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작품에 들어가는 소품 하나까지 꼼꼼하게 고증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표정을 담아내는 닥종이 인형작가 박창우씨. 닥종이 인형은 한지를 한장 한장 붙이는 작업을 수천 번 반복해야 하는, 고도의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다. 그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만의 색을 내기 위해 귤·부추·감초 등 주변에 있는 자연재료를 모두 염색재료로 사용한다. 길을 갈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닥종이 인형 모델로 쓰기 위해서다. 모르는 사람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오해를 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닥종이 인형 만들기에 푹 빠져 인생 제 2막을 연 박창우 작가를 만났다.
그가 닥종이 인형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시 양천구청에 근무하던 2004년부터였다. 동사무소들의 문화강좌를 점검하던 그는 닥종이 공예반을 보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여자들로 꽉 찬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멋쩍었다.
용기를 내어 “남자도 배울 수 있나요?”라고 했던 말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간단하게 방법을 익힌 후 직접 만들어봤는데 뜻밖에도 선생님이 칭찬을 하셨다. 한지를 한겹 한겹 붙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안정되고 잡념이 사라졌다.
“한지를 찢었을 때 생기는 종이의 결이 아름답고 따뜻한 느낌이에요. 그 섬세한 결로 얼굴의 주름이나 머릿결, 속눈썹, 동물의 털은 물론, 희로애락의 표정과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매력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이참에 닥종이 인형을 정식으로 배우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바로 닥종이 공예학원으로 달려갔다. 인형 하나를 배우면 집에 와서 인형의 머리통을 수십 개는 만들 정도로 닥종이 인형 만들기에 빠졌다.
그러다 2006년 9월, <대한민국한지대전>에 출품한 작품 ‘씨름’이 입선을 하면서 닥종이 인형작가의 길이 열렸다. 이후 제1회 크라운 해태제과 닥종이 인형공모전 입선(2006년), 제12회 전국한지공예대전 입선, 제7회 대한민국한지대전 입선(2007년)등 1년에 4~5개씩 상을 타면서 지금까지 모두 20여 개의 상을 수상했다.
“처음 참가한 대회부터 상을 타긴 했지만, 대회 때마다 제가 많이 부족하고 분발해야겠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느끼는데, 캄캄한 세상에서 새로운 빛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는 “대회 참가는 자신감보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지난해 그는 이탈리아 로마국립미술박물관 전시회에 초대돼 작품 ‘삶’과 ‘살풀이’를 전시했다. 우리 춤을 소재로 한 작품 ‘살풀이’는 순백색 한복을 입은 여인이 장삼자락을 높이 쳐들어 휘날리고 있는데, 미세한 주름이 풍성하게 잡힌 치마와 춤사위가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대중과 평단은 “한국의 미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살풀이는 일본 미노시 한지 테마파크에서도 전시돼 호평을 받았다. 내년에도 일본 순회전시회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는 “종이의 부드러운 질감은 어머니의 품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을 준다”고 말했다. 닥종이 공예는 뼈대가 되는 철사에 한지를 조금씩 뜯어 풀로 붙이며 기본적인 형태를 만들어간다. 색깔을 넣을 땐 염색한 한지를 뜯어 붙인다. 한 번에 종이를 7, 8겹 붙이고 나면 작업물이 마를 때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잘 말리지 않고 작업을 하면 인형의 속이 썩어버리기 때문에 완전히 건조된 후에야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는 “닥종이 공예는 정성과 시간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한 겹씩 종이를 뜯어 붙이는 데는 정성이, 붙인 종이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데는 시간이 들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다 사람 크기의 닥종이 인형들을 보고 멈칫했다. 항상 새로운 실험을 감행하는 그의 작품은 먼저 크기부터 다르다. 대개 닥종이 인형의 키가 35~50cm인 반면, 그의 인형은 1m에 이른다.
단순한 종이인형 작품이 아니라 조각품,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싶어 대형 작품을 만들게 됐다 한다.
한지를 직접 염색해서 색감도 다채롭다. 그는 과일, 채소, 나무, 꽃잎, 커피 등과 같이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것들을 이용해 염색재료로 쓰고 있다. 이를테면 커피를 우려내 은은한 황토 빛깔을 얻는 식이다. 정교하고 사실적인 소품 만들기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작품 속에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아낸다. 때문에 각종 공모전에서 그의 작품들은 인기가 높다.
“고향이 경북 울진입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것도 작품을 만드는 데 한몫하죠. 작품에는 농기구나 옛날 소품도 등장하는데 시골에서 자라면서 그런 소품들을 직접 보고 써보았기 때문에 더 리얼하게 만들 수 있고, 옛 추억의 정서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향수에 젖게 하는 추억, 푸근한 웃음과 정감 어린 동작들은 모두 그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그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표현력을 구사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이면 인사동을 찾는다.
“인사동은 소재가 무궁무진한 곳이에요. 가게에 진열된 상품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색감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합니다. 작업실에 와서 응용해보기도 하고요.”
처음 닥종이 공예를 시작했을 때는 가족들이 닥종이 인형의 몸통, 머리통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흉측하니 저리 치우라”며 원성이 자자했다 한다. 그러나 이제는 닥종이 공예가로 변신한 남편과 아버지에게 가족들은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닥종이 작가로 이름을 얻으면서 전시회 초청이나 작품 제작 의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일본 전시회에 닥종이 공예 부문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작품 40여 점을 선보이고 돌아왔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초대작가로도 선정돼 작품 기획에 여념이 없다. 그가 꿈꾸는 것은 ‘닥종이 공예의 세계화’다.
“우리의 한지는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소재입니다. 한지가 가진 무궁무진한 매력을 닥종이 인형을 통해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지금도 야생화나 풀들을 따와 한지에 물들이며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는 닥종이 인형에 열정을 쏟으며 제2의 청춘을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