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72〉역사 뒤안길 속 통한(痛恨)의 승병들
壬亂 끝나자 스님에 대한 사회적 배려 물거품
1392년 조선이 건국할 때, 성리학을 기준으로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곧 억불숭유정책을 기반으로 하여 불교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태조 즉위식 3일 후, 사헌부에 올린 건의서에는 ‘부처님을 섬기는 행사를 모두 없애야 하며,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승려를 도태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정도전의 <불씨잡변>은 불교 폐단을 조목조목 드러내 비판하여 침몰하는 배처럼 불교는 점점 가라앉았다. 함허득통(1376∼1433년)은 <현정론>을 저술해 불교 배척의 부당함을 토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태종 대에는 사찰 재산을 몰수하고, 출가를 억제하였으며, 세종 때는 사찰을 36개 사원으로 줄이고, 불교의 모든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통합시켰다. 성종 때는 <경국대전>에 척불강화를 명시하였고, 중종 때는 철저한 배불을 하였으니 승려들의 사회적 위치는 참담했다.
다행히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불심으로 불교가 잠깐 살아났다. 문정왕후는 허응보우(1509~1565)를 기용하여 불교를 적극적으로 보좌해주었는데, 이때 승과를 통해 급제한 인물이 서산휴정(1520~1604)대사와 사명이다.
임란 전후 도첩 빌미로 노동력 착취
애국심서 발로된 희생 어찌 외면할까
조선 중기, 불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빛을 발한 서산 대사의 법맥을 올라가면 벽계정심 선사가 있다. 성종 때의 승려인 정심과 서산의 법계는 태고보우-환암혼수-구곡각운-벽계정심-벽송지엄-부용영관-서산이다. 정심 선사는 당시에 승려로서 수행하기가 쉽지 않아 신분을 감추고 속복을 입고 살았다.
선사는 경북 황악산 고자골 물한리에 들어가 호수 곁에 움막을 짓고 재가자처럼 산 것이다. 선사는 아침에 호숫가에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참선하였고, 땔나무를 해서 김천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하였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정심은 벽송(1464~1534)을 제자로 두어 불교의 법맥이 이어졌다. 중국 당나라 때인 845년 무종의 회창폐불 때도 선사들은 재가자로 환속해서 수행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위앙종의 위산영우(771~853)선사도 폐불 때 재가자로 머리를 기르고 숨어 살았고, 암두전활(828~887)은 뱃사공 노릇을 하였다. 그래도 중국의 폐불 사건은 2~3년간 잠깐이었지만, 조선 500년간의 불교 핍박은 글로 표현하기도 안쓰러운 통한(痛恨)의 불교사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는 서산(1520~1604)대사를 불러 ‘8도선교16종도총섭’이라는 직책을 주며, 승군 활동을 요청했다. 당시 서산 대사는 70여세였고, 제자 가운데 영규ㆍ처영ㆍ사명 등이 승장으로 활동했다. 임란 전후에는 승려에게 도첩(度牒)을 준다는 빌미로 성을 축조케 하여 노동력을 착취했다. 현재 남한산성도 승려들의 공(?)으로 축조되었고, 스님들 거처가 사찰로 변모했다.
당시 사명은 스승 서산의 명대로 승군 800명을 모아 평양성 탈환에도 큰 공을 세우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서산이 도총섭 직책을 사명에게 일임하자, 사명은 선조에게 여덟 가지를 제안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승려들에 대한 침해가 너무 심해 고통 받고 있으니, 국가적인 배려를 해줄 것’이었다. 선조는 철썩 같이 약속해놓고, 막상 임란이 끝나자, 유생들의 반발로 승려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물거품이 되었다.
사명은 사숙인 부휴선수(1543~1615)와 매우 가까웠는데, 선수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 ‘나라가 어지러워 자신은 승려의 본분사를 다하지 못하고 있으니, 스님께서 열심히 정법을 이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사명처럼, 당시 승군으로 활동했던 스님들이 살생업보인줄 뻔히 알면서 목탁보다는 칼을 들어야 했던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게다가 당시 승려들이 신분이 보장된 위치도 아니었다. 애국심에서 발로된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어찌 외면할 것인가?
소납이 그 시대 승려였다면, 승려 길을 포기했을 것이다. 핍박의 500년 한국불교통사에도 불교의 정맥을 면면히 이어온 조선시대 고덕(古德)들에 감사한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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