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문학과 지성사, 2012.
4.5
쓴내가 올라오고 가슴이 조여 온다. 공항화장실을 청소하는 기옥 씨, 핸드폰도 없는데 양수가 터져 버린 새댁, 짝사랑했던 남자 앞에서 핫도그 먹기 대회를 하는 미영, 죽은 엄마가 물에 떠내려 가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나, 위암으로 죽은 아내가 중국어발음을 녹음해 놓고 떠나 울면서 듣는 택시기사 용대,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여행 중 꿈꾸는 서윤 등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매맞는 여자, 철거아파트에 사는 사람, 존재가 없는 사람들, 모든 상황들이 좋지 않는 사람들, 주가 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 <비행운>의 단편들은 좀 더 다채롭고 소재가 다양해서 다른 김애란 소설집보다 풍성하고 기이한 이야기가 여럿 있다. 행운이 오고 다시 다른 불행이 오고 반복하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중년세대를 박완서가 말했다면 20-30대를 김애란이 말하고 있다. 김애란의 소설로 젊은 세대를 공감하려고 애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디에서 발견하는 인물들을 그려준 김애란의 작가의식에 감동한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문학동네』, 2009년 여름호.
2년 만에 선배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대학시절 선배를 동경했던 일이 떠오른다. 준이라는 선배. 과방에서 선배와 사진을 보며 낄낄댔던 그 추억들. 선배는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이 여자의 생활이 보여서.” 사진이 좋다고 했다. 선배는 방송국 에이디로 일한다. 선배는 미영에게 부탁을 한다. ‘푸드파이터’ 먹기 대회 방송출현에 도와달라고 한다. 방에 누워 갑자기 목울대로 올라오는 북받치는 감정이다. 관계는 일방적일 수 있다.
<벌레들>, 테마소설집,『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도서출판 강, 2008)
지하와 옥탑을 합해 6층, 대략 30여 가구가 사는 장미빌라로 부부는 이사를 왔다. 세제로 닦고 쓸고 도배하고 예쁘게 살림을 하는데 바퀴벌레가 나오고 지네처럼 다리가 여럿 달린, ‘돈벌레’라고 부르는 그리마가 나타났다. 재개발 구역이어서 소음이 시끄럽다. 여름엔 극심한 모기떼들과의 사투다. 임신한 화자는 조그만 빌라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잃은 벌레들과 싸우고 있다. 출산이 임박했는데 하필 벌레를 잡다 반지를 재개발 구역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남편은 없고 한 밤중 공사장 안으로 들어온 화자는 양수가 터져버린다. 핸드폰도 없는데...
<물속 골리앗>,『자음과 모음』, 2010년 겨울호
5.0
엄마와 나는 강산아파트에 살고 있다. 재개발 아파트라 철거명령이 떨어졌지만 상중(喪中)이다.
아버지는 40미터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실족하셨다. 지금은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철거아파트에 전기도 끊어지고, 가스도 중단되고 세상소식을 알 수가 없다. 빗물을 비닐봉지에 받아 방에 차곡차곡 물봉지가 쌓여간다. 폭우가 쏟아지고 엄마는 당뇨병으로 죽게 되는데 물이 차오른다. 화자는 죽은 엄마를 이불에 싸서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기로 한다. 비는 계속 내리고 물건들은 둥등 떠다닌다. 엄마의 시신은 황톳물에 떠내려가고 주인공은 라면봉지와 사이다 한 병을 손에 쥐게 되고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신세가 된다. “살려주세요” 라는 한 마다는 공허하게 빗속에서 헤엄친다. 상상력을 맘껏 발휘한 김애란의 소설 같지 않은 단편이다. 긴박감과 괴기함이 넘쳐나서 좋았다. 빗속에서 사투하는 주인공은 생과 사에서 어쩔지 몰라 한다. 강인한 정신은 인간의 본능이라며 장면이 재난영화처럼 보여 진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문학과 사회』, 2009년 봄호.
용대는 가문의 천덕꾸러기, 가문의 수치, 가문의 왕따였다. 조선족 여자인 아내는 용대에게 과한 여자였다. 언제나 존중하는 눈빛을 보내는 아내, 임명화. 지린성 옌지에서 왔고 조선어, 중국어, 한국어를 다 할 줄 안다. 찜질방 청소, 발 마사지, 가정부, 서빙, 모텔 청소.....안 해본 일이 없는 명화. 용대는 중국집배달, 이발소 보조, 술집 웨이터, 아파트 경비 일을 전전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있어 아내는 위암으로 죽었다. 용대는 택시운전을 하며 아내와 중국말을 배우기 위해 테이프에 녹음한 말을 들으며 꺼이꺼이 운다. 삶에 지친 자들은 너무도 많고, 아픈 사람들도 많지만
<하루의 축>,『문장웹진』, 2012년 4월호
공항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 50대 여성 기옥 씨, 화장실은 누구나 가는 국제적인 공간,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곳, 다양한 빛깔의 체모, 여자들이 더욱 지저분하게 쓰는 공간을 청소한다. 내국인과 외국인, 돈을 쓰러 오는 사람, 돈 벌러 오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곳이다. 국제공항화장실. 기옥 씨는 원형탈모가 생겼다. 기옥 씨는 혼자 영웅을 키웠다. 남편은 새해 벽두에 산에 올라갔다 실족사 했다. 원형탈모가 생기기 시작한 건 아들이 택배물건을 훔치다 폭행하고 교도소에 들어가서 부터이다. 아들에게 ‘엄마, 사식 좀...’을 받은 편지가 서럽고 쓸쓸하다. 내일은 추석인데 가옥 씨는 혼자 화장실 청소를 한다. 50대 여인, 자식 뒷바라지로 노동현장에서 쓰레기취급 받으며 사는 엄마. 그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놀랍다.
