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장대(연무대) 전경 |
| | ▲ 동장대 정면 모습 | ▲ 동장대 담장 너머로 바라 본 동북공심돈 모습 |
동장대(東將臺)는 화성의 2개 장대 중 하나로 일명 연무대(鍊武臺)라 부른다. 화성장대(서장대)가 군사령관의 지휘소라면 동장대는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곳으로 지형이 높지는 않지만 사방이 트여있는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성의 동쪽 군사시설 중 중요한 곳으로 화성 시설물 중 가장 위용있는 곳이다. |
| ▲ 동북공심돈 전경 |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다. 성탁(城托)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遼東)에 있는 계평돈(平墩)을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墩)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다.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 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 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 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
| | ▲ 동북공심돈 측면 모습 |
아래 층 높이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바깥 쪽으로 총안을 뚫어서 밝은 빛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겸하게 하였다. 위 구멍은 26개, 아래 구멍은 14개[사방 각각 1척]이다. 위 아래 덮개판 위는 진흙과 회를 섞어 쌓았다. 아래 층 공심에서 구불구불한 벽돌 사닥다리를 거쳐 위로 올라가면 위층에 이르게 되어 있다. |
| | ▲ 성밖에서 올려다 본 동북공심돈 | ▲ 동북노대의 담장 사이로 바라 본 동북공심돈 |
그 규모는 기둥 6개를 세웠는데 길이 12척이고 너비 10척이며,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다. 평평한 여장을 둘렀는데 높이 5척, 위 아래에 포혈 23개와 누혈 6개를 뚫어 놓았다. 아래 층 안 쪽에는 벽돌로 만든 홍예 모양의 작은 문을 설치하였다. 또 문 동쪽으로 공심을 막아서 온돌 한 간을 지어 놓았는데 방안(方眼)을 창으로 삼아 군사들이 출입하게 하였다. |
| | ▲ 성 안과 밖에서 바라 본 동북노대 |
동북노대는 창룡문의 북쪽 96보의 거리에 있다. 치(雉) 위에 벽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었는데, 대 아래의 석축 높이 13척, 대의 높이 18척이다. 벽돌로 쌓는 방식은 사각형이지만 모서리를 깎아 벌의 허리처럼 만들어서 모를 죽인다. 안쪽 너비 17척 4촌, 바깥쪽 너비 19척, 성밖으로 나온 부분이 25척 5촌, 2개의 현안을 뚫었고, 위에 둥근 여장을 만들었다. 3면에 각각 1타씩이고, 바깥 쪽 2모퉁이에는 둥근 타구를 굽게 접히게 설치하였는데, 모두 방안(方眼) 3구멍을 뚫어 놓았으며, 타구마다 좌우에 凸모양의 여장을 끼고 있다. 안쪽 두 모퉁이는 평여장으로 굽게 접었는데, 모두 높이 6척 5촌, 가운데에 벽돌 계단을 돌계단과 이어지게 하였고 대 위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았다. 담장 안의 남북의 너비는 14척, 동서 길이는 벽돌 계단까지 11척이다. |
| ▲ 성 밖에서 바라 본 창룡문 전경 |
창룡문(蒼龍門)은 성의 동문이다. 서남으로 행궁과 1,040보 떨어져 있고, 유좌(酉坐) 묘향(卯向)이다.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안쪽은 높이가 16척 너비가 14척, 바깥 쪽은 높이가 15척 너비가 12척, 전체 두께는 30척이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각각 아래 너비가 30척 높이 18척 5촌이며, 좌우의 와장대(臥長臺)는 길이가 각각 20척이고 돌계단은 각각 14층이며 너비는 9척이다. 바깥쪽 좌우 무사의 너비는 각각 25척 높이는 18척이며, 안팎 홍예 사이의 좌우 무사는 높이가 각각 17척, 양쪽 선문 안은 쇠로써 빗장을 설치하였다. 홍예의 덮개판 위는 3물로 하였고 두께는 3촌이며, 거기에다 안팎으로 장대 각 2층 홈통 각 2개를 더하였다. 안 쪽은 평평한 여장으로 너비는 51척 높이가 4척 7촌 두께가 2척 1촌이다. 외면은 여장의 너비와 높이 두께는 모두 내면과 같다. |
| | ▲ 동북노대에서 걸어오며 바라 본 창룡문 누각 측면 모습 | ▲ 성 안 좌측에서 바라 본 창룡문 |
