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반도에 조선사 전부를 강제 하면서 생겨난 오류는 관(關)에서 시작된 것만이 아니다.관 보다
더 어색하고 엉터리 이명이자 별칭으로 반도에 식재된 것이 바로 호수(湖水:Lake)와 연계되어
호(湖)로 시작되는 '호남(湖南),호서(湖西),호중(湖中),기호(畿湖)에 대한 반도 제도권 권력의
오류 해석이다.이러한 별칭및 이칭 해석과 식재는 물론 일제시대로 부터 비롯하나 지금도 일제의
후학들이 교정없이 늘 사용하고 퍼트리고 있다. 이제는 너나 할것없이 정말 그런줄로 알고 부르고
쓰고있는 현실이 있으니 권력을 가진자들이 언제나 수시로 입맛에 맞게 역사를 왜곡하려고 한다.
이어받은 한국의 제도권 역사 권력에서 말하기를 반도의 호남은 '김제의 벽골제(堤) 이남 지역'을
말한다고 하고,호서는 '충북 제천의 의림지(池) 이서(以西)의 충청도 지역'으로 지정해설을 한다.
반도인의 창의적 해설이 아닌 모두 일제가 만들어 놓은 답습 해설을 한다.그런후 湖 도 없는 반도에서
호중(湖中) 지역도 제천 의림지 이서의 충청도 지역으로 지정해 호서와 중첩되는 어색함도 설명하지
못한체 무지막지로그렇다면 그런줄 알라고 한다.반도는 어디든 자연의 유수지 역할을 하는 湖가 없는
경동지괴 지형의 나라란 것을 완전히 무시한다.
여기다 기호(畿湖) 지방을 지정해설 하면서 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도의 합칭' 이다는 해설로 엿장수
맘대로의 호(湖)의 쓰임을 만들었다.무조건 湖가 있어야 호와 연관된 지역 특성의 별칭이 생겨날수
있다는 기본을 깡그리 완전 무시한다.지금 중국의 호남과 호북성이란 명칭이 동정호란 자연호수를
기준으로 동서남북에서 별칭과 이칭이 생겨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억지 해설을 하는 것이다.
자연과 연관된 특성의 별칭들은 강(江)을 중심으로 할때는 강동과 강서,강남과 강북,중요한(기준의)
산을 중심으로 할때는 산남과 산북,산동과 산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다는 별칭과 이명의 탄생 질서를
완전 무시한 제멋대로의 처사다.(사실 호남의 동정호와 강서의 파양호 둘레는 약 800 리 이상으로 각방향
별로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사는 종족들이 다를 정도다)
2, 호(湖)와 연관된 호남과 호서란 별칭을 사용 할려면 우선은 자연 스럽게 생겨난(나는) 호수(湖:Lake)
가 어디든 있어야 생겨날수 있는 지역 특성적 별칭이다.인위적으로 만든 하천의 제방인 제(堤)나 저수지의
지(池)란 지형물로는 湖와 연관된 지명은 근본적으로 생겨 날수가 없다.생겨 난다면 제남(堤南)이나
지서(池西)란 지역 특성의 별칭은 억지로 라도 생겨 날수는 있다.설사 강제로 입식을 한다해도 호수 남쪽의
호남을 호수의 그림자도 생길수 없는 지금의 전라도 지역을 호남으로 할수는 없다.
설사 강제로 이식 했으면 지금의 벽골제 이북인 전북 북부와 충남지역은 호북(湖北)으로 불러야 맞다.그런데
호서지방으로 불리는 것도 그렇지만 이곳을 기호지방으로 중첩되어 부른다는 어색한 사실이다.그러면 호남으로
불리는 지금의 전라도 지역도 기호지방의 일부가 되야 함이 맞다.자연적으로 생겨난 유수지로의 큰 호수가 없는
곳에 호와 연관된 호북을 만들기는 정말 곤란 했을 것이다.혹시나 대륙의 '동정호,태호,파양호,홍택호,고수호'
정도의 호수가 충남과 전북지역에 있기만 한다 면야 말할 필요도 없는 별칭과 이칭은 성립될수가 있다.
더하여 제천 의림지란 것은 일제때 만든 관게용 인공 저수지다.이를 기준으로 서쪽 지방인 충주,청주,대전과
이서 지방을 호서(湖西:호우)로 만들었다는 것은 억지를 넘어 코미디다.또 의림지 동쪽 지방을 호동(호좌)이라
하여 한말 유인석이 호좌 의병을 현 강원도 영월에서 창의(기병) 했다고 호좌의병이라 했다는 엉터리 해설을
접할때면,역사가들의 지식과 양심은 과연 있는가 란 의문이 들때가 많다.역사가란 사람들이 봉건 왕조시대에
설정된 좌(左)와 우(右)도 구분하지 못한데서야 말이 되는가란 질낮음의 여운이 가시지를 않는다.
제천의 의림지란 것의 실제도 15세기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池가 아닌 강하천 제방인 堤(의림제)로 쓰여지고,
현 의림지 축조 준공석(초석)에는 축조완공 년도가 일제의 대정(大正) 말년(대략 10년,1921년)으로 기록 되고
있다는 실질을 간과 해서는 곤란하다.이때는 일제가 반도에서 식량증산 정책을 쓰면서 권농을 장려할때 였고,
식량증산의 목적으로 일제가 해발230 미터의 고지대 제천의 모산동에 의림지를 축조 했다는 뜻이다.이런 성격
으로 일제때 축조된 저수지를 놓고 자연적 큰 호수로 강제하여 역사의 3한시대로 올라가는 소설을 쓰는가 하면
둘레 2킬로 미터 남짓한 아주 작은 의림지란 저수지를 호수로 둔갑시켜 이곳을 기준으로 호서와 호동(호좌),
호중이란 지역 특성과 상징의 별칭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역사를 능멸하는 행위인가?
3, 호수(湖水)를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호서와 호남이란 별칭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겨날수 있는 것이
호북(湖北)과 호동(호좌:湖左)도 동시에 만들어 져야 하는데 호수가 없는 지역에 급하게 호남을 만들어 놓다
보니 湖 기준의 호북과 호동이 만들어 질 곳이 없었다.아무리 궁리해도 만들어 질수 없었다.더 한심한 것은
19세기 말 호좌(호동) 의병이라는 호칭이 생겨날때 좌(左)가 '왼쪽' 이란 현 한자 사용의 뜻을 충실히 따라 역사의
호좌를 현재의 의미로 왼쪽인 호서(湖西)로 변칭을 해,한말의 호좌의병을 호서의병으로 해설하는 억지도
서슴치 않는다는 사실이다.역사해설의 깡패들이고 지방으로 갈 수록 돈많은 유지들의 입김으로 왜곡이 심하다.
즉 밥그릇 챙기기와 사업성 이해 타산에 따라 역사해설을 한다는 것이다.
기호(畿湖)라는 이칭및 별칭에 있어서도 畿 지역을 현 경기도로 억지 지정한다 해도 자연적인 湖의 근거없이
지금의 반도 충청도 지역을 湖 지역으로 총칭할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畿 지역에 대한 별칭도 경(京)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쓸수 있으며 수없이 많다.즉 기전(畿甸),근기(近畿),기중(畿中)이란 별칭들과 통용되는 것으로
고유성이나 특별성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