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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을 정탐하라는 명령(1-3)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나안 땅이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메마른 땅인 광야를 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우리가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은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신뢰와 믿음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을 반역하게 되는 중대한 분기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3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사람이라(1-3)
민수기 13-14장의 말씀은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에 있어서 굉장한 분기점을 맞이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통해 반역을 통해, 가나안 땅에 짧은 거리로 도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40년간이나 광야를 유리방황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민수기와 신명기의 정탐 기사는 다릅니다. 신명기 1:19 이하를 보면 그 땅의 정탐이 백성들의 요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즉각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자며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라”고 독려하자, 백성들이 모세에게 그 땅을 정탐하여 작전을 짜서 들어가자고 제안합니다. 모세는 그 제안에 응하여 열두 명의 정탐꾼을 선발해 보냈습니다. 가나안 땅 정탐은 하나님의 명령입니까? 백성들의 제안입니까? 신명기가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민수기 13장의 가나안 땅 정탐은 백성들이 먼저 제안하였고, 모세와 하나님께서 추인하신 결과입니다.
정탐꾼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 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며 출애굽 세대의 종말을 가져온 이유를 말하는 단락이기 때문에 민수기 전체 문맥에서 보면 가장 소상하게 내용이 소개되는 편입니다. 모세가 정탐꾼을 보낸 곳은 가데스 바네아이고, 그곳은 바란 광야에 속합니다(3). 이곳은 보통 신 광야에 있는 가데스로도 불립니다(민 20:1; 27:14).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사람들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명하십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약속의 땅입니다. ‘주신다’는 표현은 곧 주게 될 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분사형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사건에 대한 신명기 기록은 약간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신 1:19-25). 신명기 본문에 따르면,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이 먼저 정탐꾼을 보내자고 제안합니다. 아마도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께 정탐을 요청했고, 하나님께서 그 요청을 받아들여 정탐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문맥상 민수기 본문은 가나안 땅 정탐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셨고,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선물로 설명하는 반면, 신명기 본문은 백성들의 선택을 강조함으로써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의미를 전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13장에서 정탐을 보낸 사건은 결과적으로 백성들의 불신앙을 드러내고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정탐을 보내는 것 자체가 잘못이거나 불신앙적인 생각이 전제된 것이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모세는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을 한 사람씩 선별합니다. 2절에서는 이들을 지휘관이라 부르고, 3절에서는 수령이라고 부릅니다. 단어는 다르지만, 3절에서도 지휘관으로 번역된 동일한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에 지칭하는 대상은 동일합니다. 지휘관이라고 명명했으니, 이들을 세운 목적이 전쟁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들은 온 땅을 정탐하는 임무를 위해 새롭게 임명된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1장에 언급된 각 지파의 대표들과는 다른 인물들입니다. 아마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신속하게 다니며 정탐하기 위해 더 젊고 힘 있는 젊은이들을 지휘관으로 세운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사명은 ‘정탐’입니다. 정탐할 대상은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이제 곧 주실 땅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은 걱정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를 기대하고 소망하며 그 땅을 정탐하면 됩니다.
지파별 정탐꾼 선발(4-16)
하나님께 사명 받은 사람들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는 군사적인 시선이 아니라 신앙적인 정찰이 필요합니다. 세상적인 무력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신 언약의 시선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꾼을 찾습니다.
