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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5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소제 (c e r e a l o f f e r i n g)
출29:38~46
<두 가지의 십자가>
우리는 십자가를 많이 봅니다. 교회의 십자가 말고 다른 곳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십자가는 여
성들의 목걸이일 것입니다. 또 교인들의 자동차 안에 십자가가 달려있습니다. 십자가를 유심히
살펴 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십자가도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요.
한 가지 십자가는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 모양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이
없는 그냥 십자가입니다. 그렇지요? 어떤 십자가는 예수님이 매달려 계십니다. 어떤 십자가는
빈 십자가입니다. 이 두 십자가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는 예수님이 당하는 고난을 떠올리게 합니다. 양 손과 발에 못 박힌 채
피를 흘리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이 십자가는 가톨릭 성당에 가보면 많이 있습
니다. 성당 안에는 거의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개신교 교회에 오면, 십중팔구 빈 십자가입니다. 서로 강조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
당에서는 고난 받는 예수님을 묵상하고, 교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십자가가 더욱 마음에 드십니까?
그렇지요, 우리는 빈 십자가에 익숙합니다.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신 예수님,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님이 당한 수난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
하면서 기쁨을 누립니다. 성당에서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고난 받을 때 누구라도 어머니를 찾습
니다. 십자가 고통 중에 있는 예수를 품어주는 마리아를 띄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무덤에서 다시 살리신 분을 찾아서 예배합니다. 누구입니까? ···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덤
에서 다시 살리십니다. 할렐루야~
<여러 가지 제사들>
온고을교회는 지금 수요예배에서 출애굽기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9장은 제사장 위
임 식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제사장 위임 식은 제사 의식과 함께 진행됩니다. 그래서 그동안 속
죄제, 번제, 화목제에 대해서 한 주에 하나씩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로 ‘소제’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속건제에 대해서는 아직 설교하지 않았지만, 그 속건제를 포함하여 속죄제, 번제, 화목제 이
네 가지 제사 방식은 살아있는 짐승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소제는 동물을 제물로 드리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드립니까?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무엇으로요? ··· 곡식으로.
농사지어 수확한 쌀, 보리, 밀, 콩 등등의 곡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가 소제입니다.
다섯 가지 제사 중에서 유일하게 피 흘림이 없는 제사입니다. 무엇이 없다고요? ···피 흘림
그렇다면 피 흘림이 수반되는 속죄제, 번제, 화목제, 속건제와 피 흘림이 없는 소제를 아까 말
씀드린 두 가지의 십자가에 비춰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피 흘림이 있는 제사는 어떤 십자가와
연관성이 깊습니까? ··· 그렇지요, 예수님이 매달려 계신 십자가입니다.
피 흘림이 없는 소제는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빈 십자가와 연관이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가 바로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제사가 제일 마음에 드세요? ··· 소제? 당연히 그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속죄제, 번제, 화목제, 속건제 없이 소제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백퍼센트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음부에까지 내려갔습니다. 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
십니다.
예수님이 순종하지 않고, “나 십자가에 달릴 수 없습니다.” 했더라면, 부활도 없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써, 빈 십자가가 기념이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저도, 여러분도,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받으려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기꺼이 십
자가에 매달려야 합니다. 이마에서 손과 발에서 옆구리에서 피를 흘려야 합니다. 얼마나 아프
겠습니까?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나 그 고통을 참아내야 합니다. 참아내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부활의 영광을 허락하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지금 고통 중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속죄제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번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화목제, 속건제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내하시고, 참으십시오. 끝까지 참아내십시오.
고통 중에 하나님을 부르짖는 여러분을 하나님은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꼭 고통에 대한,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실 것입니다.
피 흘림의 제사 뒤에 소제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소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소제는 기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 고통의 과정을 지나왔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영광을 허락하시더라!’
그런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드리는 제사가 소제입니다.
그래서 소제의 뜻이 선물, 예물입니다.
소제는 히브리어로 ‘민하’입니다. 이 ‘민하’를 영어로 번역할 때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라고
해서 곡식을 뜻하는 cereal을 써서 ‘시리얼 오퍼링’으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동
물을 희생 제물로 하지 않고, 소박하게 농사지은 것으로 드리는 제사라고 해서 ‘힐 소’자를 써서
소제(素祭)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민하’는 선물, 예물, 기증품이라는 뜻입니다.
요즘이 선물 시즌입니다. 낼 모레 추석을 앞두고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즐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주는 사람도 기쁨이 없고, 받는 사람도 부담만 된다면 그
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 때에 하는 헌금은 다섯 가지 제사 중에서 ‘소제’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
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내 인생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았더니, 이렇게 기
쁘고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것이 헌금 아닙니까?
이렇게 중요한 뜻이 있는 소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소제>
피 흘림이 있는 네 가지의 제사에 바치는 희생 동물들은 우리가 ‘제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소제를 드릴 때 가져가는 곡식에 대해서는 ‘제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라고 하
겠습니까? ‘예물’이라고 말합니다.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제의 예물로는 중요한 네 가지가 있습니다. 몇 가지요? ··· 네 가지.
그런데 성경은 소제에 첨가되어서는 안 될 것을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두 가지가 무엇인지 먼저 보고나서 중요한 네 가지를 보는 것이 더 은혜가 될 것 같습니다.
레2:11『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 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
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 지니라』
누룩과 꿀을 금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룩은 팽창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풀어 오르는 것이 누룩입니다. 좋은 것은 부풀어
오르면 좋습니다. 좋은 것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나쁜 것이 부풀어 오르면 어
찌 됩니까? 심각해집니다. 특히 죄가 부풀어 오르면 어찌 됩니까?
