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나를 동글이라고 부른다. 한참 잘 나갈 나이인 방년 18세. 또래에 맞게 나도 다른 친구
들처럼 놀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이 뺑뺑이 안경이 문제다. 내 엄마와 아빠는 시력
이 안 좋아서 늘 눈에 안경을 끼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 시력이 나에게 유전된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와 아빠를 원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니, 원망할 사람도, 미워할 사람도 이미 내 곁에서
떠난 지 오래다.
내가 어렸을 적, 교통사고로 엄마와 아빠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간신히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겨있어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엄마와 아빠를 원망한 적은 없다. 아니, 솔직히 주위에 나만 엄마와 아빠가 없다는 생각
에 혼자 많이 울기도 했었다. 하지만 미워한 적은 없었다. 난 마지막 순간에, 그 어렸을 적 시절에
마지막으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난 사진 속의 엄마와 아빠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있다. 넌 바
보야! 정말 바보야. 울보쟁이…. 울지 않겠다고,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
건만, 매번 이 사진을 바라보면 저절로 눈물이 새어나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또 다른 슬
픈 일까지 겹쳐 더욱 더 울고있는지 모른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나를 돌봐주신 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시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울고 있는 것일 지도.
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셔,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큰 아빠의 말에 의하면 여기 이 병
원에서 오랫동안 입원해 계셔야한다고 한다. 때문에 나는 많은 친구들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게 되
었다. 친구들이 많이 보고싶다.
큰 아빠네 집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이미 부여에 있는, 전에 살던 집도 팔아 넘긴지 오래다. 방
이 달랑 두 칸뿐인 집에 들어가 내가 누울 자리는 없었다. 다행히도 서울에는 예전에 헤어진 고향
친구 은숙이가 자취를 하고있었다. 은숙이는 정말 고맙게도 내 이런 사정을 묻지 않았다. 듣지 않
아도 충분히 다 알고있는 것이리라.
은숙이는 나를 자기 집에 들인 것에 대환영을 해주었다. 안 그래도 혼자 살기 심심했는데, 나랑
같이 살게 되어서 오히려 더 고맙다고 말하는 은숙이를 보며 펑펑 울었었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마음에 든다. 은숙이네 집은 부자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옛날 우리 동네의 논
마지기 반이 모두 은숙이네 것이었다. 나름대로 동네 사람들이 은숙이네를 많이 부러워했지만, 난
그들과는 다른 뜻으로 부러워했었다. 내가 늘 바라보는 은숙이네 가족은 항상 웃음이 가시지 않았
다. 어렸을 적 나도 저런 가족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 하느님께 아빠와 엄마를 되돌려달라는, 말
도 안 되는 기도를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나도 참 바보 같지.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고 했는데, 정말 그러면 어쩌지?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내 얼굴을 바라본다. 정말 황당하게도 거울 속에 비치는 나는 바보다. 뺑
뺑이 안경 밑으로 길게 늘어진 물줄기. 그 밑으로 더 내려가면 도톰한 내 입술이 미소를 짓고 있
다. 이런, 너 정말 이러다가 엉덩이에 뿔나면 어쩌려고 그래!
양쪽으로 세 줄기씩 꼬아 만든 새끼줄 머리가 불쑥 하늘을 향해있다. 이게 내 모습이다. 남에게
잘 띄지 않기 위해 만든 나만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머리카락이 너무 길
어, 그래도 안 보이는 눈이 더욱 안 보인다. 그렇다고 이 긴 머리카락을 자를 수는 없다. 할머니께
서 머리카락은 절대 잘라선 안 된다고 어렸을 적부터 매번 신신당부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유
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 뿐인 할머니의 부탁이니 들어드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집에는 지금 나 혼자다. 2시간 전, 막 내 짐 꾸러미를 들고 이 집에 도착했다. 집 열쇠는 이미 은
숙이에게 전해 받은 상태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와 놀라웠던 것은 짐짓 20평은 되어 보이는 큰집에
달랑 은숙이 혼자 산다는 것이다. 역시 부자는 다른가 보다. 나는 거진데 말이다.
내가 가져온 짐이라고 해봤자, 뭐 별로 많은 것도 아니다. 옷 몇 벌과 평소 생활용품 몇 개정도.
