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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속편의 주인공은?(2023년 10월 30일 월요일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사도행전 28:30-31).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사도들의 전도 과정을 기록한 자신의 책의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하지 않고 열어놓은 채 급히 펜을 놓고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은 의미 있는 결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땅 끝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누가는 사도행전의 후편을 엮어나갈 주역들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 복음 전파의 필요성이 얼마나 간절한지 파악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선을 더 넓히고 높여서 세계로 향해야 한다는 점에도 공감하십니까? 예전에 미국의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 곳곳의 도시로 꿈을 안고 떠났다고 합니다. 유학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콜카타와 같은 도시에 가서 20년 동안 그 나라의 문화를 익히고 자기가 배운 전공으로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서 그 나라와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20년 후에 그 사회를 선도하는 지도자가 되어 봉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말입니다.
바로 이런 꿈을 우리도 가지고 복음을 들고 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그 꿈을 위해 준비하겠습니다.’라고 결심합시다. 그래서 사도행전 후편의 주역이 됩시다. 주님이 부르시면 세계 어디라도 가겠다는 결심으로 오늘 우리 일터에서 일터사역자로 살아갑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제가 사도행전 속편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오늘 일터사역자로 살아가며 내일 타 문화권에서 일하게 되어도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겠습니다. (by 원용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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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열매를 기대하며 묵묵히!(2023년 10월 29일 주일)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언 22:29).
대학을 졸업한 두 사람이 한 백화점에 취업을 했는데 그 신입사원들에게 맡겨진 일이 엘리베이터 안내였습니다. 그 일에 불만을 품었던 한 신입사원은 결국 그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 사람이 처음에는 그냥 엘리베이터 안내를 성실하게 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다양한 고객들의 불만사항이나 호의적 반응에 대해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화점의 마케팅 전략에 필요한 좋은 정보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미국의 유명한 백화점 경영자가 된 J. C. 페니입니다. 그는 신입사원 시절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했던 산 경험이 자신의 일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요셉의 경우도 보디발 집의 노예가 된 것이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 불운이었지만 그때 재무 관리, 물자 관리, 인사 관리 등의 일을 한 것이 후일 총리로서 큰 나라를 다스리는데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이 왕 앞에 설 것이라는 잠언의 말씀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현재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딱 들고 그 일만 하면 직장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까? 혹시 못마땅하더라도 그 일을 하면서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연마하면 그것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될 수 있음을 꼭 기억합시다. 그것이 하나님이 현재 당신의 일을 통해 맺게 하시는 열매가 될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오늘 하루 제가 하는 일에 충실하게 하소서. 나중에 거둘 열매를 기대하며 노력할 수 있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능력을 부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유효 기간은
교회가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하는 기간 전체에 해당한다.
이것은 2천 년에 걸친 교회의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이다.
「이것이 성령님이다」
부흥은기도로 시작된다.
기도하는 마음은 부흥의 마음이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은 부흥의 보증이요,
부흥의 전조요, 부흥의 원천이다.
부흥은 기도로 시작되고 기도로 지속된다.
부흥이 제대로 끝나려면 기도로 끝나야 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
한번은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왔다"(눅 5:15).
그러나 주님은 그때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눅 5:16).
왜 그러셨을까?
지속적인 기도가 지속적인 봉사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독서큐티
오랜 헌신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 경우에도 우리에게는 하나님나라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헌신이 대가를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내려놓음큐니
사악한 욕망, 비참한 말로!(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창세기 34:22-23).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야곱이 에서와 20년 묵은 원한을 풀면서 감동적으로 해후한 후 세겜 지방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 추장 세겜에게 강간당했습니다. 세겜은 이후 디나를 깊이 사랑하게 되어 결혼해줄 것을 청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 일을 수치로 여기면서 그 땅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으면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짓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 집안의 요구대로 할례를 받기만 하면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이 자기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결국 그들은 비즈니스 확장의 꿈을 꾸었지만 그것은 한갓 욕심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를 받고 고통 받는 세겜 성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결국 그들이 의도했던 통혼과 부자가 되는 꿈은 무산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거짓말과 살인도 매우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보다 먼저 세겜 성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비즈니스의 확장 계획은 강간이라고 하는 죄악의 토대 위에서 모색된 것이었습니다.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비즈니스의 꿈은 이렇게 슬픈 최후로 마감하고 맙니다. 성공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그 과정을 우리도 늘 자문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사악하게 편법을 쓰는 사람들의 못된 의도를 무력하게 하소서. 선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성공하여 세상에 공의가 넘치게 인도해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나, 나, 나만 위해 사는가?(2023년 10월 27일 금요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누가복음 12:19).
교만은 자기 자랑을 많이 하고 허풍이 심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부자 농부의 잘못은 자기 밖에는 더 생각하지 못하는 태도였습니다. 이기적 태도는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그가 하는 말 가운데는 “나”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내 곳간, 내 모든 곡식, 내 영혼, 내가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는 등 그가 얻은 곡식을 온통 자기를 위해서만 쓰려고 합니다.
이 사람에 대해 예수님은 지적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21절)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중요하고 그 관계에서 우리의 신앙도 출발하지만 자신만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이나 이웃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당연한 의무와도 같기 때문입니다(눅 10:27).
부자 농부는 자신만 생각한 것은 아니고 자신의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그랬을까요?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자신의 가족뿐인 삶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오늘 밤에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2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내가 무엇 때문에 일하고 살아가는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봅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세상사의 어떤 다른 것보다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한 자가 되게 하여주소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가족과 이웃과 세상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네게 무엇을 주랴” 물으신다면…(2023년 10월 26일 목요일)
그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역대하 1:7).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릴 때 하나님이 그의 꿈에 나타나 질문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그 다음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이 다 주신다는 뜻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솔로몬은 이 때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를 기뻐하신 이유를 직접 말씀하십니다.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11절)다고 말입니다. 결국 솔로몬은 자신에게 맡겨진 직업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능력을 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지식은 물론이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덤으로 듬뿍 주셨습니다(12절). 어떤 다른 왕들이 누려보지 못한 평화도 허락해주셨습니다.
오늘 만약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하셨던 질문을 우리에게 하신다면 얼마나 가슴이 설렐까요? 헛된 것은 아니지만 그 상황을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더 현명한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대답을 미리 준비하는 겁니다. 평생 직업을 설계하면서 과연 어떤 자기계발 기도를 해야 할지 기도 제목을 적어보면 됩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을 재판하는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 우리도 무엇을 구할 것인지 적어보며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솔로몬을 기뻐하신 것처럼 틀림없이 칭찬하실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솔로몬처럼 저도 저의 일을 제대로 잘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주소서. 부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기도의 응답으로 세상을 복되게!(2023년 10월 25일 수요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1-12).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응답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9-10절)라고 반문하시며 악한 자로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늘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당연히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십니다(11절).
좋은 것을 달라는 자식에게 나쁘고 해로운 것을 줄 부모가 없다는 인륜(人倫)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좋은 것을 그대로 받는다는 당위성의 근거를 제공해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좋은 것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틀림없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교훈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니 감사하라는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12절). 이 의외의 결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은 좋은 것을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라는 뜻으로 읽어보면 어떨까요? 좋은 것을 구합시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가 복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세상을 이롭게 할만한 ‘좋은 것’을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구하겠습니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세상을 복되게 할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일터에서 겪는 고통의 의미(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2-4).
직장에서 크게 잘못한 것도 없이 고통을 당하면 억울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가진 신앙 때문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할 때는 주님께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필연적이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면 고통에 대해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 있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소망하며 삽니다. 성도가 누리는 삶의 풍성함은 바로 이 소망이 얼마나 확실한가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사람들의 신앙 인격에 따라 커지고 신앙 인격이란 삶 속에서 얼마나 인내를 잘했는가에 비례해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내는 환난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환난은 영광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직장에서 고통을 당할 때 당장은 짜증도 나고 화가 치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결국 삶의 풍성함을 이루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하면 달리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옛말에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고통을 이겨냅시다. 그래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비결을 배워봅시다. 이런 인생의 묘미를 아는 사람을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고통 받을 때 고통 그 자체만이 아니라 고통의 근본적인 이유를 깨닫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by 방
지위보다 중요한 영향력!(2023년 10월 23일 월요일)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열왕기하 5:3).
