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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6일 부활절 후 세 번째
성경 ; 행4:5-12, 요일3:16-24, 요10:11-18
제목 ;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신하려면?
1.인간의 소외된 상황과 필요성 (인간의 문제점) - 예수의 사랑을 제대로 실
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①(원인)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ㄱ.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ㄴ.예수의 교훈과 사랑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②(과정)주께서 보여주신 참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까닭에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ㄴ.말로만 사랑할 뿐이지, 행동으로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ㄷ.자기 양떼를 버리고 도망가는 목자가 있습니다.
③(결과)예수를 똑바로 증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예수가 구세주이심을 전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ㄴ.자신이 소원하고 바라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십자가에서 참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①(본질)하나님은 생명이요 사랑이십니다.
ㄱ.하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ㄴ.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십니다.
②(활동)십자가에서 참된 사랑을 실천하고 보여주셨습니다.
ㄱ.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ㄴ.울 밖에 있는 양떼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ㄷ.주님의 이름으로 온전치 못한 사람을 온전하게 해주십니다.
③(결과)우리에게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ㄱ.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ㄴ.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에 그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해야 합니다.
①(준비)예수님의 이름과 그 능력으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ㄱ.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ㄴ.성령으로 충만하고 깨끗한 양심을 소유해야 합니다.
ㄷ.예수의 이름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②(실천)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본받아서 직접 몸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ㄱ.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ㄴ.울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ㄷ.주님의 이름으로 온전하게 됨으로써 주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
니다.
③(결과)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ㄱ.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ㄴ.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면,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있습니다.
4.파견사
목사 :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참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하나
님을 믿는 여러분! 그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
끼는 생활을 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사랑을 나눔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회중 : 아멘. 우리를 죄 중에서 구원하여 참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는 말로만 큰소리쳐왔던 이
웃사랑을, 이제는 예수님의 참사랑을 배우고 그 능력을 힘입어서, 실제 몸
으로 실천하겠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확실히 증거하고 참으로 구
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
여호와는 우리의 목자시니,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가 우리를 푸
른 풀밭에서 쉬게 하십니다. 여호와는 우리를 잔잔한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
며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은 우리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겁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
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우리를 언제나 든든하게 보호해 줍니다.
영원한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이처럼 우리를 주님의 전으로 불러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사
랑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통하여 날마다 주님
의 모습을 더욱 많이 닮아가는 복된 심령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 시간,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실 줄로 믿사옵고,
우리에게 부활의 기쁨을 안겨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복된 날을 허락하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주께서 보여주신 참사랑을 본받
아, 우리도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며 아낌으로써 구원 받은 자답게 살겠습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주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원하오니, 우리에게 깨끗한 양심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십시
오. 그래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주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게 하소서. 부활하
여 인류의 참 소망이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성시교독
목사 : 여호와는 우리의 목자시니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회중 : 그가 우리를 푸른 풀밭에서 쉬게 하십니다. 여호와는 우리를 잔잔한 물
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며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목사 :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은 우리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회중 : 우리가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겁나
지 않습니다.
목사 : 그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
이가 우리를 든든하게 보호해 줍니다.
회중 : 주님께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에게 식탁을 차려 주십니다.
목사 : 주님께서 우리 머리 위에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시며, 우리 잔이 넘치도
록 가득 채워주십니다.
회중 : 여호와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이 우리가 죽는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8.예화
1)사과 씨
사과에 씨가 들어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씨 속에 사과
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가. 전자는 상식이지만, 후자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하
면 깨달을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식적으로는 맞는 얘기가 아니기 때문
이다.
씨앗 속에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꼭 보여야만 사실인 것은 아니
다. 씨앗이 땅속에 묻히고 썩어서 싹이 트고 줄기가 뻗어 나오고 나무가 되면,
가지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다.
성경은 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니(히 11:1)”
2)최춘선 할아버지가 맨발이 된 이유는?
만일 우리가 지하철에서 맨발로 ‘예수 천당’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최춘선
할아버지를 만난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처럼 정신 나간 광신자 정도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꼭
저렇게 전도해야하나?”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
입니다.
