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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그램이 주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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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과 강사)
소가 되새김질로 먹이를 반추(反芻)시키듯 애주가들은 간밤에 마신 술 이야기를 다음날에도“어젯밤에…”하며 꺼내어 씹는다. 이렇듯, 요즈음 우리 국민 모두가 반추하여 씹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있다. 6월 27일, 러시아 월드컵 경기에서 독일과 한국간의 축구경기일 것이다. 16강 진출은 못했지만 세계 1위였던 독일을 한국이 2:0으로 이긴 성과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높여 국민 모두를 행복에 젖게 해주었다. 이렇게 온 국민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준 축구공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규정 무게는 410~ 450g 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축구공 하나가 우리 국민 뿐 아니라 러시아 월드컵 경기가 끝나는 7월 16일까지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고 웃게 하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마력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축구> “와아!”/하는 함성소리/공 하나가 우리 반을 끌고 가네/짝수는 다리 걷고/홀수는 팔뚝 걷고/땀이 나도 따라가고/숨이 차도 따라가네 -대구 매천 5년. 손운학. 1994-
이번 월드컵 경기장에서 뛴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새로운 축구 영웅이 되기까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부터 축구공은 이들을 열광하게 했다. 이렇게 키워온 재능을 활용하여 기적적으로 2:0의 성과를 낸 선수들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골문을 빈틈없이 지켜낸 조현우 선수 뿐 아니라 손흥민 선수, 그리고 손 선수가 골을 넣도록 도운 주세종 선수를 비롯하여 모든 선수가 한 마음(악바리 정신)으로 뭉친 투지와 사력을 다한 열정에 우리 국민은 열광하고 박수를 보냈다. 이번 경기로, 미국 ‘뉴욕 타임스’는 “독일이 월드컵에서 아시아(한국) 팀에 패한 것은 88년간 월드컵 역사에 대형 이변이다.”고 하면서 한국 골키퍼 조현우 선수의 눈부신 선방 때문에 좋은 공격을 하면서도 득점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한편, 독일 뢰브 감독은 지난 월드컵 대회 지도자로서 세계 최고의 성적을 거둬왔는데 이번 대회에서 16강 진입 실패로 거취가 불투명해졌다. 이런 일을 보면 450g이 한 사람을 거인으로 빛나게도 하고 세계적 명장 감독을 초라하게 끌어내리기도 한다. 또한, 450g의 활약은 한 선수의 몸값을 정하기도 한다. 대구 FC의 선수 1인당 평균 연봉이 9608만원이고 골키퍼 조현우 선수의 ‘연봉’은 구단 내(외국인 선수 제외) 선수 중 최고 대접을 받고 있다는데 만약 세계 명문팀의 수문장으로 발탁되면 혼자의 몸값이 대구 FC 구단 전원의 몸값에 상응할 수도 있겠다. 축구공은 이른다. “너희가 땀흘리며 나를 대접한 것 같이, 내가 너희를 대접하리라.” 성경 말씀을 빗대어 들리게 해도 그 말이 진리다.
비단, 450g 뿐이랴?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자기가 갈고 닦은 기량을 통해 자기를 팔면 행복해진다. 데니스 홍 교수는 버지니아 공대 RoMeLa 팀에서 축구를 하는 휴머노이드 다윈 같은로봇을 만들어 로봇이 펼치는 축구경기를 발표하며 행복해했다. 소설가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를 2개월만에 써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그 소설을 쓰는 동안 이 여덟 개가 빠져 임플란트를 했단다. 글을 쓰는 일은 이빨 빠지고 뼈를 깎는 작업이다. 나도 신라 문화 연구가 윤경렬 할아버지를 모델로 우리 정신을 찾기 위한 <신라 할아버지> 장편을 쓸 때 겪어봤다. 시력도 가고 허리도 아팠지만 이 작품을 완성하면 죽어도 한이 없다는 생각으로 행복해하며 썼다. 법정스님이나 황창연 신부님은 남이 써놓은 경전이나 성경을 파는데도 자기 철학을 녹여 맛깔나게 해석하여 깨달음을 준다. 숫제 자기를 상품화하는 강사도 있다.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자기 살아온 이야기. 주변 에피소드로 삶에 깨우침을 공유하는 명강사들도 있다. 시골 할머니는 장날 장터에 나와 앉아 직접 기르신 텃밭 채소나 캐온 나물들을 정성들여 다듬는다. 그래야 채소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기를 끊임없이 다듬어 팔며 행복한 삶을 일구어 나가고 있다.
다시 기분 좋았던 축구 이야기를 반추하고 싶다. 평소 축구에 관심 전혀 없던 내가 이번 독일과의 월드컵 경기를 밤새워 보며 깨달은 것은 행복에 대한 개념이었다. 행복(기쁨)은 추상적으로 마음에 느껴지고 젖어드는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현시(顯示)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편 축구공이 세계 1위인 독일 편 골대에 들어가 골인하는 순간, 행복이 우리 국민들 가슴에 담겨 환호하고 미친 듯이 서로를 얼싸안고 팔짝팔짝 뛰는 모습으로 빛나는 걸 보았다. 그렇다! 그것은 축구공이 우리 국민의 가슴속 바구니에 행복을 던져 넣는 모습으로 환치되어 보였다. 아! 장하다. 대한의 선수들이여!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였다.
그리고 오늘의 이 축구공이 주는 행복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환희를 보면서 미래의 꿈나무들이 꿈씨를 받아 키울 테니 다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부터 시작될 행복이기도 하다. “와아!”/하는 함성소리/공 하나가 우리 반을 끌고 가네/짝수는 다리 걷고/홀수는 팔뚝 걷고/땀이 나도 따라가고/숨이 차도 따라가네.