리더십의 핵심은 ‘영향력’이라는 점이 자주 강조되고 있습니다. 직장이나 한 조직에서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위에 비해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위가 높지 않더라도 이렇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주목 받습니다. 이 영향력을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위와 무관한 리더십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아람 나라의 유력한 지도자였고 이스라엘과 전쟁하며 포로로 잡아온 소녀는 리더십의 관점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불치병이 고침 받도록 영향력을 미친 것을 따지면 소녀가 더욱 큰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영향력을 리더십이라고 본다면 이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우선 소녀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주인이 한센병으로 고통 받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영향력을 미치는 리더십의 첫 번째 요인입니다. 두 번째 요인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평소에 신뢰감을 준 것입니다. 소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나아만의 한센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믿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아마도 그 집안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소녀였지만 평소에 그 집안사람들에게 신뢰받을만하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위에 상관없이 영향력 있는 리더십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평소에 우리 일터에서 말과 행동으로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일터에서 저의 지위보다 더 의미 있는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성공한 사람들에게 배울 점(2023년 10월 22일 주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린도전서 9:24-25).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그 금메달을 얻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게임을 한 것이나 또 금메달을 위해 뼈를 깎는 훈련을 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금메달을 목에 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경쟁자들이 별로 없는 운 좋은 대진표였다거나 그 날의 컨디션이 좋아 경기를 잘했을 수도 있지만 일단 금메달을 딴 사람은 메달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서 계속 노력해온 점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인생의 성공이나 일터에서 승진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운이 좋아서 남들보다 별로 수고한 것도 없는데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승진도 어렵잖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예외를 제외한다면,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면 반드시 성공의 요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으며 그 과정에 자신을 절제하고 훈련했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을 험담한다면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의 달음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을 해야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배울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을 추구하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염려 대신 하나님을 신뢰하라!(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태복음 6:27).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현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돈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먹을 것에 관한 문제로 새를, 의복에 관한 문제로 백합화를 예로 드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에 대해 말씀하면서 염려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이 말씀의 뜻은 염려하여 사람의 키를 더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한 이렇게도 읽힐 수 있습니다. “누가 염려함으로 그 목숨을 한 시간이라도 더할 수 있느냐?”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고민하면서 노력합니다.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25절) 염려거리 앞에서도 우리는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선순위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의식주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염려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고 날마다 그 날에 충실하라고 하십니다(34절). 염려는 종교적 행위입니다.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하지만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주시어 염려 대신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인생을 살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
상대의 장점이 치명적 패착이 되는 은혜 (2023년 10월 20일 금요일)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땅과 공중 사이로 빠져나간지라(사무엘하 18:9).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물리치고 승리한 또 하나의 요인이 있습니다. 상대의 장점이 오히려 치명적 패착이 되어 은혜를 얻는 일종의 어부지리입니다. 다윗 왕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전쟁할 때 압살롬이 수풀에서 노새를 타고 전투를 하다가 큰 상수리나무 가지에 머리가 걸렸습니다. 압살롬의 몸은 나무에 매달리고 노새는 빠져나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집단 창 세례를 받고 찔려 죽었습니다.
압살롬에게는 머리카락이 장점이고 자랑이었는데 그는 머리카락 때문에 상수리나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일 년에 한 차례만 잘랐고 평소에는 길게 유지하며 치장했습니다. 압살롬의 평생 자랑거리가 치명적 패착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의 승리도 이런 은혜로 인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행운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 세렌디피티, 우연한 것 같으나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는 은혜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결국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이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지만 전쟁의 승패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압살롬은 전쟁터에서 쓸데없는 치장으로 강점을 약점으로 만들었고 결국 그것이 패착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잘 이해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승리를 모색합니다. 잠언 21장 31절이 말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승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세상 속 전투의 삶에서 믿음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by 원용일 목사)
내 사람이 잘하고 남의 사람은 못하는 인덕(2023년 10월 19일 목요일)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사무엘하 17:23).
압살롬의 반정을 제압하고 다윗이 승리한 요인 중 하나는 인복(人福) 혹은 인덕(人德)입니다. 능력만 있다고 승리하는 것은 아니고 결국 사람이 결정적으로 승부를 좌우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인복은 두 경우였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후새와 전령으로 남겨둔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은 다윗이 압살롬의 진영에 심어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자기 사람들인 그들이 잘해주었습니다. 후새는 이미지가 눈에 선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압살롬의 마음을 얻었고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도 전령의 역할을 잘했습니다. 이런 인복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히도벨은 본래 다윗의 모사였으나(삼상 15:12) 압살롬 편에 서서 다윗 왕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덕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적이 된 사람이 잘 안되고 못해주는 은혜를 얻습니다. 다윗은 전직 모사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진영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삼상 15:31). 결국 하나님이 이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압살롬이 처음에는 아히도벨의 탁월한 모략에 호감을 표했지만 결국 후새의 설득에 공감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결국 아히도벨은 낙향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내 사람이 잘하고 남의 사람이 잘 못하는 인복으로 결국 다윗이 승리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도 인복이 많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람직한 인덕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나이 들어도 녹슬지 않는 능력(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또 후새가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사무엘하 17:8).
압살롬의 반정을 겪는 다윗 왕이 큰 위기 가운데서 결국 승리하는데, 그 승리의 원동력은 바로 그의 능력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평생 전쟁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물맷돌을 다섯 개 가지고 나가면서 거인 다섯 명을 다 상대하려 했던 것이 그의 평생 비전인 전쟁을 통한 이스라엘 국가 건설의 목표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다윗의 탁월한 능력은 평생의 비전을 통해 형성된 전문성이었습니다.
후새라는 다윗의 친구이자 압살롬의 진영에 트로이의 목마처럼 남겨둔 모사가 평가하는 말 속에 다윗이 평생 지속했던 능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압살롬에게 후새가 모략을 말하면서 다윗과 추종자들이 용사이고 격분해 있으며 전쟁에 익숙해서 아히도벨이 제안한 기습작전을 이미 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압살롬과 신하들이 수긍했다고 합니다(삼하 17:14). 그들도 인정한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능력이 나이가 들어서도 녹슬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진짜 전문성은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 가치와 명성이 허물어지지 않는 것을 통해 입증됩니다. 우리도 전문성을 탁월하게 갈고 닦아야 합니다. 젊은 날에 더욱 힘쓰고 노력해서 탁월한 전문성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탁월한 능력으로 얻은 승리가 가치 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직업인으로서 능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줄만큼 탁월한 능력으로 무장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일을 통한 이웃 사랑(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누가복음 10:33-34).
당신은 왜 일하십니까? 돈을 버는 것도 일의 목적들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가 일하는 목적에는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세상을 위한 공공선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 여행자였습니다.
그는 여행하는 중이었는데 사마리아인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이었다면 업무와 관계된 여행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더구나 강도 만난 자를 계속 돌볼 수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바쁜 여행길에서도 어려움 겪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성전 관련 업무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었으나 강도 만난 자 돌보기를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시간과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돌보기 힘들었을 때는 비용을 부담하면서 주막 주인에게 돌봐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35절).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는 것이 직업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나 자신이나 나의 가족만을 부양하는 것이 직업의 유일한 목적은 아닙니다. 소외된 이웃을 “불쌍히” 여기면서(33절) 도우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업의 은사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웃을 돕는 직업의 목적을 꼭 기억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이 주신 저의 직업적 은사로 이웃을 도울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어려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세상의 고민에 관심 가지고 있습니까?(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에게 물어 이르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 하니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알리매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다니엘 2:15-1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2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신입사원’으로 궁궐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왕이 꿈을 꾸고 신하들에게 그 꿈의 내용까지 밝히고 해몽까지 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거부하는 신하들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 때 다니엘의 앞을 왕의 장관 아리옥이 지나갔는데 다니엘이 질문했습니다.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
자초지종을 아리옥 장관을 통해 들은 다니엘은 왕의 꿈과 해석을 보이겠다고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 신하들을 모두 죽일 심산은 아니었고 일벌백계를 하려고 했다고 추론한다면 정치적 희생양을 다니엘이 자처한 것입니다. 만약 그가 문제를 풀지 못하면 다니엘만 처형될 가능성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힘든 문제를 가지고 다니엘은 집으로 가서 기도 동지들인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와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17-19절).
