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서는 경기장마다 관중들이 몰리는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그때 이동국 고종수 안정환은
지금의 아이돌그룹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10대 팬들이 평일 오후에도
경기장을 찾았다.
그 현상에 대해 기사를 쓰려고 나는,
포항 경기를 천안에서 보고 포항까지
따라가서 당시 박성화 감독과
이동국 선수를 만나 인터뷰했었다.
그때 박성화 감독한테서 들은 말이 인상적이었다.
"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으면
선수들은 흥분하게 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공격 축구가 이루어진다.
골은 늘고 파울은 줄어든다."
프랑스 월드컵 전 K리그는 늘 썰렁했다.
함성은커녕 봐주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그들만의 리그였다. 경기력 향상은 고사하고
신바람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팬들이 가득 들어차니
선수들의 자세가 달라진다고 했다.
박 감독은 "이 분위기를 잘 살려가면
2002년 월드컵은 성공할 거고
한국팀도 틀림없이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다"고 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이
히딩크 마법에서 나왔다고 흔히들 여기지만
박 감독은 히딩크가 오기 전부터 성공을 예견했었다.
그가 지목한 성공의 열쇠는 팬들의 성원이었다.
"감독들끼리 만날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승부도 중요하지만 이동국 고종수 안정환 같은
스타들 절대 다치게 하지 말자고."
스타가 부상 당하면 팬들이 줄어들까 봐
감독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그런 협의가 있었다고
했다. 평소 팬들의 환호는 선수들의 사기뿐 아니라
경기력 향상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히딩크가 만든 게 아니라, 팬들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일찌감치 박성화 감독을 만나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지금도 그리 믿는다.
스포츠에는 별 관심이 없고 쓸 여력도 없던 시사주간지에서 축구 기사를 크게 쓰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었다. 프랑스월드컵에서 참패를 했는데도 축구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K리그 붐이었다. 붐을 이끈 주역은 이동국. 당시 K리그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이 2002년 4강 신화를 만들었다. 히딩크는 빼어난 기술자였고. '축구문화'라고 해서 당시 문화부에서 나한테 기사를 쓰라는 명령이 떨어졌었다. 지금 보니, 표지 제목이 참... 옛 시사저널.
스포츠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문화가
변화 발전해가는 양상을 보면
여러모로 기형적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몰빵.
한때는 영화에 몰빵했다. 투자와 관심은
영화에 집중됐었다.
대중음악에서는 댄스음악 몰빵.
케이팝이 그 몰빵의 수혜를 입기는 했으나
몰빵의 그늘도 작지 않다.
다른 장르는 명맥을 잇기도 어렵다.
스포츠의 몰빵도 마찬가지.
한국은 야구의 나라이다.
프로야구에 몰빵한다.
1990년대 초중반 그 인기를 누렸던
농구는 그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
2002년 영광을 경험한 축구마저
평소에는 이 모양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야구 이야기는 많아도
K리그를 이야기하는 이는
수천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딱 한 명 있었다.
비평가들만 4년 만에 한 번씩 쏟아질 뿐이다.
평소 K리그에 큰 관심을 가지고 경기 분석을
즐겨하던 페이스북의 친구 한 분은,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한국의 부진을
질책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NBA보다 한국의 대학농구를
여전히 더 즐긴다. 36년째이다.
예전에 그 인기있던 대학농구는
지금은 소수의 마니아팬들만이
관심을 갖는 종목으로 전락했다.
대학농구를 여전히 사랑하는 팬들은
지금도 경기장을 자주 찾고 선수들에게
성원을 보내지만, 경기에 졌다고,
국가대표가 왜 이렇게 못하느냐고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독설이나 조롱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런 저런 내용을 잘 알기 때문이다.
K리그 축구에 프로야구 몰빵의 반의 반만이라도
나눠준다면 러시아월드컵 성적은 훨씬 좋았을 것이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라도
했다면 감독과 선수들을 그렇게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축구 자산인 홍명보를 희생양 삼아
날리더니, 이제는 신태용이 그 뒤를 이을 조짐.
왜 우리 축구문화는 홍명보 신태용에게
몇년이고 투자하지 못할까.
내가 보기에, 이게 다 몰빵 문화 때문인 것 같다.
*내 페북 친구 중에 유일한 K리그 팬인 그분은
월드컵에 대한 지금과 같은 내용의 관심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단언했다.
비난과 조롱은 선수들을 오히려 주눅들게 하여
경기력을 더 낮춘다고도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어려울수록 선수에게 격려가 필요하다.
격려하기 싫다면 조롱만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래부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