주 정말 힘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고 해 가지고 그렇게 잘 하시는 그런 것 보면 역시 이제 어떤 삼매력이 아닐까 삼매의 힘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 삶을 그런 쪽으로 다가간 거지요. 그런 쪽으로 자기인생을 이끌어갔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거지요. 그래서 우리도 사람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삼매를 형성해가는 과정인데 어떤 방향으로 어떤 길로 내 삶을 또는 내 삼매를 이렇게 만들어갈 것인가, 삼매를 형성해 갈 것인가, 이런 걸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요. 여기는 삼매의 이름이 쭉 열거가 되는데 그거 낱낱이 설명을 하기도 또 좀 그렇고 너무 불교적인 용어들이고 그래서 요렇게 내가 한 번씩 읽고 또 설명할 대목은 할 테니까 그냥 눈으로 따라서 보십시오.
(2) 菩薩衆의 種種三昧
云何種種三昧오
운하종종삼매(云何種種三昧)인가? 보살중(菩薩衆)의 종종삼매(種種三昧) 그랬거든요. 그러면 무엇을 가지가지 삼매라 하는가?
所謂普莊嚴法界三昧와
소위보장엄법계삼매와
소위 이를테면 보장엄법계삼매, 법계를 널리 장엄하는 삼매.
普照一切三世無碍境界三昧와
보조일체삼세무애경계삼매와
또 일체삼세를 널리 비추는데 걸림이 없는 경계삼매.
法界無差別智光明三昧와
법계무차별지광명삼매와
법계무차별지혜 광명의 삼매.
入如來境界不動轉三昧와
입여래경계부동전삼매와
또 여래의 경계에 들어가서 움직이지 않는 삼매
普照無邊虛空三昧와
보조무변허공삼매와
무변허공을 널리 비추는 삼매.
入如來力三昧와
입여래력삼매와
여래 힘에 들어가는 삼매
佛無畏勇猛奮迅莊嚴三昧와
불무외용맹분신장엄삼매와
부처님의 무외와 용맹과 분신 또 장엄 또 이러한 삼매와.
一切法界旋轉藏三昧와
일체법계선전장삼매와
일체법계선전장삼매 일체법계가 두루두루 도는 삼매 이런 말이야.
如月普現一切法界하야 以無碍音으로 大開演三昧와
여월보현일체법계하야 이무애음으로 대개연삼매와
여월보현일체법계하야 이무애음으로 대개연삼매와 이건 이제 마치 달과 같이 일체법계에 널리 나타나서 걸림 없는 음성으로 크게 열어서 연설하는 삼매와 부처님의 설법이지요 뭐.
普淸淨法光明三昧와
보청정법광명삼매와
보청정법광명삼매와
無碍繒法王幢三昧와
무애증법왕당삼매와
무애증법왕당삼매와 걸림 없는 뭐 여긴 비단 법왕 최상의 어떤 그 법왕 아름다운 어떤 법왕을 말하는 거지요. 그런 깃발의 삼매.
一一境界中에 悉見一切諸佛海三昧와
일일경계중에 실견일체제불해삼매와
일일경계 가운데 실견일체제불해삼매와
於一切世間에 悉現身三昧와
어일체세간에 실현신삼매와
일체세간에 실현신 모두들 몸을 나타내는 그런 삼매와
入如來無差別身境界三昧와
입여래무차별신경계삼매와
여래무차별신경계에 들어가는 삼매와
隨一切世間하야 轉大悲藏三昧와
수일체세간하야 전대비장삼매와
일체세간을 따라서 대비를 큰 자비를 굴리는 그런 삼매와
知一切法無有跡三昧와
지일체법무유적삼매와
일체법 무유적 일체법에 자취가 없다고 하는 것을 아는 삼매와
知一切法究竟寂滅三昧와
지일체법구경적멸삼매와
일체법의 구경적멸을 아는 삼매와
雖無所得이나 而能變化하야 普現世間三昧와
수무소득이나 이능변화하야 보현세간삼매와
비록 얻는바가 없으나 그러나 능히 변화해서 세간에 널리 나타나는 삼매와.
普入一切刹三昧와
보입일체찰삼매와
일체찰에 널리 들어가는 삼매와
莊嚴一切佛刹하야 成正覺三昧와
장엄일체불찰하야 성정각삼매와
일체불찰을 장엄해서 정각을 이루는 삼매와
觀一切世間主色相差別三昧와
관일체세간주색상차별삼매와
일체세간주색상의 차별을 보는 삼매와
觀一切衆生境界無障碍三昧와
관일체중생경계무장애삼매와
일체중생경계의 걸림 없는 장애가 없는 것을 관찰하는 삼매와
能出生一切如來母三昧와
능출생일체여래모삼매와
일체여래의 어머니를 출생하는 일체 여래를 능히 출생하는 어머니의 삼매 뭐 그런 뜻이네요. 삼매와.
能修行入一切佛海功德道三昧와
능수행입일체불해공덕도삼매와
능히 일체불해공덕도에 수행해서 들어가는 삼매와.
一一境界中에 出現神變하야 盡未來際三昧와
일일경계중에 출현신변하야 진미래제삼매와
일일경계 중에 신통변화를 출현해서 미래제가 다 하는 그런 삼매와.