결국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다니엘은 자신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바벨론 궁의 모든 신하들을 구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는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믿음의 동지들과 함께 풀어내 보십시오. 하나님이 놀라운 응답을 해주실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세상의 고민이 무엇인가, 의문을 가지고 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주님이 해답을 알려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돈 벌기도 직업의 목적이다!(2023년 10월 15일 주일)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3-14).
외국에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 한 사업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외국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교를 하기 위해서 투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혹시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하는 것은 선교를 위해 사업하는 것보다 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어떤 사람이 한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장사해서 돈을 벌겠다고 결심한 예를 들면서 돈 버는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 삶의 의미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하거나 직장에 나가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장사를 한다면서 제대로 이익을 남기지 못하거나 열심히 일한다면서 경제적인 책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면(부도를 내거나 빚은 지는 등) 오히려 더욱 문제입니다.
크리스천들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다만 우리는 돈만을 위해서 일하지는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내가 번 돈이니까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자세도 역시 잘못입니다. 우리의 직업이 가진 고유한 경제적 의미에 충실한 크리스천 직업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의 직업이 가진 고유한 경제적 의미, 즉 이익의 창출과 경제적 필요의 충족 또한 중요한 직업의 의미임을 깨닫게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dkXU47-zKm4?si=ahgclTY6FRppnRnc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나?(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태복음 14:31-32).
예수님이 제자들을 재촉해 갈릴리 호수를 건너도록 한 후에 홀로 기도하러 산에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제자들이 풍랑으로 인해 고통 받던 긴 밤이 지나고 새벽녘에 바다 위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혼비백산했지만 그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자기도 예수님처럼 바다 위를 걷겠다고 했고 예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물 위를 걷는가 싶더니 바람이 무서워 빠졌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면 만약 베드로가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처럼 계속해서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 얼마간은 베드로도 그렇게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속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도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지는 것도 풍랑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약한 모습이나 환경의 어려움만을 볼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우리를 꾸중하십니다. ‘내가 곁에 있는데 풍랑 때문에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을 가지고 세상 풍파를 이겨냅시다. 의심하지 맙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의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주소서. 그래서 세상의 풍파와 격랑을 이겨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다음 세대까지 미래를 보라!(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창세기 49:1).
젊은 사람들은 아직 미래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가 점점 짧아진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나이가 들어도 조금씩 미래가 연장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일터에서 은퇴하고도 2,30년 즉 한 세대를 더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미래를 생각하면서 불안해하고 걱정부터 하곤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소망을 가지고 준비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에게는 이 땅의 미래와 함께 준비해야 할 미래가 또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미래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누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기대해야 합니다. 이 미래의 소망을 자신이 확인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미래는 바로 후손들의 삶입니다. 야곱은 세상을 떠나면서 후손들을 통한 미래의 소망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믿음을 가진 우리는 단순히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나누어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소망과 바람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생애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세대를 통해서도 계속 이어질 기대되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노후라는 미래, 영원한 하나님 나라라는 미래를 잘 준비하게 하소서. 또한 중요한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나누면 더 효과적인 위임(2023년 10월 12일 목요일)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어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민수기 11:12).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고기를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만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모세는 너무나 힘든 지도자의 심경을 하나님께 토로했습니다.
모세의 중압감이 얼마나 컸는지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14절)라고 호소했습니다. 심지어 모세는 그 고통을 보지 않도록 하나님께 자기를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15절). 이 때 하나님은 칠십 인의 장로들을 모아서 회막 앞에 서라고 하여 그들에게도 짐을 나누어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강림하시어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시어 백성들의 짐을 나누어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17절).
결국 하나님은 책임을 분산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일을 할 때에도 한 사람이 지는 부담을 나눠지는 위임을 통해 팀워크를 키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혹시 당신도 모세처럼 너무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탈진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나눌 수 있다면 책임을 나눠지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입니다. 또한 모세가 경험한 이 인상적인 역할 분담은 한 사람이 섬겨야 할 영역인 직장과 교회, 가정 등의 일들을 적절하게 나누고 조정하는 개인적 위임에 대해서도 교훈을 줍니다.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역할 분담을 시도해봅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직장의 일이나 교회의 일이나, 함께 하는 사람들을 찾겠습니다. 책임을 적절히 분담하며 효과적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지혜를 허락해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기도하며 일하는 사람(2023년 10월 11일 수요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느헤미야 4:9).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왕의 신임받는 측근 신하의 지위를 포기하고 유대 총독으로 자원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시작하였는데 사마리아의 통치자 산발랏과 그의 추종자들이 집요하게 방해했습니다. 성벽의 재건이 이루어질 듯하자 그들은 아마도 기습 공격을 통해서 공사를 방해하려고 했던 듯합니다(8절).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았던 느헤미야가 두 가지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수들의 기습으로 인해 성벽의 건축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또한 파수꾼을 두어서 밤낮으로 방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중의 조치를 취하면서 그들은 일했습니다. 공사 인원 중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경계를 서는 지혜로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13, 16절). 일이 더딜지는 몰라도 이렇게 안전하게 대비하며 일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일을 지혜롭게 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의 지혜를 주십니다. 아이디어를 주시고 일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일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일합시다. 기도만 하고 일은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느헤미야가 모범을 보여준 대로 일도 치밀하게 잘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의 일터에서 생기는 문제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풀어낼 수 있게 하소서. 기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외모보다 인격과 능력이 중요하다!(2023년 10월 10일 화요일)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규 끝을 만진지라(에스더 4:16, 5:2).
외모를 중시하는 것은 인생사나 직장생활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외모가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결국은 그 사람의 능력,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그 사람의 인격이 업무 수행에 있어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에스더는 외모가 아름다운 덕분에 왕후가 되었으며 왕후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 민족을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민족을 구하는 일에 그녀의 미모가 중요한 요소는 되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에스더의 외모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났습니까? 오히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결심하면서 나섰던 믿음의 용기와 왕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지혜가 민족을 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요즘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외모에 관심을 가집니다. 더 나은 외모를 통해 자신감을 가지고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된다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능력입니다. 당신은 무엇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외모보다 더욱 중요한 내면적 아름다움과 탁월한 업무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너희가 어찌하여 스스로 높이느냐?(2023년 10월 9일 월요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민수기 16: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범죄하여 광야생활을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던 것 같습니다. 레위 지파인 고라와 르우벤 지파인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규합하여 모세를 반역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분수를 지나쳤다고 하면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이 질문은 특히 ‘평신도 신학’을 근거로 생각할 때 합당해 보입니다. 사제와 평신도가 모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는 만인제사장설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본래 거룩하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데 유독 모세와 아론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가운데서 높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직자가 따로 있느냐는 반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가진 생각의 근본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권력과 지위를 시샘하고 질투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스스로 높인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자기들이 그 자리에 오르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교만의 씨앗이 늘 존재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이면서도 정치적인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결국 그 반역자들은 하나님이 내리신 지진을 통해 징벌을 받았습니다.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늘 겸손함을 잃지 맙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겸손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면서 일터에서 저의 사명과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by 원용일 목사)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으라!(2023년 10월 8일 주일)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 3:4-5).
