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인 용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목마와 숙녀」 일부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속에서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거기에 더해서 듀엣, 뚜아에무아의 싱어송라이터 박인희가 청아한 목소리로 낭송한 「목마와 숙녀」 음반이 방송을 타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동경과 사랑과 낭만의 아이콘으로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게 된다.
1927년 발표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인간 본성과 삶의 진실을 규명한 그녀의 대표작이다. 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소설은 문단과 독자, 모두에게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저자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다른 소설들도 그렇듯이 『등대로』의 상상력은 죽음이 가져올 소멸과 삶의 의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13세에 어머니를 잃었고 이후 십일 년간 사랑하던 언니 스텔라와 오빠 토비,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가족 네 명을 잃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불행한 가족의 위기 상황으로 정신 질환을 앓았던 만큼, 죽음과 소멸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죽음이 작품의 중심적인 테마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등대로』 제1부 「창」은 스코틀랜드 해안에 있는 스카이 섬의 별장을 배경으로 램지 가족이 친지들과 휴가를 보내는 9월 어느 오후의 정경이다. 바다와 등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별장의 창가에서, 램지 부인이 뜨개질을 하며 아들에게 책을 읽어 주거나, 창밖으로 등대를 바라보거나 하면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다. 제2부 「시간이 흐르다」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떠난 별장에 밀려드는 부재, 퇴락, 폐허, 소멸의 어둠을 묘사하면서, 인간이 일으키는 재난의 위협과 그에 상응하는 자연의 파괴적인 힘을 형상화한다. 제3부 「등대」에서는 다시 돌아온 램지 가족 일부가 등대 원정에 나선다. 결국 그들은 등대에 도착했고 제임스는 마침내 자신이 늘 바라던 것을 얻은 것이다. 릴리는 램지 씨가 틀림없이 등대에 도착했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캔버스로 다가가 드디어 자신의 그림을 완성시킨다.
미국 작가 에드워드 올비가 쓴 희곡,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는 디즈니 만화영화 「세 마리 아기 돼지」에 나오는 동요 「누가 커다란 나쁜 늑대를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Big Bad Wolf?」에서 따온 것이다. 아기 돼지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허세를 부리다가도 늑대의 기척이라도 들리면 벌벌 떨며 숨기 바쁘다. 이 노래는 Wolf와 Woolf라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해, 문학사의 거대한 아이콘 ‘버지니아 울프’를 ‘커다란 나쁜 늑대’로 치환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번역되면서, 본래의 의도인 해학적 어감이 사라져 버려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나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영화를 보면서 제목이나 무대 배경이 암시하는 것과는 다르게, 사회 지식층 가정에서 일어나는 노골적인 언어 폭력과 격렬한 몸싸움이 펼쳐지는 광경에 많이 당황했다. 점잖은 대학교수 부부의 추악하고 절망적인 싸움은 미국의 이상적인 가족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마사역으로 열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새벽 2시, 역사학 교수인 조지와 대학 총장 딸이자 그의 아내 마사는 파티후 집으로 돌아와 같은 대학 젊은 교수 부부, 닉과 허니를 초대한다. 처음에는 술 한 잔과 농담 섞인 술잔이 오가지만, 대화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말은 무기가 된다. 마침내 조지와 마사는 서로의 아픈 곳을 찌르고 상대방을 향한 비난과 공격을 퍼붓는다. 사실 조지와 마사는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말싸움과 게임으로 버텨온 부부다. 그들은 젊은 부부 닉과 허니 앞에서 자신들의 환상, 상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조지와 마사가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하던 아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허구의 아들을 통해 자신들의 상실을 위로하고 부부 관계를 지탱해 왔던 것이다. 이 충격적인 고백 이후 남은 건 벗겨진 감정의 민낯뿐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진심을 나누지만 그 순간에도 삶은 허무하고, 진실은 잔인하게 남는다.
사랑인가? 전쟁인가? 말은 칼이 되고 웃음은 공격이 되며 한밤중의 대화는 서로를 해부하는 의식이 된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부부의 일상적인 갈등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점차 진실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드러내며 우리가 무엇을 외면하고 살아가는지 묻는다. 또한 가정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인간 내면의 불안과 결핍 그리고 언어가 어떻게 인간관계를 해체하거나 유지하는지를 잔인하리만큼 냉정하게 보여주는 심리극이라 할 수 있다.
에드워드 올비는 미국의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그의 대표작이자 현대 연극의 심리적 깊이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다. 1926년 초연 후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20세기 미국 사회의 허위, 결혼의 본질, 인간 존재의 위기의식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