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이문형
소일(消日) 삼아 옥상에다 흙을 실어 올려 작은 텃밭을 만들고 상추, 부추, 고추 등을 심었다. 생기를 잃지 않도록 매일 물을 뿌려주기도 한다.
금년 같이 여름 가뭄이 극심할 때는 더욱 물주기에 소홀할 수가 없다.
그 무거운 흙을 아내와 함께 실어 나르다 보니 많이 옮기지도 못하고 또 흙의 두께도 깊지를 못한다.
아침에 물을 뿌려도 햇빛을 받으면 뿌린 물기는 곧 증발하고 흙은 메말라 보인다. 어쩌다 물 뿌리는 일을 깜빡할 때면 이들은 시들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애처롭게 서 있다.
그러나 가끔 돋아나는 야생초들은 그렇지 않다. 땅이 마르고 뜨거운 햇살이 쏟아져도 좀처럼 생기를 잃는 일이 드물다. 보이는 족족 이들을 뽑아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고개를 내미는 야생잡초들이 많다.
쇠비름, 토끼풀, 질경이, 민들레 같은 야생초들이 그렇다. 특히 달개비 같은 야생 잡초는 끈질긴 생명력과 번식력이 유달리 강하다.
내 어릴 적 할머니께서는 뒤뜰 텃밭에 나가 김도 메고, 야생 잡초를 뽑으면서 채소를 가꾸셨다. 상추, 시금치, 부추, 그리고 고추, 가지, 호박 등을 가꾸어 찬거리를 장만하셨다.
자급자족이었다. 이때 야생초들은 또 어쩌면 그리도 잘 자랐던가 싶다. 토양(土壤)이 비옥했던 탓일까. 채소에 거름을 많이 줘서일까.
텃밭 언덕에는 뽑아낸 야생초들이 수북이 쌓였다. 쌓인 잡초더미 속에서는 다시 뿌리를 내려 생존을 이어가는 잡초들이 많이 보였다.
전설 속에 나오는 새 불사조(不死鳥)가 있듯이 이들 잡초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불사초(不死草)라고나 할까.
잡초를 뽑다가 문득 한 송이 야생화처럼 살다 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고 갑자기 콧등이 시려 옴은 또 왜 그럴까.
현관문을 열고나서면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으로 포장된 소방도로가 나온다. 차도 다니고 사람들도 제법 다니는 길이다. 길 가장자리 틈새로는 야생 잡초들이 고개를 치켜세우고는 여기저기 당당하게 자라고 있다.
식물이 자라는데 필수적인요소가 흙과 습기다. 그러나 길섶에는 흙도 없고 물기도 없다. 오로지 콘크리트 틈새로 날아와 쌓인 흙먼지덩어리가 야생초들의 보금자리다. 여기서 싹을 틔우고 성장을 한다.
채소처럼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물을 뿌려주지 않아도 생명은 유지되고 성장을 지속하면서 종족을 무한 번식시켜가는 생명력이 참으로 신기하고 기이하다. 그리고 기특하고 갸륵해 보인다.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는 수모를 당해도 줄기가 꺾이는 큰 상처를 입어도 시들거나 죽지 않고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들이 이들 야생초들이다.
엄동설한 모진 추위 속에서도 잠시 움츠렸다가 해동과 함께 다시 싹을 틔우는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들에게 큰 감동과 불굴의 교훈을 느끼게 한다. 산에도 들에도 야산 언덕에도 야생초들은 수없이 나고 자란다.
하지만 아스콘으로 포장된 길섶이나 콘크리트 블록 사이에서 자라는 이들 이름 모를 수많은 야생초들은 험난하게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과거 수난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차라리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1900년대 초부터 선조들 중에는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 새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하여 고향산천을 등지고 황량한 땅 만주벌판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 땅 동복보지방의 라오닝성, 지린성, 하이롱장성 등 이른바 지금의 동북삼성 지방이다.
이들은 불모지 만주벌판을 개척하면서 새 삶이 터전을 마련하였다. 야생초처럼 끈질긴 생명력과 끈기로 고난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그 후손들을 우리는 조선족이라고 한다. 지금 그들은 동북삼성의 중국 땅 각지로 흩어져 살지만 어림으로 200여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 시대 구소련의 극동지역인 사할린으로 이주하여 살던 우리들 선조들은 스탈린의 강제추방령에 따라 역시 불모의 땅 중앙아시아지방, 허허로운 벌판으로 쫓겨나기도 하였다. 야생초도 생존하기 힘들다는 동토의 땅, 황량한 대지에서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온 그 후손들을 고려인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무려 50여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어로는 '카레예츠'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러시아에 20만 명, 우즈베키스탄에 20만 명, 카자흐스탄에 10만 명 등이다. 이들 모두가 1864년 경 빈곤과 기아에서 벗어나가 위하여 처음 연해주와 아무르지역으로 이주했던 우리들의 선조들이다.
재일교포, 재미교포 등 역시 생존을 위하여 야생초의 홀씨처럼 날라서 고향을 떠나서도 강인하게 살아가는 우리 민족이다.
조선조 말에는 일부 지배계급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각 지방에서는 도적의 무리들이 설치고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홍경래의 난이 그렇고, 동학의 난이 그렇다
임꺽정전 같은 문학작품들은 당시 일부 지배계급의 수탈과 수모를 당하던 백성들의 고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면서 야생초처럼 살던 백성들을 우리는 민초(民草)라고도 한다. 적절한 대비는 못 될른지 모르겠지만 덕망이 높거나 상위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유림(儒林)이니 한림(翰林)이니 혹은 거목(巨木)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스님들이 모여 사는 곳을 총림(叢林)이라 부르기도 한다. 초야에 묻혀 사는 백성들을 왜 민초라 하고 그 상위 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림이니 한림이니 하고 수풀 림(林) 자나 나무 목(木) 자가 붙었을까.
풀이 나무보다는 약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하위 개념에서일까. 풀은 밟아도 꺾어도 그 생명력이 끈질기지만 나무는 한 번 베고 나면 그 수명이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콘크리트 블록이나 아스콘의 틈새에도 당당하게 고개를 내밀고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는 풀, 야생초를 볼 때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온 우리네 선조들의 험난했던 과거의 삶을 보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텃밭에 물을 뿌렸다. 텃밭 귀퉁이에는 노란 민들레꽃 야생화 한 송이가 아침 햇살을 받아선지 현란(絢爛)하게 그리고 눈부시게 피어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15964357859DE802)
약력:수필문학으로 등단, 남강문학회원, 수필문학회회원
첫댓글 문형님
건강을 늘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도 많이 안좋아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 야생초
공감합니다
잘 읽었고 사모님과 함께 옥상에다 꾸민 정원
너무 행복해보입니다
안병남
제일 생명력이 강한 게 쇠비름 같아요
형님 흰꽃 피는 민들레가 우리나라 토종이라오 약효도 좋고 건강하세요 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