종교가 없는 사람도 예배당이나 성당에 들어가면 무언가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장소가 거룩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전에 한 외국 도시에서 과거에 성당이었던 곳이 식당으로, 심지어 술집으로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실제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에 간다고 거룩이 보장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제사 드리러 성전에 오는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면서 성전의 마당을 아무리 많이 밟아도 거룩해지지 않는다고 책망했습니다(사 1:11-13).
모세가 양을 치던 때 호렙 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고 가까이 갔을 때 하나님은 모세가 선 땅이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모세가 올라갔던 호렙 산은 여느 산과 다를 것이 없는 흙과 돌, 마른 풀들이 뒹굴고 가축들의 배설물들이 널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거룩한 곳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하는 우리의 일터도, 우리가 사는 집도, 버스나 지하철도 거룩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그곳이 거룩하다고 신고 있던 신발을 벗지는 않아되 됩니다. 대신 세속의 때가 묻은 우리 마음의 신발을 벗을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가 선 곳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기도하면서 우리 마음의 때 묻은 신발을 벗읍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이 계신 이 땅 어느 곳도 거룩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거룩한 곳에서 신을 벗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게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삶을 통해 복음을 변호하라!(2023년 10월 7일 토요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사도행전 2:15).
오늘 우리 시대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무시하기도 하고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와 크리스천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변호해서 입증할 필요를 느낍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들을 비난하는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제대로 변호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이 방언을 하자 사람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해 술주정을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반박했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제 삼시(오전 9시)입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술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유대인들은 술을 잔치 음식으로 마셨으며 대개 저녁 시간에 마시지 이른 시간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을 향해 쏟아놓는 비방이 얼마나 악의에 찬 것인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야, 쟤네들 아마 밤새 술 마시고 취해서 저러는 걸 거야.’라고 비난하며 어제 마신 술이 덜 깬 사람이 있나 없나 혈안이 되어서 찾았을 것 같습니다.
이런 비난에 대해서 바르게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확실히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흥분할 필요도 없습니다.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목소리도 떨리지 않고, 그건 이렇고 이건 저렇다고 확실하게 근거를 제시하고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떳떳한 삶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변호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크리스천답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떳떳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by 원용일 목사)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란?(2023년 10월 6일 금요일)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편 118:8-9)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무슨 일을 할 때 사람들의 힘을 빌려서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직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법적인 자문을 얻기 위해서 변호사를 찾거나 질병에 대해 진단받기 위해 의사를 찾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고 높은 사람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정부패가 척결되지 못합니다.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있으니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가 생길 때 무조건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에게 도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신 사람을 신뢰해서 사람의 도움을 먼저 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상숭배의 다른 모습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피할 길을 찾아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하거나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는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그분들의 도움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신뢰는 그들을 사용하신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시더라도 우리가 그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단호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일하고 살아가는 믿음을 주소서. 뭔가 손을 써서 사람을 의지하고픈 생각을 포기하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마음은 받더라도 그 일은 못 한다!(2023년 10월 5일 목요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허리에서 나올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역대하 6:8-9).
조직 속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실행력이 중요한 능력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그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만 먹고 실행하지 않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자기가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짓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런 다윗을 치하하면서 그런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좋다고 인정하셨다는 점입니다. 다윗이 마음먹은 것을 무모하게 시행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이 하도록 잘 준비해주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던 것입니다.
직장에서 마음먹은 일을 어떻게든 실현하는 사람은 추진력이 강점이라고 평가를 받습니다.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먹은 일을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기를 원하십니다. 열정이나 욕심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결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일 수 있습니다.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법을 배우도록 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민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무모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단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리더라면 다윗처럼 사람들을 세우라!(2023년 10월 4일 수요일)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사무엘상 22:2상).
진정한 리더는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랫사람을 탓하고 남의 탓, 환경 탓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박해를 피해 망명길에 올랐을 때 소문을 듣고 모여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울 정권 밑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들과 경제적으로 파산한 자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다윗에게 몰려온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었으나 실제로 다윗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차기 왕이라는 보증을 내세워서라도 유력한 실력자들을 규합하는 것이 당시 다윗에게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오합지졸’을 모아서 훈련하며 지혜롭게 통솔하여 자신의 평생 동지로 삼았습니다.
뒷날 이스라엘 왕국의 요직에 오르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었습니다. 군대장관 요압, 제사장 아비멜렉 등이 바로 그들이었고(대상 18:16) 다윗 정부 내내 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용사들은 대부분 다윗과 함께 망명 시절을 보내며 동고동락한 사람들이었습니다(삼하 23:8-39). 이같이 훌륭한 리더는 무력하고 무능한 사람들이라도 적절한 훈련과 통솔을 통해 꼭 필요한 사람들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이야말로 리더십입니다. 당신은 사람들을 훈련시켜 성장하게 하는 리더입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사람을 탓하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도 멋진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어갈 수 있는 다윗의 리더십을 제게도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일할 수 있는 특권, 축복!(2023년 10월 3일 화요일)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데살로니가전서 2:9).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주의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자이기 때문에 교회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당시 예루살렘교회의 재정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나 데살로니가에서는 자신이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행 20:35). 바울은 일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몸소 일한 것입니다.
종종 주변에서 일을 하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거룩하게 사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신체적 제한이나 특별한 상황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시하는 것은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일하는 것은 사람됨의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돈의 필요가 생기면 당연히 일을 통해서 그 필요를 채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혹시 일하지 않고 누군가의 신세를 지고 있다면 당장 일을 시작하십시오. 그런 기간이 일시적일 수는 있으나 오래 남에게 의지하기만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귀한 사실을 명심하면서 일합시다.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의 귀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고백하는 바울에게 일의 목적을 배웁시다. 일이 곧 특권과 축복임에 감사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땀 흘려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임을 깨닫게 하소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게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세상을 위해 기도하라! (2023년 10월 2일 월요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예레미야 29:7).
미국에 사는 우리 교포들 중에는 미국에 살지만 한국 사람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언어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외국에 살게 되었으면 그 나라에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 군대에게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해서 살게 된 백성들이 심리적으로 힘들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나라에서 살게 된 것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사는 것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집도 짓고 텃밭도 만들고 결혼해서 가정도 이루고 자녀들도 결혼해서 번성하라고 했습니다(5-6절). 그러면서 매우 중요한 부탁을 했습니다. 잡혀가게 될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 성읍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해외 교포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을 무시하기도 하고 심지어 대적하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사는 곳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제국의 왕들과 고관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딤전 2:2). 거의 비슷한 이유로 예레미야는 세상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나라나 사회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곳 일터도, 오너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혹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모른다고 해도, 그곳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제가 일하는 일터와 우리 사회와 나라와 세계의 샬롬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의 평안으로 우리도 평안하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 (2023년 10월 1일 주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브리서 11:1-2, 38상).
히브리서 11장은 우리가 흔히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영웅들의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직업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직업의 묘사가 불확실한 사람들을 빼더라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라합, 기드온, 다윗 등 대부분 직업인들이었습니다. 모세와 사무엘 선지자 정도만 이른바 전임사역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사사로 평생 살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중직 목회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 중에는 순수한 의미의 전임사역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서 직업인으로 살던 우리 신앙 선배들에게 믿음의 ‘훈장’을 달아주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믿음이 역동적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세상이라는 삶의 현장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을 보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믿음을 제대로 드러내기 힘든 곳이지만 반면 믿음을 드러내기 좋은 곳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무대로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일하는 당신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입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일터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크리스천의 사명을 다하는 멋진 일터사역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투자하라! (2023년 9월 30일 토요일)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에베소서 5:16-17).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바쁘다고 하면서도 많은 시간을 쓸데없이 보내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쉬지 않고 일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을 그저 무의미하게 보낸다면 낭비입니다. 필요한 휴식을 할 수도 있고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의미 있다면 그 시간은 유익한 시간입니다.