<큐티클>,『현대문학』, 2008년 8월호
“그건 단순히 깨끗한 피부가 아닌 그 사람의 환경, 영양 상태, 심리적 안정감, 여가, 자신감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드러나는 ‘총체적인 안색’이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그런 낯빛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예인 혹은 명사들의 얼굴이 그랬다.”(p214)
손톱을 손질하고 매니큐어를 바르는 네일숍 안의 여자를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던 화자는 친구결혼식장에 가기 전 네일케어를 받는다. 살구빛으로 예쁘게 손질한 손톱을 친구들은 봐주지 않고 날이 좋아 가슴팍과 겨드랑이에 금세 땀을 부케를 받다 들키고 만다. 카드를 만들면 캐리어를 준다는 아주머니 말에 카드를 만든다. 캐리어를 끌고, 부케를 들고 남산타워를 향하는 주인공. 친구를 불러내어 캔맥주를 마시며 서울 밑을 내려다본다.
“남산 아래 펼쳐진 서울을 아득하게 바라봤다. 도심 바깥의 동떨어진 고요 탓에 저 아래 대처의 풍경은 이국에서 날아온 엽서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p242)"
돈을 벌면서 자신에게 조금의 사치를 부리는 것도 신경 쓰이는 저 가난. 어색한 동작, 삶의 태도들이 보여 지는 단편이었다. 함부로 소비하기 힘든 조심스러운 행동은 결국 한 층을 이루고 있는 세대들이다. 남산에서 캔맥주를 마시고 남산을 내려다보는 그 마음 같은 것 말이다.
<호텔 니약 따>,『현대문학』, 2011년 1월호
은지와 서윤은 20대를 지나 가장 빛나는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은지는 원하는 게 있으면 움직이는 아이, 서윤은 몸보다 머리가 먼저 움직이는 아이다. 서윤이 품고 있는 두려움의 근원은 가난이다. 또 다른 친구 다빈, 이 셋은 국문과 삼총사다. 은지와 서윤은 동남아로 여행을 가고 하노이에서 다빈이 합류할 예정이다. 방콕, 캄보디아, 하노이를 여행하는데 처음엔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은 여행은 둘의 성격과 시각차이로 감정이 상하게 된다. 서윤은 잠을 자다 할머니 꿈을 꾸고 서럽게 운다. 할머니는 꿈에서도 폐지를 줍고 계신다. 여행은 서로를 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 둘은 위험하다. 결국 다빈이는 합류를 못하고 둘은 공항에서 서로를 등지고 앉아 있다. 성격이 달라 서로 균형을 이룰 거 같은데 극과 극의 성격이라 맞추기가 어렵다. 여행은 상대방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모과이의 <섬머Summer>를 들었다. 날이 맑아 하늘에는 총총 별이 있고, 여름 미풍에 가슴이 널을 뛰는 게, 아무나 막 사라해버리고 싶던 밤. 서윤은 어둡고 텅 빈 원형 극장 가장 자리에 앉아, ‘섬머’의 전자 기타 음에 빠져 흥분한 채 말했다.”(p263)
<서른>, 『문예중앙』, 2011년 겨울호
사임당독서실, 충남에서 올라온 아가씨 언니는 전북에서 사범대졸업했으나 8년동안 임용이 안되어 31살이 된 언니를 바라보는 화자. 혼자 나이를 먹었을 청춘, 논문을 쓰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다단계 영업을 하는 청춘도 있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옛 남자친구의 말에 속아 800만원하치 물건을 사고 이성과 논리의 의지를 꿈에 저당잡히고 다단계에 들어가는 주인공. 양파즙 5백만원, 3백만원으로 산 칫솔과 비누, 양말을 사고 합숙을 시작한다. 인간관계를 연결해야 성공하는 다단계 사업. 가장 힘든 건 배고픔이었다. 학원제자 혜미를 다단계에 끌어들이고 나온 화자는 나중에 혜미가 인간관계 파탄 나고 빚에 시달리다 자살시도 후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릴 듣고 허망해한다. 가슴 아픈 청춘들의 모습에 슬프다. 대학 들어가면 꿈을 이룰 수 있었는데 많은 청춘들은 또다른 성공을 위해 다단계에서 흐느적거린다. 열심히 사는데 잘 안 되는 현실에 우리 모두는 배가 고프다. 아.. 어찌할까. 혜미야.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p316)."
이 문장 읽는데 너무 아팠어요. 한국현실의 젊은 초상처럼, 과거의 우리들 모습처럼, 열심히 사는데 이런 사람이 됐는지. 화자는 혜미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살지, 옛 남자친구 때문인데 또 그 남자친구도... 고리고리로 얽혀있는 관계에서 누가 책임을 져야하죠... 욕심 때문이라면 너무 가혹하다.
작가의 말
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당신도 보았느냐고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이미 그곳에 없다.
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이름을 짓는다.
여러 개의 문장을 길게 이어서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이름을.
기어코 다 부르고 난 뒤에도 여전히 알 수 없어
한 번 더 불러보게 만드는 그런 이름을.
나는 그게 소설의 구실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서른>의 한 장면은 내 가족, Y의 일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2년 여름, 김애란
<서평-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