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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9년 8월 10일이다 떠납시다 까망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기름 않넣은 커다란 소쿠리를 타고 1965년으로 부웅 떠나자 가즈아 ? 나이를먹으니 어린시절 생뚱맞던 시절이 속속이 생각이난다 50-60년전에 모두가 가난 했던 시절에는 사람들도 순박하고 없이 살어도 서로돕고 살었다 집집 마다 자식들도 5-8명은 기본이고 모두들 가난했다 당연하지요 나라가 가난하니 국민은 더 가난하지요 자연히 먹고사는 문제에서 아이들도 궁핍하게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일년열두달 엿장사 여름에는 아이스케키 장사 그들은 돈도 받었지만 무엇이던지 모자라는 이땅에 엿장사나 여름에 아이스케키장사나 빈병.고무신헌것 .양은솟 .남비 .무쇠 .헌책.등 무엇이던지 재활용은 모두 받었다 그것 때문에 각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무엇이던지 집안 에서 나오는 재활용 품이나 멀쩡한것도 같다주고 엿이나 여름엔 아이스케키를 바꾸어 먹는다 어떤아이는 멀쩡한 아버지의 하얀고무신을 가위로 짤라서 가지고와서 엿을 바꾸어 먹는다 엿장사는 알면서도 아이에게 어쩔수없이 고무신을 받는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무엇을 하는사람이 되었을까 궁금하다 당시에 깨엿은 진짜.깨엿이었다 통참깨를 볶아서 하얀엿에 무쳐서 팔었다 맛있었다 참깨랑 엿이랑 궁합이 잘맞는다 고소하고 달콤하고 진짜 괜찮은 고급 간식거리였다 아이들이나 어른 모두 좋아 했다 그당시 어른들은 겨울엔 엿치기를 많이했다 중 고등 학생 남자아이들도 깨엿치기를 참많이 했다 참깨엿을 반으로 딱 자르고 구멍이 큰사람이 이기는것이다 구멍은 엿을 만들때에 늘리는과정에서 공기가 들어가서 그렇다고 당시에 어른들이 그러셨다 겨울밤엔 찹쌀떡과 메밀묵 장사가 "찹쌀떡 메밀묵 ,하고 외치고 다닌다 아버지는 겨울엔 메밀묵과 찹쌀떡을 자주 사주셨다 어쩌다 그날은 아버지가 찹쌀떡이나 메밀묵을 않사면 찹쌀떡 장사는 우리집 대문앞에서 한참을 외치다가곤 했다 정말 맛있었다 당시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신발은 거의 국민 신발인 고무신이다 신발이 흰고무신은 때가 너무 잘탄다 아버지는 용돈을 주시면서 하얀 고무신을 닦으라 시키신다 우리들은 수세미로 박박 닦아서 그늘에 거꾸로 업어놀고 말려 놓는다 제일좋은게 검은 고무신이다 까망고무신은 자동차 바퀴인 타이어를
재생으로 하여 만든다 그런소문은 있었다 당시 고무제품의 추억의 왕자표 상표가 라이벌로 여러개 있었는데 생각이 않난다 부잣집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었다 앞이 막힌 까망운동화 발가락 앞쪽엔 하얀색으로 새끼손가락 반토막정도의 조그만하게 본인영역 표시를 해놓는다 그래도 아이들은 귀하니깐 남의것을 잘 훔쳐간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도둑놈은 있다 절도다 이름도 써넣고 당시 귀하고 비싼 운동화다 오늘날 싯가로 10만원이 넘는 그런 운동화다 아이들은 신발도 잘 잃어버렸다 그중에 나는단골로 운동화를 자주 잃어버리곤 맨발로 걸어오던 생각이난다 집에오면 엄마에게 혼나고 며칠씩 고무신 신고 다니곤 했다 중고등 학교 들어가서는 여자아이들은 단화라고 구두를 신고 다니는 소위 있는집 아이들이의 구두였다 신발주머니는 필수로 가지고 다니고 그랬다 이런 쯔즈 온국민이 가난했다 여자아이들 머리는 상고 (단발로 자르고 앞쪽이마도 반듯하게 눈섭위로 자른 머리 뒤쪽을 국그릇 반 업어놓은것 처럼 바짝 그라데이션으로 바리캉을 사용헤서 자른머리다) 아니면 두종류중에 단발머리다 겨울엔 머리나 속옷에 이가 들끓고 각 가정마다