사람들과 만나는데 시간을 보낼 때 아깝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그냥 만나면 그것은 시간을 소비한 것이지만 만남의 목적을 가지고, 의미를 찾으면 투자한 시간이 됩니다. 걷는 것이 차로 다니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면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입니다. 직장생활로 바쁜데 교회에서 봉사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투자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바쁘게 보내라는 뜻은 아닙니다. 본래의 의미는 ‘기회를 사라’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이 장래를 위한 바람직한 투자가 될 수 있으므로 그 기회를 확보하라는 뜻입니다. 이제 한 해의 4분의 1만 남겨두고 있는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들을 소비하지 말고 투자하도록 노력합시다. 시간을 보내면서 항상 ‘내가 소비를 하고 있는지, 투자를 하고 있는지’ 잘 분별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분주하게 보내지 말고 생각하면서, 의미 있게 바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연약한 우리의 진정한 소망 (2023년 9월 29일 금요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편 39:4, 7).
젊었을 때와 달리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인생의 끝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죽을 때까지 남은 기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나이 들기 전에 좀 일찍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윗은 일찍이 그 사실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종말과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의 일생이 하나님 앞에서는 매우 짧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 뿐이니이다”(5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생의 남은 기간에 먹고 사는 문제를 많이 걱정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지 고민합니다. 물론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경제적인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일생이 길지 않고 인생의 끝이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번 돈이 어떻게 될지 깨달아야 합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6절). 그래서 다윗은 소망을 둘 대상을 발견했습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절). 우리 인생의 소망도 주님께만 있다고 고백하며 살아갑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인생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도와주소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문제의식을 느끼며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천국 상급을 기대하며 삽시다! (2023년 9월 28일 목요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0).
그리스도인들은 보상을 기대하고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입니까? 나중에 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랑으로 구제를 하는 것입니까?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선행을 할 때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은 동기가 불순하기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의무라는 표준적 법칙 그 자체를 위해서 선행을 하라고 한 칸트의 주장 이후 유럽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줄줄이 그의 견해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칸트의 견해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칸트는 그렇게 말했더라도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하). 만약 내세가 없이 현세만 있다면 보상을 기대하며 헌금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내세가 있기 때문에 답은 언제나 ‘예.’입니다. 물론 구원해주신 주님의 큰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는 헌금하고 이웃을 섬깁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모든 보상을 다 받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모두 보상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6:1).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2하, 5하). ‘요셉 목공소’를 경영해보신 예수님이 비즈니스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영수증까지 써주어서 거래를 마쳤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한 것에 대해서 다 보상 받으면 천국에서는 더 이상 받을 것이 없습니다. 보상을 다 못 받아도 천국에서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천국 상급을 바라보며 일하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
악행의 치명적 결과를 피하기 위하여! (2023년 9월 27일 수요일)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잠언 6:32-33).
예전의 미투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젊은 시절에 별 생각 없이 행했던 악행이 드러나면서 뒤늦게 그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각한 죄인 줄 인식도 하지 않고 그런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 행동이 드러나면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성경에도 그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강간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순간의 쾌락을 위한 범죄로 인해 다말은 엄청난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이런 죄를 범한 암논은 결국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젊은 시절에 성적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엄청난 죄를 지은 것이고 그로 인한 더욱 심각한 살상이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잠언 기자는 중요한 경고를 합니다. 간음하는 무지한 자는 결국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고 상함과 능욕과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합니다. 이런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 사도 바울이 구체적으로 정욕을 피할 방법을 알려줍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딤후 2:22)는 것입니다. 유혹받는 장소와 환경과 여건을 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바울의 지적대로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과 따로 떨어져 살아갈 수 없으니(고전 5:10)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하며 경건을 훈련하고 서로 격려하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정욕을 이겨낼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세상 속에서 일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배워서는 안 될 악행에 휩쓸리지 않게 도와주소서. 잘못을 분명히 깨달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나는 누구에게 빚을 졌는가? (2023년 9월 26일 화요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로마서 1:14).
파라과이에서 의사로 일하는 한국인이 간증을 했습니다. 남미에서는 한국인들에게 대한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국립의과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구두시험을 치르는데 지도교수가 심사위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기 집 앞에 한국인의 채소가게가 있는데 그는 새벽부터 언제나 기쁘게 일하고 언제나 싱싱한 최상품을 진열해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고 했습니다. 주일이면 그 가족이 정장을 하고 교회에 가는 사람들인데 한국인들 중에도 그런 좋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지도교수는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를 내어 그 사람은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스페인의 국립대학에 인턴으로 갔고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파라과이로 돌아왔지만 어디서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마침 외국인이 경영하는 가톨릭 의과대학에서 초청해 외과 교수로 일했고 2002년에는 부학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명성을 얻자 주변의 많은 사람들, 특히 동창들이 돈을 대면서 동업하자는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가난한 인디오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는 병원에 남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전에 졸업시험이 있던 날, 그 사람은 지도교수의 이웃에서 채소가게를 했던 한국인 크리스천으로 인해 큰 덕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제대로 살아 그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빚진 자 의식이 그 의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멋진 의사로 만들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도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돈 벌고 일해서 남 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빚을 갚고 빛을 비추며 복음을 전하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윗사람에게 할 말이 있을 때! (2023년 9월 25일 월요일)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 (느헤미야 1:11-2:2).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윗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쉽게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우리 일터의 일반적인 분위기입니다. 상사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어려운 것이 당연하지요.
아닥사스다 왕의 측근 신하였던 느헤미야의 입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든 왕에게 알리고 싶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기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승진하여 예루살렘의 성을 재건하는 문제에 대해서 왕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오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아마도 느헤미야는 승진한 기쁨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왕에게 자신의 부탁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기쁨이 더 컸을 것입니다.
직장에서 윗사람에게 할 말이 있을 때 기도하면서 상황을 보아서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섣불리 이야기했다가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거나 오히려 오해를 받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가다듬을 수도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하려는 말을 일단 하나님께 먼저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점을 명심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윗사람과의 관계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모든 관계 문제에 대해 길을 열어주시는 분임을 알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우리의 일로 세상을 살립시다! (2023년 9월 24일 주일)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창세기 47:15).
요셉의 예언대로 애굽에 7년 풍년이 든 후에 7년 흉년이 시작되었을 때 애굽 사람들은 저장해두었던 곡식을 다 먹고 요셉이 준비한 창고에 있던 곡식을 사먹어야 했습니다. 요셉이 다 거두어 가서 애굽에는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런 절박한 애굽 백성들을 향해 요셉은 돈이 없으면 돈 될 것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축들을 받고 곡식을 팔았고 다음 해에는 백성들의 몸과 토지를 받고 곡식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국가의 녹을 먹는 제사장의 땅을 제외한 애굽의 모든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런 정책을 펴는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백성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발견하십니까? 아닙니다. 요셉은 이런 일, 즉 앞을 내다보는 경제 계획을 통해서 애굽을 위기 속에서 구했습니다. 극심한 기근이었고 백성들이 모두 굶어죽을 상황이었지만 저장했던 곡식을 백성들에게 팔고, 농사를 짓게 하며 경제활동을 계속하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기본적인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무기력이 학습된 백성들이 애굽 경제를 제대로 회복시키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백성들의 안타까움을 알면서도 곡식을 나누어주지 않고 돈을 주고 곡식을 사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결국 요셉의 이런 조치는 건전한 ‘비즈니스’ 활동이 사람들을 살리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가 힘쓰는 비즈니스가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자부심으로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요셉처럼 지식의 곡식 창고를 준비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제가 하는 비즈니스를 통해서 세상을 살릴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은? (2023년 9월 23일 토요일)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편 27:4).
한 성도가 목사님을 보고 늘 교회에서 사시니 참 좋겠다며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일이나 예배 때만 잠시 교회에 오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윗이 시편 27편의 고백이 절로 나올 것입니다. 평생에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만을 바라보며 성전을 사모하는 그 한 가지 일을 구한다고 노래합니다.
