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herpur 지역에 있는 Mujibnagar 라는 유적지를 교육학사과정 학생들의
역사탐방에 같이 갔었다.
1971년 파키스탄과의 전쟁시 임시정부가 주둔하며 진두지휘하던 곳이라 한다.
그 곳에 150 여 명이 버스 4대에 나누어 타고 유적지 탐방을 가는데 먹을
점심용으로 염소를 잡아 처리를 하고있다. 점심을 따뜻하게 지어서 먹인다고 한다.
아침 7시에 출발 한다하여 나는 집에서 일찍 준비하고 밥도 먹고 시간 마추어 왔더니만
떠나는 시간이 8시가 다 되서 출발하였다. 옛날 한국의 코리안 타임이나 마찬가지다.
일찍 나오니 학생들은 거의 다 나와 있는데 교수진들이나 학장이 늦는다.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하여 여러 학생들과 같이 찍고. 내 핸폰으로는 담지 못했다.
학장이 밴을 갖고 따로 간다하는데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학생들 틈에 가겠다 했다.
이 곳 학생들의 단체 여행 분위기를 좀 느끼려고. 맨 앞자리에 방글라 국어교수와 같이 앉아갔다.
이 곳 방글라데시는 술을 못 먹게 되있는 나라이다 보니 음주가무에 음주는 없으니 어떻게들 하나 했다.
버스가 냉방이 없는 차이니 문 전부 열어놓고 달리니 그 소음이 대단하여 옆사람과 말 하기도 힘든다.
버스안에 음료수를 갖고 가는게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모양이다.
술을 없다. 맹숭아니 지내나보다. 재미나게 지낼까 ?
3시간이나 가는 길에 지나가는 지역에마다 이런 짐차들이 많이 보인다.
화물 운반 차량이나 사람들 타고 다니는 차량이나 모두 삼륜차인데 말이 차이지
이 세상 엔진이라 하는건 아마도 모두 이런 종류의 삼륜구동차로 달고 달린다.
경운기 엔진부터 소형 오토바이 엔진까지. 중장비 엔진도 있고 별 엔진들을
다 달고 운반구로 활용한다. 아마도 그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수있지않나 한다.
이런 발동기 엔진도 운빈구의 엔진으로 되고.
아침 용으로 나온 나스타. 작은 식빵 한 봉다리와 미스띠 라고 아주 달콤한 달걀만한 것과 바나나 한개가 있다.
모든 참가자들에게 한 봉지씩 나누어준다. 우리 버스에는 모자라서 다른 버스에 연락하여 남은것을 받아서 나누어 준다.
이게 관광용 버스이다. 운전석 앞 유리창은 깨져서 테이프로 발라 놓고
계기판의 모든 계기들은 상자각으로 덮어 놓았다. 아마도 구동이 안되나 보다.
보니 속도계 하나만 보이게 해 놓았다. 운전수의 운전 솜씨는 아주 탁월하다.
좁은 길에서 차량간의 교행시 잘 빠져 나간다. 속도를 줄이는것도 아니면서.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좀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대로 몸을 맡겨본다 생각하니 편했다.
도로들의 상태가 아주 좋은 곳이 많다 . 이 길이 하도 오래 된 도로라 한다.
100 여년전에 영국 식민지시대에 만든 도로라 한다. 인도로 가는 도로이다.
나무들을 보면 아주 오래된 느낌을 받는다. 나무들의 굵기가 어마어마 하다.
한국에서는 볼수없는 그런 굵기.
학생들이 그것도 남학생들만 노래를 부르는데 차창 밖이 시끄러우니
노래가 제대로 잘 들리지 않는다. 여자 학생들은 조용히히 간다.
한국의 관광버스같이 조용하면 노래소리도 잘 듣고 좋으련만.
너무 과분한 생각인가. 이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으니 이게 당연한 것으로
알고들 있겠지.
