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8:1-18, 율법 책의 낭독과 준수
느헤미야는 스룹바벨 시대에 작성된 족보를 공개한 후 그 기회를 이용하여 믿음의 공동체의 발전에 대해 기록합니다.
느헤미야는 독자를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한 사건과 하나님의 말씀이 그 백성들에게 미친 영향을 기록한 내용으로 데리고 갑니다.
느헤미야 8-10장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합니다.
자료를 기초로 할 때 이 장에서 기록된 사건들이 에스라 8장과 9장 사이 즉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직후에 발생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의 사건들은 1인칭으로 기록된 느헤미야의 일지와 달리 3인칭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게다가 느헤미야 8장과 9-10절의 히브리어 구문은 느헤미야의 이름이 원 사본에 등장하는지 매우 의심스럽게 합니다.
느헤미야 7장에서 시작된 조치가 느헤미야 11장에서 다시 재개되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 장들의 구문과 초점은 이 장들이 후대에 삽입되었다는 주장을 지지합니다.
이 책의 관심은 단순히 연대기적 흐름을 기록하는 것 이상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사실을 기록하면서 당시의 배경이나 이야기 흐름에서 벗어나 다른 시기의 사건들을 언급함으로써 특정한 핵심을 강조합니다.
이 경우 이 부분에 배치된 이 3개의 장은 느헤미야가 뽑을 예루살렘 거주자들이 속한 믿음의 공동체의 순수성을 강조합니다.
성결과 종교적 적합성은 바람직한 사회의 재확립에 필수적입니다.
1-12절은 에스라의 율법 낭독이 설명됩니다.
(1)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에스라와 그의 일행들은 다섯째 달 첫날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두달에 걸쳐 그들은 조상들이 살았던 마을에 정착했습니다.
에스라는 아마 그 시기를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안면을 트고 레위인들에게 율법의 의미를가르쳐 주는 데 사용했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으로 유다 공동체를 세우는 임무를 아닥사스다 왕에게서 위임받았기 때문에 기존 유다 지도자들의 지원과 레위인들의 훈련이 그의 과업에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곱 번째 달에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수문이 성벽 밖에 위치한 장소라고 믿습니다.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이르렀습니다.
칠월은 유다인들게게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달입니다.
나팔절과 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이 있습니다.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는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그 율법을 큰 소리로 낭독했습니다.
이 장소에서 율법을 낭독하기로 에스라가 결정한 것은 율법이 성전보다 더 위대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제단이나 희생 제사보다 더 권위가 있다는 암시였습니다.
그가 율법을 낭독한 시간은 5시간 아니면 7시간이며 이것은 새벽을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백성들이 긴 시간 동안 율법의 일부를 들었다는 것과 그들이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함께 강단에 선 자들의 목록을 제시합니다.
그들이 에스라 옆에 섰던 것은 에스라를 지원하고 그들의 직책이 갖는 무게와 영향력 때문에 이어질 모든 순서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에스라는 두루마리를 펼쳤습니다.
혹은 책을 폈습니다.
6-9절은 백성들이 율법에 반응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6)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7)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전통적으로 축도나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이 성경 봉독에 선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율법을 읽기 전에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했습니다.
에스라의 선포에 반응해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했습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경배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귀빈들이 강단에 서 있는 가운데 본문은 그 처소에 있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한 13명의 레위인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레위인들이 느헤미야 시대와 에스라 시대에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는 두 사람이 봉직한 기간의 차이가 13년밖에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레위인들은 봉독되고 있는 말씀의 의미를 설명하며 백성들 사이를 돌아다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르침은 레위인들의 전통적인 기능입니다.
율법을 낭동할 때 심령을 찔러 쪼개는 이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식이 있었지만 그 말씀들을 무시해왔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 공개적인 부절절한 것이었고,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날이 하나님께 거룩한 날이므로 울기를 멈추라고 당부했습니다.
구약에서는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기념하기 위해 구별된 날들은 즐거운 축제로 즐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기뻐하는 날이지 우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10-12절은 축제가 설명됩니다.
(10)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절기를 즐기고 그들이 가진 최고의 음식을 먹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이 지시들은 모두 신명기에 기록된 것입니다(신 26장).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념하면 즐거운 축제로 이어져야 했고, 거룩한 음식은 슬퍼하면서 먹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언약적 백성의 일원이 된 것을 기뻐하는 날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음식을 이미 준비해 놓은 것으로 볼 때 이 성회가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모임이 아니라 계획된 행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예비하지 못한 자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라는 지시는 아마 그들 가운데 있는 가난한 자들이나 외국인들과 음식을 나누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근심하기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광장을 떠나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순종한 것은 에스라가 그렇게 지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이해가 깊숙이 침투 할 때 순수한 기쁨이 생깁니다.
13-18절은 초막절이 설명됩니다.
(13)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14)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15)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16)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17)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18)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백성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 이틑날 작은 무리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입니다.
이들 소수의 무리들이 학사 에스라의 집에 모였습니다.
에스라는 소수 무리들에게 가르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그들이 초막절을 지켜야 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첫 귀환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로 이것을 행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초막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23:33-43절은 오경에서 초막을 짓는 것을 규정한 유일한 본문입니다.
이것은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신학과 실천을 체곌화시키기 위해 성경과 성경을 비교하고 여러 다양한 자료들을 축적하는 에스라의 태도를 드러내 줍니다.
초막절은 7월 15일에 시작됩니다.
7월 10일에는 대속죄일입니다.
백성들은 그 선포에 응답하여 초막을 지었습니다.
에스라는 절기들의 원래 의도를 회복하여 백성들이 직접 율법과 절기들을 지키도록 되돌려 줄작정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제사장들이 지배하는 독점적 전유물에서 해방시키고 원래적 수여자들이었던 백성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율법의 공개적 낭독에서 예배 행위에 이르기까지 에스라는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꿈을 꾼 개혁가 대열에서 가장 앞 자리에 있습니다.
느헤미야서 저자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모든 자들이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귀환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적으로 초막적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그 절기는 추수감사절로 진화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새롭지만 오래된 사상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 절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칠일 동안 절기를 지켰습니다.
제 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이것 역시 레 23장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과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에 그들의 영혼은 거룩을 향한 갈망으로 불타올랐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명하신 것들과 그들이 살아온 모습 간의 불일치를 깨닫고 애통한 마음을 금치 못했지만 또한 큰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알았기” 때문이다(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