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벨론에서 나오라, 예루살렘을 향해 가라
본문: 예레미야 51:45-53
결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구별된 자로 살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자.
머리말. 바벨론 포로와 같은 우리의 삶
오늘 말씀에서는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에 대해 다룹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어서 나와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라고 합니다. 2500년 전 바벨론과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 마치 바벨론 포로와 비슷하다고 가르쳐 줍니다. 이 세상은 우상 숭배와 폭력이 가득한 바벨론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를 높이며 멸망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고통당하며 주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키고 세상과 구별되어 새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그런 점에서 이 말씀은 2500년 전 이스라엘에 주신 말씀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과 구별되어 영원한 천국을 향해 나아가기로 굳게 결심하고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1. 바벨론에서 나와서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 (45-46절)
1)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구별된 나그네로 살아가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라!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 곧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이 바벨론에 임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기서 탈출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다 그만 두고 나오라는 말은 아닙니다. 심판의 때가 아직 남았습니다. 장차 다가올 심판을 앞두고 지금 이 말씀을 들려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이 도시에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45절에 “너희는 그 중에서 나오라.” 그 도시에서 살되 그 가운데 푹 빠져서 완전히 동화되지 말고, 악한 도시 바벨론 가운데서 나와서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에서는 “바벨론에 있는 동안 거기에 정착해서 살라. 소산을 얻고 자녀를 낳고 번성해라. 심지어 바벨론을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다고 겉돌지 말고, 거기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고 안정되게 잘 살아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거기서 나와라!” 합니다. 앞에서는 “정착해라!” 했는데 여기서는 “나와라!” 하는 게 서로 충돌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이중 정체성을 잘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으로 알고 감사하며 잘 적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곳은 영원한 나라가 아닙니다. 곧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멸망할 곳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거기서 나와서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속하여 살아가지만, 우리가 돌아갈 참된 고향은 하늘에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국적은 하늘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이 땅에 장기 비자를 받아서 몇십 년 동안 머무르면서 사업도 하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동안에는 당연히 적응도 잘 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잘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국 시민으로서 장차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의 사람들과 문화에 더불어 살면서도, 이 땅에 동화되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이중 정체성을 나그네에 빗대어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여러 믿음의 조상들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땅에서는 이방인과 나그네임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다.”(히 11:13,16)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나는 나그네다, 하늘을 나의 본향이라고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나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이 땅 가운데 살아간다,” 이 정체성이 분명한 것이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그네로 사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베드로전서 2장 11-12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나그네와 같은 너희를 권한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
나그네는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 원래는 하늘나라 사람인데, 잠시 이 땅에 와 있는 겁니다. 한국 사람은 미국에 가도 티가 납니다. 말투가 다르고, 행동이 다릅니다. 천국 백성 티를 내면서 살라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살지만, 천국 백성 티가 나는 것이 바로 나그네의 삶입니다.
이 세상은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라,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다” 합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겨라. 남들한테 피해만 안 주면, 무엇이든 허용된다. 이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정해진 원칙이 없습니다. 그냥 내가 좋은 것, 돈 많이 버는 것이 세상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내 맘대로 하고 싶은대로 다 하는데 남들한테 피해를 안 주는 그런 삶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면 결국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요즘 결혼을 가볍게 생각하는 문화가 대세입니다. 또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결국은 내가 굳이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기 싫다는 겁니다. 남들한테 피해 주는 것도 없으니까 그냥 혼자 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합쳐지니까, 그 결과는 극심한 출산율 감소입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개인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안 주는 선택을 했는데, 그게 모이니까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럴 때 가능하면 결혼을 일찍 하고, 되도록이면 많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문화를 우리 교회에서 만들어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이 세상의 문화를 거스르는 구별된 삶이요, 나그네로서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힘이 듭니다. 왜 힘이 안 들겠습니까. 하지만 나그네는 힘이 들더라도 원칙을 따라 삽니다. 힘이 들지만 세상의 원칙이 아니라 말씀의 원칙을 따라 사는 사람이 바로 세상과 구별된 나그네입니다.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구체적인 사정을 판단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름의 불가피한 사정들이 있으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나그네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고, 세상과 구별된 문화를 교회적으로 만들어 가자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2) 세상에서 구별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 나약한 마음, 두려운 소문, 권력의 폭력
그런데 우리가 바벨론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불안하고 두렵게 해서 계속해서 바벨론에 동화되어서 살도록 우리를 몰아가는 장애물들입니다. 46절에 나약한 마음, 두려운 소문, 폭력적인 권력이 나옵니다.
