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테살 4,1-8; 마태 25,1-13
+ 찬미 예수님
오늘 교황님께서 몽골에 도착하셔서 사목 방문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한국 주교님들도 함께 하고 계신데요, 기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에서 충실하고 슬기로운(phronimos) 종과 못된 종을 구분하여 말씀하셨는데요, 오늘은 슬기로운(phronimoi) 처녀와 어리석은(morai) 처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결혼 풍습을 보면, 우선 신랑 신부가 정혼을 한 후 신부는 자기 부모님 댁에 1년가량 머무르게 됩니다. 정혼 기간이 끝나면 신랑이 신부의 집에 와서는 신부를 데리고 부부가 함께 살 집으로 가서 잔치를 벌였는데요, 신랑이 신부의 집에 도착할 때 신랑 친구들은 나팔을 불며 “신랑이 온다”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한편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부의 곁에서 함께 기다리다가 잔치에 동행하는 것이 그 역할이었습니다.
복음에서는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는 외침을 듣고 잠을 자던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등을 챙깁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넉넉히 갖고 있었지만 어리석은 다섯 처녀에게는 기름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좀 충격적인 것은, 이 처녀들이 지금 클럽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놀러 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신부의 들러리를 서주기 위해 왔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름을 넉넉히 갖고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잠이 올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복음은 우리가 지금 그러고 있지 않으냐고 묻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은 왔고, 나중에 그들이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청하였지만, 신랑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주인님”은, 희랍어로 ‘키리에’인데요, “주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신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기름은 무엇일까요? 산상설교에 비추어 보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들었던 말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신랑의 말은, 산상설교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기 때문입니다.
<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마태 7,21-23) >
한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기름이 ‘사랑’을 의미한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액체와 섞어도 기름이 제일 위에 뜨기 때문에,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기름은 가장 위에 있는 사랑을 상징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름이 상징하는 바는 이 외에도 착한 행실, 기쁨, 영광, 은총, 양심, 성령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었습니다. 어쩌면 기름은 이 중 어느 한 가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로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당장 오늘 주님을 만나게 된다고 할 때, ‘아차!’하고 내가 놀라게 될,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되물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느님 앞에 설 때 정작 있어야 할 것이 없다면,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그것을 갖추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뜻을 실행하려는 민감성과 실천일 수 있고, 진실함일 수 있고, 사랑,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관심, 사회 정의에 대한 관심, 또는 생태적 회심일 수 있습니다. 적어도 내가 무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들, 일신의 안락함이나 남들로부터의 인정이나 이기적인 마음 등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은 피조물을 위한 기도의 날이고 오늘부터 10월 4일까지 교황님의 권고대로 창조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모든 인류가 공동으로 부족하게 가진 기름은 바로 생태적 회심을 위한 노력이 아닌가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면서 나에게 지금 특별히 부족한 기름은 무엇인지 여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