4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르우벤 지파에서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요 5시므온 지파에서는 호리의 아들 사밧이요 6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7잇사갈 지파에서는 요셉의 아들 이갈이요 8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9베냐민 지파에서는 라부의 아들 발디요 10스불론 지파에서는 소디의 아들 갓디엘이요 11요셉 지파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수시의 아들 갓디요 12단 지파에서는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이요 13아셀 지파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둘이요 14납달리 지파에서는 웝시의 아들 나비요 15갓 지파에서는 마기의 아들 그우엘이니 16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4-16)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모세는 각 지파별로 지휘관을 뽑습니다. 민수기 1장에서 소개했던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각 지파에서 선택된 사람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은 표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지파 | 1대 지파장 | 2대 지파장 | |||
이름 | 이름 | 아버지 | 이름 뜻 | ||
1 | 르우벤 | 엘리술 | 삼무 | 삭굴 | 소문난 자 |
2 | 시므온 | 슬루미엘 | 사밧 | 호리 | 그가 심판하신다 |
3 | 유다 | 나손 | 갈렙 | 여분네 | 충견 |
4 | 잇사갈 | 느다넬 | 이갈 | 요셉 | 그가 구속하신다 |
5 | 에브라임 | 엘리사마 | 호세아 | 눈 | 구원 |
6 | 베냐민 | 아비단 | 발디 | 라부 | 나의 피난처 |
7 | 스불론 | 엘리압 | 갓디엘 | 소디 | 하나님은 나의 행운 |
8 | 므낫세 | 가말리엘 | 갓디 | 수시 | 나의 행운 |
9 | 단 | 아히에셀 | 암미엘 | 그말리 | 하나님은 나의 친족 |
10 | 아셀 | 바기엘 | 스들 | 미가엘 | 보호하심 |
11 | 납달리 | 아히라 | 나비 | 웝시 | 나의 은신처 |
12 | 갓 | 엘리아삽 | 그우엘 | 마기 | 하나님의 위엄 |
본문에 언급된 지파의 목록 순서도 민수기 1장의 순서와 다릅니다. 이 목록에서 제일 먼저 주목하는 인물은 유다 지파의 지휘관인 눈의 아들 호세아입니다. 6절에서 소개되었지만, 16절에서 목록을 마무리하고 요약하면서 다시 호세아를 언급합니다. 모세가 호세아라는 이름을 바꾸어 ‘여호수아’라고 불렀다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호세아는 ‘그가 구원하신다’라는 의미인데, 여호수아 즉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고 바꾸어 그 이름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추가한 것입니다. 정탐꾼들 중 여호수아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1장에 나타난 지파장들의 이름에 비해, 본문의 지휘관들의 이름에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의미가 더 많이 내포된 것이 사실입니다.
시므온 지파 호리의 아들 사밧은 ‘그가 심판하신다’는 의미고, 잇사갈 지파 요셉의 아들 이갈은 ‘그가 구속하신다’는 뜻입니다. 베냐민 지파 라부의 아들 발디는 ‘나의 피난처’라는 뜻이고, 단 지파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은 ‘하나님은 나의 친족’이라는 뜻입니다. 아셀 지파 미가엘의 아들 스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뜻하고, 납달리 지파 입시의 아들 나비는 나의 은신처, 갓 지파 마기의 아들 그우엘은 하나님의 위엄이라는 뜻입니다.
한편 본문은 므낫세 지파를 설명하면서 ‘요셉 지파’라는 표현을 추가합니다. 에브라임 지파를 언급할 때는 이런 표현이 없었습니다. 갈렙이 유다 지파의 지휘관이라는 점도 특별합니다. 그의 이름은 ‘충성스러운 개’를 의미합니다. 갈렙은 원래 그나스 사람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유다 지파에 소속된 것을 넘어 유다 지파의대표로 선택받습니다. 그나스 족속은 에서의 장자인 엘리바스의 자손입니다(창 36:10-11).
정탐꾼 파송(17-20)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 안 계신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악이 성공하고 무질서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하나님의 눈,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게 되면 영적인 것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시각은 실리적인 시각이 아니라 진리의 안목입니다.
17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18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19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20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17-20)
모세가 정탐꾼들을 보내며 명령합니다. 가나안 땅의 남쪽 네겝에서부터 북쪽으로 이동하며 그 땅을 두루두루 다니면서 그 땅의 형세와 특징 등을 파악해오고, 정탐 활동의 결과물로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고 명합니다. 네겝은 메마른 땅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여기서는 가나안 땅의 남쪽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포도가 처음 익을 때라는 묘사를 통해 정탐꾼들이 가져올 것이 포도(송이)가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20). 포도가 처음 익을 때는 태양력으로 7-8월입니다.
모세가 정탐꾼들에게 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그들은 가나안 땅의 길을 파악해야 합니다. 네겝에서부터 북쪽으로 향해서 산지로 올라가는 길을 파악해야 합니다. 네겝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산지들을 돌아보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일 뿐, 가나안 땅 전체를 둘러보는 것이 관심은 아닌 것 같습니다. 둘째, 땅의 어떠함을 정탐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 땅의 백성들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군대가 강한지 약한지, 군사가 많은지 적은지). 셋째, 가나안 땅의 상태를 탐지해야 합니다. 그 땅이 좋은지 나쁜지, 성읍이 산성인지 진영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넷째, 그 땅의 생산성이 어떠한지 알아내야 합니다. 땅의 생산성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 땅의 실과를 샘플로 가져오라고 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정탐꾼들에게 스스로 담대한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담대하라”는 표현은 정찰을 맡은 지휘관들이 스스로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각오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전진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전략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정탐할 것을 요구합니다. 모세는 정탐하는 사람들에게 담대함을 요구하고, 추수할 때가 되어 열매가 맺혀 있을 실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담대함은 그 땅을 주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고, 실과는 그 땅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인 것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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