그런데, 1995년 7월부터 시작된 영상일기가 2001년 9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실 때까지, 김우현 감독의 카메라에 하나씩 드러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진실들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이 사실입니다. 할아버지는, 단순히 정신
나간 노숙자나, 지나친 광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드러난 최춘선 할아버지
의 이력을 아는 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70년대 자가용 5대를 소유한 재력가, 김포일대의 땅이 모두 할아버지의
소유, 일본 동경 와세다대학 유학, 5개 국어에 능통, 김구선생과 함께 독립운
동, 최춘선 할아버지 직업은 목사, 아들도 목사 최바울, 대전 국립묘지 독립유
공자 묘역에 안장.
참 기막힌 이력입니다.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은 재력과 학력, 그리고 바른
정신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하던 멋있는 목사였습니다. 더욱이 아들 최바울 목
사는 “아버님이 독립유공자였기 때문에 도장만 찍으면 연금이 나오고, 저희들
은 대학까지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는데, 신청을 안 하셨어요. 남과 북이 아
직 분단된 상태이므로 완전한 독립이 이뤄지지 않았고, 보상을 받기 위해 독립
운동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어요.”라고 술회합니다.
진정한 독립운동가셨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최춘선 할아버지가 전도할 때,
안중근, 유관순열사를 인용하는 것이 이해가 되고,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니시는 이유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최춘선 할아버지를 이렇게 살게 한 것일까요? 김
우현 감독과의 대화중에 최춘선 할아버지는 벽에 걸린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라는 말씀과 함께 “내 몸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아멘”
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22세에 부름 받고 주님 따르는
가운데 있지만, 너무 너무 불충성 불순종에, 진짜 죄인 중의 괴수인데, 하나님
의 자비가 한량없어서 붙들어주시니까, 날마다 감사와 기도로 승리합니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이렇게 산 이유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보았기
때문입니다.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본 것이, 그가 안 것이, 그의 삶을 결정
하게 한 것입니다. 정말 예수의 사랑을 체험하고 십자가를 경험한 그는 가장
큰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
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표준새번역/빌3:8-9)
사실 조금만 더 살펴보면, 성경에는 최춘선 할아버지와 같은 인물들이 많
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있었고, 세례 요한도
약대 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노숙하였었습니다. 호세아는 창녀가
된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다녀야 할 만큼 비참하였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말
씀하시는 대로 행동하는 광야의 연극인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산 것은, 보
았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았고 들었고 경험하였기 때문입니
다.
사실 문제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잘 먹고 잘 사
는 것에 도취되어서, 그것을 추구하느라고 정말 진리를 보지 못하는 우리가 문
제인 것입니다. 마치 쥐덫에 걸린 것도 모르고 쥐덫 속에서, 정말 자신이 좋아
하는 고급 치즈와 고기 그리고 과자부스러기를 먹고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느
낀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이 지금 문제
인 것입니다. 보지 못하니까, 가짜와 허구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런 우리가 불쌍한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한계적 운명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쥐덫에 갇혀 거기 있는 음식들을 한쪽으로 숨겨놓으려고 하는 쥐
에 불과한 신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아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때, 우
리는 물질과 세상의 노예 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답답한
세상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삶은 보지 못한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가난하
더라도 진리를 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하정완 목사
3)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한다.
2세기의 사상가 쎌서스(Celsus)가 쓴 ‘진실한 담화’(True Discourse)라는
글이 기독교를 비판한 역사상 최초의 책이다. 그는 초창기 기독교인들을 이렇
게 비판했다. ‘그들은 논리와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사도 나누기
전에 사랑하며,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한다.’
논리적으로는 이 비평이 맞지만,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이 얼마만큼 깊이 있
는 사랑을 생활화하고 있었는지 증명해 주는 글이다.
상대방의 경제적 상황, 사상적 배경, 사회적 지위, 인종과 민족을 알아보고 사
랑한 것이 아니라 ‘인사도 나누기 전에 사랑하고, 알기도 전에 사랑한다.’는 초
대교회의 신자들의 사랑이야말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4)화가 렘브란트의 믿음
네덜란드에 암스테르담이 라고 하는 도시가 있지요.
그런데, 거기에 옛날 유명한 화가가 있었는데, 이 화가는 좋은 그림을 많이 그
렸는데, 특별히 시민들이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그 성향을 잘 알아 가지고,
비싼 그림을 많이 그려서 돈 을 많이 벌었어요.