내복을 벗어 밤엔 긴긴겨울밤에 속옷을 뒤집어 내놓는다 왜냐구요 그래야 온몸으로 기어다니는이가 얼어죽는다고 그래서 그런 방법도 많이 사용했고 등잔불 호롱불 밑에서 남 여 관계없이 식구들이 모여서 매일밤에 머리를 맏대고 이을 잡는다 온몸이 가려우니 어쩌겠어요 흉도 아니였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이를 잡곤했다 서로 머리를 앞을로 숙이고 엄마들은 마실이라고 남의집에 놀러가서도 자식이 쫓아오면 마루에 자기자식들을 엄마의 무릅에 엎어놓고 뉩혀놓고 머리 이를 잡으면서 어른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신다 ㅎㅎㅎ 지금부터 10년 넘었다 남부군이라는 영화찰영때 머리 ,몸둥이 이를 산다고 선전문 글을 내보내곤 했다 영화 제작사에서 이를 산다는것이 이슈화되어 이나라가 모두 들썩인 적이있다 이한마리에 20만원씩 준다고 영화사에서 몇마리라도 산다고 선전문구에 이슈화 되었다 각 신문에도 도배를 하고 난리였다 영화이름 날릴려고 일부러 그랬는지요 그후에는 이를 영화사에서 산는지는 모른다 이를 산나봐요 흥행을 했지요 남부군 이라는 빨치산들 남노당 북노당으로 이어지는 이데올로기의 영화다 사실 국민의 의식이 각가정에 수도물 보급으로 수세식 화장실에 정말 많이 위생의 수준이 좋아지고 달라졌다 이상하게 칼람 비숫하게 문장이 쓰여진다 사실을 쓰자니 그렇다 다큐가된다
십년전부터 국민의 의식과 위생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50대 이후 누구나 그시절이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었지 나이하고 관계없이 지나간 날이 새록 새록 어렵풋이 어린시절이 생각이 날꺼다 머리나 옷에 이가 생기는 이유는 위생불량이다 목욕을 자주못하고 머리를 자주못 감으니 오죽하겠어요 그이유는 물이 급수가 수도시설도 부족하고 화장실도 그냥 똥간이다 푸세식이다 아이들은 똥싸러 같다 똥두칸에 빠지곤 한다 나도 똥두칸에 빠져서 죽을뻔했다 삐닥한 나무로 만든 발걸치대가 너무 넒거나 낡은 이유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똥간에 빠지면 죽는다 깊어 가지고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어린시절의 추억이지만 그건아니다 무섭다 아무리 잘생긴 남자배우 박보검도 여자 김태희 여배우도 밥을 먹고 배설을 해야산다 그게 목숨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녀가 내가 그대가 죽을 때까지 먹고 배설를 해야산다 살어 움직이는 것은 모두가 그렇다
이상할것이 없다 우리동네에 나 어린시절 이쁜씨와 .광여씨가 살었다 우리와 더불어서 같이살었다 지금 두분살어 계시면 100살은 넘으셨겠다 모두 정신병으로 삶을 살으신분이다 광여 아줌마도 쳐녀였고 이쁜씨도 미혼이였다 사람들은 두분의 성도 모른다 먼저 이쁜이 아줌이 이야기 부터 할께요 이쁜이 아즘마는 키가적고 가냘프게 생겼다 머리는 당시에 올려 붙였다 머리는언제나 떡을 지어 있었다 얌전하고 말이없던 그녀의 당시에 나이는 40대가 넘으셨다 한다 당시에는 집집이 그릇이나 식기가 모두 놋그릇 아니면 양은 그릇이였다 닦기도 불편한 생활식기였다 한번 그릇을 닦을라면 집안의 연례행사이고 식구들이 모여서 단합으로 닦어야 했다 그릇닦는일은 엄청이나 힘이드는 일이다 그래서 이쁜이 아줌마의 봉사의 직업이 됬다 돈도못받는 무보수다 온동네의 식기나 놋그릇을 이쁜이 아줌마가 모두 돌아가면서 닦었다 불쌍하다 이쁜이 아줌마 그녀는 키가적고 외소하시고 상대가 쳐다보면 보호본능을 이르키는 그런 사람이다 말이 없었다 항상 웃었다 그추운 겨울에 굴뚝아래서 바짝붙어 자는걸 내아버지가 보시고는 데려다 쉬게 하시고 밥.국도 따듯하게 드리곤 했다