작은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로 적다. 나와는 다르게 은숙이는 가지고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집 구경을 하던 중, 한 방안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옷이 산더미만큼 쌓여있었다. 모두 은숙이 옷임
이 분명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3시. 1시간 후면 은숙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게 된다. 나는 몇 일은 더
있어야 새로운 학교로 전학가게 될 것 같다. 은숙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는 싶지만, 왠지 모를
눈치 때문에 그럴 순 없을 것 같다. 정 은숙이가 원하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은숙이는 내가 오기도 전에 내 방을 예쁘게 꾸며놨다. 정말 감동적이다. 눈물이 주룩주룩. 나를 위
해 적지 않은 돈을 사용한 듯 하다. 파란색 침대, 파란색 커튼, 파란색 알록달록 벽지, 화장대와
책상들까지 모두 다 파란색이다. 기지배, 내가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알아 가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새어나온다.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게 마냥 신기하고 또, 기쁘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짐을 이곳저곳에 잘 챙겨 넣는다. 내가 가져온 짐보다 이 방에 새로 놓여진 여
러 가지 물품들의 양이 더 많다.
고맙고, 왠지 미안한 감정에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빨래는 몽땅 세탁기가
빨아주고, 옷은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넣는다. 내가 평소에 집에서 즐겨 입는 몸빼바지를 입고 말
이다. 대충 여기저기 다 정리하고, 청소기를 한 번 돌렸더니 내가 다 반할 정도로 깨끗하다. 흐뭇
흐뭇.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도 이제 겨우 30분 밖이 지나지 않았다. 아직 저녁을 먹기는 이르지만, 찬
거리라도 사러가야겠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온통 물과 술밖에 없다. 학생이 벌써부터 술 먹으면
안 되는데.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문밖을 나선다.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햇빛이 쨍쨍하다. 벌써 여름인가 보
다.
나는 빠르게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은숙이네 집이 20층. 층마다 계단이 16개. 16곱하기20은? 320
이다. 나는 320개나 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게 더 손쉽지
만, 난 공포증이 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른다. 저번에 엘리베이터를 한 번 타고 무서워 죽을
뻔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심하게 구토를 했었지.
아무튼 난 그런 이유로 오늘도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많이 힘들다. 뭐, 차차 이 짓도 나아지겠지.
오랜만에 따스한 밥을 먹고 기뻐할 은숙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은숙이
오기 전에 빨리 갔다 와야지!
뭔 슈퍼마켓이 이리도 큰지, 까딱 잘못하다가는 길을 잃어버릴 것 같다. 나 어떡해! 그래도 살 건
빨리 사야지.
'음. 오늘의 주메뉴는 된장찌개! 맛있을 거야. 된장, 고추, 호박, 두부, 우렁이하고.. 이 정도면 될
거야.'
두 손 가득 내가 생각해놓은 찬거리가 가득하다. 무겁기보다는 나도 은숙이를 위해 뭔가 할 수 있
다는 생각에 마냥 좋을 뿐이다. 내 돈이 조금 나가지만 공짜로 집에서 사는데 이게 무슨 대순가.
이제 우렁이만 찾으면 되는구나. 우렁아, 우렁아, 어디 있니? 이 누나가 설마 너를 잡아먹으려고.
"이얏호!"
난데없이 들려오는 큰 기합소리. 그 소리가 나를 향해있다. 헐레벌떡 고개를 그쪽 방향으로 돌린
다. 그리고 두 눈에 보이는 건, 나를 향해 세차게 달려오는 작은 수레. 깜짝 놀라면 피할 정신도
없다는 게 정말인가 보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작은 수
레와 위에 타고있는 한 젊은 남자를 바라본다. 끝에서야 내지르는 비명 아닌 비명.
쿠당! 정확히 부딪친 것 같다. 아니, 정확하다. 부딪치자마자 엉덩방아를 찧고, 바로 땅에 머리를
헤딩했으니 말이다. 아프다. 정말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많이 아프다. 그나저나 내 찬거리는 어
디로 날아갔지? 눈을 굴려 주위를 훑어본다. 역시나 내 손에서 나가떨어진 찬거리들은 바닥에 이
상한 형태로 뭉개져 있고, 또.... 또?