타구(口)는 6개[첩은 5개], 방안 총혈은 6개 [각각 사방 8촌 가운데 1첩은 구멍이 2개], 좌우의 여장은 각각 너비가 23척 높이가 5척 6촌 가운데에 작은 널판지 문을 설치하였는데 높이 6척 너비 5척 5촌이다. 장(墻)내에는 6간의 누를 세웠다[안팎 3포(三包)에 2익공(翼工)]. 정면의 간(間)은 너비가 16척 5촌인데 밑에 널판지를 깔았다[높이 1척]. 좌우의 협간은 각각 너비가 8척 5촌 모두 세로 2간이며 전체 길이는 16척이고 기둥의 높이는 7척 5촌이며 단확은 3토를 사용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회를 발랐으며 수문청은 3간으로 문안 북쪽 가장자리에 있다. 동쪽 옹성의 제도는 고제에서 한 쪽만을 연다는 뜻을 취하여 옹성을 쌓았다. 성문의 왼쪽에 이르러서는 원성과 연결되지 않고 외문을 설치하지 않아서 경성의 흥인문 옹성의 제도와 같게 하였다. 옹의 형태는 문의 오른쪽 6보 3척 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문의 왼쪽 6 보 3 척 되는곳 에서 끝난다. |
| | ▲ 성 안 우측에서 바라 본 창룡문 | ▲ 동일포루로 가면서 바라 본 창룡문 측면 모습 |
성과 이어지지 않는 곳은 그 사이가 4보 1척이다. 옹의 높이는 9척 6촌이고 내 면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57척이고 정문과 거리는 28척이다. 외면은 벽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91척이고 아래 두께는 11척 5촌이며 위의 두께는 줄어서 10척 5촌이다. 내면은 벽돌로 된 누조[각각 직경 5촌] 4개를 설치하였다. 평평한 여장으로 둘렀는데 높이는 3척 두께는 2척 5촌이다. 바깥 면은 현안[각각 길이 8척 5촌 직경 1척] 셋을 뚫었다. 여장 4첩을 설치하였는데 높이는 4척 5촌이고 원총안과 근총안[매 첩마다 3개의 구멍 또 북쪽 끝 가로 첩에는 2개의 구멍] 14기를 뚫었다. 옹성 위에는 회다짐을 하고[3물을 혼합하여], 그 남쪽 끝에는 돌 층계를 설치하여 위로 원성과 통하게 하였다. |
| | ▲ 성 안과 밖에서 바라 본 동일포루 |
동일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에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포루는 성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며, 초소나 군사 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이 곳의 지형은 평탄하고 넓어서 멀리 관찰할 수 있도록 포루 중 성벽에서 가장 많이 돌출되어 있다. |
| | ▲ 동일치 모습 | ▲ 동일치에서 바라 본 동일포루 측면 모습 |
동일치는 동일포루와 동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치는 성곽의 요소요소에 성벽을 돌출시켜서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병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로 화성에는 10개소가 있다. 기본적으로 치성 위에는 누각이 없이 여장만이 설치되어 있다. 치(雉)는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엿보기 때문에 시설의 용도와 그 뜻이 통해서 치라고 한다. |
| ▲ 성밖 동일치 방향에서 바라 본 동포루 모습 |
| | ▲ 성 안과 밖에서 바라 본 동포루 |
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에 동쪽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포루는 치성과 같이 성벽을 돌출시켜 검정 벽돌로 쌓았으며, 나무 마루판을 이용하여 3층으로 구획하였다. 벽면에 포혈을 내어 화포를 두고 위에는 여장(담장)을 둘러 적을 위와 아래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 | ▲ 동이치 모습 | ▲ 동이치에서 걸어가며 바라 본 봉화대 모습 |
동이치는 동포루와 봉돈(봉화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치는 성곽의 요소요소에 성벽을 돌출시켜서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병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로 화성에는 10개소가 있다. 기본적으로 치성 위에는 누각이 없이 여장만이 설치되어 있다. 치(雉)는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엿보기 때문에 시설의 용도와 그 뜻이 통해서 치라고 한다. |
| ▲ 봉돈(봉화대) 전경 |
