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대법회
<2001. 7. 23 TV법회>
[1]
동산반야회(東山般若會) 회관 준공 즈음해서
회장님을 위시해서 관계있는 여러 불자님들의 노고에 대해서
충심으로 감사의 합장을 드립니다.
한편 치하의 충정을 말씀드립니다.
이 동산반야회,
애초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쳐서
동산(東山)이란 그러한 명의를 쓰셨는가 알 수는 없습니다만
동산이란 그 명의가 역사적으로
아주 유서가 깊은 그런 이름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대체로 아실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인 달마대사,
그 다음에 2조 혜가대사, 또 3조에 승찬대사,
4조가 도신대사입니다.
헌데 도신대사가 이룩한 그 회상이
바로 동산법문(東山法門)입니다.
한문자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달마대사 법문은 아주 간략해서
별로 두드러진 그런 문집이 없을 정도로
소략(疎略)된 그런 법문입니다만,
혜가대사나 승찬대사, 3조까지는 두드러진 어록도 없고
또 그분들 가르침도 아주 간소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4조 도신스님 때
비로소 집단적으로 공부를 하셨습니다.
한 500대중이 모여서 공부를 하셨는데
그 도량이 바로 동산도량입니다.
그래서 그 법문이 동산법문인데
4조 도신스님은
달마 때부터서 내려오는 참선의 정통뿐만이 아니라
부처님의 정통까지도 계승하신 분인데
그 도신스님이 하신 그런 법문가운데
입도안심요방편문(入道安心要方便門)이라는 법문이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라는 책에 있습니다.
그 전에는 그 책이 안나 와 있다가
1907년, 8년 돈황문서 발견 때
비로소 그것이 발견되어서 유포가 되어가지고서
귀중한 문헌으로 지금 남아있습니다.
헌데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도신스님 때 하신 법문이
세계적인 순수참선(純粹參禪),
순수선의 그러한 내용이 돼있단 말입니다.
그 법문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고 하면
일상삼매(一相三昧) 일행삼매(一行三昧)입니다.
일상삼매 일행삼매는 그 내용을 알고 보면
달마선의 그러한 중요한 핵심인 동시에
부처님 때부터서 내려오는
모든 참선의 핵심이 거기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 일상삼매 일행삼매 내용이
바로 염불참선(念佛參禪)입니다.
나중에 우리 불자님들께서 기회가 있으시면
그 책을 구해서 보시기 바랍니다마는
그 참선의 할아비 같은,
참선의 비조(飛鳥)같은 것이 이른바 달마스님인데,
달마스님 때부터 내려온 이른바 순수선(純粹禪),
순수선의 내용이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산법문의 내용인
4조 도신스님의 법문으로 돼 있는 것인데
그 법문내용이 바로 이른바 일상삼매 일행삼매입니다.
일상삼매(一相三昧)는 무엇인가.
이것은 모든 존재가,
나의 본질이나 또는 우주의 본바탕이나 모든 존재가
진여불성(眞如佛性) 아님이 없다,
모든 존재를 진여(眞如), 부처님 아님이 없다,
이런 도리로 해서 말씀하신 것인데,
그 일행삼매(一行三昧)란 것은
그런 자리를 일체존재가 본래로 부처 아님이 없다,
이런 자리를 조금도 빈틈이 없이 상속적(相續的)으로 이어가는
그런 법문이 일행삼매입니다.
일행삼매(一行三昧)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부처님의 명호를 열심히 간단(間斷)이 없이 외어가지고서
염불삼매(念佛三昧)에 드는 것입니다.
불자님들,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염불삼매란 것은 비단 염불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참선의 정수도 그 가운데가 다 포함이 돼 있습니다.
부처님 공부를 모두 다 압축시킨 그런 법문이
이른바 염불삼매란 말입니다.
동시에 구체화시키면 일상삼매 일행삼매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6조 혜능스님은 참선의 대도사 같은
그런 분이라고 생각이 되시지 않습니까.
보조국사나 누구나 모두가 다 육조단경(六祖壇經)을
교과서 같이, 보전(寶典) 같이 아끼고 숭상하고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러한 육조단경의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저는 참선한다고 평생 돌아다녔지만
사실은 항시 염불을 기반으로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참선을 주로 하는
대선사의 기본적인 공부방식이 어떤 것인가,
그런 것에 관해서 아주 지대한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육조단경도 제가 몇 십 번 본지를 모릅니다.
처음에 몇 번 볼 때는 그냥 피상적으로만 생각한 것인데
나중에 그 한 구절 한 구절 다 뜯어보니까
육조단경에서 6조스님께서 하신 법문도
역시 내내야 염불삼매(念佛三昧)입니다.
여러분들이 제 말씀을 들으시고
나중에 육조단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육조단경 참회품(懺悔品)에서 하신 법문인데
참회품의 내용에 있어서 무상계(無相戒) 법문이라,
없을 무(無)자, 서로 상(相)자, 경계할 계(戒)자,
보통 우리가 받는 계율은
상이 있고 무엇을 지켜라, 무엇을 어떻게 하지 말라,
그런 것이 되지 않습니까.
허나 무상계는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
불성에 갖추고 있는 그 자리에다가 마음을 두고
상을 내지 말고 계를 지키는 것이 무상계입니다.
헌데 무상계 법문이 6조 혜능스님께서 직접 저술은 아니고
자기 제자들이 어록을 모아 가지고 수록을 한
그 가운데에 있는 법문내용이 무상계 법문이란 말입니다.