그에게는 특별히 유별나게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어요. 딱 하나 유감된 것
은, 자식이 있었으면 더 좋겠는데, 자식은 없었답니다. 넓은 정원과 좋은 저택
에서 아주 화려한 생활을 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순식간에 행복이 깨져버린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붓을 내던지고 실의에 빠
져있었습니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고, 절망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깨닫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그는 18 종류의 번역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린 그림이 바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
의 주님을 그린 것입니다. 그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서 대화하는 제자들의 모
습이나, 나무의 모습들에서 부활의 약동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나는 위대한 생명의 비밀을 깨닫고 이
그림을 그렸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즉, 그가 행복했을 때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좌절을 느끼는 길목에서 부활의 주님
을 만났고, 엠마오 도상의 그리스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제는 방향을 돌려서 성화를 그
렸습니다. 좋은 그림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렘브란트’입니다.
5)도마의 의심과 믿음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른 제자들보다 여드레나 늦게 만났다. 도마는
살아계신 예수님이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외친 배짱 좋은 사나이였다. 그런 도마를 예수님은
사랑하셨다. 왜 못 믿느냐고 질책하지 않으시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도마가 실제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았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
만, 도마는 곧바로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고 나와 있다. 가
장 먼저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한 제자가 도마다. 부활을 믿는다면서 불안해하
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보다 ‘이렇게는 믿지 못하겠으니, 확실한 증거를 보여 달
라!’는 도마와 같은 ‘정직한 의심’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나의 주님, 나의 하
나님이라는 고백을 삶 전체를 통해 바칠 수 있지 않을까?
5)밝은 얼굴 표정의 복음전도
많은 사람들이 암세포로 인해 생을 마감합니다.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질 때
까지 자신의 몸속에 암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도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속에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화, 불안, 우울, 실망, 원망, 불평, 고집 같은 감정들도 있습니다. 자기
안에 부정적인 감정세포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채기만 해도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데, 늦으면 제거할 수 없는 암세포가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세포가 발견되
면, 안에 담아 두지 말고 즉시 치료하십시오. 암세포도 초기에 진압할 수 있듯
이 부정적인 감정세포들도 초기에 진압할 수 있습니다.
웃음, 기쁨, 칭찬, 만족, 평안, 믿음, 사랑 같은 좋은 감정세포가 이를 치료
할 수 있는 치료제라고 합니다. 얼굴이 어두운 분들에게 좋은 감정세포의 집결
지인 교회를 소개해 보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주십시오. 그들
에게 어두운 그늘을 걷어 줄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주님, 제 얼굴을 밝게 하셔서 좋은 감정세포를 전달하게 하소서.”
6)사람을 변화시키는 10가지 비결
1. 진심이 담긴 칭찬과 감사의 말로 시작하라.
2. 잘못은 간접적으로 말하라.
3. 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과오를 먼저 인정하라.
4. 명령하는 말은 피하라.
5. 상대방의 자존심과 체면을 살려 주라.
6.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말라.
7. 상대에게 항상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
8. 상대를 격려하여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라.
9. 나의 희망에 자발적으로 협력하도록 하라.
10. 변화를 위해서 작은 훈련을 반복하도록 하라.
너그럽고 상냥한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지닌 마음. 이것이 변화시키는
힘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주님,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주의 영혼들을 대하게 하소서.”
사랑으로 상대를 변화시킨 적이 있으면 간증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김장환 큐티365>
9.설교예문
♣부활절 후 세 번째
성경 ; 행4:5-12, 요일3:16-24, 요10:11-18
제목 ;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TV탤런트 중에 ‘이정용’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원래는 코미디언으
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주로 탤런트와 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두 아들의 이름도 ‘믿
음’과 ‘마음’입니다. 이 두 아들은 아버지 이정용 씨와 함께 지금 SBS-TV의
‘붕어빵’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마음’이는 붕어빵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어린이들 중에서 가
장 똑똑하고 재치가 있는 아이들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가 속담
을 알아맞히는 퀴즈에서, 초등학교 일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출연한 어린이들
중에서 제일 많이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이도, 이제 겨우 유치
원에 들어갔는데도, 그 누구보다 프로그램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
버지 이정용 씨는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 ‘마음’이가 저 지난 주에는 ‘아빠의 모든 게 다 싫다.’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이에, 사회자인 이경규 씨가 ‘아빠의 어떤 점이 싫으냐?’