그것도 몇번으로 그치셨다 이그 그시절엔 집집마다 땔감이 나무나 연탄이였다 그래서 굴뚝옆에 붙어있으면 약간의 따듯함도 있었다 나도 공부않하고 동생들하고 싸운다고 추운겨울에 반성하라고 내쫒긴적이 있다 난 학창 시절에 자주 벌을 받었다 공부 않하고 부모님 말씀 않듣고 아이들하고 놀기만 한다고 반성문도 엄청많이 썼다 오죽하면 어린나는 천하 고아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러니깐 철이 없다 맞어요 그래도 추위는 무섭다 불쌍한 이쁜이 아가씨다 그녀는 쳐녀라고 그랬다 당시에 가출하면 못찮는다 오늘날엔 교통 .방송, 인터넷, cctv등이 발달하여 금방 소재를 알지만 당시엔 어두운 세상이다 언론 메체가 있었다 있으나 마나다 아참 방송국도 그냥 형식으로 있었다 신문도 있었는데 모두 시내권에민 집중 되어있었다 지방은 먹통이다 나는어린시절 각 가정에 쳐마밑에 매달아 놓은 스피커에서 성우들이 나와 서 연속극 그런걸 하면 어린마음에 아주작은 사람들이 그속에서 이야기를 하고 살고 있는줄 알었다 사실이다 그후로 라디오가 많이 보급되어 성우들의 전성기시대였다 그때의 성우가 고은정씨다 거의 비련의 여자 주인공 역활은 그녀의 목이였다 참 목소리도 애쳐럽고 이쁘다 우리동네이쁜이 그녀는 부잣집 외동 딸인데 무슨일로 충격을 받어서 정신이 돌았다 한다 어디가 집인줄도 아무도 모른다 이쁜이아줌마는 아니다 엄연한 호칭은 그녀의 이름은 모르지만 미스 이쁜씨다
가을에는 고추꼭지도 따주고 김장도 도와주고 아무튼 남의집 바쁜일 있으면 거서 일해주고 목숨보다 무서운 배고품울 채우곤 하셨다 그녀는 우리집에도 자주오셨다 엄마는 그녀에게 잘해 주셨는지 어린나는 이제와서 그때가 궁굼하고 그립다 그시절이 당시 빨간 동그란 3-4살아가의 손바닥만한 이쁜이표 세수비누는 얼굴세수도 하고 .놋그릇 . 양은 그릇도 .그 세수비누를 발라 짚수세미로 바박박 힘을 주어 딲으면 참 반질하게 잘닦였다 만능의 이쁜이표 비누다 그아줌마의 이름도 어디 사는지 몇살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녀가 이쁜이 세수비누로 그릇을 닦아주면 때대면 밥이나 주곤했다 요즘말하면 엄연히 당시 엄마들이 이쁜이 아줌마에게 노동착취다 그시절엔 모두 가난하고 없이 살었으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먹고 쉼쉬고 똥을 싸야 살지 누구나 모두 그렇다 우리집에도 아줌마는 자주오셨다 어린 내가 봐도 불쌍했다 그릇을 참 잘닦으셨다 반짝이게 얼마나 힘이들었을까요 아줌마는 이집저집 다니면서 그릇을 닦아 주시곤했다 말이 없으시다 외소해 가지고 가날펐다 그녀는 그후로 어떻게 잘되셨는지 궁굼하다 광여 아줌마는 좀 모자란다 당시 나이는 그아줌마도 40좀넘은것 같었다 광여 아줌마의 특기는 어른들 만나면 아무나보고 "아저씨 나십원만 아줌마 나 십원만 , 하고는 손을 내미신다 그래도 집을 동네서 지어주어 그녀의 내쉴곳은 있었다 어른들이 돈없다 광여 아줌마에게