철교 하나를 지나는데 왕복 일차선 정도의 폭이다.
오는 차가 멈춰야 가는 차가 지나간다.
왜 이리 좁게 만들어 놓았을까. 혹시 사람들만 다니게 한건 아닌지
길가 나무가 이랗게 굵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는 보호목으로 아마도 지정을 했을 터이다.
이 곳 유적지의 호스텔이다.
이 곳을 빌려 쓰기로 했나 보다.
이 건물로 가니 방도 있고 휴식공간도 있고
뒤뜰에서 식사준비를 하고 공터에서 모두 둘러 앉아 식사도 한 곳이다.
이 호스텔 2층 휴게공간에서 본 밖의 풍경.
역사 기념탑으로 가는 길이다.
이 곳에 오니 삼륜자전거에 뒤에 나무판을 넓게 대고
여러명이 타고 함께 이 주위를 구경시키는 운반구가 있었다.
나도 학생들과 함께 한 조를 이룬 팀과 이걸 이용하여 이동하며 구경했다.
목적지가 인도와의 국경선에를 갔다 오는 것이다.
지나면서 보이는게 이런 기념탑도있고.
국경선 동네로 오니 길 가가 다 가게들이다.
기념품 가게들이고 파는 물건들의 종류가 다 똑같다.
해가 쨍쨍 나니 더웁고 해서 내가 함께 타고간 6명에게 음료수들을 사서 돌렸다.
이길 끝이 국경선이라 한다.
여기서는 이곳까지만 일반인들이 오고 그 안으로는 아마도 들어가지를 못하나 보다.
경찰이 한사람 들어가더니 저 멀리 경계선까지 간다.
여기 경계입구에서 같이간 팀들이 사진을 담고.
기념유적지로 돌아와 커다란 원형으로 만든 유적건물을 둘러 보았다.
그 안에를 방글라데시 지도를 만들어 1971년도 파키스탄과의 전쟁시 격전지들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해 놓고 있다. 어느 곳은 파키스칸 군인들이 방글라 사람들을 처형하는 장면도
재현 해 놓고 있고, 어느 지역은 방글라 군인들이 함락을 한걸 묘사 한 곳도 있고.
바다 쪽은 물로 채워 놓고 있다.
학장팀들을 만나 세세하게 돌아 보았다.
당시 전쟁 시 바키스탄은 방글라데시를 오려면 인도를 거쳐서 와야 하는데
인도가 방글라데시를 지원하고 있으니 군대가 올 수가 없었다 한다.
방글라데시는 인도가 감싸고 있고 인도 땅을 지나야 파키스탄이니.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된건,
그 당시 인도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데도 소련과의 협력을 받았고
파키스탄은 미국과 중공의 지원을 받았다 한다.
왜 인도가 공산국가와 공조를 하였는지 모른다. 아마도 영국에서 헤여난 후에 영국의 동맹인 미국을 반대하여
그 반작용으로 공산주의 맹주인 소련을 택해나 보다. 헌데 종공도 공산주의 국가인데 파키스탄을 지원했다니
참 알송달송한 역사이다.
파키스탄 군인들이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처형하고 하는 장면들을
묘사 해 놓았는데 북괴가 한국전쟁 시 남한의 사람들에게 한 것과 다를게 없다.
우린 한 같은 민족인데도 사상이 틀려 했지만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은 종족이 다르니.
그 반감들이야 더 했을거 같다.
광장 입구 정면으로 오는 길에는 방글라데시의 국화인 수련꽃 봉우리로
장식 해 놓았다.
모형들을 만들어 놓은 곳에 이 모형은 이 나라 국부인 초대 대통령에게
군인들이 국기계양대 옆에서 인사하는 장면이다. 이 나라 를 독립시키는데 기여한 이 사람은
반대 정당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딸이 지금의 수상이다. 어느나라에서나 개발과정 건국과정에서
특출한 인사들이 살해당하는 예가 어느곳이나 있는가 보다. 그래도 이 곳에서는 그를 국부로 떠 받들고
있는 것 보면 국민들의 존경이 한 곳으로 집중이 되있어 분열되지 않는게 참 보기 좋다. 사상이 없어서 그럴까.