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얼굴이 싫다고 하더니, 그 다음에 줄줄
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아빠의 몸도 싫고, 발도 싫고, 손도 싫고, 다리도 싫다
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정용 씨는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던 가 봅
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딴엔, ‘믿음’이 못지않게 ‘마음’이도
예뻐하고 사랑하는데, 그 마음이가 아빠를 보통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빠
의 모든 게 다 싫다고 했으니,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지난주에, 다시 이정용 씨가 ‘마음’이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랬더
니, ‘마음’이가 말하기를 ‘아빠는 자기에게 거짓말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장난감을 사준다고 하더니 안 사주고, 놀아준다고 하더니 안 놀아주고, 컴퓨터
게임해준다고 했는데 안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가 “아빠, 싫어!”
하고 말했더니, 이정용 씨도 ‘마음’이에게 “아빠, 싫어! 그럼 나도 너 싫다. 그
리고 이제는 믿음이 형만 좋아할 거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정용 씨는
그때 ‘장난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마음’이에게는 아빠의 그
말이 큰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과 사랑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아한다.’는 소리나 칭찬도 많이 듣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에는 그다지 열심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칭찬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말을 하
기 위해서 무슨 밑천이 드는 것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칭찬하는 일에 무척 인
색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남에게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더 간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을 적극 배려하면서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좀 싫은 소리를 해도 그다지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
만, 남에게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 다른 사람의 입장을 무시하고 자기중
심으로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이 조금만 섭섭하게 대해도, 자
신을 무시한다고 하면서 아주 기분 나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내가 교회에 어떤 식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하고 늘 고민하면서, 시간과 물질로, 그리고 몸과 마음으
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교회에 출석한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런 분들이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따뜻한 사랑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잘 이끌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에 힘쓰기보다는, 교회에서 어떤 유
익을 얻거나 무슨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 척하는 분도 없
지 않아 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
나 어떤 교회에서는, 그처럼 교회에서 무엇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교회 목사님이 심히 걱정하고 고민하면서 말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교회를 다녀서 성숙한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교회
에서 늘 듣고 배우는 말씀이 ‘희생과 헌신과 봉사’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내가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먼저
찾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재능과 물질, 시간과 정성을 바쳐서, 공동체를 위하
여 충성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여선교회에서는 식사당번을
정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돌아가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만, 이처럼 음식을
장만해서 헌신하는 일도 결국은 의무감으로 해서는 안 되고, 진정 교회와 믿는
식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내 이웃과 교회, 그리고 사회와
민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희생과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
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반대로, 십자가를 질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과 육신의 안일만을 추구한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진실한 기독교
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음으로써 사랑의 본을 보
여주셨다(요일3:16)’고,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누군가를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을, 무슨 물질을 드리거나 시간을 바
치는 것으로 머무르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바쳐서 진정한 사랑
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
제는 입에 발린 말은 그만 하고, 행동으로 직접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
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이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우리는 하나님 편’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정용 씨가, 유치원생 어린 아들 ‘마음’이의
그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마음’이가 아빠를 미워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믿음의 가족들에게 제대로 사랑을
베풀지 못하면서 ‘우리 교회에는 사랑이 없다’고 말한 적은 없었던가요? 그리
고 우리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살면서 ‘이 동네는 사
람의 정을 도무지 느낄 수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든 적은 없었나요?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양심이 깨끗하다면,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주께로 나아갈 수 있다(요일3:21)’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께 복종하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했다면, 우리가 구하는 것
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수 있다(22)’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거꾸로 말하면,
나 자신은 주님의 뜻대로 살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잘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코미디언 이상해 씨를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회심곡’으로 유명한 국악인 김영임 씨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입
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얼마 전에 모 방송 프로그램에 함께 나온 적이 있습니
다.
그 날의 방송은, 아내 김영임 씨가 남편 이상해 씨를 계속 일방적인 성토
를 하는 것으로 꾸며지고 있었습니다. 쭉 시청을 하다 보니, 이상해 씨는 그의
부인으로부터 그런 성토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상해 씨는 그동안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던 것
입니다. 이상해 씨 본인도 ‘막 살았다.’고 실토했을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
요하겠습니까?
부인 김영임 씨가 밝힌 것 중에서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있습니
다. 평소, 남편 이상해 씨는 담배를 자주 피는 애연가라고 합니다. 어느 날 하
루는, 가족이 함께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 안에서도 이상해 씨는 담배를 물
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인 김영임 씨의 품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갓난
아기가 있었습니다.