그러시면 그녀는 오원이라도 달라고 한다 어른들은 그냥 모두들 광여 아줌마에게 돈을 주었다 달라고 하니 어쩌냐구요 당시50-60년전의 십원의 값어치는 오늘날의 싯가로 따지면 2-3천원의 값어치가 있었다 누구던지 사람들 인심도 모두 좋았다 당시에는 성폭행. 아동추행.성추행 .성희롱 그런것이 없던시대고 제일 아이들이 무서워 했던것이 문둥이 아저씨와 나라를 위해 싸우시다 불구자 되신분들이었다 그들은 떼로 몰려더니면서 구걸을 했다 당시엔 거지도 참 많었던 시절이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니 어쩔수가 없었다 나라도 가난하니 복지시설과 혜택을 줄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모여 놀다가도 그분들이 멀리서 모여 오시는걸보면 모두 도망가서 숨었다 무서워서다 괜히 아이들에게 욕도 하고 때리고 그런다 부모가 나와서 내새끼에게 왜그러냐고 항의라도 하면 서로 시비가 붙고 싸우곤한다 오늘날의 이나마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국가도 국민도 고생을 해서 이룬 탑이다 모두들 잘살고있다 이땅의 모든이들이 어린시절 국민학교때 선생님이 위생검사를 하신다 선생님말씀인즉 "내일 모레는 교육청에서 답사를 나온다 깨끗하게 입고 몸관리 하고 와라,였다 그 전날은 손톱깍고 머리 깍고 머리감고 집에서 목욕도 하고 이틑날 학교로 간다 영락 없이 검사다
기록에도 올린다 아이들보고 본인똥을 집에서 받어오라면 개똥을 담아 가는애도 있었고 닭똥도 받어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웃긴다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는데 왜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ㅋㅋㅋ 온몸에 이도 들끓지만 회충 ,요충, 촌충도 ,많었다 어떤아이는 수업시간에 회충이 입으로 넘어오고 팬티속으로도 나왔다 징그럽다 어린시절에 년년생인 내여동생과 같이 시내에 목욕탕엘같다 우리동네에는 대중욕탕이 딱 하나가 있었다 목욕탕 주인은 목재소랑 같이 목욕탕을 했다 목욕탕은 목재소에서 나오는 나무찌거기로 물을 데웠다 하루는 내동생이랑 목욕을 같다 그때가 2-3학년인것 같었다 엄마는 우리를 대중목욕탕엘 자주 동생이랑 둘이 보내시곤 했다 그런데 탕속에서 우리반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인사를 탕속에서 벌떡 일어나서 했다 당연히 벌거벗었지요 " 안녕하세요 선생님.하니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나를 쳐다보시면서 "목욕왔니 오복아,하신다 창피했다 어린나는 나이가 10-11살 정도였을것 같다 아무리 여자끼리지만 당시만 해도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위대한신 인줄알고 살던 시대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똥도 않싸고 방귀도 않끼고 사는그런 사람 위대한.신 인줄 알었다 어린마음에 얼마나어렵고 창피했는지 다음날 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어린 나는 얼굴을 잘못 쳐들었다 그건 선생님의 풍만한 젖가슴과 선생님의 생식기를 나는 자연스럽게 본의 아니게 보았다
어린나는 그게 무엇인지 참나원 내엄마랑 같이 목욕탕 같을때 어른들의 생식기가 어린 우리하고 틀리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린나의 세계는 생각의 차이로 의미가 틀리다 선생님이시니 그렇다 학교에서는 성교육이나 어른이 되면 신체의 변화가 온다는것을 않 알려준다 가정.도덕. 실과시간에알려주면 좋으련 만이다 혼자 터득을 해야하니 어슬프다 모두가ㅋ ㅋㅋ 당시에 10-11살먹은 아이가 무엇을 알겠어요 아버지는 가끔 전기누드 통닭도 자주 사오셨다 누런 봉투에다가 온식구( 년년생인 여동생들과 부모님 7명 )들이 3마리를 항상 사오신다 당시에는 귀한 음식이었다 비싸다고 엄마가 훗날 말씀을 하셨다 오늘날처럼 대중화가 된음식이 아니었다 ( 통닭집에서 유리쇼인도우에 전기시설을 해놓고 통닭 가운데를 꿔어놓고 빙~빙 돌린다 전기로 ) 우리들은 가끔 뜨거운 밥속에 버터를 넣고 외.