봉돈(烽墩)은 일자문성(一字文星)의 위에, 동2포(東二鋪)와 동2치(東二稚)의 사이에 있는데 행궁을 안조(案照)한다. 4성을 쌓고 나서 파수(把守)를 설치하여 정찰할 임무를 맡긴 것은 척후(斥候)의 의미를 가진 것이니, 멀리 육지나 바다에 대한 경보를 알리는 것을 더욱이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드디어 철성(凸城)의 제도에 의거하여 비로소 봉돈을 설치하였다. 벽돌로 쌓아올려 성의 몸체 위에다가 벽돌로 다시 높게 쌓았으며, 성 밖으로 18척이나 튀어 나오게 하여 마치 치(雉)처럼 생겼으면서도 그 보다 크다. 외면의 돌로 쌓은 것이 5층, 벽돌로 쌓은 것이 62층으로 전체 높이 25척, 너비 54척, 현안 2구멍을 뚫었다. 내면은 굴곡이 지게 하여 3층으로 만들었는데, 제1층의 높이 4척, 두께 8척으로 5개의 화두(火竇)를 설치하였다. 화두의 밑둘레 각 17척 2촌, 위의 줄어든 둘레 11척 5촌, 높이 11척으로서, 성가퀴 위로 6척이나 올라갔다. 거구(炬口)는 허리 쯤 높이에 있는데, 길이 각각 3척 1촌, 너비 1척 5촌, 위로는 꼭대기까지 뚫어지게 하였는데, 꼭대기 부분 지름이 1척이다. 5화두의 사이에는 성가퀴를 붙였고, 양쪽 끝은 구부려 안으로 향하게 하였는데, 3면에 포혈 18개를 갖추었다. 아래 두 층의 벽돌 층계는 너비 각 1척 4촌이고 높이 3척 3촌인데, 이것도 또한 휘어 구부려 3면 벽성을 만들고, 총안 18개와 누혈 1개[사방 1척]를 내었다. 좌우의 구부러진 돌층계를 거쳐 위로 올라가서 거로(炬路)로 통하게 되었는데, 층계가 각 10층이다. |
| | ▲ 좌우에서 바라 본 봉화대 모습 |
양쪽 가장자리의 층계 끝에는 벽돌로 지은 집이 이어졌고, 용마루 없이 기와로 덮었다. 남북에 각각 한 간씩 있는데, 남쪽에 있는 것은 온돌로서 지키는 군졸이 거처하는 곳이고, 북쪽 것은 판자를 깔았는데 기계 따위를 넣어둔다. 봉돈에서 성내로 들어가려면 이 2곳의 모퉁이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좌우 것이 모두 길이가 16척이다. 돌층계의 등에 기대어 하나의 네모진 성을 만들고, 층계 위에는 짧은 담을 3 층으로 만들었는데, 아래는 2집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면의 2간은 벽돌로 쌓은 담인데, 길이가 18척 6촌이고, 한 가운데에 작은 문을 홍예로 틀었다. 담의 높이 13척으로 높이가 집과 같다. 담의 안쪽 등()의 아래에 해당하는 곳은 남북이 32척이고 동서가 21척이다. 저녁마다 남쪽의 첫째 횃불 구멍에서 횃불 하나를 들면 동쪽으로 용인 석성산(石城山)의 육봉(陸烽)에서 봉화로 응하고, 서쪽이 없으면 횃불을 들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다만 흥천대의 바다 봉화는 너무 멀어서 곧 바로 전하기가 어려우며 또 다시 화성부의 서쪽 30리 서봉산(棲鳳山) 위에 새로이 간이 봉화를 두어 여기에서 오는 봉화를 이 곳에서 전담하도록 하였다. 서봉산 사이 봉화는 또한 다섯 개의 화두(火竇)를 잡석대(雜石臺)위에 설치 하였는데, 화두의 높이 11척이고, 아랫 둘레 13척인데, 돌로 쌓고 회를 발랐다. 그 꼭대기는 허리 쯤의 높이로 하였고, 모두 횃불 아가리가 있는데, 동쪽으로 화성부 봉돈의 봉화에 준하고 있다. 대 아래 산 허리에 4간의 곳간을 지어 군대 물품을 저장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수직청(守直廳)을 지었다. |
| | ▲ 동이포루 모습 |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에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포루는 성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건물이며, 성내에 있는 아군의 동향을 적이 알지 못하도록 설치한 시설물로 초소나 군사 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마루 아래 여장(담장)에는 여러 개의 총 구멍을 뚫어 적을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
| | ▲ 동삼치와 동삼치에서 바라 본 성밖 모습 |
동삼치는 동이포루와 동남각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치는 성곽의 요소요소에 성벽을 돌출시켜서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병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로 화성에는 10개소가 있다. 기본적으로 치성 위에는 누각이 없이 여장만이 설치되어 있다. 치(雉)는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엿보기 때문에 시설의 용도와 그 뜻이 통해서 치라고 한다. |
| | ▲ 화성의 마지막 부분인 동남각루 | ▲ 동남각루에서 팔달문 방향으로 내려다 본 모습 |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에 동남쪽 남수문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치한 높은 마루식 목조 건물이다. 이 곳은 주위를 감시하기 좋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화성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
| 소재지 : 경기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190 빨간선은 팔달문에서부터 좌측으로 화성을 한 바퀴 돌아 본 동선 표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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