‘누룩’ 하면, 우리는 빵에 들어가는 ‘이스트’를 떠올립니다. 이스트 없이 빵을 만들 수 없습니
다. 빵을 만들 때 이스트를 넣지 않으면 단단해서 먹기 어렵습니다. 밀가루가 부풀어 오르지 않
으면 부드러움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칼로리가 작아 진 것은 아닙니다.
물론 부풀었다고 해서 칼로리가 많아진 것도 아닙니다. 칼로리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누룩을,
이스트를 넣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모양도 크기도 맛도 달라집니다.
그러나 만약 범죄가 세상에 만연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범죄에 이스트가 들어가면 야단입니다. 중학생 한 명이 담배를 피기 시작했는데, 그 반 아이
들 전체가 다 따라하면 그것은 심각합니다.
누룩의 이미지는 죄와 결합할 때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누룩은 ‘죄의 확산’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제 예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선물을 하면서
쓸데없이 부풀리지 말아야 합니다.
손톱만한 선물을 하면서 대단한 것인 양 침소봉대하면 안 됩니다. 최선을 다하여 드리되, 있는
모양 그대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누룩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꿀을 넣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꿀은 좋은 의미로도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역시 누룩과 마찬가지로 나쁜 의미로도
쓰입니다. 꿀은 사람에게 필수 영양소입니다. 그런데, 이 꿀은 과식했을 경우 치명적으로 탈을
일으킵니다. 너무 달아서 탈이 납니다.
꿀이 아무리 맛있어도 몇 숟가락씩 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욕심을 내어 그렇
게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 꿀을 그렇게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입에 달다고, 뇌물을 배 터
지게 받아 챙기는 사람의 모습이 있습니다. 입에 달다고 꿀을 그렇게 먹다가는 필경 탈이 납니
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적당해야 합니다.
“누룩과 꿀을 소제 물에 첨가시키지는 말아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소제 예물로 필수 요소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고운 가루입니다. 본문 40절에서는 ‘고운 밀가루’라고 했습니다.
(40절a)『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
‘고운 가루’라는 말은 내가 드릴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선물을
할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최고의 정성을 담아서 해야 합니다. 최고의 정성이 비싼 것
은 아닙니다. 그렇지요?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추석 선물을 마련할 때도, 비싼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정성이 먼
저입니다.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정성이 빠지고, 마음이 없는 선물은 뇌물입니다.
둘째, 기름입니다. 40절 뒷부분에 있지요?
(40절b)『~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
우리가 음식을 만들 때, 기름을 칩니다. 왜 기름을 넣고, 왜 기름을 바릅니까? 맛을 최고로 하
기 위해서입니다. ‘전주비빔밥에 참기름이 들어가지 않았다? 전주비빔밥이 아니지요!’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에 기름을 넣어 최고의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셋째, 유향입니다. 41절에 보면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했습니다. 고소한 기름을 치
고, 향기로운 냄새가 풍기도록 합니다.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입니다. 으뜸이 되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니 당연합니다.
넷째, 소금입니다.
소제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룬 부분이 레위기 2장입니다.
레2:13『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
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정답은 소금입니다.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 얼마나 정확하게 넣느냐가 그 음식 맛을 결정합니다.
<소제 예물 드리는 형식>
이렇게 피할 것 두 가지, 필수 요소 네 가지로 준비한 예물이 드려지는 형식은 어떠냐?
이렇게 마련한 예물을 제사장에게 가져갔습니다. 제사장은 어떻게 예물을 하나님께 드립니
까?
준비한 예물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립니까?
대체적으로 소제는 번제 제물이 제단 위에 타고 있을 때 더불어 태웁니다.
(41절)『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
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
소제로 드리는 예물을 제단 불 위에 번제물과 같이 태우는데, 모두 태우는 것은 아닙니다.
레2:2~3『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
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
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고운 가루에서 한 줌을 제단위에 화제로 불사릅니다. 물론 유향과 기름은 다 불 사릅니다. 그
리고 남은 가루를 어찌한다고요? 제사장들이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다른 생업을 하라고 하지 않고, 성전 업무에 전적으로 종사하도록 하
십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제사 예물로 가져오는 것 중에서 제사장 몫을 정해 주십니다.
이렇게 제사에 대해서 규정하신 말씀을 토대로, 4주에 걸쳐서 속죄제, 번제, 화목제, 소제를 봤
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다양한 제사 제도를 두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이
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사장 먹여 살리려고요?” 43절을 보겠습니다.
(43절)『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죄악으로 빠져드는 인간을 거룩함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서 붙드시기 위함입니다.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놓으면 어찌 됩니까? 아이가 물속에 들어가면 위험한 줄 알고 밖으로 나
옵니까 아니면 물속으로 겁 없이 기어듭니까?
어린아이는 그런데,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어른들 왼쪽에는 죄가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거룩함이 있어요.
사람들이 어디를 가겠습니까? 죄가 있는 쪽으로 잽싸게 달려갑니다.
그쪽이 꿀처럼 달콤하거든요.
어린아이가 물가에 있으면 어른이 쫓아가서 붙잡아줍니다.
어른이 죄악에 접근하고 있으면 누가 달려가서 붙잡아줍니까?
중요한 얘깁니다. 죄악에 물드는 사람들 누가 붙들어 줍니까?
구약 시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들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은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취하신 조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려 보내십니다.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십자가 사건입니다. 구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모든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하나도
빠짐없이 뭉뚱그려져 있습니다.
다섯 가지 제사 방법이 십자가 사건에 모두 걸려 있습니다.
피 흘림이 있는 제사 네 가지, 속죄제, 번제, 화목제, 속건제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는 예수
님의 모습입니다.
소제는 예수님의 부활을 감사하고 기뻐함으로써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소제의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 빈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시고, 그의 제자가 된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수난의 터널을
통과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노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드리는 제사가 소제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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