6조 스님께서 무상계 설할 때 역점을 두고 하신 법문이,
“여러분들은 나를 따라서, 내 입 따라서 세 번씩 되풀이하시오.”
이렇게 해놓고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에 귀의합니다.
원만보신 노사나불에 귀의합니다.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합니다.”
이와 같이 법신, 보신, 화신에 귀의하는데,
이것이 삼신일불(三身一佛0이라,
본래 부처님은 따로따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주 자체의 생명이 바로 부처님인데
내 생명의 본래면목인 동시에
우주의 본래면목 자리가 바로 부처님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구체화시키면 법신, 보신, 화신이란 말입니다.
헌데 삼신이 오직 하나의 부처기 때문에
하나의 부처로 해서 우리가 포괄해서 얘기할 때는
바로 아미타불(阿彌陀佛)입니다.
아(阿)자는 화신(化身)에 해당하고,
미(彌)자는 보신(報身)에 해당하고,
타(陀)자는 법신(法身)에 해당하고.
그래서 삼신일불(三身一佛)로 해서 하나의 부처님,
바로 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6조 스님께서 얼마만치 고구정녕으로 우리한테 부탁을 하셨으면
내 입 따라서 세 번씩 되풀이하시오, 이랬단 말입니다.
이렇다고 생각할 때 4조 도신스님께서는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일상삼매 일행삼매를 하라는 것이
바로 염불삼매를 하라는 것이고,
그 능가사자기에 보면 염불삼매로 해서 일관돼 있습니다.
여러분들 능가사자기를 꼭 구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만치 그런 참선의 조사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씀을 했는가,
그 깊은 뜻을 우리가 음미하게 됩니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육조혜능스님의 육조단경을 절대로 무시를 못합니다.
한국의 보조국사나 서산대사나 그런 정정한 선사들이
모두가 다 육조단경을 귀감으로 해서 공부를 하신 것입니다.
헌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육조단경에서는 화두나 의심하고 앉아서
그냥 좌선만 하고, 이렇게만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그런 성자(聖子)들의 말씀은
부처님의 그 원융무애한, 심심미묘한 부처님말씀을
조금도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헌데 그 6조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아미타불에 귀의하라,
이런 말씀으로 귀일(歸一)이 된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 4조 도신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육조단경에서는 또 되풀이돼 있습니다.
무슨 경이나 그 경의 결론 같은 이른바 부촉품(咐囑品)이라,
부촉품이란 그 경의 결론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 육조단경의 부촉품에 가서
또 다시 말씀을 되풀이해서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그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닦을지니라,
즉 말하자면 염불삼매를 닦을지니라,
그 말씀하고 똑같은 뜻입니다.
우리의 본래면목이 부처고
또 우주 모든 존재의 본래 자리,
본래 풍광(風光) 자리가 부처님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실은 부처님을 떠나버리면 불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뭘 좀 어렵게 말하고 어렵게 표현되면
상당히 차원이 높다고 생각하고,
너무나 쉽게 말하면 그냥 소홀히 생각해서 차원이 낮은 법문이다,
이렇게 폄하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특히 우리 한국의 이조오백년 동안에는
배불숭유(排佛崇儒)라,
우리 불교는 산에 가서 숨어버리고
스님 네는 8천민 가운데 하나가 되어서
일반사람들이 우리 스님네한테는 말도 존대를 않습니다.
꼬마들도 ‘여보게 대사’하고, 존대를 않고서 하소를 합니다.
그런 풍조가 이조오백년 동안의 풍조란 말입니다.
일반사람들이 다 할 수 있는 서울 도성을
우리 스님네는 출입도 못했습니다.
그런 때인지라 불교가 발전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 풍토가운데 불교가 지내와 놔서
8.15 해방이고 또는 우리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그렇게 했다하더라도
그 부처님의 사상을 역사적으로 깊이 연구한 분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상식적으로 염불은 너무나 쉬우니까 차원이 낮다,
이렇게만 폄하를 했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부처님 공부의 중요한 정수가 무엇인가,
이런 것을 우리가 파내서
불교를 바로 믿고 깊은 그런 삼매에 들어서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시기에 지금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염불공부나 무슨 공부나
아, 그냥 뭐 염불만 하면 되고
아, 또는 그야말로 참 어떠한 교리만 많이 외우면 되고,
그렇게만 되지 않지 않습니까.
이른바 삼학도(三學道)라,
그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계(戒), 정(定), 혜(慧)란 말입니다.
이러한 것이 같이 아울러져야 됩니다.
우리가 기본적인 윤리가 안 서놓으면
개인들 그런 생활도
토대가 없는 집과 마찬가지로 그냥 허물어지고
또는 그러한 계율이 없는 공부는
호법선신(護法善神)들이 지켜줄 수가 없습니다.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바세계에는 우리 인간존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귀신도 있는 것이고
또는 여러 가지 차원,
높은 차원 낮은 차원 그런 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진리를 숭앙하고 진리에 따르면
그런 귀신들도 그마만치 환희심을 가지고
우리를 굽어볼 것이고
더구나 그 차원이 높은 그런 선신들,
그런 선신들도 역시.....
기본적인 자리가 부처님 아닙니까.
어떠한 높은 신이나 무슨 보살이나
모두가 다 그 기본적인 가장 근원적인 자리가
부처님자리란 말입니다.
☞ 출처 : 본정 김영동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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