入一切如來本事海三昧와
입일체여래본사해삼매와
일체여래의 본사해에 들어가는 삼매와.
盡未來際토록 護持一切如來種性三昧와
진미래제토록 호지일체여래종성삼매와
미래제가 다하도록 일체여래의 종성을 호지하는 삼매와.
以決定解力으로 令現在十方一切佛刹海로 皆淸淨三昧와
이결정해력으로 령현재시방일체불찰해로 개청정삼매와
결정해력으로써 결정적으로 아는 그런 힘으로써 하여금 시방일체불찰로 하여금 현재 있는 시방일체불찰로 하여금 다 청정하게 하는 삼매와.
一念中에 普照一切佛所住三昧와
일념중에 보조일체불소주삼매와
한 생각가운데 일체가 불소주 모든 부처님이 머무는 그런 것을 보조하는 그런 삼매 널리 비추는 삼매.
入一切境界無碍際三昧와
입일체경계무애제삼매와
일체경계 걸림 없는 경계에 들어가는 삼매와.
令一切世界로 爲一佛刹三昧와
영일체세계로 위일불찰삼매와
일체세계로 하여금 일불찰을 만드는 삼매와
出一切佛變化身三昧와
출일체불변화신삼매와
일체불변화신을 내는 삼매와.
以金剛王智로 知一切諸根海三昧와
이금강왕지로 지일체제근해삼매와
금강왕 지혜로써 일체 모든 근을 아는 삼매와.
知一切如來同一身三昧와
지일체여래동일신삼매와
일체 여래의 동일신을 아는 삼매와.
知一切法界所安立이 悉住心念際三昧와
지일체법계소안립이 실주심념제삼매와
일체법계에 안립한 바가 다 심념의 경계, 마음의 경계에 머무는 것을 아는 삼매와.
於一切法界廣大國土中에 示現涅槃三昧와
어일체법계광대국토중에 시현열반삼매와
일체법계 광대국토가운데서 열반을 시현하는 삼매와.
令住最上處三昧와
영주최상처삼매와
영주최상처삼매 최상처에 머물게 하는 삼매와.
於一切佛刹에 現種種衆生差別身三昧와
어일체불찰에 현종종중생차별신삼매와
일체불찰에 종중생차별신을 나타내는 삼매와
普入一切佛智慧三昧와
보입일체불지혜삼매와
일체 불지혜에 널리 들어가는 삼매와.
知一切法性相三昧와
지일체법성상삼매와
일체법성상을 아는 삼매와.
一念普知三世法三昧와
일념보지삼세법삼매와
일체 삼세법을 널리 아는 삼매와 일념에 삼세법을 널리 아는 삼매와
念念中에 普現法界身三昧와
염념중에 보현법계신삼매와
염념가운데 법계신을 널리 나타내는 삼매와.
以師子勇猛智로 知一切如來出興次第三昧와
이사자용맹지로 지일체여래출흥차제삼매와
사자와 같은 용맹한 지혜로써 일체여래의 출흥차제를 아는 삼매와
於一切法界境界에 慧眼圓滿三昧와
어일체법계경계에 혜안원만삼매와
삼매와일체법계경계에 지혜의 눈으로 원만한 .
勇猛趣向十力三昧와
용맹취향십력삼매와
용맹으로 십력에 취향하는 삼매와.
放一切功德圓滿光明하야 普照世間三昧와
방일체공덕원만광명하야 보조세간삼매와
일체공덕원만광명을 놓아서 세간을 보조 널리 비추는 삼매와
不動藏三昧와
부동장삼매와
움직이지 않는 장의 삼매와.
說一法이 普入一切法三昧와
설일법이 보입일체법삼매와
일체법을 설하는 것이 일체법에 널리 들어가는 삼매와.
於一法에 以一切言音으로 差別訓釋三昧와
어일법에 이일체언음으로 차별훈석삼매와
또 일법에 일체언음으로써 차별되게 훈력 해석하고 석 해석 훈석 새기고 이 새기는 거를 훈이라 그래요. 그걸 또 풀이하는 것을 석이라 차별되게 훈석하는 삼매와.
演說一切佛無二法三昧와
연설일체불무이법삼매와
일체부처님 무위법을 연설하는 일체 부처님 법은 둘이 아닌 법이다 이 말이지요. 무이법을 연설하는 삼매와.
知三世無碍際三昧와
지삼세무애제삼매와
삼세무애제를 아는 삼매와.
知一切劫無差別三昧와
지일체겁무차별삼매와
일체겁무차별을 아는 삼매와.
入十力微細方便三昧와
입십력미세방편삼매와
열 가지 힘이 미세한 방편에 들어가는 삼매와. 입십력미세방편삼매와
於一切劫에 成就一切菩薩行不斷絶三昧와
어일체겁에 성취일체보살행불단절삼매와
일체겁에 일체보살행의 단절이 없는 것을 성취하는 삼매와
十方普現身三昧와
시방보현신삼매와
시방에서 몸을 널리 나타내는 삼매와.
於法界에 自在成正覺三昧와
어법계에 자재성정각삼매와
법계에서 자재하게 정각을 이루는 삼매와.
生一切安隱受三昧와
생일체안은수삼매와
일체 안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내는 삼매와 안은수삼매.
