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경상우도 의병활동과 이순신의 활약
1592년 4월 13일
부산진을 친 왜군이 동래성을 침(당시는 동래성이 컸음)
일본에 조선통신사가 1590년 3월에 파견되는데,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
일본의 동향에 대해 엇갈린 보고를 한 통신사 일행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김성일의 의견을 채택한 조선 조정
김성일(1538~1593년) 조선문신으로, 퇴계 이황의 제자
임진왜란의 초기는 관군의 미흡한 준비로 일본군 공격에 대을할 수 없었던 조선
임진왜란 전부터 일본군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던 이순신 장군
조선의 산하가 일본군에 밟히다.
송상현(1551~1592) 조선중기의 문신,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역임
征明假道 정명가도
명나라를 치는데 필요한 길을 빌려 달라.
戰死易假道難 전사이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잘못된 전술과 일본의 신무기 조총을 간과한 신립장군
1592년 4월, 충주의 탄금대 전투에서 패함.
조령에서 왜군을 막아야 하는데 탄금대에서 뒤의 강을 배수진으로 해서 싸웠다.
평지인 탄금대 앞길은 조총 사용에 용이하였으며 당시 기마병을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들이
습지여서 말을 활용하기 어려워서 패전함
충주의 함락 소식을 듣고 피난길에 오르는 선조와 조선 조정
무능한 조정에 분노한 백성들이 분노함
신병주: 건국 대 사학과 교수. 외교통산부 외규장각도서 자문 포럼위원 . ‘ 선을 움직인사건들‘ ’조선평전‘의 저자
파죽지세로 18일만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진격한 일본군
일본군은 낙동강을 타고 북상하고 서해를 통해 곡창지역인 호남을 차지하여 군량미로 활용하고자 하였으나 낙동강 우도 의병장 김면, 곽재우 등이 낙동강을 통해서 호남 진출하는 것을 막았으며, 남해에서는 이순식 장군이 맊았슴
그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의병들의 활약으로 많은 군사적 피해를 입게 됨
사림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의병활동
경상우도의 3대 의병장은 송암 김면을 비롯하여 망우당 곽재우, 내암 정인홍 세사람이다.
송암 김면 선생은 당시 경사우도병마절도사가 되어 이들 3군을 지휘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참고로 다음 학술대회 발표지를 올린다.
교과서와 관련 있으신 분은 필히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이 관심 갖고 늦게 밝혀진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2011년 6월 1일 발표 학술지 75쪽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의하면,
천재교육 215쪽 지도에는 곽재우-의령의 기록이 있고,
대교 189쪽에는 정인홍-합천, 곽재우-의령이라 설명하고 있으나,
어디에도 김면-고령의 표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상기 의병 조직을 본다면 누락되어서 안될 분입니다.
남해안과 서해안의 해로(海路)를 차지해 식량을 확보하려 했던 일본군
이순신에게 막히자 낙동강을 통해 호남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의병도대장 김면이
이끄는 의병들에 의해 진로가 막힌다.
옥포해전-(1592년 5월) 옥포(경남 거제시)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일본군을 물리친 해전
일등공신에 책봉된 이순신, 권률, 원균장군
사천해전-(1592년 5월) 사천 앞바다에서 이순신과 원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일본군을 물리친 해전. 거북선을 최초로 이용한 싸움임
한산도 대첩-(1592년 7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일본군을 크게 무찌런 해전
학익진 진법-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로 적을 포위하면서 공격하기 쉬운 전법
△ 명량해전도1. 일본 군함이 밀집 형태로 해협을 통과하여 이순신 장군의 기함을 포위하고 있다.
뒤편으로는 조선 수군의 군함 12척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다.
△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로 활용된 대포격인 총통. 이 총통을 배에 장착해 대장군전, 단석, 화포, 조란탄 등을 발사했다.
△ 거북선 내부의 모습. 거북선 안에서 총통을 발사하는 조선 수병의 밀랍인형 모형.
명나라의 참전으로 일본과의 강화협상이 이루어짐
이여송(1549~1598) 중국 명의 장수, 임진왜란 당시 명의 2차 원병을 이끌고 참전했음.
1593년 1월, 이여송이 이끌고 온 명의 원병과 연합해 평양성을 수복한 조선군
벽제관 전투(1593년 1월) 벽제관(고양시 벽제동)에서 일어난 명나라의 원군과 일본군과의 싸움.
이여송이 이끈 명나라 군대가 크게 패함.
행주대첩(1593년 2월)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한 싸움.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림.
명과 일본의 강화회담으로 잠시 철수한 일본군
1597년 강화회담의 결렬로 다시 전쟁을 일으킨 일본(정유재란)
1598년 11월, 임진왜란의 마지막전투 노량진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①차출전1.옥포해전
2.합포해전
3.적진포해전
②차출전4.사천해전(거북선을 최초로사용)
5.당포해전
6.1차 당항포해전
7.율포해전
③차출전8.한산도대첩(해전)(왜선14척나포)
9.안골포해전
10.장림포해전
11.화준구미해전
12.다대포해전
13.서평포해전
14.절영도해전
15.초량목해전
16.부산포대첩(해전)
17.웅포해전(2차웅포해전도 있음.)
18.2차 당항포해전
19.장문포해전(영등포해전 포함입니다.)
④차출전20.명량대첩(해전)
21.절이도해전
22.예교해전(장도해전)
23.노량진대첩(해전)
전쟁에 승리했지만 전국이 전장으로 변해 큰손실을 입은 조선
임진왜란 후 명나라가 쇠퇴하고 여진족의 후금이 강해짐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귀화한 장수는?
강화회담에도 돌아가지 않고 일본군은 조선에 성을 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