첫째는 나약한 마음입니다. 힘있는 세력을 보고 움츠러들고 주눅드는 마음입니다. 바벨론의 부귀 영화가 너무나도 크고 화려합니다. 그 군사력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온 천하를 호령합니다. 반면에 예루살렘은 힘없이 무너졌고,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지금은 바벨론에 끌려와서 기약 없는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바벨론의 힘 앞에서 주눅들고 압도되는 마음이 바로 나약한 마음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거대한 부귀영화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세상에 비해서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은 종종 무력하게 느껴집니다. 복음이 무시되고, 교회가 조롱당하는 시대입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신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씀의 원칙을 지키며 사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데,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나 하나 이렇게 몸부림 친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점점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세상과 동화되어 가기가 쉽습니다.
두 번째 장애물은 두려운 소문들입니다. 바벨론이 지난 번에는 이 나라를 정복했다, 이번에는 저 나라를 정복했다, 승리의 소식들이 계속해서 들려옵니다. 바벨론에 저항하는 나라들이 큰 보복을 당하여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바벨론에서 나가려는 마음을 꺾어 버립니다.
오늘날에는 SNS의 발달로 세상의 성공에 대한 소문들이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누가 어떻게 해서 큰 돈 벌었다더라, 누구랑 결혼했고 집은 어디라더라, 어디로 여행갔다더라, 누구 자식은 어디에 취직했다더라, 우리를 자꾸 비교하게 만들고 주눅들게 만드는 소식들을 많이 접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갈 때, 과연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모두가 엄청난 이자를 감당하면서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는 이 시대에, 집을 투자가 아닌 주거의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수준에 맞게 천천히 내집 마련을 해 나가도 괜찮을까요? 많은 돈을 들여서 사교육을 시키는 이 시대에, 말씀을 가르치고 부모와 교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큰 돈 안 들여도 우리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자녀 결혼을 자기들 알아서 소박하게 하도록 내버려 두고, 지원을 많이 못 해줘도, 자녀들이 안정되게 결혼 생활을 하고, 나도 자식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 소식들이 일으키는 불안함이 우리로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습니다.
세 번째 장애물은 권력자들의 폭력입니다. 힘있는 자들이 약한 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억압합니다. 바벨론 포로로 살아가는 백성들을 학대하고 바벨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과거 애굽에서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던 그 부르짖음이 바벨론에서도 있었을 것입니다. 권력자들 간에 다툼이 있어 반역이 끊이지 않고, 왕조가 수시로 교체됩니다.
오늘날에도 정치가들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 과정에서 민생이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강대국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벌입니다. 이슬람 국가들과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실제로 물리적으로 탄압합니다. 이런 약육강식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교회의 편에 서기보다는, 국가와 기업의 편에 서서 살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관악교회 성도 여러분, 이런 장애물들에 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마음을 굳게 합시다.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사단은 거짓말쟁이요, 속이는 자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큰일 날 것처럼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가져다주고, 세상에 굴복하도록 만듭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삽니다.
말씀을 벗어나서 세상 방식대로 사는 자들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부질없는 인생을 살 뿐입니다. 영원한 말씀 붙들고 담대하게 세상 속에서 나와서 천국 시민으로, 천국 가는 나그네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예루살렘을 소망하며 그곳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라 (50-51절)
1) 우리를 통해 교회가 더럽혀짐을 부끄러워하자
지금까지 바벨론에서 나와서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나온 것은 단지 멸망을 피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구원받았다는 데 안주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더 중요한 궁극적 목적지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마음에 품고 소망하면서, 그곳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의 공격으로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모든 집들이 무너지고, 땅은 방치되어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예배와 생활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입니다. 이방인들이 성전 터를 함부로 드나들며 더럽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고 더 이상 예배를 받아 주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슬픔이요 부끄러움입니다. 오늘 본문 51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부끄러움을 당한 이유가 외국인이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벨론 군대가 성전을 파괴하고 그곳을 함부로 드나들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방치되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나라 사람들이 성전 터를 마음대로 돌아보았습니다.