出一切莊嚴具하야 莊嚴虛空界三昧와
출일체장엄구하야 장엄허공계삼매와
출일체장엄구하야 일체 장엄구를 모여서 허공계를 장엄하는 삼매와.
念念中에 出等衆生數變化身雲三昧와
염념중에 출등중생수변화신운삼매와
염념 가운데 중생수와 같은 변화의 신운을 내는 삼매와.
如來淨空月光明三昧와
여래정공월광명삼매와
여래의 정공월광명삼매 청정한 허공의 달과 같은 그런 광명삼매와 여래정공월광명삼매와
常見一切如來住虛空三昧와
상견일체여래주허공삼매와
일체 여래가 항상 허공에 머무는 것을 상견 늘 보는 삼매와
開示一切佛莊嚴三昧와
개시일체불장엄삼매와
일체불장엄을 개시하는 삼매와
照明一切法義燈三昧와
조명일체법의등삼매와
일체법 진리의 등불을 조명하는 삼매와 조명일체법의등삼매와
照十力境界三昧와
조십력경계삼매와
시방십력세계를 비추는 삼매와 시방세계인지 십력세계인지 요거는 오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비추는 삼매와.
三世一切佛幢相三昧와
삼세일체불당상삼매와
삼세일체부처님 깃발의 모양 삼매와.
一切佛一密藏三昧와
일체불일밀장삼매와
일체부처님 일밀장 하나의 비밀한 장의 삼매와.
念念中에 所作皆究竟三昧와
염념중에 소작개구경삼매와
염념가운데 짓는 것이 다 구경을 완전함을 이루는 삼매와
無盡福德藏三昧와
무진복덕장삼매와
무진복덕장삼매 다함이 없는 복덕의 창고삼매와.
見無邊佛境界三昧와
견무변불경계삼매와
무변불경계삼매 무변불경계를 보는 삼매와
堅住一切法三昧와
견주일체법삼매와
굳게 일체법에 머무는 삼매와.
現一切如來變化하야 悉令知見三昧와
현일체여래변화하야 실령지견삼매와
일체여래변화를 나타내서 다 보고 알고 보게 하는 삼매와.
念念中에 佛日常出現三昧와
염념중에 불일상출현삼매와
염념가운데 불일이 부처님의 태양이 항상 출현하는 삼매와
一日中에 悉知三世所有法三昧와
일일중에 실지삼세소유법삼매와
하루가운데 삼세의 소유법을 모두 다 아는 삼매와
普音演說一切法性寂滅三昧와
보음연설일체법성적멸삼매와
일체법성적멸을 널리 음성으로써 연설하는 삼매와
見一切佛自在力三昧와
견일체불자재력삼매와
일체불자재력을 보는 삼매와
法界開敷蓮華三昧와
법계개부연화삼매와
법계에서 연꽃을 개부하는 삼매와
觀諸法如虛空無住處三昧와
관제법여허공무주처삼매와
모든 법이 허공과 같아서 머무는 곳이 없는 것을 관찰하는 삼매와.
十方海로 普入一方三昧와
시방해로 보입일방삼매와
시방해로써 일체에 보입하는 널리 들어가는 삼매와
入一切法界無源底三昧와
입일체법계무원저삼매와
일체법계 무원저에 들어가는 무원저에 저 밑이 없는 데 들어가는 삼매와
一切法海三昧와
일체법해삼매와
일체법해삼매와
以寂靜身으로 放一切光明三昧와
이적정신으로 방일체광명삼매와
적정 몸으로 적정한 몸으로써 일체광명을 놓는 삼매와
一念中에 現一切神通大願三昧와
일념중에 현일체신통대원삼매와
일념가운데 일체신통대원을 나타내는 삼매와
一切時一切處에 成正覺三昧와
일체시일체처에 성정각삼매와
일체시 일체처에 정각을 이루는 삼매와
以一莊嚴으로 入一切法界三昧와
이일장엄으로 입일체법계삼매와
한 장엄으로써 일체법계에 들어가는 삼매와
普現一切諸佛身三昧와
보현일체제불신삼매와
일체 제불신을 보현하는 삼매와
知一切衆生廣大殊勝神通智三昧와
지일체중생광대수승신통지삼매와
일체중생광대수승한 신통지혜를 아는 삼매와
一念中에 其身이 法界三昧와
일념중에 기신이 법계삼매와
일념가운데 그 몸이 법계에 두루하는 삼매와
現一乘淨法界三昧와
현일승정법계삼매와
일승정법계를 나타내는 삼매와
入普門法界하야 示現大莊嚴三昧와
입보문법계하야 시현대장엄삼매와
법계에 널리 들어가서 보문법계에 들어가서 대장엄을 시현하는 삼매와
住持一切佛法輪三昧와
주지일체불법륜삼매와
일체의 불법륜을 멈으로 가지는 삼매와
以一切法門으로 莊嚴一法門三昧와
이일체법문으로 장엄일법문삼매와
일체의 법문으로 일법문을 장엄하는 삼매와
以因陀羅網願行으로 攝一切衆生界三昧와
이인다라망원행으로 섭일체중생계삼매와
인다라망 원행으로 일체중생세계를 포섭하는 삼매와
分別一切世界門三昧와
분별일체세계문삼매와
일체세계의 문을 분별하는 삼매와
乘蓮華自在遊步三昧와
승련화자재유보삼매와
승연화자재유보 연꽃을 타고 자재하게 자유자재하게 걸어다니는 흘러다니는 그런 삼매와
知一切衆生種種差別神通智三昧와
지일체중생종종차별신통지삼매와
일체중생의 가지가지 차별신통지혜를 아는 삼매와
令其身으로 恒現一切衆生前三昧와
영기신으로 항현일체중생전삼매와
그 몸으로 하여금 항상 일체중생 앞에 나타나는 삼매와 일체중생의 차별 언음사를 사의 해를 모든 중생의 말을 전부 다 알아듣는 그런 삼매와
知一切衆生差別音聲言辭海三昧와 知一切衆生差別智神通三昧와
지일체중생차별음성언사해삼매와 지일체중생차별지신통삼매와
일체중생의 차별지신통 차별된 그런 지혜와 신통을 아는 삼매와
大悲平等藏三昧와
대비평등장삼매와
대비평등장삼매와
一切佛이 入如來際三昧와
