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혀 아르헨티나에서 4년만에 넷째언니가 오셨다. 반가움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딸 다섯이 여행을 떠났다. 가을이고 하니 절골계곡과 주산지와 주왕산의 단풍으로 유명한 청송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침 우리가 떠나려던 그날이 그곳 단풍의 절정이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아 부지런하신 언니들은 시간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다. 한남동에 사시는 큰언니는 여든넷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그러하듯 시간 약속보다 빨리 도착하셨다. 큰언니네집에 짐을 푼 넷째언니도 함께였다. 익산에서 전날 아들네 집으로 오셨던 둘째언니와 상도동에 사시는 셋째언니도 이미 약속장소인 중동고등학교 앞에 와 계셨다. 언니 언니 언니 언니들을 한 분 한 분 만날 때마다 큰소리로 불렀다. 열 살 계집아이로 돌아간 내가 보였다.
청송으로 가는 길은 온통 산이다. 그 산들이 노랗고 빨갛다. 와와 저 산 좀 봐라 개나리가 핀 것처럼 노랗구나. 감탄사를 입에 물고 사시는 큰언니다. 아직도 언니 마음은 말랑말랑한 봄날의 땅인 듯 하다. 길가에 벚나무들은 또 얼마나 각양각색으로 물들어 손짓하는가. 어느 가을날 붉은빛 노란빛 분홍빛 보랏빛 등으로 물든 나무들에 홀려 반나절을 일원동 동네를 헤매었던 때가 생각난다. 가을 빛깔은 무덤덤한 마음도 펄쩍 뛰어오르게 한다.
한 차를 타고 가는 날에는 옛날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그 당시에는 큰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여 여유가 있었고 큰아버지는 동생들 다섯뿐 아니라 조카들까지 서울로 불러들여 공부를 시키셨다. 둘째였던 우리집에서는 큰언니와 큰오빠가 혜택을 보았다. 혜택이기는 했지만 큰언니는 눈칫밥이라고 하셨다. 학교에 갈 준비는 전날 저녁에 미리 해 준비해놓아야 했단다. 새벽이면 부엌에서 큰어머니를 도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아침상을 차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큰아버지네 딸들은 늦잠을 자고 있었으니 비교가 되었을 것이다. 고향집이 그리웠을 것이다,
할머니는 늘 큰어머니를 부지런하고 손맛이 좋은 내 어머니와 비교하여 흉보셨다. 게으르고 반찬 솜씨도 없고 눈치도 없다고 말이다. 어린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큰어머니를 할머니의 잣대로 본 것 같다. 지금 큰언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는 나이를 먹어서인지 큰어머니의 고충에 더 마음이 간다. 열네 식구의 밥뿐만 아니라 도시락을 일곱 개씩이나 준비해야 했다면 그 수고로움을 어디에 비교한단 말인가. 물론 내 어머니도 찾아오는 친척이 하도 많아 허리 펼 날이 없으셨다. 시어머님이 아프셔서 내 집에 계셨던 2주 동안을 힘들어했던 나는 고개가 숙여진다. 큰어머니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한번 찾아뵙고 넙죽 절이라도 올리고 싶어진다. 이런저런 어릴적 이야기로 깔깔거리며 박수를 치고 간식을 먹다 보니 세 시간 반도 잠깐이다. 숙소에 도착.
송소고택에 들렀다. 조선 영조때 만석의 재산을 가졌던 심씨 가문의 가옥이다. 아흔아홉 칸 기와집. 10채의 건물로 구성되어있다. 장독대와 항아리들, 우물, 대문간에 말아놓은 멍석, 키, 지게 등 어린 시절에 보았던 물건들에 저절로 눈길이 머문다. 특히 대문간에 절구가 있었는데, 엄마를 만난 것처럼 언니들은 반가움에 덥석 절구깽이[절구공이]를 잡았다. 번갈아 가며 마주 서서 재미있게 절구질 시늉을 했다. 절구질을 하는 동안 분명 어머니며 할머니며 아버지와 고향을 만났으리라. 고향집 안마당가 꽃밭에 자매들을 세워놓고 작은 오빠는 사진을 찍으시고는 했다. 그날들처럼 고택 마당가 가운데 꽃밭에 오공주가 나이 순서대로 나란히 섰다. 작은오빠 대신 이번에는 내 남편이 셔터를 눌렀다. 작은오빠도 함께였다면 더 멋진 추억이 되었을텐데. 큰언니는 엄지손가락을 둘째언니는 엄지와 검지를 셋째언니는 중지까지 넷째언니는 약지까지 나는 다섯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웃음이 다섯 배였다. 다섯 모두 이만큼 건강하게 나이 먹어간다는 것에 감사했다.