김영임 씨는 남편에게 ‘담배 좀 그만 피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남편
은 못들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담배를 피우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계속 담배를 피우자, 부인은 참다못해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제
발 좀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호소하듯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상해 씨는 창
문을 열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창문을 열자, 찬 공기가 확 들어왔습니다. 담배
연기에다가, 이제는 차가운 공기까지 들어오니, 더욱 힘든 상황이 되고 말았습
니다. 그날, 김영임 씨는 너무 속이 상해서 미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해 씨의 이와 같은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은 한두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계속되었다는 것이, 부인 김영임 씨의 말입니다. 그래서 이
혼도 여러 번 시도했고, 자살소동도 벌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 때문에
헤어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김영임 씨는 불면증과 함께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우울증
이 점점 심해지자, 한 달 동안이나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니,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음식도 거의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은 기절해서 쓰러졌는데, 그때 미국 카네기홀의 초청을 받았던 것입니다.
국악인으로서 카네기홀에 서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얼마나 영광스
러운 일입니까? 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
습니다.
카네기홀의 극장장도 말하기를 ‘이런 상태로는 공연할 수 없다.’고 했습니
다. 그러나 너무나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서 심히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상해 씨가 친척 집의 부엌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을 찾으면서 간절히 기도하
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 아내가 이번 공연을 무사히 마치게 해 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결국, 김영임 씨는 공연을 하다가 쓰러질 각오를 하고서 무대에 섰
습니다. 그리고 3시간 동안의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기 아내에게 정말 엉터리 같은 남편으로 살았지만, 그래도 이번
에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아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받아주셨던 것이고, 그래서 그 기도를 이루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이
처럼,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요컨대,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던지, 지금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하면서 헌신할 때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
늘 우리는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얼마나 애쓰
고 노력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씨
는 뿌리지 않고 열매만 거두려고 하는 것은 도둑놈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그
들은 나를 안다.”고 밝히신 다음,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
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주님이신데, 어찌 우리 기도
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을 바로 알고 섬겨야 한다는 사
실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알고 섬기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에, 성실한 자세로 주님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
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셨는데, 과연 오늘 우리는 지금까
지 주님을 위하여 그 어떤 일에 얼마나 열심을 다하면서 살아왔던가요?
어느 날, 제가 교회를 사임하겠다고 말하면, 세 종류의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정 목사가 교회를 떠나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서
무관심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목사가 어떻게 자기 양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
은, 교회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제 입장을 이해하려고 힘쓸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아무쪼록 어디로 가시던지, 가셔서 편안히 잘 지내시라’고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실 분도 없지 않아 더러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양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느냐?’고 하면
서, 이임하는 목사를 향하여 항의하거나 원망하게 될까요? 평소에 목사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따르던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지금까지 제가 겪은
경험으로는, 평소에 목사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힘쓰면서 적극적으로 돕던 사람
들은, 교회를 떠나게 된 목사에 대해서 그다지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소에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던 사람은, 그에게 어떤 환난이
나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을 쉽게 원망하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믿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을 겪게 될 경우, 하나님
을 원망하면서 남 탓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믿음생활을 열
심히 하던 분들이 고난을 겪게 될 경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체험했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고난을 겪고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리라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생활에 충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
님의 사랑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술맛을 아는 사람이 술을 마
시듯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서 베푸시는 사랑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
기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거나 헌신하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일방적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면서 사랑해주기만을 기다린다면, 그야말로 백년하
청(百年河淸)일 것입니다.
씨를 뿌려야만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법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어야, 그 사랑이 열매를 맺어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
다. 하건만, 씨는 전혀 뿌리지 않고 그저 열매만 거두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
로, 도둑놈의 마음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그런 마
음을 가진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자신은 약속을 식은 죽 먹듯이 어기
면서, 타인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노발대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에는 들은 척 만척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결코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그 사
람과 싸우기 싫어서 조용히 있을 뿐이지, 그 누구라도 그런 사람을 좋아할 리
가 만무합니다. 우리가 진정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한다면, 주님께
서 지신 그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먼저 상대방 입장을 이해
하도록 노력하고, 그 마음에 들도록 말하면서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
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그런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성실한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모저모로 도와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선적으로 우리는, 우리를 구
원하시려고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신 주님의 사랑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합
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살도록 해야
합니다. 때로는,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손해가 나고 억울한 일을 겪게
되는 경우가 생길지라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
다.
저는 이 시간, 복음성가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
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옹졸한 내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
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
저 손해 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 둘 바 모르고,
오~ 이렇게 흐느끼며 서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
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추
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
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 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고 서있네. 어찌할 수없는 이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주님께 맡
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