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모차르트도시 잘츠부르크 2화
2025년 8월 6일
어제 시티투어로 잘츠부르크의 전체 윤곽을 훑어보았기에, 오늘은 우리의 발걸음으로
이 도시의 숨결을 직접 느끼기로 했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성 안드레 성당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은은한 빛으로 하루를 열어주었다.
미라벨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 송’이 절로 입가에 맴돌았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계단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미라벨 정원은 1690년경 요한 폰 툰 대주교의 명령으로 바로크 양식의 기하학적인 배치를
기준으로 하여 만들어 졌으며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호엔 잘츠부르크 성을 바라볼수 있는
웅장한 느낌을 함께 감상할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도레미 송을 부르던 바로 그 계단 위에서 사진을 남기며 그 시절의 즐거웠던 장면을 마음으로 회상하였다
사랑과 권력 그리고 예술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잠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계단을 오르내리며
행복을 느꼈다
페가수스의 사자 분수 앞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포즈를 취해보며 소소한 만족의 즐거움도 만끽했다.
정원 곳곳에는 그리스 신화 속 신들과 요정들의 대리석 조각이 세워져 있었는데 마치 이 궁전을
오래도록 지켜주는 수호자처럼 느껴졌다
영화 한장면의 순간을 기억하며 그곳에서 자신을 표현할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리만족을 얻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영화 한장면의 순간을 기억하며 그곳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아름다운 배우가 된것 같은 기분이었다
특히 요한 그라프 툰 대주교 시대에 만든 난쟁이 정원은 흰색 대리석으로 만든 28개의
난쟁이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지금은 17개만 남아 있다고 한다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미라벨 궁전은 1606년, 한 남자의 깊은 사랑의 비극이 남긴 유산으로 만들어진 궁전이다
당시 대주교였던 볼프 디트리히 라이테나우는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 알트(Salome Alt)를 위해 이 궁전을
지었지만 성직자의 결혼은 허락되지 않았다. 결혼 허가를 얻기 위한 노력은 실패로 끝났고
그는 결국 1611년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1세에게 감금되는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후임 대주교 마르쿠스 지티쿠스는 궁전을 재건하며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의 미라벨(Mirabell)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사랑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 감정만큼은 정원의 공기 속에 남아 있는 듯했다.
궁전 내부로 들어서자 오스트리아 조각가 라파엘 도너의 걸작, 천사의 계단(Angel Staircase)이
우리를 맞았다.하얀 대리석 난간을 따라 장식된 수많은 푸티(천사 아기) 조각들이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만들었다.
계단 끝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웨딩홀로 불리는 마블 홀(Marble Hall)이 펼쳐졌다.
화려한 대리석과 금박 스투코( stucco ) 로 장식된 이 공간에서 여섯 살의 모차르트와 그의 누이
난넬이 대주교 앞에서 연주를 했다고 한다.
화려한 대리석으로 꾸며진 홀과 금박을 입힌 스투코( stucco )로 온통 뒤덮혀 만들어진
웅장한 홀은 모차르트가 6살때 이곳에서 대주교를 위해 연주 했으며 그의 두아들 볼프강과
난넬도 이 홀에서 연주했다고 한다
1947년 이후 이곳은 잘츠부르크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지금도 콘서트와 시상식
그리고 수많은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우린 잘차흐 강을 건너 어제도 잠시들렀든 잘츠부르크 대성당 지구쪽으로 걸어서 관광하였다
제일 먼저 모차르트 도시인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생가를 찾았다
구시가지로 들어서자 케트라이데 거리 9번지의 노란 건물이 모차르트 생가인데 1880년부터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이 관리하고 있고 이곳은 잘츠부르크의 성지와도 같은 장소였다
모차르트 가족은 1747년부터 1773년까지 이곳에서 살았고 1756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이 집에서 태어났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는 역사상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가 되었고 단 10여 년 사이
17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형제들은 모두 일찍 죽고 누나인 마리아 안나만 살아 둘 다 음악가로 성공하였다고 한다
5~6세의 어린 나이에 잘츠부르크, 뮌헨, 빈 궁정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모차르트를 아버지는
광범위한 콘서트 투어에 데려갔다. 1773년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성당 궁정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선정되어 미사곡 등 수많은 종교 작품을 만들었다고한다
35세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피아노, 바이올린뿐 아니라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었던 위대한 음악가
였으며 생가에는 마술피리를 작곡한 클라비코드와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 바이올린, 초상화, 문서,
음악 초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빌헬름 러크가 만든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으니
음악이 들리지 않아도 그의 숨결은 분명히 느껴졌다.