시편 137편에서는 당시에 바벨론에서 백성들이 당한 수치와 모욕이 나옵니다. 오늘날로 치면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던 사람을 술집에 데려다 놓고 찬송을 불러 보라고 시키면서 술자리에 흥을 돋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적인 모욕감과 수치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거룩한 성전과 예배를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과 교제 나누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특권이요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와 신앙생활이 이방인들에게 함부로 방해받고 조롱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수치이면서 하나님의 수치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를 오늘날에 적용해 봅시다. 오늘날 교회가 당하는 가장 큰 부끄러움이 무엇일까요? 지금은 외국인들과 불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게 더 이상은 모욕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세례를 주고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여라.” 교회가 특권의식을 가지고 불신자들을 배척하라는 게 이 말씀의 취지는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느껴야 할 교회의 부끄러움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외국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세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반대로 세상이 교회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구별되지 못하고, 빛과 소금으로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 이것이 누구 책임입니까? 누가 세상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갈 때, 우리가 바로 바벨론 점령군처럼 교회를 짓밟고 더럽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17)
여기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바로 성도들입니다. 꼭 주일에 교회당에서 모여야지만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 자체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교회의 세속화,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할 일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늘 마음에 품고 잊지 말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그곳을 사모하며, 그곳을 향해서 나아가야 할 목적지가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바로 우리의 본향 하나님의 나라, 새 예루살렘입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길은, 우리의 하루 하루는 이 천국으로, 새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가지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푯대를 향하여, 천국을 향해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갑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 예루살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그것이 우리 모든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천국을 향헤 인생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 점점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을 마치는 날, 비록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우리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마음이 환해져서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나님 품에 안기는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소원 아닙니까? “너를 보니 내 아들 딸이 분명하구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분명하구나. 나와 함께 영원히 거하자.” 하나님께서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이 날을 소망하며 우리의 참된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품고 살아갑시다.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마음에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나를 용서하여 주셨다! 나는 아무 자격 없지만 천국으로 들여보내 주신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실제 삶의 변화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여도, 주님께서 나를 지금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 이 사실을 굳게 붙듭시다.
둘째로, 예수님처럼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분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빌 3:21)
천국의 모습이 우리를 통해 교회에서, 그리고 삶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문화는 사람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경쟁해서 나를 증명하게 합니다. 쉼이 없는 삶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갈 때,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줍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나의 삶 가운데,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천국의 안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변화될 수 있을까요? 내가 어떻게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룰 수 있을까요? 나는 못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 예루살렘의 하늘 보좌에서 스스로 낮아지셔서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높아지기 위해서 우리와 같이 낮아지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인생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데리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성령님으로 힘 주시고 변화시켜 가십니다. 이 참 좋으신 주님,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그분께서 하늘에서 우리보고 오라고 손짓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향하는 푯대는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챗바퀴처럼 계속해서 반복되는 삶,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되지 않는 것 같은 삶에 주저앉아 계시지 말길 바랍니다. 다시 일어섭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읍시다. 푯대를 향하여 나아갑시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십니다.
3. 심판의 날이 임박하였으니 끝까지 주를 기다리자 (47-49, 52-53절)
세 번째 말씀을 듣겠습니다. 심판의 날이 임박하였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주를 기다립시다.
1)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한때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임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그밖에 여러 민족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고자 바벨론을 보내어 멸망시키셨습니다.
하지만 바벨론 또한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폭력으로 약한 민족들을 지배하고 빼앗았습니다. 자신의 탐욕을 추구하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을 조롱하고 자기를 하나님처럼 높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죽인 사람들의 그 피값을 그대로 되돌려 받을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함부로 죽이고, 성전을 더럽힌 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49절에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죽여 엎드러뜨렸는데, 47절에는 바벨론 사람들이 죽임당하고 엎드러질 것입니다. 51절에 성전이 수치를 당했는데, 47절에 바벨론이 치욕을 당할 것입니다.
바벨론은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높이는 교만을 보였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바벨론 왕들은 자기가 신이 되어서 신상을 세우고 사람들로 거기에 절하도록 했습니다. 마치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바벨탑을 무너뜨리셨듯이, 바벨론 제국이 아무리 거대하고 강력하더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으시고 파괴하실 것입니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오시니 그날을 기다리자
요한계시록 17장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타락한 음녀 바벨론과 같다고 합니다. 재물을 뽐내고, 화려한 문명을 자랑합니다. 값비싼 보석들로 아름답게 치장하고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합니다. 끝까지 자기에게 굴복하지 않는 신실한 성도들을 죽이고, 그 피로 잔치를 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곧 심판주로 다시 오십니다. 우리의 이 고된 인생길을 끝내고,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마중을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교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눈물을 위로하여 주시고, 원수를 보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 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결코 이 세상의 거짓된 유혹에 현혹되지 맙시다. 폭력에 굴하지도 맙시다.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킵시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순결한 우리 성도들을 예수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이 땅 가운데 새 예루살렘이 임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죄인이고 부족하지만, 이 땅 가운데 많은 부족과 연약을 보였지만, 우리는 걱정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신 죽임 당하신 어린 양께서 그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새 예루살렘으로 들여보내 주실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로 정죄하겠습니까?
그곳에서 우리는 눈물이 없을 것입니다. 모욕도 수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지극한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예배와 삶이 하나가 되고,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며 왕으로 다스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 것입니다.
맺음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자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세 가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먼저, 바벨론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합시다.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갑시다. 둘째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계속해서 나아갑시다. 천국 소망을 마음에 품고 예배자로 살아갑시다. 마지막으로, 심판의 날이 임박하였으니 어서 빨리 바벨론에서 나옵시다. 예수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킵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구별된 자로 살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여러분 다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