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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 목사
오늘 봉독한 잠언의 말씀은 믿음있는 부모와 그 자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 주간을 맞이해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령 12절에 보면 “부모의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13절에는 “부모로서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고 하면서 혹시 잘못이 있을 때 자식을 때리는 일이 있는데, 물론 이것이 부모에게나 자식에게나 괴로운 일이지만 사실은 자식에게 큰 유익이 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한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19절에 보면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도로 인도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넣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운 것이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4 - 25절)
여기서 우리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따라서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예쁜 얼굴을 보는 부모의 기쁨이 있습니다.
암만 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얼굴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아니할 것입니다.
더구나 어머니의 생각으로는 자기의 애보다 더 예쁜 것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어린애들도 가만히 보면 더 예쁜 아이가 있고 좀 그렇지 못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어느 권사님과 그 따님을 우연히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권사님네 따님하고 우리 딸하고 이름도 같은데 얼굴도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요.하고 말했더니 권사님 대답이 그래요? 하시는데, 그 순간 아, 내가 실언을 했구나. 나는 그저 단순한 마음으로 그랬는데 권사님께서는 속으로 목사님은 딸이 무던히 예뻐 보이는 모양이지? 사실은 우리 딸이 훨씬 낫지. 하신 것같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엄마나 자기가 낳은 아기를 예뻐합니다.
그래서 손님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아기를 보고 참 예쁘다, 참 잘 생겼다고 칭찬하는 것이 예의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 원로 목사님한테서 들은 기억이 납니다.
목사님이 결혼 주례를 한 어느 젊은 부부가 여러해 동안 애가 없어서 몹시 기다리다가 결혼한지 6년만엔가 어린애를 낳았는데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두 달이 지나자 마침 세례식이 있어서 유아세례를 받고 찾아와서 인사를 하더랍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어린애, 이제 목사님께 유아세례까지 받았으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어쩔 줄 을 모르면서 그저 좋으니까 한다는 말이 목사님, 우리 아기 예쁘지요? 하면서 그렇게 좋아하더래요.
그런데 목사님이 애를 보니까 그렇게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더래요. 그렇다고 거짓말할 수는 없고, 그래서 얼른 하신다는 말씀이 야, 이 아기 참 베이비구나 했다고 합니다.
어린애 엄마에겐 자기 아이가 제일 잘 생겨 보입니다.
더구나 애가 몇 달이 되어서 히죽히죽 웃기 시작하면 웃는 아기 얼굴처럼 귀엽고 예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린애가 좀더 커서 뒤집게 되면 그것도 귀엽고, 배밀이를 하게 되면 그것도 자랑스럽고, 벌렁벌렁 기어다니면 그것도 훌륭해 보입니다.
어린 아이들 동작 하나 하나에서 부모들은 기쁨을 가집니다.
그러다가 이 어린애가 좀 더 자라서 자기 혼자 서고, 걷게 되면 부모들은 박수를 치며 어린애를 격려하고 좋아합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하는 말을 듣게 되면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래서 이때쯤 되면 엄마들이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흔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애 엄마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애들이 말 몇 마디 하게 되면 부리나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애는 벌써 못하는 말이 없어요. 그저 말 몇 마디 겨우 하는 것을 본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요?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서 그럽니다.
전에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예배당에 나올 때 아기를 업고 오면 너무 시끄러우니까 예배당에 올 때는 애를 업고 오지 말라고 광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광고를 들은 아기 엄마들의 불평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아기 데리고 오지 말라는 광고를 아예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아기 업고 오시는 엄마들을 예배 시간까지 업고 계시려면 너무 힘이 드실 것 같아서 탁아부를 두어서 어린애들을 될 수 있는 대로 탁아부에 맡기라고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어린애들을 아직 습관이 잘되지 않아서 엄마 떨어지기를 싫어하고, 엄마들은 역시 애들을 특별히 예뻐하기 때문에 탁아부에 맡기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꼭 자기가 데리고 다닙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우리 선교관 하층을 준비했습니다.
여기를 많이 이용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가끔 어린애들을 데리고 예배드리는 부모님들을 보면 아주 명랑합니다. 어린애를 보는 엄마의 얼굴에는 명랑한 기분이 가득합니다.
사실 어린애와 엄마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장소에는 강단이 안 보여도 별로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가만히 보면 애 엄마들은 강대를 별로 안보고 아기 얼굴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좀 분주하기는 하지만 어린이 방에서 얼굴 찡그리는 어머니는 별로 없습니다.
어린이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그러다가 애들이 점점 커서 유치원에 가면 얼마나 예쁩니까? 유치원에 가서 그림 하나 그려 오면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까?
초등학교 가면 얼마나 귀엽습니까?
혹시 상장이라도 하나 타 가지고 오면 얼마나 훌륭해 보입니까?
그래서 그 상장을 사진틀에 넣어서 방에 걸어 놓습니다. 장해 보여서 그럽니다.
흔히 학부모들 사이에 치맛바람 이란 말이 나오곤 하는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애들이 너무 예뻐서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따라가고, 여기저기 분 주히 다니다 보니까 자연히 치마가 바람에 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자녀는 가정에 화평을 가져옵니다.
어떤 때는 부부간에 말다툼을 하고, 시퍼래서 앉아 있다가도 애들이 학교에 갔다고 엄마, 아빠 하고 돌아오면 성났던 것도 봄동산의 눈처럼 사라집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부부 싸움이 심각해져서 나는 이런 집에서는 못살아 하면서 보따리를 싸가지고 부인이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고집을 부리며 부인이 나가는 것을 보고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사실 부인의 속셈은 내가 이러고 나가면 남편이 붙들겠지 했는데 붙들지 않으니 나갈 수밖에요.
