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온다
최광희 목사
2018 러시아 월드컵 첫 경기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개최국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는 무려 5대 0이라는 엄청난 골 차이로 러시아가 이겼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는 단연 데니스 체리세프였다.
선발출전도 하지 못하고 벤치를 지키고 있던 후보 선수 체리세프에게 뜻밖의 기회가 온 것은 전반전 23분이었다. 한참 드리볼을 하던 자국 선수 알란 자고예프가 갑자기 왼쪽 허벅지를 붙잡고 쓰러진 것이다. 그렇게 쓰러지는 자고예프를 보면서 박지성 해설위원은 햄스트링 부상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햄스트링(hamstring)이란 넓적다리 뒤 근육인데 흔히 ‘오금이 저리다’고 할 때의 그 오금이다. 햄스트링 부상이란 쉽게 말하면 햄스트링(hamstring)의 근육통인데 달리기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에서 가장 흔한 부상 중 하나라고 한다. 햄스트링이 부상을 당하면 2주 정도의 치료를 요하는데 자고예프 선수는 이번 월드컵에서는 더 이상 뛰지 못하게 되었으니 한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로서 참 안 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누가 부딪힌 것도 아니고 혼자 쓰러졌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누가 미안해할 수도 없고 다만 자고예프의 복이 여기까지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자고예프 선수가 쓰러진 자리에 데니스 체리세프가 교체 선수로 들어갔다. 시간상으로 아직 교체 타이밍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긴급하게 투입된 체리세프는 전반 43분, 전반전 종료를 2분 남긴 상황에서 두 사람의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수를 제치고 골을 넣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데니스 체리세프의 A매치 데뷔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체리세프의 감격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축구 전문가가 아닌 나에게도 체리세프라는 이름과 그 장면이 이렇게 인상적으로 각인된 사건이라면 축구 전문가들과 감독들의 눈에는 체리세프 선수가 얼마나 눈에 띄었을 것인가? 이런 체리세프 선수를 보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아하, 본인만 잘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오는구나.’ 어쩌면 벤치의 후보 선수로 90분 내내 경기만 지켜보다 끝날 수도 있던 체리세프에게 그렇게 갑자스러운 기회가 올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다. 체리세프의 이름이 잊혀질 만한 타이밍에 다시 한 번 결정적인 기회가 체리세프에게 왔다. 후반 45분이 모두 끝나고 추가 시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체리세프 선수는 다시 한 번 왼발 슈팅으로 사우디의 골망을 흔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체리세프는 러시아의 2번째 골과 4번째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것도 전반 43분과 후반 46분, 즉 각각 경기가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그러고도 러시아는 잠시 후에 매우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 5번째 골을 성공시켜 5대 0의 스코어로 경기를 끝냈지만 다른 어떤 선수보다 내 눈에 들어오는 선수는 오로지 데니스 체리세프라였다. 오늘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뿐 아니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전체에서 데니스 체리세프 선수가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체리세프가 두 번째 골을 넣었을 때 박지성 해설위원은 저 골은 월드컵 골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만한 골이라고 말했다. 저렇게 멋진 선수가 그냥 벤치에 앉아 있기만 했다면 어쩔 뻔 했을까? 체리세프가 투입되지 않았더라도 아마 러시아 팀이 이길 수는 있었겠지만 저렇게 놀라운 경기를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체리세프가 긴급하게 투입된 것도 놀라운 기회였지만 그렇게 들어온 후에 아무런 활약을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면 오늘 후에도 체리세프는 다시 후보 선수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체리세프는 자신에게 한번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정타를 날림으로 팀에게도 기여했고 자국민들에게도 한없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가 이기든 관심 없이 즐기자는 마음으로 TV를 보고 있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좀 더 조사를 해보았더니 그 동안 체리세프는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을 많이 당했다. 그러나 상황이 아무리 힘들게 돌아가더라도 축구 선수는 결국 골로 말한다. 그가 준비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찾아온 기회에 그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데니스 체리세프는 오늘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 스승은 나에게 매우 큰 소리로 두 번이나 이렇게 소리를 친 셈이다.
“본인만 준비되어 있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기회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 한번 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 실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잘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