"앗!"
바닥에 엎어져있는 이름 모를 인간은 분명 내 찬거리를 저렇게 만든 원인이다. 그렇지만 저쪽에서
는 자기를 이렇게 만든 원이니 나라고 생각할 텐데, 나 어떡해. 조심스레 무거운 발걸음을 들어
그를 향해 옮긴다. 주위로 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상관 않고 나는 계속해서 걷는다. 찰랑거리는 검
은 머리카락이 목 밑바닥에 흩어져있다. 짙은 눈썹과는 대조되게 얼굴 색은 티 하나 없이 새하얗
다. 눈 바로 밑에 푸른 그늘이 지어있는 것을 빼고 말이다.
"잘생겼네."
나도 모르게 생긋 미소짓는다. 그 말 그대로 잘생겼다. 그것 말고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별다른 감
정은 없다. 그나저나 이 난장판을 어떻게 다 처리하지? 잘하면 슈퍼마켓 아줌마한테 혼날 텐데….
그냥 이대로 도망가면 나쁜 기지배가 될 테고. 정말 나 어떡해!
"그래? 나 잘생겼어?"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 난데없이 들려오는 목소리. 정신을 잃은 줄 알았던 그 남자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네."
이, 이게 아닌데, 난 정말 어쩌면 좋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빨리 은숙이 오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되는데, 어쩌면 좋지.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그 남자는 자
리에서 벌떡 일어나 씨익 웃는다. 난 말없이 고개를 푹 수그린다.
"자!"
그가 손을 내민다. 처음에는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주려하는 행동인 줄 알았다. 내 눈앞에 나타난
배춧잎 5장. 다른 걸 생각하기보다는 처음 떠오는 것은 5만원이면 내 두 달치 용돈이다. 또 한 번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든다.
"자, 받으라고!"
의미 모를 시선에 나는 손가락으로 내 몸을 쿡쿡 찔러대며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 남자.
"죄, 죄송해요. 받을 수가 없네요."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내저으며 용기를 내어 말한다.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조심스레 눈을 치켜
떠올린다. 내 앞에 떨어져있는 배춧잎 5장. 그 남자는 벌써 어디론가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후, 한숨을 내쉬며 옷을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절로 눈이 손목시계에 닿아있다. 에엑!
벌써 3시 55분이야?
그 다음부터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바쁜 나머지 이성을 잃고 달렸었던 모양이다.
헐레벌떡 계단을 타고 장장 20층에 다다른다. 숨이 턱 위까지 차 오른다. 현관문 앞에 서서 연신
거친 숨을 내뱉는 나,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쓰러져서 자고싶다. 그래도
내 돈에 대한 집착력이 강하기는 했는지, 오른 손에 꽉 쥐어진 검은 봉지. 무게도 꽤 될 터인데,
나는 아직까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들고 있다. 무겁다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야 손에 질끈 쥐어져
있던 검은 봉지가 땅바닥에 떨어진다.
이제 찬거리도 다 사왔고, 음식만 만들면 되는 건가? 오늘 은숙이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줄 생각을
하자 흐뭇하다. 끊는 물에 된장을 푸고, 간을 맞춤 다음에 두부를 잘라서... 두부? 황급히 내 두 손
은 검은 봉지 안을 뒤진다.
"헛! 역시.. 나 어떡하지?"
뭉게, 뭉게, 뭉게구름. 호박에 깔려 두부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호박의 무게에 완전 뭉개져 버렸
다. 나 정말 어떡해!
뭐, 다시 나갔다올 수는 없으니 대충이나마 만들어야겠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찾는다. 어
디 갔지? 남은 한쪽 손마저 동원해 주머니 안을 샅샅이 휘젓는다. 없다. 열쇠가 없다. 어디 갔지?
열쇠야, 제발 나와 줘.
어디에 두고 온 지도 모르는 열쇠를 마냥 찾아 나설 수는 없다. 은숙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
나? 첫날부터 구박 좀 받겠군. 이그, 바보 동글아!
그만 주저앉아버린다.
쨍그랑! 이게 무슨 소릴까.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아니다. 내려다 본 곳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집 열쇠가 나를 보며 비웃고 있다. 꼭 그런 것만 같다. 만약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마냥 기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열쇠를 두 손에 꼭 쥐어 잡고 얼굴에 비벼댄다. 울고 있는 걸까?