다윗이 노래하는 “여호와의 집”에 대해서 많은 성도들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말한 여호와의 집은, 직접적으로는 평생 사모하며 지어지기를 바랐던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로 불리는 곳은 성전이 아니라 예배당일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마련된 장소만을 성전이나 하나님의 집이라고 규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해 이제 성전은 더 이상 물리적인 건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든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모든 곳이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해야 할 한 가지는 매일 예배당에 가거나 아니면 교회 부속 건물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내가 일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예배드려야 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말씀의 놀라운 힘 (2023년 9월 22일 금요일)
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시편 119:139-140).
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기습을 당한 미국이 일본 본토 폭격을 했습니다. 그 작전에 참전했던 제이콥 드쉐이저 중사는 폭격에 성공했으나 만주의 일본군 점령지역에서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성경을 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미군 포로들에게 3주간 씩 영어성경을 빌려주었습니다. 그 성경을 밤을 새워 읽다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말씀에 이런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이 회심하여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이후 제이콥 드쉐이저는 1년 4개월간 더 독방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이 기억하는 말씀을 되새기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핍박하고 감시하는 일본군 감시원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픈 열정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원수마저 사랑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귀환하여 신학교를 졸업한 드쉐이저는 일본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했을 때 회심한 사람 중에는 후치다 대위가 있었습니다. 그는 진주만 기습 때 일본 공군의 편대장으로 참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나고야에 세운 교회에서 두 사람이 함께 간증하며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의 능력에 우리 자신을 맡깁시다. 말씀의 놀라운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여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주의 사람이 되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예수님의 위기 극복 방법 (2023년 9월 21일 목요일)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마가복음 14:32-35).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예수님이 당한 십자가의 고통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결과를 보면 그들의 기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위기를 당한 성도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기를 당하면 자신의 문제를 숨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이라면 털어놓고 이야기하면서 동료 크리스천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자신을 위해서 안타까움을 가지고 기도해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기도를 부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렇게 함께 기도해줄 것을 기대하셨지만 그들은 졸음 때문에 제대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 사실마저 알고 계셨을 테지만 그 연약한 제자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위기 앞에서 자신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피와 땀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중보 기도를 요청하는 것 또한 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방법임을 기억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위기 상황을 맞았을 때 무엇보다 함께 기도함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2023년 9월 20일 수요일)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창세기 16:7-8).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자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갈이 잉태하자 여주인을 무시하다가 결국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절망하면서 아브라함의 집을 떠난 하갈이 광야의 샘 곁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질문했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 질문에 하갈은 그저 “나는 나의 여주인을 피하여 도망하나이다.”라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듯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이 때 하갈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면서 중요한 약속을 전했습니다. 일단 하갈은 여주인에게로 돌아가 복종하면서 아들을 낳아야 했습니다. 그 아들을 통해서 한 민족을 이루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나님은 귀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9-10절).
이렇게 하나님은 아이를 잉태한 후 주인에게 쫓겨난 딱한 애굽 여인의 고통도 들어주십니다. 하갈이 낳을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하갈은 주인에게 쫓겨나서 중요한 경험을 하고는 하나님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를 돌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13절). 하나님은 연약한 자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감찰하심을 민감하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도 어디로 가느냐고 질문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늘도 일하면서 순간순간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일하고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자연을 통해 깨닫는 영적 체험 (2023년 9월 19일 화요일)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요나 1:4, 4:8).
종종 비행기를 탈 기회가 있는데 바닷가 쪽으로 갈 때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안개가 끼면 여지없이 결항입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겪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곤 합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을 주관하시는 주님께서 능력을 베풀어주소서.” 때때로 그 기도에 응답을 받곤 해서 결항될 것 같던 노선에서 비행기가 뜨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번 자연 현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도망갔을 때 지중해에 풍랑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요나가 불평하면서 자기를 죽여 달라고 했을 때도 하루 만에 자란 박 넝쿨과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통해 요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자연의 다양한 현상을 통해서 요나에게 메시지를 주셨는데 그 분은 지금도 우리에게 얼마든지 비슷한 방법으로 삶 속에서 메시지를 들려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영적으로 민감해져서 일반은총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 성령의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없을까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연 현상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영적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세밀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2023년 9월 18일 월요일)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기 4:7).
엄청난 재앙을 겪는 욥을 찾아와 위로하던 세 친구들 중에서 엘리바스가 먼저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그가 했던 말의 핵심이 바로 이 질문입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이런 논리가 오늘 우리 사회에도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엘리바스의 주장, 즉 죄로 인해 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은 성경적 인간관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삶도 있습니다. 인생사에서는 죄가 없어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잘 믿지만 부자로도 살지 못하고 명문 대학 진학에도 실패하고 영향력 또한 미미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삶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욥이 당한 재앙을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죄의 결과가 틀림없고 그가 지금까지 간직해온 경건도 잘못되었다고 단정 지은 것이 엘리바스의 잘못이었습니다.
죄악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보이는 현상만으로 원인을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죄를 짓고도 흥한 사람이 있고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망한 사람이 있는 곳이 바로 죄악된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정확한 심판이 있는 내세까지 확대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만을 보고 함부로 결론짓지 맙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보이는 현상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구조적 모순이 만연한 세상에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모순된 경건의 허울을 벗어버리라! (2023년 9월 17일 주일)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역대하 8:11).
솔로몬 왕은 성전이 거룩하기 때문에 이방여인인 왕비가 성전 가까이에 있는 다윗의 궁에서 지내지 못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나름대로 신앙적인 사색을 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고 있는 신앙인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잘 아는 솔로몬이 왜 바로의 딸을 왕비로 삼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솔로몬은 지켜야 할 원칙을 지키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켜야할 원칙을 무시했던 이중성으로 인해 비난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겠다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결혼하지 않은 채 한 여성과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주일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전직을 결단하는 신앙인이 혼전 동거를 범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종교적 판단으로 이원론적 잣대를 가지고 편의적 판단을 한다면 우리도 그런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교회와 관련된 문제에서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않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솔로몬이나 한 젊은 그리스도인이 범했던 그런 모순된 죄악이 없는지 살펴봅시다.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바르게 정리하고 결단하는 삶을 살아야 우리 일터에서 우리 동료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멋진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이중적인 잣대로 말씀을 편하게 적용하면서 살지 않게 인도해주소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용기 있는 믿음을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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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11-12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서서 당대의 종교적 유행과 인기에 맞서는 것은
언제나 인기 없는 일이고, 때로는 위험을 자초할 수도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다.
하지만 동시에 그분은 우리에게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이것이 성공이다」
빌3:8
이 시대에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
성령의 사람들,
역경을 견디는 사람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때문에
모든 것을 배 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기도의 불병거》
고전1:18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내려놓음은
우리의 승리와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나의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목숨을 걸더라도 지켜야 할 경건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 6:10).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포기하기 힘든 것은 무엇입니까? 다니엘은 정치 생명이 끊어질 뿐만 아니라 목숨이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다니엘은 정적들이 자기를 모함하기 위해 다리오 왕을 회유하여 세운 금령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한 달’ 간의 위기만 사뿐히 건너뛰면 어떤 영광이 자기에게 돌아올 줄도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대제국의 수석 총리 자리의 권력과 영화를 그는 이미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예전처럼 기도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한 달 간만 기도를 참으면 안 되었을까요? 다니엘은 고집을 피우듯이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다니엘은 참 무모해 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문만 닫고 기도했어도 정적들이 대제국의 실권 1인자의 집을 쳐들어와 증거를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그렇게 고집스럽게 계속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 크리스천 직업인들이 일터에서 가장 먼저 보여주어야 할 것이 크리스천다운 경건함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경건 생활의 규칙을 다니엘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거룩한 습관입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고집했던 것처럼 목숨을 걸고라도 분명하게 보여줄 만한 당신의 경건의 습관은 무엇입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도 일하는 사람으로서 다니엘처럼 끝까지 붙들고 경건함을 드러낼 수 있는 거룩한 습관을 가질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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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왼뺨마저 돌려대는가? (2023년 9월 15일 금요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태복음 5:39-42).