청송 달기약수. 탄산을 비롯하여 다양한 물질들이 녹아있어 예로부터 위장병, 부인병, 안질과 같은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약수탕에는 아예 한 남자가 그 일이 천직인양 앉아서 약수를 받아 통에 담기도 하고 약수를 먹기 위해 줄지어 있는 사람들에게 차례차례 약수를 담은 국자를 건네주고 있다. 쇳물을 녹인 물 같아. 맞다. 넷째 언니 말씀처럼 녹슨 쇳가루를 녹인 듯한 물맛이다. 몸에 좋다니 마시기는 하는데 글쎄 예나 지금이나 맛은 별로다. 달기 약수를 넣은 달기백숙은 먹어본 적이 있다. 부드럽고 냄새가 없고 감칠맛이 돌았다. 개천 주변을 따라 서 있는 나무들이 하도 곱게 단풍이 들어 남편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번 여행의 기획자이며 기사님으로 기꺼이 나선 중년의 남자가 가을처럼 풍요롭게 웃고 있었다.
주산지- 조선 숙종때 쌓기 시작하여 경종 때 완공된 농사를 위한 저수지. 저수지 아래 이전리 마을에서는 해마다 호수 주변을 정리하고 동제를 지낸다. 물에 잠겨있는 오래 묵은 왕버들이 유명하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배경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큰언니와 둘째언니는 주산지까지 못 가셨다. 여든이 넘은 나이이니만큼 다리에 힘이 부족해지셨단다. 적당히 올라가다가 쉬고 계시겠단다. 아래쪽도 충분히 좋단다. 안타깝다. 세월을 누가 이기겠는가.
반면에 욕심부리지 않고 나이에 맞춰 적당히 멈출 줄 아는 언니들의 지혜를 배웠다.
주산지는 가을 단풍이 물에 비춰들어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큼 아름다웠다. 그 풍경 앞에서 셋째 넷째 다섯째인 나는 신이 나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마다 산 밑에 계실 두 언니가 생각났다. 아쉬움이 컸다. 아르헨티나에서 삼십여 년을 살아온 넷째언니는 말했다. 이렇게 멋진 곳이 청송에 있다니. 청송은 청송교도소만 알고 있었는데. 한번 와 볼만한 곳이네. 우리가 산 아래로 내려와 보니 빨간색 잠바에 검은색 모자를 쌍둥이처럼 쓰고 있는 두 언니가 머리에 붉은 단풍잎을 하나씩 달고 웃고 계신다. 가을빛이다. 낭만적이시다. 우리 셋은 언니들이 너무 이쁘다고 열렬하게 박수를 보냈다. 커피집에 들러 느긋하게 앉아 산을 올려다보며 가을과 관광객들을 구경했다.