일체불이 입여래제삼매와
일체불이 여래제에 들어가는 삼매와
觀察一切如來解脫處師子頻申三昧니
관찰일체여래해탈처사자빈신삼매니
일체여래해탈처를 관찰하는 사자빈신삼매니
菩薩이 以如是等不可說佛刹微塵數三昧로 入毘盧遮那如來念念充滿一切法界三昧神變海니라
보살이 이여시등불가설불찰미진수삼매로 입비로자나여래염념충만일체법계삼매신변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은등 불가설불찰미진수삼매로 비로자나여래의 염념충만일체법계삼매신변해에 들어가느니라.
그러니까 이러한 그 백 가지 삼매지요. 지금까지 백 가지 삼매인데 이런 백가지 삼매로써 결국은 어떻게 하느냐? 비로자나여래가 생각생각 가운데 일체법계에 충만하는 그런 삼매의 신통변화해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비로자나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간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해서 이건 역사적인 부처님은 아니고 우리 마음의 가장 활짝 핀 상태 우리 마음이 지혜로써 가장 밝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활짝 핀 상태를 비로자나부처님이다. 그래 우리는 이런 그 마음을 꽃피우는 노력을 수행이다 또는 뭐 불법을 닦는 일이다 이렇게 이제 표현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 비로자나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들 저 속에 갖추어져있는데 그것을 자꾸 이런 노력을 통해서 이런 정진을 통해서 자꾸 두드려서 그걸 끄집어내는 거에요. 만들어내고 그것을 꽃피워내고 그 가만 놓아두면은 두드리지 않으면 문은 안 열리듯이 자꾸 이런 부처님의 세계, 보살의 세계를 자꾸 이야기함으로 해서 우리들의 기꺼운 마음의 문을 자꾸 두드리는 거에요. 마음에 충격을 주는 거에요. 너희 마음속에는 이러한 세계가 있다 이러한 세계가 있다. 빨리 문을 열고 이러한 것을 활짝 꽃피우도록 하라 라고 하는 그런 어떤 정진입니다. 그런 노력이구요.
그러니까 이게 한마디만 잘 알아 들으면은 그게 딱 계합이 돼 버리면 그대로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닫게 되는 거지요. 그래 육조스님 같은 이는 금강경 한 구절을 딱 듣고 그냥 그것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모습 그대로거든. 그래 그게 딱 계합이 되는 거에요. 그걸 계합이 된다 그래요. 딱 맞아떨어지는 거지요. 딱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탁 맞아 떨어질 때 그냥 뭐 안 깨달을래야 안 깨달을 수가 없게 돼 있는 거지요. 육조스님 같은 이는 어떻게 보면 행운이죠. 또 그만한 어떤 그 소양이 갖춰져 있는 분이기도 하지마는 그 경전의 말씀 딱 한 마디에 자기 마음의 그런 부분하고 탁 맞아 떨어져버렸다. 우리도 이런 많은 가르침 중에서 자꾸 이렇게 접하다보면 우리 마음의 어떤 그 이런 내용과 탁 제대로 맞아 떨어질 때가 있는 거지요. 우리는 늘 읽어도 그저 저 속에 있고 제대로 드러나지가 않으니까 맞아떨어지지가 않는 거지요. 그러나 세월이 자꾸 가고 자꾸 돌고 돌다보면은 어디엔가 한 번은 크게 맞아떨어질 때가 있는 거지요.
그 다음 견광명구덕이라. 광명의 덕 갖춘 것을 갖다가 본다 그랬어요. 광명 속에 덕을 많이 갖췄다. 이것도 이제 상당히 양이 긴데 하는데 까지만 해 보지요.
(3) 見光明具德
其諸菩薩이 皆悉具足大智神通하야 明利自在하야 住於諸地하며 以廣大智로 普觀一切가 從諸智慧種性而生하야
기제보살이 개실구족대지신통하야 명리자재하야 주어제지하며 이광대지로 보관일체가 종제지혜종성이생하야
그 모든 보살들이 어디 있는 보살이죠? 서다림에 있는 보살, 이 법회에 모인 보살. 다른 의미로 하면은 바로 이 자리에 앉은 우리들 우리들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그 보살 모든 보살들이 다 대지신통(大智神通) 큰 지혜와 신통을 전부 구족(具足)해서. 명리자재(明利自在)해서 명리가 아주 밝고 날카로운데 자재하다 명리함이 자재하다 명리가 자재하다 아주 지혜가 뛰어난 것을 명리(明利)라 그래요. 자재해서 모든 지위에 머물며, 광대한 지혜로써[以廣大智] 보관일체(普觀一切)가 일체가 종제지혜종성이생(從諸智慧種性而生)하야 모든 지혜종성(智慧種性)으로부터 생(生)하는 줄을 보관(普觀) 널리 관찰해서.