한참 걸어가는데 어린애가 밖에서 놀다가 엄마, 어디가? 보따리를 보니 어린애 눈치에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 못가! 나하고 살아! 하면서 매달리니 그만 아이 손에 끌려 집에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린애가 이혼 방지 하는데도 가정법원 판사보다 낫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할 때도 기쁨이 있습니다.
취직을 해도 기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도 기쁨이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옵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내 아들아 만일에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했습니다.
24 - 25절에는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요한 삼서에 보면 사도 요한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 에서 행한다 하는 것을 듣던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믿음 있는 부모는 자녀에게서 여러가지 다른 소식 듣는 것보다 그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는 말을 들을 때에 가장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는 것은 참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하는 생활,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생활, 그 계명을 지키는 생활, 범사에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생활, 성결과 겸손, 진실과 근면, 충성과 절제 그리고 사랑 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생활을 합니다.
무슨 일에든지 교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합니다. 복음을 전파합니다. 교육에 힘씁니다. 봉사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정성껏 일합니다.
이 얼마나 부모에게 기쁨이 되는 일입니까?
믿음 있는 부모로서 그 자녀에 대한 제일 큰 기쁨, 목회자로서 제일 큰 보람과 기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자녀가, 내 성도가 그 믿음이 점점 자라서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봉사의 열매 를 맺을 때입니다.
왜 이것이 그처럼 큰 기쁨입니까?
기도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사사가 될 때 그 어머니 한나가 얼마나 기도했을까요?
모세가 믿음으로 장성하여 바 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해서 나서게 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세의 어머니 오게벳의 믿음의 기도로 맺어진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모니카의 기도는 어거스틴을 낳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육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가정 교육이나, 기독교 학교의 교육이나, 교회 학교의 교육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진리 안에 서 행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치고, 설교를 하는 것 입니다. 더구나, 이것은 수고의 보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쓰임 받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 부모가 수고한 보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우리 가정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뿌리는 수고 없이 거 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책임을 맡았든지 성실히 수행할 때 큰 축복을 얻을 것입니다.
예배 시간마다 늘 참석을 잘하는 분이 가장 큰 은혜를 받습니다.
한 주일에는 168시간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몇 시간이나 주를 위해 바치십니까?
신문 읽는 시간과 성경 읽는 시간 중 어디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십니까?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강요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학교 가는 것을 꼭 원해서 보냅니까?
공부를 해야겠으니까 싫어해 도 보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병원에 갑니까?
필요하기 때문에 가기 싫어해도 데리고 가는 게 아닙니까?
우리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교회가 꼭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도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 (딤전 4 : 8)고 말했습니다. 물론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해리 A. 아이언 사이드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완전한 교회를 발견하면 그 교회에 다니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교회를 더럽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여러분의 교회에서 그릇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녀들 앞에서 교사와 목사, 지도자들이나 교인들에 대해서 비판하지 마세요.
부모의 생각 없는 비 판의 말을 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은 은연중에 교회를 허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실제적인 실패자는 교회가 아니라 부모와 그 자녀들입니다.
교회를 비판하기보다 팔을 걷고 나서서 결점을 변화시키도록 힘쓰십시오.
교회는 가장 취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기관입니다.
누구나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렇게 교회를 봉사하면 놀라 운 심령의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그스도인의 봉사만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봉사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심령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자세히 보십시오.
대학교 총장이나, 은행 총재나, 기업체의 회장이나, 군의 장성이나, 누구나 교회에서는 사회적 지위의 차별이 없이 봉사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월 넷 째 주일을 봉사 주일로 정하고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조금씩 돕는 일을 합니다.
예배당 뜰의 여러 곳에 봉사함을 놓고 봉사금을 모금합니다.
제가 예배를 끝내고 선교관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봉사함을 붙들고 행여 어느 교인이 봉사금을 넣어 주실까 하는 부동자세로 서 계시는데 그 집사님이 군에서 사단장을 지내신 장군이십니다.
교회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어요?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됩니다.
요즈음 참여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대하여 할 일입니다. 우리 다 함께 일함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업에 동 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를 양육하는 일 다음으로 가장 보람된 일이 가르치고 봉사하는 일입니다.
물론 세상에 완전한 부모란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완전하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도 우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하나님은 완전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 있는 부모에겐 기도의 권능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마 21 : 22)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 (눅 18 : 1)고 했습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빌 4 : 6)고 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약 5 : 16)고 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 : 11)고 했습니다.
믿음있는 부모는 자녀를 위해 특별히 위기에 처할 때 기도의 권능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기도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부모들은 기도를 통해 능력을 얻습니다.
우리 자녀 가운데 믿음이 없어 마음에 짐이 되시는 분 계십니까?
낙심 마시고 계속 기도하세요.
현세에 안 이루어 주시면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라도 꼭 이루어 주십니다.
끝으로,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우리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입니까? 혹 그렇지 못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십니까?
혹 근심거리 되는 자녀는 아닙니까?
내가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받았습니까?
부모된 우리가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주고 있습니까? 이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힘쓰고 있습니까?
믿음있는 부모, 믿음있는 자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회에 유익하고, 교회에 덕 세 우고, 가정에 행복 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