간장에 비벼먹어도 고소하고 맛있다 단 밥이 식기전에 먹어야 맛있다 아버지는 제철 과일도 한접 (100개다) 복숭아 .참외 사과 .배. 등을 한접씩 사오시곤 했다(오늘날엔 개별 포장이 되어 나온다 무게 단위다)아버지는 과일을 제철에 사시면 항상 동생들과 나를 주~욱 앉혀놓고 열개씩 주셨다 항상 누어있는 간난 내동생까지다 그건 니거는 니가 챙기라는 무언의 교육이었다 훗날 내가 물어보니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아름다운 어린시절이다 마아가린은 절때 못먹게 하셨다 아버지 말씀인즉 같은 동물성 기름이라도 (버터는 우유에서 추출) 한것이라고 (마아가린은 ) 정통 걸름망없는 동물성 기름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먹지말라고 했다 기억이 새록 .초록.빤짝 난다 어렴풋이 의술이 전공이셨던 아버지의 자식사랑은 항상 대단하셨다 웬지 보고싶다 내아버지가 오늘따라 더하다 아버지 아버지 불러본다 보고싶은 내아버지 ! 당신의 맏자식이 보고싶다고요 지금 다시 10-12살이면 내 죽기살기로 영어 .수학 배운다구요. 이제는 소용없다구요 지나 같다구요 그시절이 이그 슬프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나중에 만나요 그곳에서요
그대 벗님 종합영양제 원기소라고 아시지요 아버지는 원기소를 잘 사오셨다 어린이.어른 같이 먹는 종합 영양제가 있었다 하루에 3-4알 식후에 먹는것을 내동생들이랑 나는 주머니에 하나가득 넣고 돌아다니면서 먹던 시절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원기소라고 서울약품의 제약회사에서 나오는 종합 영양제는 않 떨어트리고 항상 사다 놓으신다 알약인데 색깔은 누렇고 약간 찝질하고 고소하고 맛있고 대략 1000-2000알 정도 병에 들어 있고 지금의 생수병1.8리터 그러니깐 한되정도 들어가는 속이 않보이는 하얀 병에 담겨 있었다 프라스틱병이다 우리들은 딸5명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어떤때는 5-6일에 다 먹곤했다 무던히도 우리들 건강을위해 애쓰셨다 부모님은 아들을 낳으실라고 년년생으로 여동생이 내밑으로 4명이 있었다 5째 여동생은 호적엔 미라로 올렸는데 집에선 여자아기를 돌쇠라 부르고 4째 여동생은 집에선 노마다 이름이 불리워졌다 우리는 자매끼리 싸움도 많이했다 내 바로밑에 년년생인 여동생이좀 많이까시다 그애랑 참많이도싸웠다 허얼~ 헐
계집애가 싸우면 아버지는 맞자식이라고 엄하셨다 항상 나에게 아버지는 퇴근하시고 동생들에게 물어보신다 언니가 어떻게 하고 오늘 지냈냐고 그럼 동생들은 별걸 다아 말한다 거짓말 보태기도한다 항상 그래서 나는어려서부터 동생들의 비위를 마추는냐고 고생께나 했다 아무것도 아닌것 가지고 어린아이들이 티각 태격 한걸로 내아버지는 동생들 말만듣고서 나를 벌을 주신다 그러니 깔본다 동생들이 어쩌다 말다툼이라도 하면 한다는소리가"아버지에게 이른다 때렸다고 ,하고 거짓말을 일삼었다 난 항상 동생들에게 주늑 들어 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날무시하는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든다 동생들이 날 밀고한 그날은 내가 벌서는 날이다 동생들은 숨어서 본다 나쁜 자식들이다 벌을 받는날엔 그것도 빠루나 .함석 바게스에 물을 담어서 뒤로 돌아서 무릅을 끓고 들고 앉어서 반성하라고 동생들에게 양보 않하고 (갑질) 했다고 헐 이런 차라리 몇대 때리고 그만 벌을 주었으면 좋겠다 어린나이에도 그랬다 그래도 같이 웃고 지내는것이 동기간이 었건많 이런 어쩌나 내가 연쇄점 (오늘날 마트다) 해서 모은 42년전에 빌려준 큰돈이다 250만원은 (지금돈으로는 8000-1억이된다 ) 모두 떼어먹고 지금까지 않준다 누구 냐구요 바로 내밑에 여동생이다 그녀 때문에 나는 엄마에게 사랑도 못받고 젖도 일찍 떼이고 외가집에서 6살까지 살었다 간혹 엄마가 오시면 아줌마왔다고 그랬다 한다