一切智智가 常現在前하야 得離癡翳淸淨智眼하며
일체지지가 상현재전하야 득이치예청정지안하며
일체지지(一切智智)가 상현재전(常現在前)하야 일체 지혜의 지, 요건 뭔 말인고하니 일체지자(一切智者)의 지혜라고 하는 그런 뜻도 있고요. 이 화엄경이나 법화경 같은데 지지(智智) 지혜지자 두 개를 합해가지고 가끔 나와요. 이거는 이제 모든 지혜 가운데 일체지(一切智)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혜 이런 의미가 있어요. 일체지지라고 하는 것은. 그 불지(佛智)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지혜. 일체지지하면 부처님의 지혜에요. 일체지지가 항상 앞에 나타나있어서. 득이치예청정지안(得離癡翳淸淨智眼)하며 이치예(離癡翳) 어리석음과 가리움을 떠난 청정지혜의 눈을 얻으며. 참 이 보십시오. 일체지지(一切智智)가 상현재전(常現在前)하야 득(得) 얻는다. 무엇을? 이치예청정지안(離癡翳淸淨智眼) 그랬어요. 이 결국은 뭡니까? 내가 자꾸 지혜를 지나치게 강조를 하는데, 결국은 어리석음 우리 마음으로 치면 어리석음이죠.
그걸 또 비유하자면 눈에 뭘 종이로 가려놓았다 이 말입니다. 예字(翳)는 그런 말이야. 눈에 뭐 앞에다 가려놓으면 보입니까 안 보이죠.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다 뭘 가려놓은 거에요. 안보여요 어리석음 안보입니다 안 들어와요. 인생에 대해서도 안 들어오고, 자기 뭐 하는 일에 대해서도 안 보이고, 뭐 돌아가는 이치 세상이치 인생의 이치에 대해서 하나도 안보여요. 눈앞에 뭘 딱 가려놓은 거와 같아요. 그 치야 치(癡) 그 불교에서 경전에서 이런 말을 잘 쓰는데 치(癡)는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대로 눈앞에 뭘 가려놓은 거에요 그냥. 눈앞에 뭘 가려놓은 그런 상태와 같다.
금강경에도 그렇지요 말하자면 마음이 심주어법(心住於法)하야 이행보시(而行布施), 마음이 어디에 딱 집착을 해서 머물러가지고 집착을 해 가지고 어떤 행위를 한다 보시행위를 한다 할 것 같으면은 여인 입암 즉무소견(如人 入闇 卽無所見)이라. 어떤 사람 캄캄한데 들어가 가지고 아무것도 못 보는 거와 같다. 그랬어요. 그게 치예(癡翳)거든요. 가려놓는 거지요. 어리석음이고. 요건 이제 말하자면 그런 것을 다 떠난 이치예(離癡翳) 거든요. 그런 어리석음[癡]과 가리움[翳]을 떠나서 청정한 지혜의 눈을 얻는다. 툭 터진 지혜의 눈입니다. 지안(智眼). 청정지안(淸淨智眼)하는 것은 아주 환하게 아무것도 가린 것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는 그런 지혜의 눈을 얻는다.
爲諸衆生하야 作調御師하야 住佛平等하야 於一切法에 無有分別하며 了達境界하야 知諸世間이 性皆寂滅하야 無有依處하며
위제중생하야 작조어사하야 주불평등하야 어일체법에 무유분별하며 요달경계하야 지제세간이 성개적멸하야 무유의처하며
그래서 모든 중생을 위해서 조어사(調御師)가 되어서. 조어사라고 하는 것은 잘 다스리는 스승 이런 말인데 이건 뭘 잘 다스리냐?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을 조어사라 그래요. 이게 본래 야생마 인데 야생마를 잘 길들여가지고 사람이 타도 전혀 다치지 않도록 사람 말을 고분고분 어린아이 말이라도 고분고분 잘 듣도록 만드는 그런 조련사는요. 이거는 아주 뛰어난 조련사입니다.
아주 옛날에는요. 지금에야 전부 키워가지고 또 키우던 말이 새끼를 또 낳아서 그것이 또 본래 길들여져 있는 말의 새끼니까 이건 뭐 특별히 길들일 것도 없는 거지요. 이제는. 그러나 여기서 조어사(調御師)라고 하는 것은 야생말이에요. 야생마를 잡아가지고서 그것이 사람이 타도 다치지 않도록 그렇게 길들이는 것은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아주 힘드는 일이라고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런 일은 참 아주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부처님을 조어장부(調御丈夫) 그러지요. 조어장부나 조어사나 그 같은 뜻입니다. 조어사가 되어서. 참 중생을 길들이는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야생마 길들이는 사람으로 그렇게 표현을 했겠나... 참 기가 막힌 이야기지. 부처님은 그런 우리 중생들을 그렇게 야생마 길들이듯이 우리를 그렇게 길들이...이거 전부 우리 중생 길들이는 소리에요. 이거.