주왕산-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대전사 광암사 연화사 절이 있다. 주왕암 주왕굴 백련암 연화암이 있다. 가는 길에 사과밭에서 언니들을 찍었다. 사과처럼 볼이 통통하고 붉으스레하던 처녀 시절처럼 언니들이 풋풋하게 웃었다. 둘째 언니는 사과를 입을 벌려 먹는 시늉을 하는 재미있는 포즈를 취했다. 사과밭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면서 둘째언니는 말했다. 죄송해요 그래도 사과는 먹지 않았습니다. 사과밭 아주머니가 재미있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무엇이든 오천냥이라는 가게가 눈길을 끈다. 모자와 가방과 손지갑등 종류도 다양하다. 오천냥? 남편은 어제 저녁 고스톱으로 돈을 땄으니 무엇이든 고르란다. 사주겠단다. 신이 나서 하나씩 골랐다. 가방을 메고 뽐내보는데, 호호호 공짜는 언제든 신나고 재미있다. 뒤에 남겨진 두 언니는 아쉽게도 기회를 놓쳤다. 두 언니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최서방이 사주었다는 말을 삼가는 중인데. 아뿔싸 눈치 없는 최서방님. 스스로 말하였겠다. 어제 고스톱으로 딴 돈으로 제가 사주었답니다. 이 사실을 안 큰언니 왈. 에이 따라 나설걸 그랬다. 우리 셋은 무안하고 죄송하고 게면쩍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두 언니는 평지인 대전사까지 가는 것도 마다하였다. 나들이 때마다 일등으로 앞장서서 다니시던 큰언니인데, 웬만하면 씩씩하게 걸어가실 분인데, 세월이 참 야속하다. 대전사에 서니 기암절벽 봉우리와 단풍이 한눈에 올려다보인다. 대전사 마당에 품이 너른 은행나무가 노랑 크레파스처럼 물들어 관광객마다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자식이 다섯이고 그 자식들 입에 들어갈 것을 미리미리 준비해놓는 큰언니는 이곳에 와서도 인삼이며 튀김과자등 한 보따리를 챙기셨다. 다리만 안 아프시면 얼마나 좋을까. 쓸만큼 쓰셔서 아픈겁니다. 그렇게 말했다는 의사가 얄밉다 얄미워. 내려오는 길에 칼국수와 감자전과 녹두전과 사과 막걸리를 먹었다.
저녁에는 둘째 언니의 시조 가락을 들었다. 여든두 살이신 둘째 언니는 배움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시다. 춤, 장구, 국화 분재도 열심이시고 그리고 요즈음에는 시조에 빠져 사시더니 지난번 시조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으셨다. 장원이 목표라신다. 시조는 그 구절구절이 옛말이어서 빨리 기억하기도 어렵거니와 길고 길어서 외우기가 더욱 힘이 든다. 청송으로 내려오던 길에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잠시 피로를 푸는 듯 하던 둘째언니가 어느새 가을 빛깔에 흥이 돋았던지 갑자기 ‘이산 저산 단풍이로구나’ 를 시조 가락으로 읊으셨다. 어찌나 울림이 크던지, 그 울림이 모두의 가슴에 들어앉았나보다. 다들 한 번씩 갑작스레 이산 저산을 읊어 웃음을 자아냈다. 정갈하게 몸을 펴고 마음을 가다듬으신 후 둘째언니는 우리가 정식으로 신청한 그 시조를 읊으셨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만은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날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 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고 여름이 오면 녹음방초 승화시라
저 준엄한 자세. 저 낭낭하게 울러퍼지는 목소리. 집중의 눈빛. 양반임을 자부하던 순응안씨 어머니가 보셨더라면 옳다구나 하고 손뼉을 치셨을 것이다. 여든둘이라는 나이는 나이에 불과했다. 그 열정과 노력은 젊은이 못지않다. 장원은 이미 따놓으신 당상임이 분명하다.
사과밭이 지천이라. 사과 몇상자 주문해놓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어제 저녁 노래방을 가지 못한 서운함으로 노래를 불렀다. 내 남편은 그리운 금강산과 향수를 불렀다. 운전대를 잡고서도 고음에 문제가 없다. 언니들이 환호했다. 최서방 최고! 가수 임영웅을 하도 좋아해서 콘서트에도 다녀오셨고 집안에 그의 사진이 걸려있기도 한 큰언니는, 그의 노래 별빛 같은 나의 사람아 를 고운 목소리로 부르셨다. 당신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형부를 그리워하는 노래다. 셋째언니는 돌아가신 형부가 즐겨 부르시던 어부의 노래를 부르셨다.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고,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다.떠나간 사람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다.
오공주 여행. 웃음이 청송의 사과나무에 붉은 사과처럼 주렁주렁 열린 여행이었다. 큰언니와 둘째언니가 나이만큼 약해지셨다는 것을 확인하는 서러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만함을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사진 속의 얼굴은 나이를 감출 수 없지만, 마음만은 고향 마루에서 빙 둘러앉아 오이상치에 밥을 비벼 먹던 그 시절로 돌아간 시간이었다. 안마당에 멍석을 깔고 할머니와 아버지를 중심으로 뜨거운 호박감자칼국수를 호호 불며 먹던 그 시절로 돌아간 시간이었다. 오공주의 이만한 행복을 마련해주느라 애쓴 내 남편, 최서방님!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