어린내가 헐 그래서 그런지 배고픈걸 못참고 성질이 급하다 언제인가 40대 좀 넘어서 위장이 아파 병워엘 가서 내시경 검사를 받었다 내시경 검사후에 의사는 한다는말이 " 장오복씨는 성질이 급하고 욱하니 성질을 누긋하게 하고 살어요 그러면 괜찮아요 , 그러면서 나보고 진료 끝났다고 한다 그날의 의사가 오늘날 부여에 현대 내과의 명의시다 현대내과 의사다 그후로 나는 나를 내가 무던히도 다스리고 슬로루 킥으로 산다 그후로 내시경 검사는 나이먹어 공단에서 받으라고 하면 받는다 괜찮다 가급적이면 내가 쓰는 산문에는. 어린시절 , 그시절.자식많은것.농경사회 . 남아선호사상. 가난 .등의 어휘력이 자주 문장이 등장을 많이 한다 사실이니 이해 바랍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극히 뭐 아름다운 추억이 없다 그냥 너는 여자 나는남자 이성으로 만나서 낑낑해서 자식낳고 아름다운 젊은 날의 인생을 살다보니 이미 황혼의 나이가 되었다 그냥 마냥 슬프다 지나간 나이를 생각하면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보호받고 살던 시절이 그립다 죽어도 다시는 못찿을 그시간을 그리도 그립다 어린시절 친구들도 그립고 부모님 동생들과의 시절이 그립다 누구던 그렇다 모두다 하늘로 머리두고 쉼쉬는 벗님도 모두 나.같은 생각 일꺼다 지나간 날은 그립다 그대는모르지 아무도 ,그대 ,나,그리고 세월을 보낸것이 맏는지요
후기: 나는문장을 어렵게 않쓸라 노력을 많이 한다 비속어는 물론이다 간단하고 간결한 한 문장이좋다 그러나어린 시절로 같다하면 길어지는 나의 문장 이것도 간결하게 못쓰는 내가 병인가요 사실 문장에서는 비속어도 종종 들어가야 문장을 쓰는이도 재미가 쏠쏠있다 좋잖아요 아름다운 한글 우리나라말들이 사실 나는 무식하기도 엄청 무식하다 ㅋㅋㅋ 그대 어린시절 까망고무신 신어 봤지요 타이어 짤라만든 재생품 까망고무신을 거꾸로신고 부웅 머언 시간여행을 같다와요 단 그대 혼자서 눈을 지긋이감고 비스듬히 누어서 조용히 혼자서 부웅 과거로 가는거다 가즈아! 그곳으로 하늘멀리 은하수를 건너서 알라딘의 램프의 융탄자를 타고서 스윙 ~ 윙 ~ 휙 떠나자 !
저랑같이 공감이 가십니까 ? 그대 고맙습니다 산문을 써놓고 항상 20번 가까이 읽고 또.읽고 해도 문장의 받침이나 오타가 나있다 힘이든다 그렇다고 문장이 재미있고 유익하고 공감이 간다고 생각하고 읽어주는사람도 없다 슬프다 이게 나의 문장의 한계다 * 사실 나는 뇌경색으로 소뇌에 7번이나 잠시 ~ 잠시 .졸도와 .기절이 왔다 그후로 자꾸 잃어 버린다 기억을 의사는 외국어나 글을 자꾸 반복하여 쓰라한다 그래야 치매가 늦게오고 뇌기능이 그상태에서 멈추고 있다 한다 항상 신경외과 의사는 .치매와 뇌출혈 .뇌경색 .뇌졸증을 .조심하라 하신다 슬프다 다행이 아직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좀 새록,초록 난다 고맙습니다 세상의 모든신 이시여. 일단 .이단 삼단 .신이시여 고만 쓸께요 까망 고무신을 타고 떠나보세요 그럼 그대 벗님 안녕
2019 8 12일 떠오르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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