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지리산(智異山) 종주(縱走)
아주 오래전(1982년), 내가 30대 중반일 때 형님과 둘이 지리산을 1박 2일로 종주(縱走)했다.
지리산은 약간 비스듬히 동서로 길게 뻗쳐있는데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에 걸쳐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이곳은 워낙 광범위한 산악지역이다 보니 등산코스도 매우 다양한데 형님과 나는 가장 남서쪽 끝부분인 노고단(老姑壇/1507m)에서부터 주 등산로를 따라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1915.4m)까지 일주했다.
이 코스는 기본적으로 2박 3일 코스였는데 형님은 항상 사업에 바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지만, 교직에 있는 내가 방학으로 시간 여유가 있다고 했더니 함께 지리산을 종주하자고 한다.
나보다 5살 위인 형님은 키는 나와 비슷했지만(176cm) 체중은 5kg 정도 더 나갔고 매우 건강이 좋으셨는데 특히 걷는 데는 아무리 빨리, 아무리 멀리 걸어도 지칠 줄 모르는 건강한 분이셨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40대를 넘기지 못하고 자동차사고로 생을 마감한(49세) 나의 형님이시다.
형님과 나누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며 지리산 종주(縱走)에 대하여 기록으로 남겨본다.
1982년 8월 초, 형님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워 달려 한밤중 2~3시쯤 전라남도 구례역에 도착했다. 지리산의 맨 남쪽 자락에 있는 화엄사(華嚴寺)에서 출발하기로 하였기에 역에 도착하여 곧바로 택시를 타고 화엄사(華嚴寺)로 향했는데 캄캄한 산골짜기로 접어들더니 한없이 달린다.
갑자기 차를 멈추는데 차에서 내려 어둠 속을 살피니 담벼락이 보이는데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택시가 되돌아가자 완전 어둠 속, 사람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고 계곡의 물소리만 들린다.
할 수 없이 담장 밑에 가지고 간 텐트를 치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잠시 후 목탁소리가 들리며 히끄무레 날이 밝기에 텐트에서 나와 둘러봤더니 바로 조금 옆에 화엄사로 들어가는 커다란 정문이 있다.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화엄사 경내로 들어가 휘둘러 보았는데 이른 새벽이라 사람은 그림자도 없어 서둘러 라면을 끓여 속을 덥히고 형님과 나는 곧바로 화엄사를 나서서 뒷산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다시 산비탈로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2시간 정도 오르면 제법 넓은 언덕이 나타나는데 바로 노고단(老姑壇)이다.
노고단(老姑壇/1507m)은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峯/1915m)을 비롯하여 반야봉(般若鋒/1732m)과 함께 ‘지리산 3대 주봉(主峯)’으로 꼽히는 봉우리다.
‘노고단(老姑壇)’이라는 명칭은 ‘늙은 할미 제단’이라는 의미겠는데 유래를 살펴보면 도교(道敎)에서 모시는 국모신(國母神)을 통칭 ‘할미(할머니)’라 했고 모시는 제단을 ‘할미당’이라고도 불렀다는데 한자로 노고단(老姑壇)이 바로 ‘할미당’이라는 뜻이겠다.
뱀사골 산장 / 세석평전 / 이정표(종주 중간쯤) /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
노고단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텐트에서 등산객들이 일어나 아침을 지으려고 부산하다.
노고단 조금 높은 언덕 위에 노고단대피소 건물이 보여 가서 문을 두드렸더니 직원이 눈을 비비고 나온다.
직원에게 부탁하여 대피소로 들어가 떡국을 끓여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식사를 끝내고 서둘러 다시 등산로를 따라갔는데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연이어있어 오르고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최고봉 천왕봉을 향하여 가는 등산로인데 끝이 없는 산길의 연속이다.
노고단을 지나면 임걸령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 우리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피아골’이 있다.
한국전쟁(6.25) 당시 북한 패잔병과 공산주의 신봉자(빨치산)들이 함께 숨어들어 처절한 투쟁을 벌였던 곳이 이곳 피아골이다. 이곳을 지나 또다시 한없이 걷다 보니 화개재에 이르러 뱀사골이 나타난다.
뱀사골 산장에 들러 차를 한잔시켜 마시고는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걸었다. 피아골, 뱀사골 등 골짜기마다 이 고개를 넘나드는, 종주로가 아닌 보다 짧은 등산로도 있다. 다시 토끼봉, 형제봉 등 산길을 오르내리며 걷다 보니 날이 어스름해질 즈음 벽소령(碧宵嶺)에 도착했는데 시계를 보니 화엄사에서 이곳까지 꼭 12시간이 걸렸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나니 제법 어두워져서 텐트 안에서 라면을 끓이며 다리를 뻗고 앉았는데 다리고, 허리고, 어깨 등등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밤 10시쯤 되었을까 바깥에 나와 팔을 휘돌리고 다리를 주무르며 피로를 풀고 있는데 웬 젊은이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우리 곁에 다가오며 말은 건다. 몇 마디 주고받다가 어디서 잘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밤새워 천왕봉까지 가겠다고 한다. 산에 미친 등산광?