악한 자가 오른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대라는 말씀을 자주 듣지만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일터의 현실에서 이 말씀은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산상수훈의 명령이 현대 사회에서는 실천할 수 없는 것으로, 이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명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불가능한 일을 명령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문자 그대로 뺨을 맞는 경우는 흔하지 않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손해를 당하는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보통은 대응을 하기 마련인데 이 때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바로 왼뺨을 돌려대는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꼭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힘든 일이 나에게 넘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만만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서도 뭔가 대응해야 합니다. 그런 때 ‘아 나는 오른뺨을 맞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왼뺨을 돌려댈까?’ 생각하며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대로 실천해 보십시오. 물론 처음에는 힘이 들겠지만 한두 번 하다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악한 자’라고 묘사하시는 상대방에게 억지로 5리를 가게 해도 기꺼이 10리를 가는 크리스천 직업인의 남다른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실천하기 힘든 말씀을 실천할 힘을 주셔서 우리 일터가 변화될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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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소명 (2023년 9월 14일 목요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린도전서 9:16).
영화 <래더 49>에는 미국 볼티모어 소방서의 래더 49팀에 속한 잭 모리슨이 나옵니다. 신입 대원 시절 쇼핑을 갔다가 린다라는 여인을 만나 한눈에 반했습니다. 린다가 펍에서 “너희들은 참 대단하다. 다른 사람들은 불이 나면 다 도망가는데 너희는 불이 나는데도 들어가잖아.”라고 추켜세우자 잭이 말합니다. “직업일 뿐이야.” 그러면 그저 직업일 뿐이기에 잭은 소방관이 되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잭의 관심은 사람이었습니다. 마이크 케네디 서장 밑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화재 진압 현장을 누비면서 잭은 사람 살리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사람 살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아는 진정한 소방관이었습니다. 결국 그 의 인생 마지막 날도 사람을 구해내고 그 자신은 그 현장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소방관만이 아니라 우리 직업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사람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구원 받은 이유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로 그 일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만약 그 일을 자기가 하지 않으면 화(禍)가 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억지로 복음 전하는 일을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은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그 일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구원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직업관을 묵상하면 우리들 역시 우리의 직업을 통해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직업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 살리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제가 직업을 통해 섬기는 그 사람들 때문에 제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되새겨봅니다. 저의 직업을 통해서 사람을 살릴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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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기 (2023년 9월 13일 수요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라(에베소서 6:9).
일터에서 아랫사람들이 윗사람들에게 겪는 아픔이 있습니다. 실수해서 징계를 받거나 업무의 결과가 좋지 않아서 받는 책망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아랫사람들의 불만은 징계와 책망을 받는 과정에서 당하는 비인격적 대우입니다.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개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으로 남기도 하고 일 자체나 직장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특히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암시를 하면서 위협하는 것에 대해서 혐오합니다. 크리스천인 상사가 이런 실수를 한다면 더욱 치명적입니다. 자신도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 상사들은 자신의 위에 궁극적 윗사람인 하나님이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권위는 하나님이 가지신 권위의 대리적인 특징을 가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런 윗사람의 모습을 비난하는 아랫사람은 자신도 아랫사람에게 자신이 당한 그대로 인격적 모멸감을 주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런 ‘대물림’도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협을 그치라”고 일터의 윗사람들에게 권면하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럴 때 우리 일터의 상하관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금씩 변할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일터가 되게 하여 주소서. 저 자신이 먼저 인격적인 윗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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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일터문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2023년 9월 12일 화요일)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시편 12:1-4).
다윗은 경건한 자나 충실한 자가 세상에서 발붙이고 살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 때문인데 그들의 주특기는 거짓말입니다. “거짓”은 악의 근원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죄악으로 예수님은 마귀를 가리켜 거짓의 아비라고 하셨습니다(요 8:44). 또한 악한 자들은 “아첨”을 밥 먹듯이 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세상을 주관한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부로 막말을 하는 이들이 바로 오늘 그릇된 일터 문화를 주관하는 사람들입니다. 부패를 조장하고 관행의 이름으로 비리와 탐욕으로 일터를 좌지우지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대항하는 크리스천들의 무기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악한 사람들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6절). 다윗은 이 시에서 불법이 만연한 시대 문화를 한탄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딘 것 같지만 우리도 말씀을 늘 묵상하고 말씀대로 직장 생활을 하려는 작은 노력을 기울여 봅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악한 일터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말씀 생활을 돌아봅니다. 말씀으로 우리 시대의 일터 문화를 극복할 힘과 용기를 주시기 원합니다. (by 원용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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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 (2023년 9월 11일 월요일)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린도전서 5:9-10).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는데 때로는 신앙인으로서 거부감이 생기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음담패설이나 하고 뭐 즐길 것이 없나 눈이 벌건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너무 싫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에 사는 성도들이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세상 사람들의 악은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그런 악을 교회 안에서는 물리치라고 교훈했습니다(고전 5:11-13).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고 예수님이 가지셨던 자세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울리기 힘든 사람들인 ‘세리와 창기’와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있었습니다(마 9:10-13). 그런데도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던 것은 그들이 비록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 세상 한복판에서 일하는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그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악한 행동을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격리되지 않고 함께 있으면서 구별된 행동을 통해 그들을 향한 관심을 표현하며 복음을 전할 기회를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제 주변에 상대하기 싫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그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행복을 누리기보다 거룩하게 하는 일터! (2023년 9월 10일 주일)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5-16).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행복한 가정과 행복한 세상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직장생활도 따지고 보면 돈을 벌어서 행복하게 살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월급이 충분치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 전에 먼저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어려운 상황에서 거룩하기 위해서는 일터에서 경험하는 그런 일들이 다 필요합니다. 물론 힘들게 하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서 오히려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저도 힘든 육체노동을 아르바이트로 했을 때 힘은 들었지만 마음을 바꾸어 성실하게 임했더니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신학교 공부보다 오히려 청소하면서 더 거룩해질 수 있었습니다. 까다로운 윗사람 때문에 고통을 당했는데 정말 힘이 들었지만 그런 분에게도 순종하는 것을 배우면서 훨씬 거룩해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충분치 않으면 행복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자족할 때 오히려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직장생활을 통해서 점점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되어서 교회 일을 하거나 선교사가 되어서 해외로 나가서 선교사역을 해야만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터에서 힘든 상황을 겪으며 일할 때도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거룩해지면서 우리에게 행복은 보너스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사람들은 보통 일을 통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일터에서 감사와 자족을 통해 거룩해지는 하나님의 원리를 배우게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딤전4:8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경건의 훈련을 쌓고
날마다 거룩한 습관에 따라 살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습관의 노예가 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한 습관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의 종이 되기를 원하신다.
「홀리스피리트」
행16:25
바울처럼 기도로써 하나님을 찾으라.
바울처럼 예수님께 간구하라.
바울처럼 기도로써 성령님을 찾으라.
이렇게 하면 성도가 되고, 사도가 되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응답기도》
영적교만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는
권력과 지배, 인정에 대한 욕구로 치우치기 쉬운 사람들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적전쟁, 딘 셔만
눅16:15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사울의 모습을 제거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
인생의 막힌 길을 열어주소서! (2023년 9월 9일 토요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고,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사야 43:15-16,19).
강의를 가거나 약속 장소로 갈 때 교통 체증으로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앞에 밀려 있는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또 전에 휴대전화가 없었을 때는 정체되고 있는 상황을 상대방에게 알리지도 못해 더욱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그런 상황일 때 저는 마음을 추스르고 하나님께 기도하곤 합니다. 홍해를 갈라서 길을 내어 백성들이 건너갈 수 있게 하신 하나님, 사막에 길을 내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기도가 응답될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은 강의를 가다가 길이 막혔는데 기도를 했더니 길이 갑자기 열려서 늦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도대로 응답될 때에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물론 그렇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 여부를 떠나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막힌 도로에서도 저와 함께 하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훈련은 더 심각한 위기를 겪어도 하나님을 찾는 훈련을 한 것이기에 유익합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매달릴 때 붙들어 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늘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을 체험해 봅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어떤 순간에나, 어떤 일을 당하거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제 인생의 막힌 길도 열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사57:15
당신이 신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모든 것에 반대하는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반대한다.
