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洛山寺)
201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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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낙산사는 신라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625~702)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동해에 면한 명산인 오봉산에 671년(문무왕 11)에 창건한 사찰로 낙산사라는 사찰명은 관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알려진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표적인 관음도량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사찰로 인정되어 2009년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었으며, 홍련암 및 의상대 주변 해안 일대가 독특하고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보유하고 있어 2007년 명승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창건 이래 여러 차례 걸쳐 화재와 전쟁 등으로 파괴와 중건이 계속되었는데, 858년(현안왕 2) 범일국사의 중창 이후 몽골군의 침입,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파괴된 것을 그때마다 재건하였다. 특히 2005년 4월 5일 양양지방에서 발생한 대형산불로 인해 보물 제479호 낙산사 동종과 원통보전을 비롯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었다. 2005년부터 2006년 발굴 조사를 통해 원통보전 일대에서 6차에 걸친 증. 개축이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조선 정조시대를 복원시기로 잡았으며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복원불사가 진행되었다.
현재 경내에는 칠층석탑(보물 제499호)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 진신사리를 봉안한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보물 제1723호), 홍예문 담장, 의상대, 홍련암, 등의 문화재를 비록하여 동해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해수관세음보살상, 7관음 과 1500관음을 모신 보타전, 의상기념관 등 많은 성보문화재가 남아있다. 2005년 화재 이후 국민들과 불자들의 정성을 모아 천년고찰 낙산사를 금곡 정념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중창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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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四天王門)
사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찰을 지키면서 사부대중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천왕을 모신 문이다. 3칸 규모로 내부에는 비파를 연주하는 동방 지국천왕, 장검을 들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 용을 잡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 보탑과 창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이 있다. 1914년 문의 중수와 사천왕상을 개금하였다. 1950년 6. 25 전쟁과 2005년 양양 산불릐 재난 속에서도 이 문과 사천왕상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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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일루(賓日樓)
빈일루는 동해의 일출을 맞이하는 누각이란 뜻으로, 사천왕문과 응향각 사이에 자리한 누각이다. 조선 중기 박종(1677~1750)의 기행문인 “동경유록”(東京遊錄)에 송월료(送月寮)와 함께 처음 빈일루라는 이름이 나온다. 만해 한용운의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事蹟)에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 두 번에 걸쳐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05년 산불로 훼손된 이후 발굴된 유구와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전면은 팔작지붕, 후면은 맞배지붕 형식의 누각을 세웠다. 2009년 10월 12일 낙성하였으며 누각의 일부 기둥은 지난 2005년 화마를 견딘 느티나무를 손질해서 세웠다. 현판은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 스님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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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銅鐘)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어 고향실 옆 종각에 보존되어 있었으나 2005년 4월 산불로 소실. 용해되어 2006년 10월에 복원하였다. 조선 시대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함으로써 중창이 시작된 것을 기리기 위해 1469년 예종(睿宗)의 명으로 주조되었다. 종명(鐘銘)에 제작 연원과 주조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크기는 전체높이 158㎝, 입지름 98㎝이다. 종 꼭대기 장식인 용뉴(龍鈕)에는 쌍용이 서로 뒤엉켜 머리를 반대로 두고 다리로 천판(天板)을 밝고 있는 모습이 용맹스럽게 묘사되었다. 종신(鐘身) 가운데 3줄의 횡대(橫帶)를 둘러 상하로 영분하였다. 종신 위쪽에는 연꽃잎 무늬의 띠(蓮辯紋帶)를 두르고 보살 입상 4구와 범자(梵字)를 양각하였다. 중신 아래쪽에는 장문의 명문을 양각하고 그 아래에 파도(波濤)무늬의 띠를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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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보전(圓通寶殿)
관세음보살님을 봉안한 낙산사의 금당으로 671년 의상대사가 홍련암 관음굴에서 21일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여의주, 수정염주와 함께 사찰의 건립 위치를 전해 받은 곳에 원통보전을 세웠다. 원통보전에 봉안된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은 고려시대 후반의 전통양식이며 강원도에서는 유례가 없는 건칠기법으로 조성된 불상이다. 2005년 양양산불로 전소되었으나 건칠관음보살좌상은 금곡 정념스님과 사부대중의 지혜와 원력으로 화마 속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으며, 현 전각은 2007년 11월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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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층 석탑(七層 石塔)
보물 제399호
의상대사가 처음 세울 때 3층이던 것을 1467년(세조 13)에 7층으로 만들어 낙산사의 보물인 수정염주(水晶念珠)와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봉안하였다고 전한다. 탑의 높이는 6.2m로 부분적으로 손상된 곳이 있으나 상륜까지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조선 시대 다층석탑의 전형적인 시대별 특징을 갖고 있어 보물로 지정된 석탑이다. 기단부에는 정방형 2단 지대석이 놓여 있는데, 윗면의 24판 겹연꽃 무늬가 특징이고, 탑신부는 각 층의 탑신석 아래 굄돌을 놓고 위에는 3단의 옥개받침을 올린 간략한 구조 형식이며, 상륜부는 노반 위에 청동 복발보륜 등을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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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암(紅蓮庵)
의상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가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붉은 연꽃 위의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암자로, 홍련암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676년(문무왕 16)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수차례 중건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전각은 2002년에 중건된 것으로 관음굴이 있는 해안가 절벽 위에 세워진, 흔치 않는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앞뒤의 지붕 형식이 다른 불전(佛殿)으로 전면은 팔작지붕, 배면은 맞배지붕 형식이다. 불전 내 바닥에 난 구멍의 유리를 통해 절벽 아래 관음굴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