새벽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하는데 형님은 멀쩡하다지만 나는 온몸이 찌뿌둥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두어 시간쯤 허덕거리며 걷다 보니 세석평전이 펼쳐진다. 이곳은 원래 구상나무밭으로 이름난 곳이었는데 몇 그루 서 있는 구상나무는 거의 고목으로 앙상하게 서 있고 안개에 휩싸인 언덕 벌판은 썰렁해 보인다. 봄철이면 이곳이 진달래밭으로 유명하다고 하더니만 이제 한여름에 접어들었으니....
너무나 몸이 지친 때문이었을까 길옆 바위에 앉아 쉬다가 일어서서 내가 앞장을 섰더니 형님이 프하핫 웃으며 ‘야! 오던 길로 되돌아가냐?’ 한다. 정신을 차리고 봤더니 내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세석평전을 지나 다시 하염없이 산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거의 종착점, 천왕봉 바로 아래인 장터목 고개에 다다르게 된다. 훗날 내 딸이 대학 동기들과 지리산 종주가 아니고 남원에서 출발하여 백무동으로 올라와 이 장터목 고개를 넘어 경상남도 중산리로 내려가는 1일 코스였는데 총 8시간이 걸렸다던가...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형님과 나는 장터목에서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제법 가파른 천왕봉 마지막 코스를 오르는데 정말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이빨을 악물고 오르는데 다리를 들어 올릴 수가 없다. 보자기를 꺼내 다리를 묶고 그 보자기를 손으로 잡아 들며 다리를 옮겨 마침내 천왕봉(天王峯) 정상에 올랐다.
이 천왕봉의 높이가 1,915m로 우리나라(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다.
이제 지리산 종주가 끝났는데 내려가는 방법은 산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는 코스도 있지만 우리는 다시 장터목으로 되돌아 내려와서 북쪽 백무동 골짜기로 내려간 다음 남원(南原)으로 가는 경로를 택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오는데 장터목에서 백무동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도 엄청나게 가팔라서 쩔쩔매다시피 내려와야 했다.
마침내 산 아래 평지에 이르렀는데 저만치 100여m쯤 남원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형님이 시계를 보더니 출발시각이 다 되었다고 빨리 뛰어가잔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뛰어갈 능력이 되지 않는다. 다리를 묶은 끈을 들어 올리며 절뚝절뚝...
고맙게도 버스 기사는 우리를 바라보며 기다려주었다. 우리가 버스에 오르자 붕~ 버스가 출발한다.
시계를 보았더니 오늘도 이곳까지 도착이 꼭 12시간이 걸렸다.
어제도 12시간 산행, 오늘 또한 12시간 산행. 지리산 종주를 1박으로 끝냈으니 대단한 강행군이었다.
전북 남원에 도착하여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곯아떨어져 꿈 속을 헤맸는데, 눈을 뜨니 이미 아침 해가 밝았고 형님은 소리 없이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걸어보니 제법 걸을 만했다.
식사를 끝낸 후, 우리나라 춘향전(春香傳)의 발상지인 남원(南原)을 둘러보았다.
남원(南原) 관광의 백미(白眉)는 역시 춘향(春香)과 이몽룡(李夢龍)이 만나 사랑을 나누던 광한루(廣寒樓)인데 그곳을 둘러보고 춘향의 영정(影幀)이 걸려있는 사당(祠堂)을 둘러보는 행운도 있었다.
광한루(廣寒樓)는 원래 달 속에 있다는 전설의 누각(樓閣)인데 이곳 남원에 아담한 호수를 만들고 그 옆에 제법 크고 아름답게 정자각을 세우고 현판을 광한루라 붙였다.
춘향전(春香傳)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보면, 등장인물로 양반집 아들 이몽룡(李夢龍), 기생의 딸 성춘향(成春香), 이몽룡 하인 방자(房子), 춘향의 몸종 향단(香丹), 성춘향의 어머니 기생 월매(月梅), 못된 남원 사또였던 변(卞) 사또....
전북 남원 광한루 / 지리산 등산로 / 끝없이 이어지는 지리산 종주길
판소리 춘향가로 알려진 양반과 천민의 연애담 춘향전(春香傳)은 우리나라 고전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판소리 춘향가는 우리나라 판소리 5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에서 가장 문학적,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며,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다 부르는 완창 시간은 평균 7~8시간 정도로 판소리 5마당 중에서 가장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