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의 예증- ‘우물파기’ 사건
얼마동안 농 카이와 우돈 타니 읍내에서 재가불자들과 스님들, 사미승들을 가르친 후에, 아짠은 숲 지대를 통과하여 사콜 나콘 읍내로 돌아왔다. 그 후에 그는 다시 마을을 지나서 나크호른 프하놈으로 갔다.
그런데 이 마을은 깊은 정글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라리아나 여타의 정글 열병에 감염되어 있었다. 일단 사람이 이 질병 중 하나에 노출되면 (특히 말라리아가 그러한데) 곧 병사하거나 아니면 만성이 되어서 몇 달이나 몇 년 동안 낫지 않았다. 그러면 환자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일을 할 수는 없으나 여전히 평상시처럼 먹고 자야 했기 때문이다. 항상 소비만 하고 어떤 것도 생산해낼 수 없는 상태를 가리켜 태국 속담에서는 ‘친척들이 진절머리 낸다(loathed by one's in-laws)’라고 빗댄다. 숲에 살던 많은 마을 사람들이 열병에 감염되어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두타행 스님과 사미승들도 마을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들 또한 이 질병들에 시달렸다. 아짠이 사름 프홍 마을에서 보낸 3년 동안, 많은 수의 스님들이 말라리아에 걸려서 입적하였다. 읍내에서 태어나 평원 지대나 여타 개방된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은 정글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기 쉬웠다. 그들은 아짠과 함께 머무를 수 없어서 그의 곁을 떠나 거친 정글에서 멀리 떨어진 개방된 지역으로 가야만 했다.
또 하나의 큰 사건은 아짠이 사름 프홍 마을에 머무를 때 발생했다. 이때는 우기였고 아짠은 육칠십 명의 스님과 사미승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물이 충분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있는 물은 모두 흙탕물이었다. 스님과 사미승들은 마을 사람들과 의논한 후, 지하에 있는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서 우물을 더 깊게 파기로 합의했다. 나이 많은 스님들 중 한 명이 아짠에게 가서 그들의 계획을 알렸다. 아짠은 잠시 침묵한 후에 준엄하게 지시했다.
“안 돼, 그 우물을 더 깊게 파서는 안 돼. 그건 위험한 행동이야.”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이 많은 스님은 그의 준엄한 태도에 압도되어 그대로 돌아가서 아짠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나머지 스님들과 사미승들은 아짠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몰래 그들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우물이 사원에서 좀 떨어져 있으니, 아짠이 우물을 파는 걸 눈치 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짠이 그의 거처에서 쉬고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정오에 그들은 모두 우물가로 가서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서 우물 윗부분의 흙이 함몰되어 우물의 원래 깊이까지 다시 차버렸다. 그들의 노력은 결국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우물을 파던 사람들 중 한 명은 무너지는 흙에 깔려 죽을 뻔했다. 아짠의 명령을 어긴 것과 어느 누구도 우물을 파는 작업을 말릴 만큼 사려 깊지 않았던 것에 대한 업보였다. 그들은 아짠이 그의 명령을 어긴 사실을 알리라 생각하고 매우 겁에 질려 있었다.
그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무너진 흙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고 진심으로 아짠의 용서를 구하면서, 그 흙덩이를 파내어 이전처럼 쓸 수 있는 약간의 물이라도 구할 수 있도록 아짠이 도와주기를 바랐다. 우물가를 깨끗이 청소하자, 곧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모두 안도의 엷은 미소를 지었으나, 자기들의 과오에 대한 죄책감이 양심을 무겁게 짓눌렀다. 작업이 마무리되자 그들은 재빨리 거처로 돌아갔지만 자신들은 자기들의 잘못에 대한 수치심과 두려움에 시달렸다.
저녁 모임 시간이 다가왔다. 날이 어두워짐에 따라 죄책감이 그들의 마음속을 더욱 파고들었다. 아짠의 만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은 잘 알려져 있었다. 아짠은 얼핏 스치고 지나가기만 한 사람에게서도 그가 잊고 있었던 악한 생각들을 여지없이 끄집어내어서 엄하게 꾸짖곤 했었다. 그 정도이니, 명백히 아짠의 명령을 어긴 이 사건을 어떻게 그에게 숨길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필경 그날 저녁이나 그 다음날의 설법은 매우 엄할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정작 모임 시간이 다가오자, 아짠은 그 모임을 취소했으며 제자들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징벌이나 문책이 떨어질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아짠은 그 사건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현명한 스승이었던 만큼, 만약 자신이 그 사건을 일일이 들추기 시작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음도 헤아리고 있었다. 제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음을 그는 이미 알았고, 그것으로 징벌은 충분했던 것이다.