나는 마귀를 반대하고, 죄를 반대하고, 세상적인 것들을 반대하고,
육신을 반대하고, 기독교인 척하지만
실상 기독교가 아닌 것을 반대한다.
나는 기독교와 세상을 조화시키려는 영적 무지를 반대한다.
「예배인가, 쇼인가!」
눅18:13
죄책감에 짓눌려 죄를 뉘우치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고 교회의 제단으로 가서
“여러분, 기도하는 자들이여,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응답기도》
기도 생활과 영적 생활은 서로 밀접해서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단지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아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기도생활이 없으면 영적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계속적으로 기도에 힘쓸 때라야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내 앞에 엎드려라, 앤드류 머레이
삼상15:30
사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삶이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혼자 살려고 욕심부리면 화 있을진저! (2023년 9월 8일 금요일)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이사야 5:8).
재테크의 주요수단이 예금적금에서 주식과 부동산으로 옮겨간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분양권 전매나 시세 차익을 통해 일반 직장인의 1년 연봉 혹은 그 이상을 쉽게 버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제한된 선호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살고자하니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라갑니다.
좁은 땅, 많은 사람, 인간 욕망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대한민국의 주류 가옥 형태는 이미 아파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인간 욕망이 줄줄이 연이어 지어졌던 가옥들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작금의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과 비슷해 보입니다.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가옥에 가옥을 이어 지었던 이유는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야 하고 ‘같이’ 지내야 하는데 자신만 좀 더 잘 살아보겠다는 욕망이 밀착된 가옥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인간 욕망을 향해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땅의 참된 소유자이신 하나님(레 25:23) 앞에서 단지 일시적 점유자요 나그네에 불과한 우리는 엄중한 경계의 말씀으로 새겨들어야 합니다. 아파트를 사고 싶고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옮겨가고 싶은 관심사 이전에 함께 잘 살아야 하는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겠습니다.
엄한 여왕과 같은 진리
약4:7
진리는 영광스럽지만 엄한 여왕과 같다.
진리는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도 않으며 협상도 타협도 모른다.
다만 높은 자리에 앉아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잠 8:10)라고 소리칠 뿐이다.
이제는 이 말을 듣는 각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거부해야 한다.
「홀리스피리트」
시27:14
교회의 타락에
또는 시대의 죄악 앞에 슬퍼하는 영혼은
언제나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결코 민족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지 않는다. 《응답기도》
하늘 문을 여는 법
하나님은 오직 우리가 거룩한 허기를 느끼고 매달릴 때,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할 때 반응을 보이신다.
인간의 절망이 하늘 문을 여는 법이다. 간절한 매달림, 토미 테니
삼상15:24
사울이 다윗과 같이 쓰임 받지 못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울의 관심이
사람들의 평판, 인정, 인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부동산으로 쏠려 있는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의 말씀과 이웃의 필요로 돌릴 수 있는 영적 예민함을 허락해 주소서. (by 정병한 목사)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2023년 9월 7일 목요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에베소서 4:28).
에베소 교회 교인 중 예전에 도둑이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서인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울이 교훈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죄를 더 이상 짓지 말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선한 일을 수고해서 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보통 직장인들은 도둑질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펴보면 적지 않게 도둑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금을 개인적인 일에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도둑질입니다. 그런데 회사의 물품을 별 생각 없이 집으로 가지고 가는 것도 일반적인 도둑질입니다. 개인적인 일을 업무 시간에 하는 것도 일종의 도둑질입니다. 회사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물건을 사용하기도 하고 회사 일이 많아서 업무 외 시간에 야근도 밥 먹듯이 하는데 그것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들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다 보면 결국 생각도 할 수 없었던 큰 도둑질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이란 죄를 잉태하고 결국은 파멸과 죽음을 낳기 때문입니다(약 1:15). 뉴스에 보도되는 엄청난 횡령 사건이나 큰 비리 사건들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큰 도둑질을 계획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터에서 무의식적이거나 관행으로 굳어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도둑질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 고민해봅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일터에서 사소한 것이라도 도둑질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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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사랑의 빚 갚기! (2023년 9월 6일 수요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로마서 13:8, 10).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말한 ‘사랑의 빚’이라는 표현에 로마인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은 ‘빚’이라고 하면 느낌이 분명하게 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남의 돈을 과도하게 끌어 써 빚지지 말고 사랑의 빚만을 지면서 살아가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우리는 일터에서 이런 사랑의 빚만을 주고받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한 기업의 임원이 자신이 속한 부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 그날도 야근을 하는 아랫사람에게 다가가 직장에서는 흔히 듣지 못할 말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김 차장. 난 김 차장이 고민하는 그 문제를 충분히 해결해낼 수 있을 줄 믿어요.” 그 분은 고민하는 아랫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의 표현을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위로했습니다.
이 사랑의 빚은 구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것과 같이 우리의 이웃에게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이 사랑의 계명을 통해 우리는 많은 계명들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일터에서도 사랑의 빚을 갚아 나갑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세상 어떤 곳보다 더욱 사랑이 필요한 곳이 바로 일터입니다. 사랑의 빚을 갚아 사람들을 세워줄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돈의 논리보다 중요한 이웃 사랑! (2023년 9월 5일 화요일)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출애굽기 22:25).
출애굽기 22장 25절 말씀을 보면 구약 성경은 이자를 받는 것에 대해 금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에게 이자도 받지 않았다고 나무라셨습니다(마 25:27). 이자를 받아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마저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모순되어 보이는 이자 문제에 대해 율법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나누어 명쾌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 복을 내리시리라”(신 23:19-20). 당시 이스라엘의 부자들은 이자는 물론이고 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가난한 동포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를 꺼려했습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식량을 얻기 위해 돈을 빌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자는 받지 말고 돈을 빌려주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돈을 빌리는 경우는 궁핍해서라기보다는 영리적인 목적의 사업상 대출이었을 것이기에 이자를 받도록 한 것입니다. 오늘날 적용해 본다면 영리 목적의 대출이나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에는 과도한 금리가 아닌 정해진 이자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웃에 대해서는 돈의 논리보다 먼저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적용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세상의 논리는 돈이 사람보다 중요한 최고의 가치라고 강변하지만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거룩함
롬6:15
신약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라.
그러면 어렵지 않게 깨달을 것이다.
신약은 행복을 가르치지 않고 거룩함을 가르친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감정 상태보다
그들의 마음 상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신다.
물론 하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결국 행복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함이다. 「홀리스피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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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위험에 빠져 있는 때
시62:6
과거의 어떤 성자(聖者)는
“당신이 유혹을 받지 않는 때가 찾아올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자신이 유혹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유혹에 빠져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실상 가장 큰 위험에 빠져 있는 때이다. 「보혜사」
기도하는 사람
스6:10
정부의 일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맡기려면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입법자들, 판사들 그리고 변호사들에게는
하나님을 알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응답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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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다
민21:7
기도하는사람을 지도자로 둔 교회는
복되고 복되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교회를 짓고,
경배하는 집의 벽을 세우신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자를 방해하는 원수들을 쫓아버리신다.
《응답기도》
독서
주님이 원하시는 상태
"지금 나의 마음은 주님이 원하시는 상태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가장 먼저 그러한 심령이 생기도록
그분께 나 자신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
골방에서 만나는 하나님, 앤드류 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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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가리켜라
누군가를 축복할 때, 그 사람의 과거나 혹 현재를 주목하지 말라.
대신 그들의 미래를 가리켜라.
이삭은 야곱을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 장차 그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지적했다.
축복하는 사람이 축복을 받는다, 엘머 타운즈
하나님의 능력
고후4:7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선교사와 목회자를 포함한 사역자들에게
꼭 넘어야 할 산과 같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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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앞에서 낮추라
약4:10
스스로를 적당히가 아니라
충분히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오해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서 그만 낮추라고 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낮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