팔만대장경이라는게 전부 우리 길들이는 소리라. 그래도 속에 깊이 새기던지 안 새기던지 그건 차치하고라도 그래도 와서 듣는다는 것 만해도 장한 일이지. 그 뭐 나중에 새기고 안 새기고는 그 다음일이고 들으려고 귀 기울이는 것 만해도 상당히 길이 많이 들어졌어. 부처님에게 많이 길들어진 사람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작조어사. 위제중생(爲諸衆生)하야 작조어사(作調御師) 그랬지요. 모든 중생을 위해서 조어사가 된다. 말을 길들이는 사람이 된다. 되어서 주불평등(住佛平等)하야 부처님의 평등한 경지에 머물러서 어일체법(於一切法)에 무유분별(無有分別)하며 모든 법에 있어서 잘났다 못났다 사람차별하지 않는다 이거야 무유분별이라는 것은. 요달경계(了達境界)하야 모든 경계를 다 꿰뚫어 알아가지고서 지제세간(知諸世間)이 성개적멸(性皆寂滅)하야, 모든 세간이 성품이 사실 따지고 보면 전부 적멸(寂滅)하다. 그 본성(本性)은 전부 텅 비어서 고요하다 이 말이야. 세상은 마 아무리 잘났고 뭐 어쨌다해도요. 세월 지나버리면 다 적멸이야. 본래 적멸이라서 그래요. 본래 적멸이라서.
그 이번에 국회의원들 보니까 아주 뭐 내로라하는 사람들 줄줄이 다 떨어져버렸더만. 완전히 서리맞아버렸대. 대구고 뭐 부산이고 뭐 그 저저 완전히 서리맞아버렸더만. 세월이 이렇게 흘러가면요. 서자여사(逝者如斯) 내가 서字(逝) 이야기했지요? 물 흘러가는 것, 세월 흘러가는 것, 변하는 것, 바뀌는 것. 바뀌는 것은 물 흘러가듯이 바뀌는 것이야. 그걸 잘 소화할 줄 알아야 돼. 흘러가는 인생을 잘 소화할 줄 아는 것. 거기에 뭐 분통 터뜨리고 지금 뭐 속병 걸린 사람 많을 거야 아마. 설마 내같은 사람이 떨어지겠나? 내라도 그런 생각이 들던데. 저기 대구 쪽에 있는 박 아무개 김 아무개 이런 사람들은 그 떨어질 줄 몰랐어요, 나는. 정말이야. 잘 알아듣는 모양이네. 부산사람 아니니까 괜찮아 우리끼리.. 대구 쪽 이야기야. 아 정말 그런 사람 떨어질 줄 몰랐어요. 그런데 뭐 사정없이 그렇게 떨어져... 그런 사람들은 속병 걸리겠더라고요. 가만보니까. 그걸 잘 소화할 줄 알아야 돼. 그게 이제 선서. 부처님은 선서라 그러거든요. 그 흘러가는 인생을 잘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 이 말이라 선서. 부처님은 그렇게 이야기 해. 부처님은 그런 분이야.
부처님 당시에요 그 가비라국이 망했지 않습니까? 그 인도에는 그 당시는 열국시대가 돼 가지고 많은 제후국이 있었어요. 그리 큰 나라도 아니야. 숱한 나라들이 있었는데 서로 각축을 벌이고... 중국의 역사처럼. 중국의 열국시대처럼. 뭐 조그마한 면소재지 가지고도 나라라고 그러고 군소재지 하나 가지고도 나라라고 그러고. 전부 그냥 너도 왕이고 나도 왕이고... 그래서 힘센 사람 덕을 갖추고 힘센 사람이 병합하고 병합하고 병합하고 해 가지고 나중에 세 나라가 남기도하고요. 세 나라가 남지요. 그러니 그러다가 나중에 거기서 더 센 나라가 통일을 하고 이런 식으로 돼 듯이 인도도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옛날엔 어느 나라나 다 그랬어요. 인도도 그랬는데 역시 이제 석가모니가 태어난 가비라국은 망했어요. 부처님 살아생전에 망해. 당신 출가할 때는 망하지 않았어. 그런데 출가할 때 그걸 이미 알아 부처님은. 그것을 인연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그래 그게 이제 선서야. 그 국제정세를 잘 알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그대로 잘 소화한 거지요 자기는. 받아들일 줄 알고 소화할 줄 알았다.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있습니다. 자기 뭐 인생에 대한 것 하고. 그래 그런 것을 참 우리가 때를 잘 알아서 그걸 소화하면 참 멋진 사람이죠.
요달경계(了達境界)해서 지제세간(知諸世間)이 성개적멸(性皆寂滅)이라. 다 적멸해. 이제 조용하지 뭐. 이제부터 오늘부터는 조용해. 그게 적멸이야. 조용하다 이 말이야. 세간이 다 조용하다 성품이 본래 조용하다. 본래 떠들게 없는데 괜히 중간에 떠들어서 그래. 그래 지나보니까 다 조용하잖아. 조용한 것을 알아서 무유의처(無有依處)하며 적멸해서 의지할 곳이 없음을 안다 이거에요. 세상사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의지할게 없어. 그래 부처님은 그래서 결국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진리의 가르침을 의지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아라. 그렇게 했잖아요. 여기 참 좋은 말이 있네요. 모든 세간이 성품이 본성이 다 적멸해서 의지할 것이 없음을 알며.