우리나라도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에서 회의하는 모습들 사진들이있듯이
여기서는 모형을 만들어 놓았네.
이들이 이 곳에 임시정부를 만들어 놓고 대 파키스탄 전쟁을 지휘한걸 보면
인도국경이 바로 옆이라 비상시 인도로 피신을 할수도 있단 계산이 아닌가 싶다.
미니 의회 건물도 이 곳에 있고 하다.
인도에서 지원받은 군장비와 인도에서 훈련병들을 교육도 시켰단 이야기를 한다.
전쟁의 승리는 파키스탄의 승리에 찬 방심과 지리적 요건이 패인이라 한다.
밖으로 돌아가면서 보니 모형들을 더 가까이서 볼수가 있었다.
군인들이 이 시설들을 지키고있으면서 가까이 접근해 보는걸 금지시키고 있다.
저 꼭대기 에 올라 전체를 조망 할 수가 있어서 올라가 보기도 했다.
꼭 수영장 다이빙 대 같이 만들었다.
덥다고들 야자수물 한통씩을 먹고.
나는 이 물이 그리 달콤하지 않은데 이들은 아주 달콤하다고 하니.
메헤풀 시내에 있는 여성 병원엘 학장팀들과 같이 가 보았다.
원장방에서 대접을 받고 그 안에있는 체중계로 체중들을 달아보고.
이 곳은 영국 식민지 시절 방글라데시 지역을 총 관장하던 총독의 건물이라 한다.
건물이 유럽풍의 건물이다.
건물 앞 뜰을 보니 이곳의 정원 디자인과 모양이 사운드오브 뮤직의 저택과 아주 똑같다.
뜰 아래로 내려가 호수가로 뻗은 길과 작은 문 같이 그 문 밖으로는 작은 강이 흐르는 구조이다.
첫인상이 그 저택의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파노라마로 이 뜰 위에서 정원 쪽을 담아 보았다.
믿기 힘든건 어떻게 영국이 인도 지역,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까지를
300 여년간이나 지배를 할 수가 있었는지. 완전히 영국 화를 이룰수도 있었는데
영국은 그걸 원하지 않았나 보다. 이 나라들의 전통과 문화들을 그대로 갖고있는걸 보면.
강가로 나서면 목가적 풍경이 들어온다.
말과 양떼들이 풀을 먹으면서 노는 초원이 펼쳐진다.
이 집이 강가쪽에서 바라보는 건물의 모습이다.
이 건물을 이야기 하는 안내문이다.
야자수 나무들의 모습이 아주 멋지게 자라고있다.
다시 돌아와 유적지 근처에 이런 대나무 밭이 있다.
곧게 뻗어자라는 이 대나무들을 이 나라에서는 아주 많은 곳에 쓰인다.
건물 지을때의 비계다리는 모두 대나무로 이용한다.
이 유적지를 가는 거의 근처에 이런 소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밀집을 해 있다. 소를 파는 사람들과
소를 사는 사람들로 방글라데시에 사람 많다는걸 여기서 느낄 수가 있다.
소를 새로 산 사람들 같다. 소를 차에 실고 갈 준비를 하는데
그옆을 우리가 지나가며 사진을 담아보았다.
유적지에서 단체로 행운 번호 당첨 행사를 하는 곳에 참관을 하고 학생들과 사진을 담았다.
학생들이 학장과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여. 이 담에 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될것이다.
이들이 나이들어 학교 교사로 왕성하게 활동 할 때 내가 다시 와 본다면 어떨까.
모두들 반가워 하겠지. 그 때 내가 와서 해 줄게 뭐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