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알려지는게 싫었어요. 드러나면 약해질까봐... 근데 나이를 먹어 그런가. 다급한 생각도 들고... 지금은 내가 좀 얼굴을 팔아야 할 것 같아. 알리고 사람들을 끌어모아 관계를 맺게 하고 싶어요. 본래 내가 중매를 잘하거든요”
그녀가 인터뷰에 응한 이유다. 20년동안 사회복지시설의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왔지만 요즘에서야 그녀는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복지시설 봉사 뿐 아니라 춘천지역 대안학교 모임인 모색21을 주도하고 춘천여성민우회의 여성문화제 설치미술전시회 지도강사에다가 우리문화구조대라는 문화지킴이 동아리의 대장격이기도 한, 서울에선 알려질만큼 알려진 중견 한국화가인, 다채로운 이력의 그녀가 이제야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 그것은 ‘연대’를 위함이다.
김아영(53.한국화가.강원대 미대강사.사진) 화가의 작업실은 허름했다. 아파트 상가 너댓평짜리 공간 속엔 구닥다리 10년전 책상에 커피포트까지 새로운 것이란 없고 온통 그림과 관련한 골동품으로 어수선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그림을 가르친다. 그냥 그림이 배우고 싶은 평범한 아줌마들이 그녀를 주로 찾는다.
지난 3월부턴 춘천민우회 회원들도 금요일 저녁을 시끌벅적하게 만들고 있다. 10~11일에 열리는 여성문화제에서 설치미술 전시회를 하기위해서다. 김씨가 미술과는 생판 거리가 먼 아줌마들의 설치미술 제작을 지도하는 것. 오지랖도 넓게도 여성민우회의 설치미술 제작은 어떤 연유로 가르치기 시작했을까.
“재작년 1회 문화제때 설치미술전 하는걸 봤는데 실내전시 작품을 그냥 땅에다 펴놨더라구요. 그래서 다음엔 내가 가르쳐주마 했는데 안오는거야. 2회때도 자기들끼리 준비를 했길래 가서 잔소리를 좀 했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이번엔 미리 연초부터 연락했죠. 제발 나한테 와서 배워서 하라고...” 정말 오지랖도 넓다.
어쨌든 그 덕분에 이번 여성민우회의 설치미술전시회는 생활속의 환경아이디어가 넘치는 재미있는 전시가 될 것 같단다.
할줄아는 건 그림밖에 없어 그림봉사 시작..문화지킴이 활동도..
복지시설 봉사는 85년부터 시작했다. 무작정 뭐라도 돕고 싶단 생각에 우연히 들른 애민원(춘천 우두동)에서 “다음에 놀러와도 되죠?”라는 한마디로 그림봉사가 시작됐다. 빨래나 해줄까 했는데 빨래도 잘못하고 할 줄 아는 건 그림밖에 없었다.
혼자 가르치다 ‘금잔디’라는 봉사모임을 만들어 여럿이 가르치기 시작했다. 91년부터 강원재활원(춘천 신북읍)에 가기 시작했고 나눔의 동산(춘천 사북면)엔 2002년부터 한달에 한번씩 들른다. 선생님도 다양해져 요즘은 음악과 미술을 가르친다.
“봉사자가 많았을 땐 글짓기나 영어도 가르쳤어요. 지금도 어떤 거라도 아이들에게 나눠줄 재주가 있는 분은 환영이랍니다” 은근히 회원모집 압력을 넣으며 교육방식까지 역설한다. “스즈끼 메소드라고 합주먼저 가르치고 독주를 가르치는 음악교육방법을 미술에도 적용하고 있어요. 모두 함께 어우러져 그리고 노는 것.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모여만든 그림전시회가 가능했죠”
지난 5월중순에 ‘금잔디와 그린그림’이란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외롭지만 고사리처럼 귀여운 아이들의 손과 삐뚤빼뚤하지만 자유롭기만 한 재활원 아이들의 손이 모이고 모여 아름다운 창작품을 만들어냈다.(위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닷새동안 갤러리 백령은 “그림 좋네 좋아”라는 탄성으로 가득했다.
20여년 복지시설 아이들에 대한 그림지도를 하다보니 이 맑은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몇해전 초등학생 교사들이 주축이 돼 시작된 춘천지역 대안학교 준비모임인 모색21에서도 한몫 안할 수 없었던 것. 계절마다 열리는 단기캠프인 산울림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냇물에 띄우는 찰랑찰랑 풀잎, 꽃잎 그림.. 아이들과 함께한 김씨의 상상력의 결과다.
“지리적 여건과 문화적 환경이 좋은 춘천에 차별화된 대안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김씨는 그곳에서 입시 미술이 아닌 그냥 ‘자유롭게 그리는 그림’을 가르치고 싶다.
틈틈이 우리문화구조대와 함께 문화답사 다니는 것은 2002년부터 문화투사로 태어난 그녀의 또 하나의 몫이다. 뜻맞는 열너덧 문화전문가들이 우리문화유산을 답사하며 나쁜 것은 지적하고 좋은 것은 홍보하러 다닌다. 색다른 취미생활이기도 하지만 정말 잘못된 것이 있다면 시위도 불사하겠다는 게 김씨의 뜻.(아래 사진. 서울 최순우옛집 답사모습. 왼쪽에서 세번째가 김아영씨)
“그동안 내 그림 그리는 일에 힘쓰며 학교에서, 동네에서, 보육원에서 그림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며 어디서나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하면 된다고 믿었어요. 근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문화의 문제들이 너무 심각해서 여러사람이 힘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많이 들었죠. 문화게릴라까진 아니라도 일단 소박한 답사모임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더 폭을 넓히고 싶어요”
가난하지만 입시교육은 안해..사람들이 엮이고 모이길 바래..
할 것 너무 많은 그녀다. 그런데도 돈은 못번다며 한숨이다. 그 학벌과 경력으로 학생들 과외하면 돈 많이 벌지 않나 물었더니 결정적으로 그건 싫단다.
“입시는 가르치고 싶지 않아요. 그 덕분에 가난한 거지만...정당하게 벌고싶어요 난. 하지만 우리같은 사람이 무조건 무료봉사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복지정책이 잘못된 거야. 전문가들의 봉사를 지원하는 체계가 조금이나마 만들어져야해. 나는 그렇다쳐도 솔직히 젊은 사람들에게 좀 미안해요”
가난해도 동지랑 함께 하고 싶다는 게 그녀의 마지막 부탁의 말.
“아참 그거 써주라. 봉사건 민우회건 모색21이건 뭐든 같이 하자고. 물론 이런 거하면 돈은 안되죠. 하지만 즐거운 삶이 보장되거든요. 나는 사람들이 모이고 엮이며 서로 돕고 나누었으면 좋겠어”
오늘은 대학강의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빡빡하다며 서둘러 일어서는 김씨의 뒷모습에 초여름 아침햇살이 단아하게 빛나고 있었다.
참 그녀의 전공인 그림얘기는 막상 하나도 안했다. 김아영씨는 서울대학교와 同 대학원 미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고 그동안 10여회의 개인전과 40여회의 단체전을 연 바 있는 중견 한국화가로 알려져있다.
<김효화 기자>
첫댓글 지난 송년회 때 한계령을 구성지게 부르시던 멋진 모습이 떠오르네요....글구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계신 줄 정말 몰랐네요. 민우회 안에서 멋진 여성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삶의 용기를 얻게 되는군요.
훌륭한 분과 설치미술워크샵을 했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잘 참아주시고, 친절하게 이끌어주셔서 넘 고마운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