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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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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조선왕조실록 《대명회전》의 기신조에 4월 22일이 순황후의 기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fitfear3 추천 0 조회 119 23.07.11 19:07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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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7.11 23:26

    첫댓글 고맙습니다

  • 23.07.13 10:02

    궁금해서 여쭙니다.
    대명과 조선이 대명조선으로 같은 조선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기존의 역사서에는 조선이 명을 섬겼다고 나옵니다.
    여전히 많은 역사서들과 온라인 사이트에서 명과, 조선을 다른 나라로 얘기합니다.
    어떻게 인지하는 것이 맞나요 ?

    (참고로, 중화민국에서 신해혁명(1911년) 이후, 신문화운동(1915~1928)을 벌일때,
    역사를 조작하여 중국25사를 편찬하면서 조선을 조선과, 명으로 나누었다고 들었습니다. )

  • 작성자 23.07.12 20:53

    >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13년 정사 > 10월 14일 > 최종정보
    명(明)나라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의 일을 특별히 진강(進講)한 것은 내 뜻이 있어서였다. 우리나라는 명나라에 대하여 군신(君臣)과 부자(父子) 사이의 의리가 있고, 또 영원히 잊지 못할 은덕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 > 태종 4년 갑신 > 4월 4일 > 최종정보
    왕가인(王可仁)은 본래 아조(我朝) 동북면(東北面)의 향화인(向化人)인데, 태상왕(太上王)의 잠저(潛邸) 때에 휘하(麾下)가 되어, 태상왕의 천발(薦拔)에 힘입어서 벼슬이 추밀(樞密)에 이르렀다. 고황제(高皇帝) 때에 소환(召還)되어 이름을 수(脩)로 고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미 15년이 되었다. 처자(妻子)가 모두 잘 있었다.

    태종 5년 을유(1405) 4월 20일(을유)
    조선이 명나라와 친교(親交)하기를 형제(兄弟)처럼 하는데, 우리들이 어찌 따로 명나라를 섬김 필요가 있겠는가?

    중종 2년 정묘(1507) 1월 9일(계미)
    또 우리 태종은 창업하신 성주(聖主)이지만 절을 능침(陵寢)에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 23.07.13 07:15

    대명조선의 大明은 명확히 형용사로서 찬란한이란 수식어입니다. 明이란 나라의 존재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는것이 사실이지만, 1650년이후 쓰여진 마르티노 마르티니 신부의 기록을 보면(지명숙, 왈라벤 공역..보물섬은 어디에)명이란 나라는 명확히 존재했고, 또한 후금의 침공에 대해 조선과 군사적 협력으로 대응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漢族의 강역내 존재했던 실체적 정체로서 보아야 하며, 단지 일제가 교열한 왕조실록에서 조선이 사대굴종한 비굴한 모습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오류가 발견될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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