아닐 거야. 에이, 설마 내가 울고있겠어? 이 강한 내가... 눈물 한 방울이 손등에 떨어진다. 나는
울고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울고있는 걸까? 이유는 모른다. 다만 기억에 없는 사진
속의 엄마와 아빠가 많이 보고싶다.
그때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린다. 은숙이네 집이다. 아니, 이제부터는 내 집이기도 하지. 빨리 전화
를 받아야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손이 덜덜 떨려 열쇠가 쉽게 구멍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전화벨
이 연속으로 5번이 울리고서야 나는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온다. 헐레벌떡 수화기를 들었지만, 들
려오는 소리는 뚜우, 뚜우! 한숨을 내쉬며 다시 내려놓는다. 은숙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건데, 뭔지 모르지만 엄청 궁금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옷을 갈아입으러 갈 때다. 또 다시 울리는 전화벨. 난 기다리기라도 했
다는 듯, 바로 뒤로 돌아선다. 쿠당! 다리가 엇갈려서 넘어졌다. 윽, 너무 아파. 전화벨은 계속해서
울린다. 손을 길게 뻗어 간신히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곧바로 들려오는 목소리. 은숙이다.
"아우, 귀따가워. 뭔 기지배 목소리가 그렇게 크냐?"
"은숙이구나. 집에 안 와?"
"지금 가는 중이야. 내 친구들 대빵 많이 가니까, 가서 다 소개시켜줄게!"
"어? 그래."
그게 은숙이와 나의 전화통화 내용의 전부다. 은숙이 친구들이 온다고 한다. 당연히 모두 모범생
이겠지? 은숙이는 공부도 잘하니까, 나쁜 친구들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 옷을 갈아입으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금세 또 넘어지고 만다. 이 주책바가지! 전
화벨이 또 울린다. 뭐야, 아직도 못한 말이 있는 거야? 당연히 은숙이겠지라는 생각에 전화를 받
는다. 뜻밖에도 수화기에서는 어느 남자애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구 짜증내는 말투.
"야, 임은숙! 너 죽고 싶냐? 같이 가자고 할 때는 언제고 혼자 집엘 가! 너 기다려. 금방 갈 테니
까. 죽었으!"
"저, 저..."
뚜우, 뚜우! 이게 뭔 소리지? 자기할말만 하고 끊어버린 누군지 모를 남자애. 은숙이를 알고있는
거 보니까, 친군가 보다. 뭐, 내가 누군지 모르니 관심 없다. 그나저나 은숙이가 오기 전에 어서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그래도 예쁘다 생각하는 옷을 골라 입는다. 아니, 골라 입을 것도 없다. 항
상 내가 외출복으로 입는 건 단 한 벌뿐이니까 말이다. 집 근처 길거리로 나가는 것은 외출이라
생각지 않는다. 못해도 가까운 시내는 나가야 외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옷을 입은 것은 단 두 번뿐이다. 할머니께서 나에게 선물 해 주신 것이기에 중요한 자리 이외
에는 이 옷을 입는 것은 피하고있다. 바로 오늘이 그 중요한 날이다. 나 동글이. 아, 백혜림 양이
은숙이네 집에 처음 들어온 날이다. 덤으로 은숙이 친구들까지 온다고 하질 않는가. 에구, 쪽팔려.
이런저런 고민과 일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어느새 시계 바늘은 5시를 가리키고 있다. 은숙이가
빨리 와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서도, 한편으론 아예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적지 않아 있
다. 괜히 나 때문에 은숙이가 쪽팔려해서는 안될 텐데 말이다. 그래도 착한 모범생 친구들일 테니
섭한 말은 하지 않겠지.
소파에 앉아 리모콘을 만지작만지작. 왜 이렇게 초조한지, 식은땀이 다 흐른다.
띵동! 초인종소리가 들려온다. 왜 이렇게 떨리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몸이 굳어버
린다. 곧 찰크락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현관문이 열린다. 맨 먼저 들어온 사람은 은숙이다. 씩씩
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온다.
첫댓글 재밌네요;;ㅋ
재미있네요~~
잘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