그 다음 날 아침 좌선 후에, 아짠은 마을에 탁발을 갈 때까지 경행을 계속했다. 스님들과 사미승들은 그 전날 저녁에 아무 일도 없었으므로 곧 아짠으로부터 질책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두려움에 아직도 떨고 있었다. 그러나 아짠은 마치 그들 내부에서 일고 있는 후회의 불길을 잠재우려는 듯이 온화하게 설했다.
“우리는 다르마(法)를 수행하는 수행자이다. 우리는 너무 비겁해서도 과감해서도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실수를 한다. 그러나 앞선 수행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의도는 좋았을지 모르나, 그 좋은 의도가 때로는 무지와 뒤섞일 때가 있다. 이후로는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항상 사려 깊게 행동하는 게 현자가 되는 길이다.”
아짠은 말을 멈추고, 위로의 미소를 머금은 채 제자들을 진심으로 염려했다. 그날 아침 아짠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탁발을 위해 그들을 마을로 데리고 갔다. 그날 밤과 그 다음날 밤에도 역시 가르침을 위한 모임은 없었다. 아짠은 제자들에게 더욱 정진하라고만 말했다.
평상시처럼 모임이 열린 것은 우물 사건 이후 4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우물 사건이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진 뒤에도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아짠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하지 못했고, 아짠 역시 사원에서 좀 떨어진 그 우물에는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적인 모임이 있을 때였다. 아짠은 설법을 시작했고, 제자들이 자신에게 복종하는 문제를 화두로 삼았다.
“승려들은 개인적인 욕구가 아니라 다르마에 의해 지배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의 소멸이라는 그들의 최종 목표로 이끄는 바른 길이 없어질 것이고, 그 정도가 사라짐에 따라 목표 그 자체도 없어질 것이다. 다르마와 계율과 스승의 가르침에 항상 유념해야 하고 이것을 어겨서는 안 된다. 그러한 위반은 그 사람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롭다.”
“그 우물에 있던 흙은 전체가 모두 점토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밑부분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물의 흙을 파면 윗부분의 점토가 무너져서 우물을 파던 사람들은 죽게 될지도 몰랐다. 내가 우물을 파지 말라고 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대들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 문제에 관해 좀 더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그대들이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것은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대들은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에게 고집을 부렸고, 이제는 나에게 그 고집을 피우고 있다. 어렸을 때의 고집불통은 참아 줄 수 있고 받아 줄 수 있지만, 그대들 같은 나이와 지위를 지닌 사람들이 고집을 피우는 건 참아 주어서도 안 되고, 받아 주어서도 안 된다. 그러한 행위은 더 큰 악과 위험을 가져오기 때문에, 더 많은 비난을 받아야만 한다.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악만 더 증진시킬 뿐이다. 그런 스님은 ‘고집불통 스님’이라고 불러야 하고, 그의 필수품은 ‘고집불통 스님의 물건’이라고 불러야 할 거다.”
“이 스님은 고집스럽다. 즉, 한 사람은 불복종하고 모두는 무례하다. 그러면, 아짠에게는 고집스럽고 불복종하는 제자 한 무리만이 있는 것이다. 지독한 고집에 의해 세계는 분명 산산조각날 것이고, 다르마 역시 확실히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나서 아짠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여기에 고집불통 승려가 되고 싶거나, 그의 아짠이 고집불통 승려들의 아짠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느냐?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고집불통 스님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천국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내일 다시 그곳으로 가서 우물을 파다보면 흙더미가 그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게 될 것이다.
이 호된 훈계 뒤에, 아짠은 목소리의 톤을 부드럽게 해서 가르침의 주제를 좀 더 부드러운 것으로 바꾸었다. 표현은 부드러웠지만 불복종과 고집스러움의 해악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쳤다. 이 시간 동안 스님들은 한동안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런 질책 때문에 놀라서 숨이 탁 막히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