우린 모차르트 생가를 나와 대성당 지구인 레지던트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대성당지구는 7세기말부터 잘츠부르크 대주교들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의 역사적 중심지였으며
역대 대주교들의 거처였든 잘츠부르크 레지던트(Salzburg Residente)는 공식행사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소금 광산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입으로 번성한 이 도시는 대주교가 교황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릴 만큼 강력한 세력이었다고 한다.
궁정의 화려한 축제와 음악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고 궁정 악사들은 끊임없이 노예처럼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25세때 궁정악사를 그만두고 빈으로 가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모차르트는 대주교를 위해 연주했지만 결국 자유를 택해 25세에 빈으로 떠났다
1587년부터 1612년 사이에 아치형 구조와 르네상스 양식으로 크게 재건되었으며 건물 전체가 하나의
궁전처럼 보이게 구성되어 있으며 넓은 내부 중정과 대형 홀이 특징이라고 한다
주교 접견실 대기실 (Ante Camera)에는 의자를 없애고 서서 대주교를 기다리면서 천정의
알랙산더 대왕의 일대기를 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컨퍼런스 룸(Conference Room)은 궁정의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왕의 위엄을 표현하는 축제문화가 열리는
공연장이 되기도 하였다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대주교를 위하여 첫 콘서트를 열었고 바이올린 협주곡
A장조(KV 219)를 비롯한 그의 많은 작품들이 이곳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우린 레지던트 광장으로 나와 인간 두상의 4점이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건너편에 있는 잘츠 부르크
박물관으로 향했다 어제 점심을 먹었든 Muse 식당 바로 뒤에 있었다
2027년도 까지 내부 수리를 위하여 휴관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어 우린 맞은편의 잘츠부르크 대성당으로 갔다
8세기에 처음 세워진 성당은 17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산티노 솔라리(Santino Solari)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새롭게 태어났으며 어두운 회색의 석조 본체와 밝은 운터스베르크 대리석이
어우러진 외관은 화려하면서도 엄숙했고 높이 81미터의 쌍둥이 종탑은 잘츠부르크의 상징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입구 정면의 파사드에는 교황 베드로와 바울 조각상그리고 소금 통을 들고 있는
잘츠부르크의 수호성인인 성 루퍼트와 교회 모형을 들고 있는 성 버질의 거대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흰색과 세피아 톤의 밝고 화사한 색상, 바로크 양식의 조각품 장식과 프레스코화가
우리를 압도했다.
천정의 성화와 조각품들은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연상하듯 바로크 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4,000개가 넘는 파이프로 구성된 파이프 오르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오르간 중 하나이며
모차르트가 1779년부터 3년간 이곳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했고 그의 음악이 이곳에서
여러번 초연되기도 했다.
모차르트가 태어나서 세례를 받은 성당으로 섬세하게 조각된 철제 성수함을 보니 이 성당의
모든 것이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종교적인 공간을
넘어 바로크 건축의 정수이며 모차르트의 숨결이 깃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명소이였다.
우린 돔광장과 모차르트 광장 사이에 있는 뮤즈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성비 좋은 식당이라 주방장과 기년 사진도 남겼다
점심을 먹고 상가거리인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 근처에 있는 파파게노 광장
(Papagenoplatz)으로 가니 여기도 모차르트의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엇다
파파게노 분수(Papagenobrunnen)는 1960년 조각가 요제프 토락(Josef Thorak)의
작품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분수 중심에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파파게노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새의 깃털로 장식된 옷을 입고 새장을 들고 있는 유쾌하고 활달한 그의 모습은 잘츠부르크
시민들의 유머 감각, 음악적 전통, 삶의 기쁨을 상징한다.
