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력보국(水力報國)」 유감
칠보발전소 정문 앞 비석에 새긴 글귀.
“수력발전에 열과 성을 다 함으로써 「보국」하겠다”는 발전소 관계자들의 다짐을 나타낸 문구일 것입니다.
이곳 뿐 아니라 구로공단 앞에 오랫동안 서 있던 「수출 입국(輸出 立國)」, 또 무슨 기술연구소들 앞에 서 있는 「기술보국(技術報國)」 등등은 모두, 각 직능조직과 단체들이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여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일 겁니다.
나쁜 뜻은 없지 않은가, 뭐가 문젠가?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보국’이라는 단어 말입니다. “나라에 보답한다”, 나아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의 이 단어가 마음에 걸립니다.
나라란 무엇일까요? 정부 또는 국가를 대신하는 말일까요? 그렇달 수도 있고 아니랄 수도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나라·정부·국가의 개념은 달라져 왔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온 왕정시대에는 ‘나라’는 바로 왕이었습니다. 모든 권력은 왕에게 있었고 나라의 모든 재산은 왕의 소유였지요. 그래서 국왕(국가)에게 어떤 충성을 했느냐에 따라 벼슬과 재산을 왕에게서 나누어 받았습니다. 즉, 왕이 아닌 자가 나누어 받는 권력과 재산의 크기는 ‘보국(충성)’의 정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불합리한 개념이어서 결국 프랑스 대혁명 등을 계기로 왕정체제는 무너지고 시민(국민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를 다음 단락에서 말하겠습니다)이 주인인 사회로 바뀌게 되지요.
20세기 초까지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조금씩 정부와 시민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이른바 민주제·공화제로의 변화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한 세계의 주된 흐름 가운데 일본만은 유독 전체주의·국가주의로 흘렀지요.
“모든 민중은 ‘신과 같은’ ‘만세일계(萬世一系)’ 왕가의 보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민중은 왕에게 충성·헌신하는 명예로운 백성이라는 뜻의 ‘황국신민(皇國臣民)’ 즉 ‘국민’으로 불렀습니다. 황국신민을 육성한다는 뜻의 ‘국민학교’를 세운 것이 그 무렵이고, 왕에게서 귀족의 작위를 받거나 공직을 은퇴하여 퇴직금 받는 것을 ‘은사(恩賜)·은급(恩給, 은혜로운 베풂)’이라 불렀으며, ‘국민’으로 존재하는 일 자체가 왕(신)의 은혜를 받은 일인 만큼 그 이상으로 나라(왕)에 보답해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시켰습니다. 왕의 칭호를 입에 올릴 때마다 ‘차려’ 자세를 하고 ‘황공하옵게도…’라는 문구를 앞세우는 등, 시대에 역행했습니다.
그런 사정은 ‘반도’로 불리던 식민지 땅 조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지요.
‘신사(神社)’에 참배하며 매일 두 번씩 ‘궁성요배(宮城遙拜)’를 하도록 강요당했고, 후방 예비군으로서 전쟁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횡행하던 단어가 바로 「○○보국」이었던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신의 후손인 왕에게 충성(보답)한다. 「근로보국, 보국대」… 등등.
자, 왜 제가 「수력보국」에 대해 이토록 민감한지 눈치 채셨을까요?
칠보발전소가 완공된 것은 1945년, 해방 직전이었습니다. 당시에 세운 비에는 뭐라고 새겨져 있었는지 지금으로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만, 1984년에 세운 지금의 비에서 ‘보국’이라는 단어를 보는 저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운암발전소(우리가 보았던 폐허)가 폐업하면서 칠보발전소가 주 발전소로 거듭 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였을 듯합니다.
1984년은 이미 해방된 지 40년이나 지난 시기였는데도 ‘보국’이라는 단어를 버젓이 쓴 것이 딱해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해방 후에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흘려보낸 수십 년의 세월이 있었지요. 친일부역 행위를 청산하지 못한 최초 정부, 민중의 힘으로 다시 세운 정부의 무기력, 일본군 장교 출신 군인의 쿠데타와 역행독재, 그를 이어받은 신군부의 더 심한 무단(武斷)정치 등이 그 수십 년을 지배한 암흑이었던 것입니다.
독재정권·군사정권 당시 권력자들이 자주 쓰던 단어로 기억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애국”, “반공·방첩”, “국민된 도리”, “총력안보”, “서정쇄신”, “국가원수(元帥).”
이런 단어들은 ‘왕과 황국신민’이라고만 하지 않았을 뿐, 내용은 왕정시대나 식민지배 당시와 꼭 같은 것입니다. ‘애국’은 ‘보국’의 다른 표현이었으며, ‘총력안보’는 적의 위협이 코앞에 있음을 강조한 허위의식 만들기였음을 지금 우리는 다 압니다. ‘서정(庶政)’이란 민중의 일상적 생활 문화를 뜻하는데 지배층의 부패한 행태에 대해서는 관심 가지지 못하도록 초점을 흐리는 단어입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왜색타파 같은 것을 생각하기에 우리 민중은 너무나 무력했고 현실을 살아내기에도 빠듯했을 것이기에, 별 생각 없이 식민지시대의 ‘○○보국’이라는 단어를 썼을 것으로 이해합니다. 일본육사 출신 군인의 대를 이은 세력이 지배하던 시기에 그들에게 익숙한 단어로 권력의 환심을 사고자 의도한 단어라는 까칠한 생각은 굳이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국가(정부)는 시민을 위해, 시민의 필요에 의해 구성되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이 현대 민주사회에서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시민이 국가에 ‘보답’할 일은 없습니다. 왕이 없는 사회에서 왕의 ‘은혜’에 보답할 일은 더욱 없습니다. 더욱이나 국가가 시민에게 부여하는 「임무」 따위는 애당초 없는 것입니다. 그럴 권리도 없습니다. 전쟁을 위한 비상체제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인적자원을 이용하고자 할 때에나 한정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직능단체(개인)의 ‘임무’일 뿐, 시민의 행복추구가 가장 높은 가치인 평화체제의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남아있는 이런 케케묵고 무신경한 단어부터 찾아 없애는 것이 일제잔재 청산의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이 사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동진강 「김제 대간선수로」 시작지점에 있는 「납수(納水), 백파(百派)」 따위 출처불명의(아마 거의 틀림없이 일본말의 잔재일) 단어도 얼른 없애야 할 줄 믿습니다.
(2019년 6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