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계공은 율곡 이이의 수제자로서 조선 예학의 거두로 일컬어지는 사계 김장생의 제자라고 <조선유현연원도>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유현연원도
조선유현연원도에는 율곡 이이의 수제자로서 조선 예학의 거두로 일컬어지는 사계 김장생의 제자로서 김집, 송시열, 송준길 등과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석계공이 김장생을 만나게 된 것은 김장생이 금마 군수로 있었던 선조 36년(1603)에서 선조 38년 기간이었으므로 석계공의 나이는 이미 30대 말이었다.
석계공이 김장생을 만났을 때는 37~39세 정도 나이로 이미 학문이 절정에 달해 있었고, 김장생도 석계공의 학문을 인정하였으나 김장생이 19세나 나이가 많았고, 또 석계공이 김장생의 학문을 높게 보고 스스로 제자를 자칭했기 때문이다.
석계처사최군묘갈명병서 石溪處士崔君墓碣銘幷序 김장생(金長生) 사계집(沙溪集)
내가 금마군수로 가 있을 때 여윤(석계공)이 군청을 방문하였는데 용모가 씩씩하고 엄숙하며 논의가 명백하여 연원이 있었으므로 내가 그와 서로 뜻이 맞아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늦게 만난 것을 한스러워하였다.
이때부터 매우 자주 왕래하며 서로 더불어 의리를 강론하였다.
내가 젊어서 율곡 선생에게 글을 배워 대략적인 것은 들어보았으나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외롭게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고 글을 읽을 때 더불어 같이 논할 사람이 없다가 여윤(석계공)을 만나 매양 의심난 것을 물을 때마다 대뜸 의사를 열어주었으므로 내가 실로 유익한 벗을 얻었다고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기었는데 여윤은 지나치게 공손히 예를 갖추어 나를 스승으로 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