196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4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이 동상은 잘츠부르크가 얼마나
모차르트의 도시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우린 귀국 선물도 사고 거리의 아름다운 사진도 찍기위하여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
거리로 갔다
좁은 골목길 같은 거리의 모든 가게는 철제 장식으로 된 독특하고 예술적인 간판을 사용하고 있어
거리를 걷는 즐거움을 더 하고 있었다
특히 28번지의 위버 자물쇠 철공소는 1415년부터 자물쇠 제작을 시작해 위버 가문에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거리의 간판은 물론 길드 간판, 대문, 열쇠, 자물쇠 등을
가족 사업으로 제작해왔다고 한다.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가문이 한 가지 일을 이어온다는 것에 경외감이 느껴졌다
모차르트 카페에 올라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잠시 쉬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게트라이데 거리의 풍경이
평화로웠다. 쇼핑도 하고 걸어서 세마장 쪽으로 갔다 호프 마르슈탈슈벰메 (Hofmarstallschwemme)는
1696년 요한 에른스트 툰 대주교의 명에 의하여 왕실 마구간 확장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으며
뒤에 있는 말 그림은 1732년 프란츠 안톤 에브너(Franz Anton Ebner)의 프레스코화이며
앞에 있는 조각품은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말 부케팔루스를 제압하는 장면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이라도 인도하는 손으로 다스리고 마땅한 복종을 요구하는 수호성인으로서의
대주교를 암시한다고 한다
우린 내일 오후 그레이트 페스티발 하우스(Großen Festspielhaus)의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기로 되어
있어 미리 그곳을 사전 답사하였다
건축가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Clemens Holzmeister)의 작품으로 1960년 7월26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 장미 의 기사' 를 개관하였다고 한다
건물 입구 위 벽에는 "Sacra camenae domus concitis carmine patet quo nos attonitos numen ad auras ferat."
(뮤즈의 성스러운 집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신의 힘이 우리를 불타오르게 하소서.)
"AD AURAS FERAT"이런 글자를 볼수 있었다
우린 페스티발 하우스의 맞은편에 있는 잘츠부르크 현대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잘츠부르크 현대 미술관은 1976년 미술상 프리드리히 벨츠(Friedrich Welz)의 기부로 "현대갤러리
및 그래픽아트컬랙션"이 생기면서 루퍼타룸(rupertinum)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2층에는 일상의 단면(Slice Of Life)란이름의 개인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1913년 제작된 오스트리아 초상화가 코코슈카 (Oskar Kokoschka 1886~1980)의
"소녀의 초상"은 영혼이 우울하게 보이는 소녀상은 작가 자신의 심리 상태를 억누려는
억제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여성 분리주의자 인 플로렌티나 파코스타 ( Florentina Pakosta 1933~)의 1978년
작품으로 "지배자"라는 이름은 초상화는 엄숙한 얼굴에서 상상를 초월한 모든 삶의 힘과
권력의 어둠움이 깃들여 있는 모습이 상상되는 그림이라고 한다
구 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슈타츠 브뤼케(Staats Brucke)다리를 건너 가니 20세기를
이끈 세계적인 음악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의 생가를 발견하였다
폰 카라얀은 1908년 잘츠부르크에서 그리스계의 귀족출신의 가문에 태여난 음악 신동으로
1926년엔 잘츠부르크의 지휘자로 발탁되고 10년후엔 아헨에서 독일 최연소 음악 감독을
맡았으며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지휘하며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하여 수많은
음반을 내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치시대엔 괴멜스가 "신의 축복을 받은 음악가"로 극찬할 정도로 나치당원이
되었으며 대전이 끝난 후 나치당의 협력 때문에 공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수석지휘자 였으며 빈 국립 오페라의 예술감독
런던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를 역임한 20세기의 최대음악 거장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소리의 아름다움과 완벽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휘한다고 한다
우린 이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와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2025년 8월 6일 오늘의 운동량 15,687보 이동거리 10.2KM 이동시간 2시간 4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