普詣一切諸佛國土호대 而無所着하며
보예일체제불국토호대 이무소착하며
보예일체제불국토(普詣一切諸佛國土)호대 널리 일체 모든 부처님 국토에 나아가되. 나아가되 이무소착(而無所着)하며 어디든지 우리가 상황에 처하더라도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이무소착이야.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실로 우리가 곳곳에 우리 중생은 처처착(處處着)이라고 그래요. 처처착. 가는데 마다 집착이야 그냥. 가는데 마다 집착. 여기보십시오. 여기 나왔잖아. 일체 제불국토(諸佛國土)에 널리 나아가더라도 집착하는 바가 좀 없어라. 가는데 마다 집착이니까 우리는. 보는 것 마다 집착이고 가는데 마다 집착이고 만나는 것 마다 집착이고.
悉能觀察一切諸法호대 而無所住하며
실능관찰일체제법호대 이무소주하며
실능관찰일체제법(悉能觀察一切諸法)호대 모두 일체제법(一切諸法)을 다 널리 잘 능히 관찰하대 이무소주(而無所住)하며 머무는 바가 없고. 내 그 일일이 뭐 이렇게 보고 챙기고 도와주고 보살펴주고 또 뭐 내가 어디 선심도 좀 쓰고 뭐 또 시주도 좀 하고 뭐 이렇다손 치더라도 이무소주야. 머무는 바가 없어. 주착(住着)하는 바가 없어야 하며.
徧入一切妙法宮殿호대 而無所來하며 敎化調伏一切世間하야 普爲衆生하야 現安隱處하며 ....
변입일체묘법궁전호대 이무소래하며 교화조복일체세간하야 보위중생하야 현안은처하며 ....
또 변일체묘법궁전(徧入一切妙法宮殿)호대 일체 아름다운 법의 어떤 궁전에 두루두루 들어가되 그러나 무소래(無所來) 오는 바가 없으며. 어디든지 가기는 가. 가도 가는 바가 없고 와도 오는 바가 없고. 교화조복일체세간(敎化調伏一切世間)하야 보위중생(普爲衆生)하야 일체 세간을 교화하고 조복해서 널리 중생들을 위해서 현안은처(現安隱處)하며 편안한 곳 아주 안은한 곳을 나타낸다 이게 참 좋은 말이죠. 일체 세간을 교화(敎化)하고 조복(調伏)해서 널리 중생들을 위해서 편한 곳을 만들어 줘. 현 안은처 안은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안온하다 편안하다. 정말 뭐 딴 공간 딴 공간 하지 말고 어쨌든 이 사회가 마음 놓고 안온한 곳 편안한 곳 살 수 있는 그런 세상만 만들어도 괜찮아요. 마음 놓고.
얼마나 위험합니까? 사실 위험투성이지요. 아이들을 어떻게 마음 놓고 학교를 보낼 수 있나? 제일 난 가슴아픈게 아이들 학교 분위기 그 뭐 왕따문제라든지 무슨 어디 그 막 그냥 패싸움한다든지 또 조직 학교 안에 뭐 초등학교도 다 있다고 그래요 초등학교도 그 나름대로 조직이 있어가지고 그 밉보이면 그냥 불러다가 때리기도 하고 뭘 갈취하기도 하고 그런 사실을 또 알리면 알렸다고 또 얻어터지니니까 집에 가서 알리지도 못하고. 그 속 끓이잖아요. 애들이 그 마음이 좁거든요. 어른들 같으면 그까짓거 말이지 뭐 어떻게라도 해 본다고 하지만 애들은 그런 생각 못해요. 절대 못하고는 그냥 그런 어떤 환경 속에 더 이상 벗어날 줄 몰라요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거에요. 시키는대로.
그런 환경을 얼른 뭐 너무 잘 먹고 잘 살라고 할게 아니고 경제경제 그럴게 아니라. 그런 정말 필요한 그런 환경부터 자꾸 고쳐나가야 되는데... 뭐 공약해쌌는거 보면 세상을 완전히 지가 다 알아서 할 것 같이 이야기하고. 아이구 참 .... 그런 거짓말을 그렇게 사정없이 그래 해쌌고 그러더라고요. 거짓말이거든 순전히 거짓말인데 그냥 그렇게 해. 참 기가 막혀 하여튼.
어쨌든 자기가 국회의원이 되면은 자기 구역 안에서는 최소한도 소년범죄 학교를 마음 놓고 보낼 수 있는 그런 환경은 여하한 일이 있어도 만들겠다. 그 공약 하나만 해도 돼요. 그 공약 하나만. 죽으나 사나 내가 사람을 그냥 몇 명이고 몇 백 명 동원해서라도 애들 공부하는 환경은 내가 지키겠다. 그런 공약을 아주 철두철미하게 한번 내세우면 그거 틀림없이 될 거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그거하나는 할 수가 있고요. 자기 개인 힘으로도 그건 가능한 거에요. 자기 구역 안에서 그 정도는 할 수가 있다고요. 철저히 경비를 세워가지고 경비를 예를 들어서 몇백명쯤 동원해 가지고 그렇게 하면은 그 정도는 할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벌을 사정없이 줘 버려야 돼. 벌을. 못하게 해 놓고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서 저지르고 공포분위기 만들고 그러면 그런 애들은 가차없이 그냥 어디로 애들을 좀 외로운 섬으로 보내던지.. 뭐 어떻게 그렇게 본보기를 보여야 돼요.
