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산은 해안을 따라 난 두 개의 산책로를 연달아 걷는 즐거움은 비할 데 없이 크다. 금정산 백양산 장산 등 부산의 유명한 산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섬이란 특성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원래 봉래산이란 동쪽바다 한 가운데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는 상상속의 영산이다.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로 영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봉래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조봉(祖峰)이라 하고, 그 다음의 봉우리를 자봉(子峰), 그 아래의 것을 손봉(孫峰)으로 부르고 있다. 가까이 보면 세 봉우리의 구별이 잘되지 않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굽이진 봉우리의 낮아진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산 전체가 원추형이며 산록의 사면은 가파른 편이다. 특히 남쪽 사면은 급경사로 바다에 거의 내리박듯 수직으로 돌입한다. 산기슭에는 기계적 풍화작용에 의해 쪼개진 바위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봉래산을 일제시대에는 고갈산으로 불렀다. 목이 마른 산 혹은 말라서 없어지는 산이란 뜻이다. 일본이 산의 기세를 꺾어 한반도 점령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였다. 봉래산 정상에는 할배바위가 있다. 그래서 조봉(祖峰)이라고도 불린다. ‘단상에 올라가지 마세요’라고 적힌 바위다.
산행코스는 태종대 입구~자갈마당 주차장~감지해변 산책로~중리~절영해안 산책로~백련사~영선사 갈림길~체육공원~봉래산(394.5곒) ~자봉~손봉~목장원. 3시간30분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태종대
태종대(太宗臺)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8호('72. 6. 26 지정)로 영도구 동삼동 산 29-1 일대에 위치해 있으며, 오륙도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암석해안의 명승지로 영도의 남동단에 위치한다.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100m에 달하는 절벽과 울창한 난대림, 굽이치는 창파가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특히 영도등대 아래에 발달한 융기파식대인 신선암은 태종대를 대표하는 명소로 그 형성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2만년전인 제4기의 최종 간빙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종대는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이탈리아의 나폴리만에 있는 카프리섬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갖고 있어 예로부터 부산 최고의 명승지로 알려져 왔다.
태종대에 대한『동래부지(1740)』고적조 기록을 보면, "태종대는 부의 남쪽 30리 절영도의 동쪽 바닷물이 돌아가는데 서쪽에 돌다리가 하나 있어 놀이 오는 사람들이 겨우 통할 수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쏘아 후포를 맞힌 곳이므로 태종대라 했다고 전한다. 가뭄이 든 해에는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태종 무열왕과의 관련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태종대의 전망대에 서노라면 해안암벽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맑은 날이면 저 멀리 대마도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명소로 예부터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그리고 등대 오른편 아래쪽에 있는 평평한 바위는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서 놀았다고 하여 신선바위라 한다. 신선바위 위에 외로이 서 있는 하나의 돌은 왜구에 끌려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돌로 변하였다고 하여 망부석이라 불리고 있다. 망부석 바로 뒤에 우뚝 솟은 태운암은 그 모양이 기묘하고 괴상하여 신선바위와 더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태종대의 경관을 이루고 있는 식물로는 송림과 해변가를 따라 자생하는 난대계상록활엽수의 나무들이 약 120종이 분포하고 있다. 지금도 이 숲속에는 노루, 산토끼, 다람쥐 등 수종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유람선의 운항, 순환열차 등 각종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으며, 새로운 자원의 개발을 구상하는 청사진을 설계하고 있다.
제2송도길
이 코스의 출발지는 영도와 부산시내를 이어주는 영도대교(1934년 11월 도개교로 개통)로 개통 당시에는 마법의 다리로 불릴 정도로 하늘을 치솟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으며, 6.25 전쟁 때에는 애환도 많아 망향(望鄕)의 눈물을 쏟았던 곳이기도 하다.
영선로터리를 지나 테크노과학고에 이르면 출렁이는 파도소리와 싱그러운 바다 내음이 코를 찌른다. 이곳에서 동삼동사무소에 이르는 5.6㎞의 해안도로는, 옛 영도의 이름인 절영도(絶影島)를 따서 절영로라 이름지어졌다. 부산에서 해안절경이 가장 아름다운 서구 암남동에 있는 송도를 제1송도라 하고, 이곳을 제2송도라 칭하였다 한다.
해안도로는 좁게는 6m 넓게는 20m의 노폭에 아담한 휴게소가 몇 군데 있고 저 멀리 짙푸른 망망대해의 창파에 굽이치는 파도와 늘푸른 숲에 둘러싸여 산책로는 물론 드라이브 코스로서의 으뜸가는 경관을 갖추고 있다. 남해바다의 잔잔한 물결과 도로 아래로 펼쳐져 있는 기암괴석의 암벽에 부딪치는 파도와 어울려 펼치는 절경은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여인과 단둘이 데이트 장소로도 그만이지만, 목장원에 들러 바다를 바라보며 한 잔의 커피를 음미하는 것 또한 낭만이라 할 수 있다.
바다와 맞닿는 곳 중리 횟집에서 회를 맛보는 것도 바다의 정취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주위에는 신흥사, 마리사 등 산사(山寺)가 있어 산책객이 즐겨 찾고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태종대는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이탈리아의 나폴리만에 있는 카프리섬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후 전국의 명승지를 탐방하던 중 이곳에 들러 궁인들과 함께 울창한 수림과 수려한 해안절경에 심취된 후 잠시 소일하며 활을 쏜 곳이라고 하여 이로써 이름하였다"고 전해진다. 태종대에는 계절마다 도래하는 철새, 그리고 경내에 자리잡고 있는 망부석, 신선바위, 병풍바위 등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임을 잘 설명해주고 있듯이 탁 트인 망망대해를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신선이 된 기분이 든다. 연인과 가족과 함께 유람선을 타고 태종대 해안을 일주 해보는 것도, 또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태종대의 전망대에서 바라다보는 망망대해와 수평선 끝 아련히 보이는 대마도의 영상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동삼동패총
동삼동패총은 영도구 동삼동 750-1번지에 사적 제266호('79. 7. 26 지정)로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이 조개무지는 남해안 일대에서는 아주 규모가 크며 여러 문화층이 겹쳐져 있어 남부지방의 신석기시대 문화 편년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일제강점기 때 오이가와·요꼬야마 등에 의해 부분적으로 발굴된 바 있고, 1963-64년에는 미국의 위스콘신대학의 A.More와 C.Sample이 시굴한 일도 있으며 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969년부터 1971년까지 3년간에 걸쳐 전면발굴을 실시하였다. 이 조개무지의 층위는 발굴자에 따라 3-5개층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전면발굴을 실시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에서는 표토하에 흑갈색토층, 패각층, 혼토패각층 등 3개의 각층은 각각 그 성격을 달리하는 별개의 문화층이라고 한다.
최하층인 제1문화층은 첨저, 원저, 평저의 무문토기, 세선융기문토기, 흑요석제석기, 골제의 복합낚시바늘, 패천 등이 출토되었으며 여러 종류의 바다고기와 육상 동물뼈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중간층인 제2문화층은 전형적인 줄무늬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즐문토기 표면에 단을 칠한 단도마연토기와 마제석기, 석기를 비롯한 흑요석제 석기와 골각기 등이 풍부하게 출토되었다.
최상층인 제3층은 겹구연의 무문토기, S자형의 구연 주변에 태선융기문을 돌린 토기, 구연부 부근에 2-3열 정도의 조잡한 선문을 돌린 변형즐문토기 등이 출토되었고 반월형석도, 소형편인석부외에 흑요석제의 석기와 조침을 비롯한 골각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