세계에서 잘 돌아가는 나라가 싱가폴이라고 하는 나라인데 싱가폴같이 벌금 센 데가 없다 하잖아요. 뭐 담배꽁초 길거리에 하나 버리면 오천 불이라고 하던가 벌금이. 어마어마해요. 담배꽁초하나 버려놓으면 완전히 그 일 년은 죽어라고 그냥 굶고 살아야 되는 거에요. 그 우리 중생들은 할 수 없다고요 중생들은. 안온처 참 이 널리 중생들을 위해서 편안한 곳을 나타내 보인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뭐 불편하게 그렇게 소비 많이 하도록 무슨 경제발전보다도 아 편안하고 맘 놓고 살아야죠. 첫째 맘 놓고 살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중요하지, 많이 가지고 맘 놓지 못하면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 옛날에도 그 뭐 그 대왕이 가지고 있는 동산을 맹자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어떤 왕이 가지고 있는 동산은 주위가 뭐 삼십 리인데 그런데 너무너무 넓고, 어떤 왕은 둘레가 백 리인데 너무너무 좁다. 왜 그러냐? 주위가 삼십 리라 하더라도 그 나라 마음대로 출입하니까 그게 넓은 동산이고, 주위가 백 리 아니라 천 리라 하더라도 왕, 지 밖에는 들어가지 못하니까 얼마나 좁은 동산이냐? 이렇게 이야기 했거든요. 참 그 맹자도 대단한 분이에요. 그러니까 전 국민이 다 들어갈 수 있는 동산이니까 그 동산은 아무리 평수가 작다고 하더라도 그게 넓은 동산이다. 그런 이야기를 했듯이 정말 우리가 사는데 좋은 환경 정말 살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환경은 편안한 곳이 돼야 돼요. 편안한..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곳.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해 놓겠습니다.
첫댓글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 !!!!!!!!!!!!! 큰 법문 고맙고 고맙습니다 ^^ 파랑새님 덕분에 정말 알차고 보람차게 화엄경 공부하네요 ^^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또 읽고 마음에 새겨두겠습니다. _()_
오늘 공부할 내용도 만만치 않군요. 부연 설명 드릴 곳이 대단히 많은데...우선 삼매 이름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1.빛이라는 것은 불경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집니다. 화엄경은 방광이 무척 많이 나오는데, 부처님이 방광을 하는 부위도 장소에 따라 다릅지요. 또 빛은 불교뿐 아니라 다른교에서도 교적으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 뿐 아니라 물질계에서도 빛은 불가사의한 존재지요. 빛이 없으면 생명체가 탄생하지 못하고요. 초기 우주는 빛이 없었다고 하지요. 임사 체험에서도 빛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빛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시길...
2.(2) 시방견광명경계(十方見光明境界)의 내용이 보현행원의 시작입니다. 특히 '敎化調伏一切衆生호대 未曾休息하니라 '는 대목을 잊지 마십시오.
"정말 살아있는 삼매는 자기가 어떤 자기활동을 활발하게 하는데 거기에 장애가 없는...." 예를 광덕큰스님으로 드셨는데 가슴에 와 닿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광덕큰스님은매력도 매력이지만, 제가 볼 때는 부처님 자리에 당신을 딱 계합시킨 분입니다. 즉 법문하실 때는 법좌에 오르시며 병이 있는 자리, 아픈 자리가 아닌 병이 없는 자리, 아플 수가 없는 자리에 몸과 마음을 두시기에 평소와 다른 그런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지요...그리고 이건 흔히 말하는 '매'와는 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고요...
그런 큰스님 모습을 보시는 불광 불자님들은, '우리 큰스님은 맨날 편챦으시다더니, 이제 보니 꾀병() 앓으시나봐...'라고 의아해 하셨다 하지요. 이런 소식을 모르는 데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부처님 자리에서 법문을 하시더라도, 에너지 소모는 엄청납니다. 그런 이유로 큰스님께서 법문을 마치시고 다시 법주실로 가셔서는 끙끙 앓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스님의 겉모습만 보신 분들은 큰스님의 그런 자비를 모르시고 꾀병앓는 큰스님으로만 아시기 십상입지요...
3.'爲諸衆生하야 作調御師하야 住佛平等'이라는 부분도 유의하셔야 할 대목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고행, 출현은 오로지 '중생을 위한 것'임을 우리는 보아야 합지요 그리고 그런 이익중생을 위하여 사바에 몸을 나툴 분들은, 오로지 '부처님의 평등 경계'에 머무셔야 합니다. 평등심에 머물러 세상을 바라 봐야 합지요 우리 불자님들도, 적어도 보현행원, 화엄을 공부하시는 분들이라 하면, 일반인들과 같은 차심에 사는 분이 아니라, 그 분들은 우리와 다른 '평등심'에 사시는 분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와 차원이 다릅지요...
오늘도 파랑새님께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